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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329화 (329/641)

329화

회의장 안에 감도는 한기.

하지만 그건 오직 슈팅스타만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 영주님!! 안 됩니다! 알시아는 이 자리에서 죽이거나 확실히 제압해야 합니다!”

자신이 덫에 걸려들었다는 걸.

“슈팅스타! 적당히 해라!”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닙니다! 저놈은 절대 협력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전부 배신당할 거란 말입니다!!”

“마지막 경고네. 진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민트파괴단과의 모든 협력을 중단하고 자네들이 세운 모든 공훈을 무효화시키겠네.”

“으으……!”

그는 떨리는 눈으로 재호를 노려봤다.

“?!”

저 뒤틀린 입꼬리는 분명 미소!

‘뭐냐…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이 자리에 있는 멍청한 귀족들은 그저 동대륙의 새로운 패권을 자신들이 가지게 될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재호를 향해 손만 비비고 있는 상황.

하지만 유일하게 상황을 파악한 슈팅스타는 불안감과 답답함에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재호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 자리에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찾아내야 한다. 미리 파악해서 우리 쪽에서 막거나 멍청한 귀족 놈들에게 알려야…….’

하지만 재호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는 걸 본 그는 다시금 깨달았다.

이미 늦었음을.

“여, 영주님!!”

그때, 희의실 밖에서 다급하게 달려온 기사가 무례함도 잊은 채 문을 열어젖혔다.

“빌어먹을! 오늘 죄다 왜 이러는 거냐!!”

지든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재호 앞에서 폼 좀 잡아 보려고 했더니 도와주지 않는 주변인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장 전해 드려야 할 소식이……!”

“후……. 뭐지? 투차르 영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인가?”

그 외의 다른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한다면 당장 목을 쳐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기사가 가져온 소식은 그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혀, 현재 구몰 공작령을 향해 공격해 오는 대규모 병력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콰앙-!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친 지든과 동요하기 시작한 귀족들.

그리고 슈팅스타는 재호가 띤 미소가 이것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챘다.

“적들의 정체와 규모는? 왕실 쪽에서 다른 수를 쓴 것인가?”

“아, 아닙니다. 현재 추측하기론…….”

기사의 시선이 힐끔 재호를 향했다.

“페르마 사막 쪽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페르마… 사막……?”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귀족 모두가 알았다.

“알시아 대왕!”

지든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재호를 불렀다.

“당신과 관련이 있는 거요?”

“글쎄, 난 모르는 일인데.”

“하지만 페르마 사막이라 하면 엘리시아 화원 말고는 없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타국을 침략할 정도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거든.”

기사단을 육성 중이긴 하지만 규모도 별로 크지 않았고 아직 실전에 쓸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들 지든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웃기는 소리! 엘프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 다 알고 있거늘, 뻔뻔한 자로군!”

결국 지든도 재호와 협력하겠다던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고, 그 모습에 슈팅스타는 안도했다.

“당장 이 무뢰배를 당장 끌어내 감옥에 처넣어라! 지금 이 시간부로 엘리시아 화원은……!”

“영주님!!”

지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회의장으로 들이닥친 또 다른 기사.

“크, 큰일 났습니다! 투차르 쪽에서 다시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그깟 놈들이 마지막 발악에도 내가 예민하게 굴어야 하나!”

“그, 그것이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릅니다! 마치… 힘을 숨기고 있기라도 했던 것인지 공세가 매섭습니다!”

“뭐?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일부러 패해서 기껏 대치 중이던 전선을 포기했다고?!”

그 말 그대로였다.

테일러는 재호의 작전에 맞춰 적들을 확실히 함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력을 계속 보호하며 일부러 후퇴했던 것이니까.

“쯧! 정예 기사단을 보내서 힘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 줘라!”

“그, 그것이 어렵습니다! 적들의 공세에 맞춰 유줄 자작령이 성문을 걸어 잠가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저도 간신히 돌아 나와 소식을 전해 드리는 것입니다!”

“뭐?!”

“지, 지금 그 말은… 유줄 자작이 우릴 배신했다는 뜻인가?!”

귀족들이 경악했다.

현재 그들이 위치한 곳은 유줄 자작령 북쪽.

이 전쟁의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무력인 정예 기사들이 이곳에 있었고, 나머지 대다수 병력은 유줄 자작령과 투차르 영지 사이의 전장에 있었다.

즉, 허리가 끊겨 버린 상황.

“알시아 대왕……!”

이 사태의 원흉은 굳이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재호도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병력을 움직여 유줄 자작령을 뚫고 끝장을 보든지, 아니면 얼른 영지로 돌아가 침략을 막든지.”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웃기는 소리! 기사들은 당장 이 자식을 끌어내라!!”

재호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제압당했다.

이제 자신이 할 건 없었다.

라셀 왕에게 내전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었으니까.

-이미 간섭할 만큼 한 것 아니냐?

임시 감옥에 갇힌 재호에게 꼰대가 핀잔을 주었다.

“어쨌든 직접적으로 간섭은 안 했잖아?”

-그렇다면 앞으로 네가 벌릴 일은?

“그건 정당방위고. 여기서 탈출은 해야 할 것 아냐.”

최정예 기사들이 모인 이곳에서 재호가 단독으로 탈출하는 건 어려운 일.

그래서 구조대를 준비했다.

“보자… 이제 슬슬 출발했겠네.”

쿵… 쿵… 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묵직한 충격음이 지축을 흔들기 시작했다.

* * *

지든은 병력을 둘로 쪼개어 최전방 지원과 영지 수성을 동시에 감당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지든의 결정에 큰 불만을 보였다.

일단 기사들만으로 유줄 공성을 진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공성을 위한 각종 무기들은 최전방에 있었으니, 결국 자신들의 몸으로 때려 박으란 소리.

안 될 것도 없긴 했다.

문제는 그만큼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란 점인데, 심지어 전력을 반으로 쪼개기까지 해 버렸으니.

그래서 내린 절충안은 유줄 자작령을 크게 돌아 산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기사단의 피해는 최소화한 채로 지원을 갈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전방 지원이 그만큼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만 일반 병사보다 기사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지든은 병사들의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래서 1차적으로 기사단 일부가 이동 경로 수색을 위해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콰아앙-!!

그들이 간 방향에서 난데없이 2미터 가량의 황금 골렘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

녀석의 머리를 붙잡은 징징이의 비명과 함께.

[대충 만든 황금 골렘]

유줄 자작이 가지고 있던 보물을 적당히 긁어모아 만든 재호의 골렘.

사실 칼리토를 직접 만났던 일도 있고 해서 골렘은 쓰고 싶지 않았으나, 상황이니 상황인 만큼 찝찝함은 잠시 덮어 두기로 했다.

일단 탈출을 하려면 적들의 시선을 끌어 줄 확실한 난봉꾼이 필요했으니까.

“고, 골렘이다! 골렘이 쳐들어왔다!!”

“제기랄! 이 타이밍에 갑자기 무슨 골렘이야?!”

당황한 기사들은 돌진해 오는 골렘을 막기 위해 방어진을 구축했다.

꽈아앙-!!

역시나 최정예다운 강력한 방어력을 보여 주는 그들.

그 든든한 모습에 상황을 전달받은 지든은 안심했으나, 슈팅스타는 그러지 못했다.

‘저건 분명 알시아의 골렘이다!’

저 골렘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는 숱한 영상에서 증명된 바.

“영주님! 대피해야 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지든을 위해 슈팅스타가 말했다.

“쯧… 자네는 아까부터 영 미덥지 않은 모습만 보여 주는군. 우리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싸우고 있거늘.”

“아오! 제발 한 번만이라도 말 좀 처들어라! 이 빡대가리 자식아!!”

결국 폭발하고 만 슈팅스타.

“뭐, 뭐라고……?”

“아오! 이 등신들 데리고 뭘 해 보려 한 내가 등신이지!!”

“이놈이 미친 거냐?!”

“비켜! 나라도 도망가야겠으니까!”

동시에 길드 전체에도 귓속말을 보냈다.

“민트파괴단은 전원 전장에서 이탈한다!”

더 이상의 피해를 감수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탄 배는 누더기가 되었으니, 함께 가라앉기 전에 탈출해야 했다.

-그럼 어디로 갑니까?

부길마의 물음.

“…구몰 공작령으로 간다. 침략으로 허술해진 그곳을 우리가 먼저 먹어 장악하는 거다!”

-예?

-예?

-예?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길드원들의 당황한 반응들.

하지만 슈팅스타는 위기 상황에서 발휘된 자신의 천재성에 취했다.

“크큭… 누군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우리한텐 잘 된 일인 것 같군.”

이 완벽하게만 보이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는 구몰 공작령을 향해 달렸다.

* * *

사실 골렘에 대한 슈팅스타의 평가는 좀 과했다.

급조한 녀석인 만큼 체계적인 전투법을 구사하는 기사단을 상대로는 제대로 된 활약을 하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엔 패배해 파괴될 것이라 재호는 판단했고, 그 전에 자신은 탈출하는 게 계획.

뻐버벅-

“커헉?!”

몰래 잠입한 티나의 손에 제압당한 병사들.

“괜찮으세요, 알시아 님?!”

“호들갑 떨지 마. 너 그거 버릇이야.”

그렇게 구출된 뒤, 포위망을 뚫고 달려 숲에서 기다리는 빅썬더와 합류해 텔레포트로 도망쳐 버리는 것.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될 계획이었고,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뭔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으아아악!! 살려 줘!”

“영주님을 지켜라!!”

콰아아앙!!

재호가 예상한 것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이는 골렘.

평소에도 난폭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심지어는 자학 행위까지.

-크, 큰일 났다!

때마침 골렘에 붙어 있던 징징이가 다급하게 날아오며 소리쳤다.

“징징아!”

-또 사고 쳤냐?

-내, 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됐고 무슨 일인데? 큰일 났다는 게 골렘 문제야?”

-어어, 맞아! 저거 갑자기 맛이 가 버렸어!

언제는 맛이 안 갔을 때가 있었던가?

-아냐! 이번엔 뭔가 달라. 뭔가 좀 더…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쿠어어어-

“?!!”

갑자기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 골렘.

쿠웅-

앞으로 고꾸라진 골렘은 두 팔을 땅에 박아 넣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투드드-

이어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던 몸통에선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나더니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골렘을 소환했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상 현상.

‘갑자기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날 만한 요인이 있었나?’

그런 의문을 가지는 순간.

“아.”

있었다.

“칼리토…….”

그 녀석을 대면했었을 때, 뭔가 변화가 일어났던 게 분명했다.

달리 생각해 볼 만한 다른 원인도 전혀 없었고.

쿠륵- 쿠르득-

“근데…….”

기이한 소리를 내며 꿀렁이는 골렘은 괴로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마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탈피 과정처럼.

투두둑-

결국 골렘의 형체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쩌억-

그리고 갈라진 등에서 솟아난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두 쌍의 날개.

2미터 정도에 불과하던 골렘 속에서 다섯 배는 더 커 보이는 몸뚱이가 빛과 함께 빠져나왔다.

쿠우웅-

몸보다 더 커다란 두 개의 팔이 땅을 찍으며 지진을 일으켰고, 두껍고 짧은 다리가 대지를 디디고 섰다.

고릴라처럼 생긴 머리와 투구처럼 안면을 감싼 두 개의 뿔.

‘카, 칼리토가 보낸 마수인가?!’

하지만 그건 오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코페이 왕국의 진정한 수호신이 깨어났습니다!]

[에이프 드래곤 알드리온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코페이 왕국의 수호신은 황금 골렘 아니었어?!”

뜬금없이 웬 드래곤?

애초에 드래곤처럼 생기지도 않았건만!

‘그래도 진정한 수호신이란 걸 보면 우리 편이겠지?’

더군다나 재호 자신은 코페이의 정식 후계자…….

[*퀘스트*]

[오랜 시간 강제로 봉인되었다 깨어난 알드리온은 현재 제정신이 아닙니다!

당신은 코페이의 왕으로서 그가 정신을 차리도록 돕거나, 방법이 없다면 최후의 선택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퀘스트 목표 : 선택1. 알드리온의 의식 깨우기.

선택2. 알드리온 소탕.]

“뭐 하나 쉽게 가 주질 않는구나.”

재호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알드리온을 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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