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도망친 귀족들을 잡기 위한 팀이 꾸려졌다.
재호, 우람, 티나, 테일러, 빅썬더.
그리고 수인 쪽에서도 한 명 포함이 되었다.
사실수인과 함께 움직이는 건 사실 굉장히 위험했다.
외모가 어딜 가든 너무 눈에 띄었고, 같은 이유로 문제 발생 시 용의자 특정도 너무 쉬웠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 움직이기로 한 수인은 적어도 한 가지 조건은 완화가 되었다.
바로 키가 재호와 비슷한 수준으로, 비교적 인간에 가까웠던 것이다.
“히히, 반가워! 난 맘브야!”
햄스터에 가까운 설치류 수인.
보들보들한 털이 빵빵하게 자리한 그는 얼굴을 마구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머리 아래에 달린 탄탄한 근육몸을 보는 순간 욕망은 바로 사라지니 다행이었다.
얼굴만 보면 다른 수인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확 뛰는 타입이었으나 투구로 어느 정도 변장이 가능했다.
물론 일반적인 투구를 쓰기엔 머리가 좀 큰 편이긴 해 제작이 필요하긴 했다.
“근데 쟤 믿을 만해? 빅썬더2면 어떡해?”
재호 옆에 선 테일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인들 중, 가장 약해 보이는 맘브다 보니 테일러는 불안했다.
“뭐, 쉽게 당하진 않겠지. 그리고 명심해야 할 건 우리가 싸우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란 점이야.”
귀족들이 갖고 튄 보물들을 터는 게 목적이지.
“왠지 쥐라고 하면 그런 거 잘 할 것 같지 않아?”
“그, 그래서 고른 거야?”
테일러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재호의 설명이었다.
“알시아. 준비됐다.”
그때 텔레포트를 위한 준비를 마친 빅썬더가 재호를 불렀다.
“좋아. 가자.”
파앗-
바로 시전된 텔레포트는 재호 일행을 먼저 엘리시아 화원 바깥의 사막으로 보냈다.
도마뱀 시티를 들러 변장을 위한 아이템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음?! 재호야! 저건 뭐냐?!”
헌데 곧장 도마뱀 시티로 이동하려던 순간, 우람이 다급하게 재호를 불러 세웠다.
“네? 뭐요?”
“저기 저거 말이다. 빛나는 머슬상.”
“아!”
우람이 발견한 건 첨탑 위에서 존재감을 뿜어내는 아나볼릭 황금 신상.
“저기가 제가 말했던 곳이에요. 아나볼릭 교단.”
“아! 저곳이……!”
당장이라도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우람은 일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있었다.
“다음에… 꼭 돌아오마!”
“네네, 일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구경시켜 드릴게요.”
우람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한 아쉬움을 적당히 달래 준 뒤, 다시 뒤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 * *
도마뱀 시티에 도착한 일행.
그리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들.
“어? 저거 뭐야?”
“헉?! 수인? 그런데… 귀여워!”
“아냐! 머리통 아래에 달린 몸뚱이를 봐! 저건 괴물이야!”
“탈을 쓴 건가?”
“저 세 명의 몸만 보면 한 가족이라고 해도 믿겠다.”
“실제로 옆에 아저씨는 알시아 아빠 아냐? 전에 수인이랑 항해하던 미친 아저씨 있었잖아. 커뮤에 보니까 그 사람이 알시아 아빠라던데?”
“헉? 그럼 저 옆에 있는 게 진짜 수인이라고? 하지만… 몸이 너무 사람인데? 역시 그냥 탈을 쓴 거 아닐까?”
맘브를 본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진실을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심각한 얼굴로 달리는 재호 일행을 막을 수 없었다.
“드렐리어! 드렐리어!”
대장간에 도착한 재호는 곧장 그를 불렀다.
“그렇게 다급하게 무슨 일인가?”
안쪽에서 작업 중이던 드렐리어가 재호의 부름에 바로 나왔다.
“음?”
그리곤 바로 발견한 맘브를 보곤 흠칫했다.
“자, 자네 뒤에 있는 그건 대체 뭔가?”
“아, 안 그래도 설명하려 했어.”
어느새 맘브를 보고 모여든 드워프와 고블린들 앞에서 재호는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흠……. 재밌는 상황이로구만.”
“별로 재밌진 않는데.”
“그러니까 대충 정체를 숨길 수 있을 갑옷들과 저 수인의 얼굴을 가릴 투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군.”
“맞아. 옵션은 필요 없어. 그냥 깡통이기만 하면 충분해.”
갑옷을 입는 건 재호와 우람, 그리고 티나 세 사람이었다.
테일러는 어차피 모습을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고, 빅썬더는 자신의 장로 배지를 떼기로 했다.
얼굴만 봐선 빅썬더가 백탑 장로인지 아닌지 잘 모를 테니 배지만 없애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뭐, 급하게 쓸 물건들이야 잔뜩 있긴 하지. 다만 장인으로서 제대로 만들어진 게 아닌, 실패작들을 쥐어 주는 건 마음이 아프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은 참아 보겠네!”
하지만 재호는 드워프가 말하는 실패작의 기준도 대단한 물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최상급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의 성공작 수준은 되었으니까.
“이쪽으로 오게! 아, 그리고 거기 수인은 그 옆에 있는 녀석을 따라가 뚜껑 사이즈를 재고.”
맘브에겐 따로 지시를 내린 뒤, 드렐리어는 재호 일행을 실패작을 모아 둔 창고로 안내했다.
쿠웅-
커다란 문이 열리자 드러난 어마어마한 규모의 창고.
역시나 언뜻 봐도 아이템들의 숫자나 품질이 대단했다.
“연구와 반성을 위해 모아 두는 것들이지. 여기서 적당히 사이즈에 맞는 걸로 골라 가게나. 단, 어디 가서 드워프가 만든 거라곤 하지 말아 주게.”
본인들이 만족하지 못한 물건을 세상 밖에 보내는 것이 영 신경 쓰이는 드렐리어.
재호는 기능보다는 적당히 가동성 좋은 갑옷을 골랐고, 우람은 어깨뽕이 잔뜩 들어간 살벌한 갑옷을 골랐다.
그리고 테일러는 적당한 단도를 몇 개 골랐고.
“너는 왜?”
“으응? 아, 아니…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 준다는데 좀 챙겨 둘 수도 있지.”
하지만 테일러의 욕심은 드렐리어의 말에 와장창 무너졌다.
“아, 역시 안 되겠어. 자네들 일이 끝나면 다시 돌려주게나. 이런 걸 세상에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둘 순 없어.”
“뭐, 그렇게 해.”
재호나 우람은 전혀 상관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 다 이런 둔한 중갑은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잿밥을 기대했던 테일러만 씁쓸해졌을 뿐…….
“알시아 님.”
그때 묵묵히 창고 안을 둘러본 티나가 재호를 불렀다.
“응? 갑옷 안 골랐어?”
여전히 빈손인 그녀.
“네. 그런데 꼭 입어야 하나요?”
답답한 중갑을 입으려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그녀.
재호도 투박한 갑옷을 입은 엘프는 본 적이 없긴 했었다.
“음……. 변장을 하긴 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과거 인간으로 변장하는 것도 싫다며 엘프들은 재호의 귀를 길쭉하게 만들어 버린 적도 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엘프들이기에 갑옷을 입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것.
“그렇다면…….”
재호의 시선이 떨어져 아이템을 살피고 있는 빅썬더로 향했다.
“빅썬더! 혹시 남는 로브랑 마법사 모자 있어?”
갑옷을 꺼려 한다면 대안으로 마법사 변장이 있었다.
“여벌옷을 들고 다니는 플레이어가 어디 있어?”
대부분은 단벌 패션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이따 잠시 영지 들러서 옷 좀 사도록 하자.”
적탑 구역 쪽으로 가면 마법사 기본 세트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들렀다 가야 할 것 같았다.
“아, 근데 맘브가 쓸 투구는 금방 되는 건가?”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은 걸릴 거네.”
드렐리어가 대답했다.
“그럼 지금 갔다 오자. 빅썬더. 영지로 부탁할게.”
“……알았다.”
왠지 개인 운전기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빅썬더였다.
* * *
모든 준비는 마쳤다.
강철을 얇게 펴서 만든 깡통 헬멧을 쓴 맘브는 확실히 얼굴이 가려졌다.
“얼굴이 가려지긴 했는데…….”
평범한 사람보다 머리가 두 배는 더 커 보인다는 점이 문제긴 했지만.
티나 또한 재호의 절충안을 받아들여 싸구려 마법사 로브와 커다란 모자를 덮어썼다.
귀가 약간 보이긴 해도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 이상 발견하긴 어려웠다.
척-
그리고 마침내 재호도 옷을 바꿔 입었다.
평소 기본 옷에 앞치마를 하고 다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중갑 패션.
“와……!”
테일러는 새로운 재호의 모습에 탄성을 흘렸다.
“너 진짜 장난 아니게 멋있다. 너한테 딱이다! 이게 맞는 패션이네.”
분명 별 대단한 옵션 없이 방어력만 높은 깡통임에도, 재호가 입으니 최종 보스의 느낌이 났다.
“어후, 답답해 미치겠네.”
하지만 당사자는 온몸을 꽁꽁 묶은 듯한 답답함에 벌써부터 벗어 버리고 싶었다.
“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군. 이러면 운동은 많이 되겠지만, 너무 많이 움직이면 근손실이 올지도 모르겠어.”
우람 역시 조금은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갑옷을 불편해했다.
“그럼 모든 준비가 된 건가?”
“응, 출발하면 돼.”
빅썬더의 물음에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들이 라셀 왕국을 탈출해 향한 곳에 대한 정보는 레드벌룬 쪽에서 추가로 받았다.
“좌표는 룬가 왕국의 왕실 마법회 텔레포트홀. 맞나?”
“맞아. 다음 행적은 그곳에서 찾아봐야겠지만. 아, 그리고 내가 룬가 쪽이랑은 별로 사이가 안 좋거든? 그러니까 괜히 눈에 띄는 짓은…….”
하지만 너무 눈에 띄는 파티 구성원.
“…그냥 출발하자.”
빅썬더의 마법이 시전되며 그들이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었다.
꽈르릉-
그들이 도착한 곳은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의 홀.
꽤 신경을 쓴 장소인지 화려한 장식들이 많이 되어 있었으나,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래?”
이상할 정도로 썰렁한 주변에 불안감을 느낀 재호가 물었다.
“그렇다. 어차피 여긴 텔레포트 도착지라서 사람이 있을 만한 곳도 아니거든. 다른 나라에 있는 학회들도 똑같다.”
마탑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마법회들이 만든 공간.
헌데 듣다 보니 재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저번 엘리시아 화원을 올 땐 왜 굳이 사막으로 왔던 거지? 적탑으로 오면 더 편했던 거 아닌가?”
“아니, 마탑에는 텔레포트를 위한 장소가 없다.”
“그건 또 왜 그래?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탑주의 마나로 완벽한 통제와 균형을 이루는 장소에 텔레포트를 시도했다간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니까. 마탑들끼리 이미 오래전에 합의된 사안이라고 들었다.”
새로이 알게 된 소소한 지식.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고?”
“마법사 세계에선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 텔레포트가 대단한 건 쓸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지 않아서이지, NPC까지 포함시키면 흔히 쓰이는 것이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룬가 왕실 마법회 로비로 나왔고, 테일러는 곧장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숨겼다.
텔레포트홀과 달리 로비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는데, 빅썬더의 말대로 사람들은 텔레포트홀에서 누가 나오는지 딱히 관심을…….
수군수군-
가던 길을 멈춘 채 재호 일행을 보며 쑥덕대는 사람들.
“저 사람들 뭐야? 전쟁을 일으키러 온 건가?”
“설마… 겨우 저 숫자로?”
“어디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변장을 해도 느껴지는 대단한 존재감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재호 한 명이 아닌 우람, 맘브까지 있었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당연했다.
“흠흠,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긴장한 채로 그들을 맞이한 룬가 왕국 관리자.
학회 건물 내에 방문 목적을 두고 있다면 상관없지만 왕국으로 나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난 백탑의 마법사 디도스다.”
태연히 거짓말을 한 빅썬더.
“아! 배, 백탑에서 오셨군요! 헌데…….”
그가 궁금한 건 빅썬더가 아니라 뒤에 선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절대 왕국 내로 들여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모습들.
“이들은 내 동료 모험가들이야. 룬가 왕국 인근의 몬스터 사냥을 위해 왔지.”
“아, 그렇습니까? 헌데… 이 주변엔 모험가님들처럼 강해 보이는 분들께서 갈 만한 사냥터가 딱히 없는데 말입니다…….”
꼬치꼬치 캐묻는 그의 태도에 빅썬더는 난처해졌다.
원래라면 대충 통과되는 절차였다.
왕국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각서만 받고 통행료만 지불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호, 우람, 맘브 때문에 관리자는 쉽게 보내 주지 않았다.
“크흠… 실례지만… 여러분들의 투구를 잠시 벗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급기야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투구를 벗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맘브가 수인이라는 사실만 들켜도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것이다.
“빅… 디도스.”
재호가 빅썬더를 불렀다.
“내가 이야기하지.”
다행히 대화(?)는 재호의 전문 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