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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405화 (405/641)

405화

갑작스러운 암살 발언에 재호는 당황했다.

“암살이요……?”

도대체 어떤 간 큰 인간이기에 황실에서 암살을 시도한단 말인가?

어지간해선 감히 황실 가장 깊은 곳으로 암살 시도를 하진 않을 것이다.

이곳의 미로 같은 내부 구조와 규모는 물론, 삼엄한 경계 또한 쉽사리 뚫기가 어려웠으니까.

심지어 다른 곳도 아니고 황실에서 가장 중요한 루로아 황녀의 거처를…….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분명 내부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근데 왜 여길? 누굴 노린 거지?’

여기까지 왔다면 사실 루로아 황녀의 가능성이 제일 컸다.

‘적어도 황족이 꾸민 일은 아니다.’

황족이라면 이비우스의 저주에 대해 알 테니 암살을 꾸미지 않을 테니까.

한편 표정이 굳은 루로아 황녀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황녀님?”

재호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의아해했다.

“이대로 있어도 되는 겁니까?”

가만있어도 해결되는 미래라면 다행이지만…….

“아뇨. 침입이 발생하는 건 분명한데… 구체적으로 보이진 않아요.”

관찰자인 루로아 황녀가 미래에 대응하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변수가 발생할 순 있지만, 그래도 NPC가 상대라면 어지간해선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뜻은 결국…….

“설마 임모탈리언들입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면 루로아 황녀의 능력은 활용도가 극히 떨어진다.

이대로 가만있다간 정말로 큰일이 날지도 몰랐다.

“움직이죠! 이대로 있을 순 없으니.”

어떻게 외곽의 경계를 뚫고 들어온 것인지 알 순 없으나, 현재 이 주변엔 명백히 두 사람밖에 없었다.

다수의 적이 나타난다면 재호 혼자서 루로아 황녀를 보호하며 싸우는 건 어려웠다.

“적들이 어디로 오죠? 그 정도는 알 수 있죠?!”

“네. 지하의 하수도를 타고 정원으로 진입했어요. 바로… 지금!”

파바밧-

순간 사방에서 포위하듯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들.

저마다 다른 패션을 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플레이어들이었다.

“이야… 이거 대박인데? 진짜 황실로 잠입에 성공할 줄이야.”

“업적 뜨는 거 대박이야. 이번에 제대로 한 건 해냈다!”

“당연하지! 다른 곳도 아니고 황실이잖아.”

저들끼리 신이 난 목소리로 킬킬거리더니 이윽고 재호와 루로아 황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하, 바, 반갑습니다. 알시아 님! 저 진짜 팬이에요!”

대뜸 재호를 향해 그렇게 소리치는 암살자 중 한 명.

“하지만 팬은 팬이고, 저희 일은 일이라서 말이죠. 헤헤……. 양해 부탁드릴게요!”

단순히 팬심을 채우기 위해 이런 위험한 곳까지 왔을 리 없는 게 당연했다.

스릉-

저마다 무기를 꺼낸 암살자들이 전투를 준비했고, 재호도 삼위일체를 꺼내 대비했다.

“어… 근데 저희 정체는 묻지 않으시나요?”

왠지 섭섭해하는 듯한 암살자들.

하지만 재호는 그것이 자신을 방심시키려는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

“황녀님. 혹시 싸울 줄 아세요?”

“아니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지금 가지고 계신 악어가족 응원봉 있죠? 그걸로 마법을 쓸 수 있거든요.”

“아!”

사용 설명서를 보았기에 그녀도 알고 있는 기능이었다.

“그걸로 호위 기사들을 불러 모으죠!”

호출 기능을 이용하면 그녀의 기사들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금방 부를 수 있을 터였다.

삐이이잉-

얼른 허리춤에서 꺼낸 응원봉을 높이 겨냥해 쏘아 올린 그녀.

하늘에선 악어가족의 심볼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음?”

한데 곧 기사들이 몰려들 텐데도 암살자들은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하하, 황실 깊숙이 들어오려는 저희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들어왔을 리가 없죠!”

“기사들이 최대한 빠르게 온다고 한들, 그전에 우리의 작전은 끝이 날 겁니다!”

자신만만히 외친 그들은 합격 스킬을 시작했다.

“<죽음의 옥타곤> 전개!”

슈우우우-

빠르게 주변을 포위한 여덟 명.

그들 몸 주변으로 자욱한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척 봐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스킬이었고, 저 안에 갇히면 황녀는 물론 자신도 안전할 수 없단 걸 직감했다.

“꼰대! 최대한 황녀님을 보호해!”

-응? 내가?

꼰대 혼자 감당할 리 없는 건 당연한 일.

당연히 재호도 그걸 전적으로 꼰대에게 맡겨 둘 생각은 없었다.

“황녀님! 잠시 실례합니다!”

재호는 인벤토리에서 자신은 한 번도 써 본 적 없던 아이템을 꺼냈다.

[<요술 코트>]

[등급 : 전설]

[사용 조건 : 없음]

[방어도 : 120]

[평상시에는 간편하게 입고 다니는 패션 코트지만, 물을 머금는 순간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물을 머금은 이 제품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강철만큼 단단해져 당신을 보호합니다. <뤼필드>]

[<습기 충전> : 액체 종류와 접촉할 경우, 코트는 부풀어 오르며 단단해집니다. 방어도가 450으로 증가하나 민첩성이 절반으로 하락합니다. 치명적인 공격을 1회 막을 수 있습니다.]

[<탈수 건조> : 흡수한 액체를 단숨에 방출하며 코트를 말립니다. 흡수한 액체량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달라집니다.(최대 10초)]

[전설 추가 효과 : 코트 내부는 특수 방수 처리가 되어 착용자는 절대 젖지 않습니다.]

뤼노가 만들어 준 뤼필드 3종 세트의 마지막 아이템.

다행히 코트 형식이라 루로아 황녀에게 바로 입혀 주는 게 가능했다.

“이건… 악?!”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재호는 코트를 입은 그녀를 번쩍 들어 냅다 호수로 던져 버렸다.

풍-덩-!

공격을 시작하려던 암살자들은 갑작스러운 재호의 행동에 당황했다.

“…미치셨어요?”

“그건 황실 심장부로 쳐들어온 당신들한테 묻고 싶은데. 게다가……”

콰드드득-

일단 황녀를 치워버린 이상, 이 일대는 재호가 날뛰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황실 정원답게 잘 가꾸어진 다양한 꽃들이 많았으니까.

샤아아아-

하지만 이윽고 암살자들이 전개한 <죽음의 옥타곤> 스킬의 영향력으로 주변이 어둠으로 가득 차며 문제가 발생했다.

[당신의 시야가 제한됩니다.]

[당신의 청각이 제한됩니다.]

자욱한 안개 탓에 가시거리는 약 1미터로 떨어졌고, 세상은 고요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재호라면 그런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반격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당신의 운동 감각이 반대가 됩니다.]

이런 이상한 디버프만 발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

운동 감각이 반대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휘적- 휘적-

왼팔을 움직이니 오른팔이 움직이고, 오른 다리를 움직이니 왼 다리가 움직이는 기괴한 경험.

“하하, 어떠십니까?”

톡-톡-

재호의 등을 마치 노크하듯 두드린 암살자.

“칫…….”

재호는 몸을 반대로 돌리며 반격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괴물 같은 운동 신경이어도 이 상태에 바로 적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미 저 멀리 안개 너머로 사라지는 중인 암살자.

“저희 암살클럽이 <죽음의 옥타곤> 스킬을 사용하고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그럴 만했다.

재호는 그 어디서도 이런 기상천외한 스킬은 경험해 본 적 없었으니까.

툭-

어느새 접근한 상대가 다시 재호를 장난스레 밀치고 사라졌다.

“확실히 알시아 님의 식물들은 성가시네요. 저 녀석들에겐 <죽음의 옥타곤>이 통하지 않아 저희를 괴롭히긴 하네요.”

암살자의 목소리를 제외한 다른 소리는 전혀 안 들리는 상태라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자라난 꽃들이 재호를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은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툭-

그때, 다시 재호를 건드린 상대.

‘이 녀석들…….’

재호는 충분히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음에도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암살자의 행동에 이를 갈았다.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짜 목적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황녀를 노리고 있다!’

재호는 자신의 몸값이나 이름값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얼마나 높은지 잘 알았다.

특히나 암살자 플레이어가 재호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톡톡 건드리기만 하는 건 즉, 자신을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단 뜻이었다.

‘어쩌면… 황녀 살해의 누명을 씌우려는 걸지도 몰라.’

재호를 공격해 전투 흔적을 남겨 놓는다면 루로아 황녀를 지키기 위해 싸운 증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재호는 멀쩡하고 루로아 황녀에게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마치 재호가 그녀를 노린 것 같은 그림을 만들 수도 있을 터.

‘황녀는 괜찮겠지?’

시야와 청각, 거기다 방향 감각까지 상실한 상황에서 그녀를 상태를 확인하는 건 불가능.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바로 옆에 두는 게 나았을 뻔했어.’

그나마 만일을 대비해 손을 써 놓긴 했지만, 그것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스킬이 완전히 활성화되기 전에 본 대로면 10명 중, 8명이 이 스킬에 투입됐어. 게다가 주변에 알짱거리면서 들리는 목소리는 한 사람.’

그렇다면 남는 한 명이 황녀를 노리고 있다는 뜻.

물 먹은 요술 코트라면 한 사람의 암살자를 상대로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단, 그렇다고 해도 촉박한 건 마찬가지.

최대한 빨리 이 디버프들을 해결해야 했다.

‘…아! 그래! 그게 있었다!’

문득 떠오른 아이템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든 재호.

[<눈먼 자들의 안구>]

[등급 : 고급]

[위대한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마법구입니다.

이것을 지니고 있는 당신은 그 어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어둠 길잡이> :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환히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환경이 아닌 이상, 딱히 쓸 일이 없던 것이라 처박아 놓았던 키노의 선물이었다.

[<어둠 길잡이> 효과로 당신의 시야가 회복됩니다.]

되살아난 건 시각뿐이긴 하지만 이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황녀님!!”

호수로 냅다 던졌던 그녀의 상태는…….

“?”

뚱- 뚱-

잔뜩 부풀어 오른 요술 코트를 입고 호수 위를 뚱실뚱실 떠다니고 있었다.

‘…저게 왜 저러지? 원래 저렇게 떠다니는 거야?’

부풀어 오르면서 부력이 생긴 모양이었는데, 애초에 저러면 항해 중에 어떤 식으로 쓰라고 만들어 준 건지 알 수 없었다.

재호는 수중에서도 줄곧 전투를 벌이고 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누구보다 당황스러울 루로아 황녀였지만, 그럼에도 어찌어찌 자신의 몸을 잘 지키곤 있었다.

어둠 속에서 열심히 응원봉 무차별 난사를 해 대고 있었던 것이다.

‘꼰대도 잘하고 있고.’

게다가 호수 가운데로 점점 흘러가다 보니 암살자의 운신 폭이 철저히 제한된 것도 컸다.

‘그런데… 생각보다 공격이 날카로운데?’

미래를 보는 능력이 플레이어 대상으론 아무리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돌진해 오는 방향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나오는 ‘아 몰라 공격’이었다.

“^*%@*#[email protected]!!!”

“$&*%#@!!”

재호의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암살자들이 서로를 향해 뭐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일이 생각보다 꼬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

재호가 도와줘야 했…….

“?!!”

그러던 순간, 암살자가 또 한 번 피한 루로아 황녀의 공격이 재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재호는 그녀의 당황한 표정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헉!!]

만약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분명 그렇게 들렸으리라.

‘피해야…….’

삐걱-

여전히 움직임은 반대인 상황이라 말을 듣지 않는 몸.

퍼엉!!

결국, 한 발짝 늦은 움직임에 겨우 비켜 맞곤 바닥을 나뒹굴었다.

“######!”

소리 없는 암살자의 웃음.

하지만 서서히 그의 웃음이 점점 잦아들더니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서운 사실을 막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공격이 오는 걸 알고 피했지?’

그리고 왜 저 무서운 얼굴이 자신을 똑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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