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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439화 (439/641)

439화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은 재호의 프레젠테이션.

워낙 폭풍처럼 지나가 버린 탓에 잠시 정신이 팔렸지만, 사실 내용적인 면에서 본다면 수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재호가 이미 드래곤을 상대해 보았으며, 처리해 본 경험이 있다는 건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키노는 몰라도 재호는 이미 대륙에 드래곤 슬레이어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나온 테라핀이라는 광물이 문제였다.

만약 정말로 재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지하의 좁은 공동에서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단, 테라핀이란 광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말이었다.

"도대체 테라핀이 뭡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광물입니다."

"맞습니다. 그 정도로 기이한 광물이라면 분명 대륙에도 이름이 알려졌을 텐데 전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폭탄이라니……. 설마 고블린들이 쓰는 야만적인 폭파 방식을 이용해 드래곤을 상대하겠다는 소리입니까?"

"척 듣기에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식입니다. 제국의 안녕을 바라는 입장에서 과연 알시아 대왕의 계획이 순수한 목적을 품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군요."

개중에는 황제 앞에서 하기엔 아슬아슬한 발언들도 있었으나, 어쨌든 예상 가능한 반응이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호가 준비한 계획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알시아 대왕."

그때, 좌중을 진정시키며 황제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궁금하니 하나씩 설명을 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먼저 폭탄에 대해 부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과거 룬가 왕국에서 난동을 부렸던 블랙 드래곤, 그 녀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던 것이 바로 고블린의 폭탄이었습니다."

"?!"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전설 속 드래곤들은 아무리 뛰어난 기사 혹은 대마법사조차 상처를 낼 수 없는 비늘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다.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드래곤의 비늘은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튕겨 내더군요. 하지만 그게 무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결국 피를 흘리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입니다. 그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단단한 것일 뿐."

그래서 재호가 택한 게 폭탄이었다.

"고블린족은 대륙 최고의 폭탄 장인들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폭탄의 위력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며, 결과는 이미 알려진 대로 드래곤을 죽일 정도였습니다."

물론 폭탄은 극도로 예민하며 위험한 물건이었다.

재호가 폭탄으로 몇 번이나 재미를 보는 게 방송을 통해 나온 뒤, 꽤 많은 플레이어가 폭탄 제작에 뛰어들어 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아직 제대로 장인이라 불릴 만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현실.

재호도 고블린들이 만든 물건만 사용하지, 다른 이들이 만든 건 쓸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폭탄이 그 정도로 강하다면, 지하에서의 전투를 걱정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테라핀이란 게 필요하죠."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광물.

단, 그 테라핀의 출처에 대해선 바로 밝히기 어려웠다.

테라핀이 실은 마계에 있는 광물이며, 그것을 위해 마계로 넘어간다거나 대악마와 거래했다는 소리는 안 하느니만 못했으니 말이다.

"페르마 사막의 비밀 광산에서 발견한 신광물입니다."

"……?"

"??"

그래서 선택한 핑곗거리는 결국 그러했다.

"아… 아니……. 수천 년 이어져 온 대륙 역사 속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광물이 페르마 사막에서 뜬금없이 나타났단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이야기에 다른 이들이 반발했다.

"맞습니다. 최근 페르마 사막에선 대공사가 진행 중인 것 다들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그 과정에서 고대 코페이 왕국이 이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광산이 발견됐습니다."

"코… 코페이……!"

"끄응……."

코페이 왕국이 언급되자 그들은 말문이 막혔다.

왠지 모르게 전설 속 코페이 왕국이라면 그런 게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황금 왕국이라 불리며 번성했던 고대 국가.

하지만 그 끝없는 탐욕 탓에 저주를 받아버린 뒤, 세상 사람들에게 잊힌 저주받은 땅…….

주변 나라들도 버려두었던 땅인지라 그곳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주요하게 먹혀들었다.

"하지만 당장 테라핀을 이용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걸 가공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충분한 양을 확보하려면 시간도 걸립니다. 그렇기에 당장 계획을 실행하는 건 어렵습니다."

적당히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밑밥도 깔아 놓았다.

이쯤이면 더는 반박할 거리가 없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들은 이번엔 대상을 바꾸었다.

"하, 하지만 키노 저 여자는 흑마법사이지 않습니까?"

"아! 맞습니다. 예로부터 흑마법사는 신용할 수 없는 자들로 유명했습니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재호는 슬슬 자신과 키노의 목적을 밝힐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또한 슬쩍 바라본 황제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허락했다.

척-

황제 앞에 다시금 예를 갖춘 재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투룬아르를 책임지고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은근슬쩍 못을 박아 버리는 발언과 함께…….

"앞서 말씀하신, 어떤 요청이든 들어주시겠다는 말씀. 저와 키노는 새로이 만들고자 하는 흑마법사 탑을 향해 지지를 보내 주시기를 원합니다!"

"?!!"

"뭐, 뭐라고?!"

완전히 뒤집힌 좌중들.

특히 마탑 장로들의 반응은 더 격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흑마법사 탑이라니!!"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황제 폐하께 요구한단 말입니까!"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소리였기에 그들은 게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오늘 회담에서 나온 적 없는 과격한 반응들이었고, 교단 측에선 지나친 장로들의 행동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 역시 흑마법사 탑은 인정할 수 없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황제 앞에서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쾅-!

아니라 다를까, 회담장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창을 내리찍으며 경고를 보냈고, 그 충격에 마법사들이 순간 비틀거렸다.

"윽?!"

"크흡!"

그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는데, 놀랍게도 주변의 다른 이들은 멀쩡했다.

오직 마탑의 장로들에게만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일단 진정들 하지. 아직 알시아 대왕은 할 말이 남은 것 같으니."

"…죄송합니다."

황제의 나긋하지만 무섭게 들리는 한마디에 장로들은 부랴부랴 사죄했다.

"계속하도록."

황제의 말에 재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흑마법사 탑의 등장에 대해 마탑의 장로님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려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득이 되는 점이 더 많을 것이란 게 저희들의 주장입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만……."

백탑 쪽 장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간단한 이치입니다. 현재 대륙에서 활동하는 흑마법사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현재 마탑 연합에서는 그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기존 마탑 연합에선 그들을 범죄자로만 바라볼 뿐이며, 흑마법사들 또한 통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흑마법사 탑이 새로이 만들어진다면 마탑 연합에는 기존에 없던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 있는 키노는 스스로 마탑의 탑주가 되어 대륙에 만연해 있는 흑마법사들의 무질서를 바로잡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건! …궤변이지 않습니까?"

발끈했다 아차 하곤 다시 목소리를 낮춘 장로들.

"도리어 흑마법사들이 단합하여 대륙을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솔직한 말론 그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당연하게 나오는 부정적인 반응.

"저희 옵티마 교단 입장에서도 우려스럽습니다. 본디 흑마법의 유래는 악마들의 마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바, 과연 그런 불길한 능력을 사용하는 자들을 신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노마인 교단도 그러합니다."

"백트 교단 또한……."

교단들 역시 마탑 장로들의 주장에 동의했다.

물론 이런 전원 반대의 부정적인 분위기는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 든든한 지원군들을 준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흠흠."

그림자처럼 지켜만 보고 있던 뤼니오르가 처음으로 인기척을 냈다.

동시에 장로들의 표정은 와락 구겨졌다.

이미 진작부터 뤼니오르와 오클랜드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을 두고 수상쩍어 하던 그들은 직감한 것이다.

뤼니오르가 제대로 초 치려고 하고 있음을…….

"적탑은 탑주 뤼니오르의 이름으로 흑마법사 탑의 설립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적탑주님!"

기어코 입 밖으로 나온 선언에 장로들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뤼니오르의 시선은 오직 황제를 향하고 있었다.

"적탑주 뤼니오르."

황제의 나지막한 부름에 뤼니오르는 가벼운 묵례로 화답했다.

만약 다른 이가 그랬다면 무례함에 기사들이 한 번 더 창을 내리찍었을지 모르나 이번엔 그러진 않았다.

탑주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그 정도는 용인된다는 뜻이자, 장로들이나 교단의 사제들과는 엄연히 급이 다르단 것을 상징했으니.

"그대는 알시아 대왕과 흑마법사 키노의 요구가 믿을 만한 것이라고 보는 건가?"

"엄밀히 말하면 알시아 대왕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 온 영웅적 행보는 결코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흠…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그 점에 대해서는 다른 장로들이나 교단의 여러분들께서도 인정하리라고 확신합니다."

황제가 인정한다고 한 마당에 그들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그렇습니다."

"공과 과가 공존하긴 하지만… 어쨌든 보편적으로 알려지긴 그러합니다."

결국 그들의 입에서 재호를 신뢰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버렸다.

"그렇다면 마탑의 장로들이 문제 삼는 것은 하나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키노라는 흑마법사에 대한 불신. 그것만 해결이 된다면 황제께서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음."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뤼니오르의 말에 동의함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묻겠다. 적탑주 뤼니오르는 짐의 우려를 해결해 줄 방법이 있는가? 또한 마탑 연합과 5대 교단의 불안함을 해소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니 흑마법사 탑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

"그렇습니다."

이어 뤼니오르는 폭탄 발언을 던졌다.

"흑마법사 키노의 힘은 대륙에 대마법사로서 명망을 쌓아 온 저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습니다. 그 깨달음의 수준은 저를 우습게 만들 정도이며, 솔직히 두려울 정도입니다."

"?"

갑작스러운 고백에 좌중은 일제히 당황했다.

특히 마탑 장로들은 충격과 공포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는데, 마법사 사회의 최고 권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든 간에 뤼니오르는 말을 이었다.

"저는 이미 이전에 키노를 만나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신을 얻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원했다면 이 세상은 얼마든지 혼란해졌을 것이라고. 하지만 키노는 그러지 않았으며, 나아가 자신에게 족쇄와도 같은 마탑을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일련의 모습에서 저는 적어도 키노가 우려할 만큼의 위험인물은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흠, 그대의 심증이 증거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됩……."

"저 역시 적탑주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때, 이번에는 오클랜드가 동의하고 나섰다.

이유는 뤼니오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전날, 키노를 보는 순간 느꼈던 거대한 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흥미롭군. 두 명의 대마법사들이 인정하는 흑마법사라……."

황제는 그렇게 말했지만, 재호는 이미 황제는 키노의 힘에 대해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국의 기록에 키노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니까. 그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올 정도라면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 걸 알겠지.’

어쨌든 분위기는 슬슬 재호 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이 일은 충격에 빠져 온몸이 얼어붙은 마탑의 장로들이나, 교단의 사람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좋다!"

드디어 황제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짐은 제국에 초래한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알시아 대왕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반박할 순 없었다.

감히 황명을 거역할 수 있는 자들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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