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음? 아트리우스 대신 바다를 모험하자고?”
엠베이 숲에서 투기장 구경에 푹 빠져 있던 요세프.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은혜는 재호에게 부탁받은 대로 제안을 했다.
“어차피 더 강한 자들을 찾아 떠나는 거잖아? 그럴 거면 편하게 아트리우스로 가는 것보다는 바다를 모험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뭐…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긴 한데……. 그런데 재호맘 자네는 배를 몰 줄 아는가? 난 전혀 모르는데.”
“아,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 올 때 봤던 남자랑 수인 있지? 그 사람들이 큰 배를 가지고 있다고 해. 원하면 같이 가도 된다니까.”
“오호! 그거 괜찮군. 그렇지 않아도 수인들은 궁금했거든.”
타고난 강인한 육체를 가진 그들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끼던 그녀는 은혜의 제안에 혹했다.
말칸트와 달리 눈치란 게 있는 요세프는 수인과 한바탕 해 보고 싶은 걸 참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다른 수인도 많이 왔더라. 코끼리 수인도 있던데?”
“코… 코끼리……?!”
그걸 듣는 순간, 요세프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당장 가지!”
코끼리 수인을 보기 위해서 바로 투기장을 떠났다.
* * *
은혜에게서 작전 성공 소식을 들은 재호.
그제야 재호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요세프가 아트리우스로 가려는 걸 막겠다고 쓸데없이 실랑이할 필요가 없어졌어.’
남은 건 이제 우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재호는 우람과 수인들을 데리고 대운하 현장으로 향했다.
운 좋게도 지난번 칼리토 사건 이후로 공사에 차질이 생길 만한 일은 크게 없다고 했다.
그 덕분에 현장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폭 20미터, 깊이 8미터의 거대한 규모.
입이 떡 벌어지는 대단한 위용에 우람과 수인들은 감탄했다.
“인간들은 대단하군. 그 조그마한 몸으로 이런 엄청난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뭐… 엄밀히 말하면 인간만의 힘은 아니긴 해.”
재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수많은 사람과 마법사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죽치고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노동력은 자연인과 오우거들이었다.
이 정도로 깊게 땅을 파는 건 그들의 타고난 완력이 없으면 한참 걸렸을 테니까.
“헉?! 저길 봐!”
그리고 마침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들을 발견한 수인들이 경악했다.
“이, 인간이 어떻게 저토록 거대할 수 있는 거지?!”
“형님보다도 큰 것 같아!”
일행 중 가장 거대한 코끼리 수인보다도 한참 큰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살아생전 저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는 본 적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진정해!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녀석들이니까. 이따 여기 책임자가 소개해 줄 거야.”
흥분한 그들을 데리고 패로우를 찾은 재호.
한데 패로우를 보는 순간, 흥분했던 수인들의 얼굴이 잔뜩 구겨지더니 패로우를 향해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윽, 역겨운 냄새가 나는군.”
“저건 뭐지? 아무리 봐도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마치 당장 죽여야 할 것 같은 본능이 느껴져!”
악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으나 동물적 감각으로 위험을 감지한 그들.
“…이것들은 또 뭡니까?”
패로우는 갑작스러운 수인들의 비난에 당황해 물었다.
불과 어제 흡성 큐브에 대해 자문을 구하더니, 오늘은 대뜸 수인들을 주렁주렁 데리고 온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패로우.
“오늘부터 당분간 일하게 된 이들이야. 힘 하나는 기가 막히니까 현장 어디든 적당한 곳에 투입하면 될 거야.”
패로우에게 재호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맙소사…….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오신 겁니까?”
먼저 맘브는 보았을 때도 이 정도로 충격이 크진 않았다.
그래도 햄스터처럼 귀여운 얼굴을 한 녀석이라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했으니까.
하지만 다른 수인들은 아니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인상에다 적응되지 않는 노골적인 동물 머리, 그리고 우람의 몸을 그대로 확대한 듯한 난폭한 근육들은 악마조차 위축시킬 정도였다.
“…저기 폐하.”
패로우는 재호에게만 들릴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근데 저 녀석들 말은 듣습니까? 아무리 봐도 잘못 건드렸다간 제가 찢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 제대로 봤어.”
“아, 그렇습니까? 전 또 제가 잘못 본 줄… 이 아니라! 그렇게 태연히 말씀하실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패로우가 기겁하며 재호에게 항의했다.
“안 그래도 형식적으로만 차지한 책임자인데 이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단 말입니까?”
패로우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마계에서 떠나오긴 했지만 어차피 솔로… 아니, 가족도 없었고, 악마 자체가 동족애나 가족애가 희미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미련은 없었다.
게다가 그저 멍청하게 달려들기만 하고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최하급 잡졸 악마들을 부리다 제법 쓸 만한 인간들을 이끄는 지금이 훨씬 대장 놀이하는 맛이 나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 재호가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것 같으니 불안한 게 당연했다.
“에이, 어차피 너도 안 죽잖아. 마계로 돌아갈 뿐이지.”
“그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겁니다!”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기서 일을 돕기로 모두 합의가 된 거니까.”
그래도 패로우를 보자마자 보였던 수인들의 반응이 조금은 걱정이 된 재호가 추가로 조언해 주었다.
“할 말이 있으면 수인들한테 직접 하기보단 저기 보이는 아저씨한테 말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아저씨라 말하는 재호.
그걸 모르는 우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재호를 향해 멋지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 인간도 보통 살벌한 게 아닌데 괜찮습니까?”
“괜찮아. 너보다는 확실히 약한데 그렇다고 괜히 건드리진 말고. 말은 잘 통할 거야.”
그렇게까지 말해 준 재호는 패로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했다.
“화이팅! 그럼 내 돈이 아깝지 않게 잘 써먹어 달라고.”
“…알겠습니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패로우가 우람과 수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흠흠, 반갑다! 난 엘리시아 화원의…….”
“아, 가까이 오니 더 역겨워.”
“기사단…….”
“야! 그루밍 좀 해라. 어떻게 그런 냄새가 날 수 있냐?”
“패로우우우…….”
후각이 특히나 예민한 수인들이다 보니 재호는 못 느끼던 악마의 냄새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씻지 않는다는 잔인한 오해를 대놓고 들으니 자신감이 뚝 떨어진 패로우.
그리고 그 안타까운 패로우를 위해 재호가 선물을 해 주었다.
“이거라도 써 봐.”
“윽?! 이게 뭡니까?”
재호가 준 건 항해용 엘프 꽃템 중 하나인 화관.
진한 꽃향기가 패로우를 뒤덮자 수인들은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는지 얼굴이 살짝 펴졌다.
“휴, 그나마 나은 것 같네.”
하지만 화관을 머리에 쓴 패로우는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 이걸 써야 합니까?
“뭐, 적당히 알아서 사용해.”
굳이 강제할 이유는 없었기에 재호는 건성으로 답했다.
* * *
그렇게 급한 일은 다 처리한 재호… 는 사실 산적한 대형 퀘스트들이 많았다.
재호가 사용하면서 흩어져 버린 <바다의 부름>을 다시 모아 아트리우스에 돌려주는 것.
아나볼릭 교단을 5대 교단으로 만드는 것.
흑마법사 탑을 만들어 주는 것.
칼리토를 마왕으로 만들어 주는 것.
프티머스와 대악마들을 깡그리 토벌하는 것.
게다가 한참 전에 받았던 전직 퀘스트나 미드스트 제국의 5황자인 젠트르노를 차기 황제로 만드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죄다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란 게 공통적이지.’
클리어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도 난감했다.
하지만 이런 굵직한 퀘스트를 수없이 해 온 재호는 알고 있었다.
‘기다리면 저절로 때가 올 것이니라…….’
더군다나 이제 게임 내에만 신경 쓰는 게 어려워질 정도로 바빠지는 시기도 찾아왔다.
[NLK]
뉴월드 리그 코리아.
두 번의 시범 리그 이후, 마침내 뉴월드 첫 공식 대회가 발표된 것이었다.
재호와 완식은 일성 플라워즈 팀 회의실을 찾아 다른 팀원들과 화상 회의 중이었다.
“우리가 시범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때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지.”
회의를 진행하는 감독 두표가 팀원들의 얼굴을 차례로 돌아보며 말했다.
“게다가 시범 리그인 만큼 즉흥적인 면이나 시스템적 허점이 드러난 부분도 꽤 있었고. 3차 시범 리그까지 열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을 깨고 바로 정식 리그가 잡혔어.”
그리고 그건 기존 시범 리그보다 일성 플라워즈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룰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우리가 너무 강했다는 거겠지. 그건 다시 극복해 내면 될 일이야. 그 이전에 더 큰 문제는…….”
리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시범 리그 때처럼 전 세계의 선수들이 한자리에서 겨루는 무대는 아니었다.
바로 한국 내의 팀들이 참가하는 국내 리그.
한 팀에서 다섯 명이 경기 출전을 하는데, 최소 세 명은 해당 리그 국적 선수여야 한다는 것이 규정이었다.
대부분의 팀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규정이었으나 일성 플라워즈는 아니었다.
현재 팀원은 재호, 완식, 사만다, 레드, 다키스트, 총 다섯 명.
“재호랑 완식이만 제외하면 다 외국인인 데다… 아, 혹시나 해 말하지만 한국 기준에서 말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어.”
두표는 다른 세 명의 선수들을 위해 부연 설명해 주었다.
“더군다나 팀원도 딱 다섯 명이다 보니 서브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이야.”
시범 리그 때는 4인으로 진행되었던 대회였으나 정식 리그에서는 5인 경기로 변경이 된 상황.
“즉,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사람의 추가 선수를 더 뽑아야 해. 그것도 한국인으로.”
일성 플라워즈에서 선수를 모집한다면 줄을 설 것이다.
그럼에도 두표의 표정은 어두웠는데, 새로운 선수가 자칫 땜빵 선수로만 인식이 될 것이 우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새로 들어오게 될 선수가 소외되는 일은 없도록 너희가 신경 좀 써 줬으면 해. 또한 너희들도 부득이하게 출전이 제한된 상황에 너무 감정적이지 않길 바라고.”
두표는 사만다, 레드, 다키스트를 향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사만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만다 말이 맞아요! 어차피 서브 선수가 있긴 하니까요. 다섯 명이 빡빡하게 돌리면 알시아 님도 꽃집 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요!
현실에서도 변함없이 충직한 레드의 발언.
-나도 뭐… 별로 상관없어. 솔직히 시범 리그 때 너무 힘들기도 했고. 우리도 번갈아 가면서 출전해서 적당한 휴식도 좀 보장해 줬으면 좋겠어.
다키스트 역시 새로운 팀원 충원에 개의치 않아 하자 두표는 다행이란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전 세계 각 리그의 준우승팀들까지 출전하는 뉴월드컵에선 팀 내 모든 전력의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니까…….”
“어? 잠깐만!”
그때, 갑작스러운 재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그래, 재호야?”
두표는 식은땀까지 흘리는 재호의 모습에 놀라 물었다.
“해당 리그 국적 선수가 세 명 이상 출전이면… 난 무조건 출전 아니에요?”
“…….”
다키스트의 휴식 발언에 함정을 알아챈 재호.
“쳇…….”
그리고 그 순간 나지막이 나오는 두표의 한숨에 재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은 서브 두 명까지 뽑으라고 하셨어.”
하지만 팀 내 최강 전력인 재호를 무조건 출전시키고 싶었던 두표는 미끼를 던졌으나 재호는 물지 않았다.
“크흠. 어쨌든 이제 문제는 어떤 선수를 뽑느냐인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적당히 땜빵으로 선수를 뽑을 생각은 없어. 시범 리그에서 보여 줬던 우리 팀의 압도적인 포스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해.”
물론 이미 한국의 많은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다른 프로팀에 입단한 상황.
하지만 거기에 소속되지 않은 숨은 고수들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그래서 제대로 뽑을 겸, 아예 팀 차원에서 큰 이벤트로 한번 진행해 볼까 싶다. 바로 야생화 서바이벌!”
“…뭐요?”
대체 뭔지 감도 안 오는 네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