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무한서고!
그곳은 그리 넓지 않은 천계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밤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늘 눈부신 세상 끝, 유일하게 어둠이 자리 잡은 그곳에 높게 솟은 탑.
도대체 얼마나 높은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무한서고겠지.’
재호는 초하나를 따라 무한서고로 향하는 외길을 걸었는데, 가는 내내 중무장을 한 천사 말곤 다른 이들을 볼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인간인 재호가 다가오는 걸 막아섰는데, 프티머스에게 받은 출입증을 보여 주자 군말 없이 열어 주었다.
“의외로 별 말 없네.”
“무한서고는 천사들만의 장소가 아니기에 출입증만 있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 모든 세계의 지식을 아우르는 무한서고는 천계 소유가 아니야. 모두 그걸 알지. 그리고 우리가 관리하는 건 입구가 천계에 있기 때문일 뿐이란 거도.”
“그래서 인간이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막아서는 건 아닌 거군.”
“맞아. 자격만 있다면 악마도 출입은 가능해. 물론 악마가 천계에 올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악마가 천계로 올라온다면 그건 곧 전쟁이 시작된단 뜻일 터였다.
“그런데 왜들 이렇게 분위기가 삼엄해?”
“가끔 무한서고에서 수문장이 나오는 경우가 있거든.”
“뭐?”
“이유는 모르지만 그럴 때가 있어. 밖으로 나와서 딱히 뭔가를 하진 않지만, 혹시나 천계 중심부로 넘어올지도 모르기에 늘 경계를 하고 있어야지.”
그 말에 재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면 그게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시시한 말꼬리 잡기 같은 의문은 뒤로한 채, 두 사람은 입구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두 명의 천사가 지키고 있었는데, 초하나와 잘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초하나? 갑자기 더 높은 곳을 도전할 마음이라도 든 거야?”
“하하, 그럴 리가. 서고만 열람하려는 거야.”
“그래? 그런데 그 옆에 있는 건…….”
재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아, 알시아 아닌가?!”
유명인사답게 바로 알아보는 그들.
슥-
이번에도 재호는 무한서고 출입증을 보여 주었다.
“으음……. 하긴, 이유가 있으니 다른 녀석들이 여기까지 순순히 보내 준 것이겠지.”
하지만 여전히 경계는 거두지 않은 채 두 천사는 재호를 이리저리 살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긴 하군…….”
“이건 인간이라고 할 수 없겠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뒤섞였어.”
재호가 품은 여러 힘과 권능을 꿰뚫어 본 그들의 중얼거림.
“흠흠, 그럼 들어간다?”
“아아, 그래.”
척-
문이 열리지 않도록 고정해 놓은 12개의 창을 분리하자 커다란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인간이 무한 서고에 들어가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기대되는군. 과연 얼마나 높이 오를지.”
안으로 들어가는 재호를 향해 천사들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멸시나 비웃음이 아닌 순수한 기대였다.
쿵-
다시 닫힌 출입문.
내부는 온통 유리로 만들어진 고급 호텔의 로비 같았다.
그 가운데에 허리 높이 정도까지 올라온 작은 기둥이 있었는데, 그 뒤로 나선형 계단이 자리한 걸 보면 출입 절차를 위한 장치로 보였다.
“제대로 봤어. 네 출입증을 저곳에 사용하면 위로 오르는 길이 열릴 거야. 하지만 단순 정보 조회를 위해서라면 이곳에서도 충분하지. 사실상 무한서고의 ‘서고’는 여기가 끝이야.”
“여기서?”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봐도 이곳은 서고로 보이지 않았다.
“하하! 아직도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거야? 이곳에 책꽂이와 책은 없어. 이 공간 자체가 모든 정보의 보고니까.”
그러면서 앞서 재호가 보았던 장치로 다가간 그가 그곳에 손을 올렸다.
“이건 출입 절차를 위한 것도 있지만, 정보 조회 또한 가능하지. 잠시…….”
그는 눈을 감고 집중하는 듯, 미간을 살짝 구겼다.
“음, 확인했어.”
“벌써?”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모든 정보를 다 보았다고 말하는 초하나.
“이비우스라……. 조회가 되긴 되었는데 정보가 많지는 않아. 그리고 그 이전에 하나 알아 뒀으면 좋을 것 같은 데 있어.”
“뭔데?”
“아까 입구에 있던 녀석이 말했잖아. 인간은 오랜만이라고.”
“응. 기억하고 있어.”
“역사 속에서 몇몇 인간들이 이곳을 방문한 기록이 있는데, 이비우스도 그중 한 명이야.”
“?!”
놀라운 사실을 시작으로, 초하나는 이비우스에 대해 알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 *
플리스트 이비우스.
대륙에선 이비우스 여왕으로 불렸던 그녀의 본명.
고대의 최강자 중 한 명이었으나 피루스 황제와의 전투에서 전사.
죽기 전, 피루스 황제에게 신의 저주를 새겨 놓았다.
“신의 저주?”
저주는 아닐 것 같다던 알드리온.
하지만 무한서고는 그것이 저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신의 저주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마 이비우스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웠지.”
알드리온은 재호의 의심을 감지하곤 얼른 설명했다.
“맞아. 신의 힘을 빌린 저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것만으로도 이비우스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단 걸 알 수 있지.”
초하나도 알드리온의 말에 동감해 주었다.
“뭐, 어쨌든 단순 저주가 아니었단 거군.”
왜 교단들이 해결하지 못한 것인지도 이해되었다.
이 세계의 최고 존재인 신의 힘을 통한 저주를 신을 모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다만 이비우스 뒤에 선 신이 누구인지는 확인이 안 돼. 아무래도 더 높은 층을 올라야 하는 것 같아.”
문득, 프티머스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재호는 이해되었다.
신과 관련이 있다면 그가 함부로 이야기하긴 어려웠으리라.
“그렇다면 이비우스가 사용했던 힘은 뭐야? 그것도 신과 관련된 거야?”
“아니. 이비우스의 능력이 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정보는 없었어. 어쩌면 내 등급으로는 확인이 안 되는 정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이비우스의 능력에 대한 정보 일부는 얻을 수 있었어.”
“뭐?”
그렇다면 저주와는 달리, 그녀의 순수 능력은 신과 관련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비우스의 능력이 뭔데?”
“천신무(天神舞).”
“……?”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재호는 눈을 끔뻑였다.
“천신무가 뭔데?”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끙……. 다른 내용은 없어?”
“그게 끝이야.”
재호는 자신이 직접 탑으로 들어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19층까지 오른 초하나조차 겨우 이 정도밖에 못 얻었거늘, 직접 들어갔다면 하나도 못 얻었을지도 몰랐다.
“결국, 알게 된 건 이비우스는 무한서고에 들어온 적이 있는 것과 신의 저주, 그리고 천신무, 세 가지인가?”
“뭐 다른 것도 더 있긴 한데…….”
“야! 이런 식이면 섭섭해?”
“아, 아니. 되게 별것 아닌 정보들이라서 말 안 한 것뿐이야. 이비우스의 취미나 외모, 남성 편력 같은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거 아냐.”
원래라면 초하나의 말에 공감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선 그런 것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흠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지나친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 싶은데…….”
좋지 않은 타이밍에 양심을 찌르는 초하나였지만, 재호는 이 순간만큼은 두 눈과 귀를 막기로 했다.
“말해 줘!”
“너 역시 변태구나?”
“수천 년 전의 고대인한테 그런 감정을 왜 느껴! 그리고 ‘역시’는 왜 역시야?! 헛소리 말고 싹 이야기해 줘.”
재호는 발끈하면서 초하나를 재촉했다.
“보자… 이비우스가 태어난 날은……. 이비우스의 첫걸음마는……. 첫사랑은…….”
확실히 초하나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생략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이 많았다.
‘도대체 왜 이런 정보까지 다 들어 있는 거야?’
무한서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기엔 너무 정보가 너무 세세했다.
‘신이 관여한 게 확실한 모양이야.’
그렇다는 건 곧…….
‘어쩌면 무한서고는 뉴월드의 모든 데이터가 저장된 장소일지도 몰라.’
그렇지 않고서야 한 인물에 대해 이 정도로 세부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리고 바닷속에 숨어 있던 인어족을 최초로 발견했으며…….”
“잠깐!”
“으, 응?”
중얼중얼 이야기를 늘어놓던 초하나를 제지한 재호.
“인어? 인어라고?”
“그, 그렇다는군. 지상의 바닷속에 사는 생명체로 이비우스가 최초로 그들의 존재를 알렸어.”
“바로 그거야!!”
재호는 양심을 외면하고 이비우스의 사생활까지 모두 듣길 잘했다 싶었다.
“아니지. 애초에 처음부터 이걸 말해 줬으면 변태 소리는 안 들었을 거 아냐.”
생각해 보니 이 정도는 이야기할 만한 정보다 싶은 재호.
“뭐, 뭐라는 거냐? 듣고 나서야 필요한 줄 알았지, 모른 채로 보면 그냥 쓸데없는 정보로만 보인다고!”
어쨌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주 중요한 힌트를 얻었고, 다음 목적지가 그렇게 정해졌다.
* * *
대륙으로 돌아온 재호는 곧장 아트리우스로 향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티나와 함께였는데, 잠깐만 다녀오면 되는 천계와 달리 아트리우스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천계는 괜히 여럿을 데리고 가면 천과만 더 많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래도 프티머스가 많이 봐주긴 한 것 같네.’
꼰대나 징징이야 소환수라 어물쩍 넘어갈 수 있다지만 알드리온은 문제 삼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드래곤 정도나 되는 생명체를 함부로 천계로 들이는 건 그들로서도 우려스러운 일일 테니…….
‘아니면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인 걸 간파했기 때문일지도.’
아무튼 그런 이유로 천계는 혼자 다녀왔지만, 아트리우스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테일러도 일행에 합류했다.
“…넌 대체 어떻게 알고 따라온 거야?”
재호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느낌적인 느낌이 왔지.”
…라고 말하지만 사실 메이에게 따로 부탁해 놓은 테일러였다.
한국으로 온 뒤, 이젠 서로 어느 정도 친해진 상태이기에 그 정도 부탁은 얼마든지 할 수도, 들어줄 수도 있는 사이였다.
“어? 그런데 이번엔 빅썬더는 안 가냐?”
“빅썬더? 아, 이번엔 디노스 섬 가는 거 아냐. 그냥 아트리우스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거야.”
“그래? 뭐, 그럼 다른 좋은 게 있겠지.”
뭐든 간에 재호가 꽃집을 벗어나기만 하면 대형 사건이 일어날 거란 믿음이 테일러에겐 있었다.
투차르 영지를 통해 아트리우스로 도착한 재호.
그리고 곧장 왕성인 오션타워 뒤의 죽은 바다의 땅으로 향했다.
“여긴 뭐야? 왜 이렇게 으스스해?”
테일러는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도 못 가 본 장소였다.
그곳에 있는 건 바로 [바다의 의지].
플레이어들이 바다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바로 그것!
힘을 끌어와 선착장 쪽에서 바다 간 이동을 하다 보니 굳이 이 장소에 대해선 아무도 몰랐다.
재호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굳이 이리로 오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번 아트리우스 방문 목적은 이곳에 있었다.
“헉?! 저, 저게 뭐야?!”
“유난 좀 떨지 마.”
거대한 물고기 뼈들을 본 테일러가 기겁하자 재호가 핀잔을 주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걸 보고 침착할 수가 있어?! 그 어떤 던전에서도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의 뼈들은 본 적이 없는데?!”
점점 더 기대감으로 차오르는 테일러.
그리고 고대 어왕 아모스의 머리뼈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땐 이미 무기를 빼면서 전투 준비 중이었다.
“하이가! 나야!”
하지만 안쪽을 향해 재호가 반갑게 소리치자 그 투지는 파사삭 사라졌다.
“음? 이 목소리는… 알시아?!”
그 외침을 들은 상대도 반가운 목소리로 화답했다.
샤아아-
그리고 빠르게 다가오는 한 무리의 용… 아니, 고대 인어들!
재호의 목적은 바로 그들이었다.
고대부터 존재해 온 그들이라면, 특히 이비우스와 관계가 있는 인어들이라면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