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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448화 (448/641)

448화

파이라가 대뜸 분노를 터뜨리긴 했지만,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호도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다.

"야,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는 이해해 줘야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 위험한 곳으로 넘어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래. 나 역시 그 주장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하지만 덕분에 일은 완전히 꼬여 버렸지만 말이다."

"마왕이 피 토한 거 때문에? 뭐, 잘 된 거 아냐? 그만큼 마왕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뜻일 거 아냐."

"아니,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길 게 아니다. 내가 너희들이 오기 전부터 마왕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단 걸 알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냐?"

"…어? 그러게. 어떻게 알았어?"

"그야 대공들은 마왕의 신변에 변화가 발생하면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회복 중이던 마왕에게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다른 대공들도 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뭐?!!"

조용히 거래만 끝마치고 돌아가려던 게 계획이었다.

재호는 테라핀을 받고 파이라는 칼리토에 대한 정보만 얻으면 끝날 일.

"너희들이 돌아가려면 다시 마왕의 안식처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미 추격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하하."

재호는 머쓱해져선 머리만 긁었다.

하지만 파이라가 한 말을 똑똑히 이해하긴 했다.

제대로 조진 상황임을 말이다.

"일단 자세히 이야기 좀 해 봐. 왜 우리가 거기서 튀어나온 거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마왕이란 본디 이곳 마계에선 무한에 가까운 힘을 지닌 존재이다. 마계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중간계 정벌의 후폭풍으로 정신체에 심대한 타격을 받아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마계 그 자체라면서 그건 또 왜 그래?"

"무리하여 마계의 힘을 끌어다 썼으니 그로 인한 책임이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것이 세상의 규칙이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차피 마왕의 힘을 이용한다고 해 봐야 마계 전체의 에너지 일부를 빌려 쓰는 것.

잠이 든 마왕은 그를 위한 매개체에 불과했다.

적당한 수준에서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내는 것 정도는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

"단, 차원을 넘을 때 넘어오는 대상과 균등한 힘의 교환이 일어난다. 쉽게 말해서 강한 존재일수록 마왕에겐 무리가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파이라는 재호와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 열 명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사실 그 이상의 인원이 온다고 해도 넉넉한 수준이었다. 나 역시 네놈이 내 말은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일부러 낮게 부른 것이다."

"뭐?! 이 자식!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서 나보곤 그런 거야?"

얍삽한 파이라의 고백에 재호가 비아냥대자 그는 자신의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닥쳐! 이 자식아! 적어도 스무 명은 충분히 넘어올 수 있을 정도였는데!! 대체 왜 마왕이 타격을 받았냐는 거다!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을 끌고 온 거냐!"

"……."

"보자! 엘프에다 저 희멀건 놈! 그리고… 저 자식은 지난번 아나볼릭 놈 아니냐?!"

파이라가 문제 삼는 건 역시나 티나, 빅썬더, 그리고 스트로앤 주교였다.

실 전투력의 수준을 떠나 레벨만 놓고 보더라도 다른 이들보다 확실히 차이가 나는 세 사람.

"…아니야. 뭔가 이상해……."

그런데 파이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재호를 다시 노려봤다.

"이 정도로는 모자란다. 아슬아슬한 느낌이 조금 있긴 해도 마왕을 그 지경으로 만들 정도는 아니거늘……."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여기 온 사람이 진짜 전부야. 그건 오콤한테 확인해 봐도 확실할 거야."

"그럴 리가 없는……."

그 순간, 파이라의 눈이 재호가 하고 있던 앞치마로 향했다.

그곳에 달린 커다란 주머니.

거기서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을 그는 느꼈으니…….

"그 안에 든 건 뭐지?"

"음? 이건… 아."

재호는 설마 하는 눈으로 주머니 속 생명체를 내려다보았다.

"어… 드래곤."

벌떡!

"네… 네놈이… 억?!"

비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던 파이라가 이마를 부여잡곤 다시 털썩 쓰러졌다.

현재 파이라의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재호가 그의 속을 긁어놓았다고 하더라도 대악마나 되는 존재가 뒷목 잡고 쓰러지는 건 말도 안 되었으니 말이다.

"드래곤… 드래곤이라고……?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라. 그 조그만 게 어째서……."

하지만 드래곤이라고 하면 마왕에게 일어난 변고는 충분히 설명되었다.

아무리 알드리온이 힘을 봉인해 놨다 하더라도 타고난 존재감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근데 잠시만. 뭔가 이상한데?"

그때 재호는 문득 떠오른 의문에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애초에 재호는 늘 세 존재와 함께하고 있었다.

꼰대, 징징이, 알드리온.

그들을 떼어 놓고 자신만 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며, 시스템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천계 방문 당시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똑같이 차원을 넘은 것인데도 그땐 괜찮고 지금은 문제가 생기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건 내가 알 것 같군."

"음?"

그때, 주머니 속에 편히 늘어져 있던 알드리온이 입을 열었다.

"드래곤처럼 위대한 존재는 느낄 수 있지. 차원을 넘어갈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 하긴 넌 뭐 옛날이야기 조금 해 주는 걸로도 엄청 유난 떨긴 했었으니."

"유난이 아니라 대륙의 균형과 안전이다. 어쨌든 내가 천계로 넘어갈 당시엔 내게 미치는 이 세계의 규칙과 제약이 전혀 발동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마계로 넘어올 때도 그건 마찬가지긴 했다."

"…그럼 결국 돌고 돌아 원점 아냐?"

"아니,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지."

알드리온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천계를 갈 때, 그대는 프티머스가 준 오르골을 이용했지. 반면 이번의 경우, 마왕이 그 오르골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흠…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해 주지."

차원 이동 시에 발생하는 엄청난 힘의 과부하를 마왕은 온몸으로 받아 낸 것과 달리, 프티머스는 오르골을 통해 한번 걸러 냈다는 뜻.

"그리고 내 짐작이 맞는다면… 그 엄청난 부하는 그대가 지닌 프티머스의 오르골에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 잠깐만. 그렇다면 이거……."

그제야 재호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직불, 후불 차이야?!"

천계 방문 당시 재호를 위해 프티머스가 사용해야 했을 신성력은 실제로 그가 아닌 오르골이 대신 소모했단 소리였다.

슥-

곧장 [천상의 오르골]을 꺼내 확인해 보려고 시도하는 찰나.

번-쩍.

"그아아아악!!"

온 사방에 가득 찬 마기에 반응하며 오르골이 신성력을 뿜어내었다.

그게 생각 이상으로 강한지 파이라는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 그건 뭐냐! 당장 치워라!!"

"아, 미안. 잠깐만 참아 봐!"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상극인 마계라곤 하지만 이렇게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가…….’

[<천상의 오르골>에 감추어진 숨겨진 기능을 발견했습니다!]

"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정상이 아님을 시스템이 알려 주었다.

[<천상의 오르골>]

[등급 : 신화]

[연주가 시작되면 천상으로 향하는 빛의 계단을 부를 수 있으며, 그곳을 통해 천계로 향할 수 있습니다.

단, 출입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신성이 필요합니다.]

[<축복받은 자> : <천상의 오르골>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대부분의 마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해방 스킬]

[<신성 축적> : 프티머스의 소모 신성력을 가소모하며 해당하는 대가를 오르골에 축적합니다. 차후 프티머스는 가소모한 신성력을 지불해야 합니다.]

[*현재 강력한 마기에 노출된 <천상의 오르골>이 축적된 신성력을 이용해 주변을 정화 중입니다.]

새로이 추가된 해방 스킬 내용을 바라보는 재호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면계약……!’

설마 정의의 대천사가 이런 얍삽한 짓을 해 놓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다.

결론적으로 이 설명에 따르면 프티머스는 재호가 천계를 들락거려도 딱히 손해 보는 게 없었다.

그가 힘을 소모할 필요 없이 이 오르골을 통해 신성력 가불을 해 놓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후에 프티머스가 이 대가를 모두 치러야 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또한 알드리온이 천계로 넘어갔을 때도 프티머스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게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실제로 자신의 힘을 소모한 건 아니었던 거지.’

‘가소모’라는 개념이 다소 모호하긴 했지만, 어쨌든 현재 오르골에는 지난번 천계 방문 당시 프티머스가 썼어야 할 신성력 ‘빚’이 들어 있었다.

그 엄청난 빚 또한 신성력이긴 했기에 재호가 꺼내 들자 사방에 가득한 마기에 초강력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하지만 재호는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프티머스를 상대로 장난질(?)을 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후우우-

재호가 오르골을 집어넣자 주변을 가득 메웠던 빛은 사그라들었다.

"헉… 헉……."

그제야 파이라는 한숨 돌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명색이 대악마가 겨우 이걸로 그렇게 몸부림쳐?"

재호의 핀잔에 파이라는 이를 빠득 갈았다.

"내가 지금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인데! 그리고 명심해라. 아무리 약화한 상태라 하더라도 이곳은 마계. 너희들 전원이 덤벼도……."

하지만 말하는 와중에 자신감이 조금 사라진 모양인지 파이라의 말꼬리가 약간 흐려졌다.

"…저 아나볼릭 교단의 놈과 귀쟁이를 빼놓고 전원이 덤벼도 상대가 안 될 테니! 아, 드래곤도 빼고."

상당히 불합리한 논리를 펼치는 파이라의 모습에 재호는 새삼 죄책감이 들었다.

‘그 무시무시하던 대악마는 어디 가고…….’

어쨌든 당장으로선 희소식이었다.

파이라는 재호 일행과 무조건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 * *

일단 당장 닥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전, 재호는 테라핀을 먼저 확인하고자 했다.

해서 파이라를 따라 성 깊은 곳으로 티나와 함께 이동했다.

"일단 최대한 긁어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긴 했다. 그런데 대체 이만한 테라핀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거지? 설마 이곳에서 수상한 짓거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우릴 잘도 불러들였네."

"……."

"걱정하지 마. 우리도 당장은 마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까."

제국 지하에 있는 시한폭탄 미친 드래곤이 먼저였다.

"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거래 조건 외의 이야기잖아?"

"그렇긴 한데 상당히 야박하군. 그런 것 정도는 말해 줄 수도 있지 않나?"

파이라는 툴툴거리며 굳게 닫힌 창고 앞에 섰다.

쿠궁-

천천히 열린 창고 문.

그 내부에는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상자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전부 테라핀이야?"

"그렇다."

세어 보니 총 8박스.

그리고 안을 열어 확인해 보니 사람 머리만 한 보랏빛 광석들이 들어 있었다.

[<테라핀 원석>]

[마계에서만 채굴 가능한 특수한 광물 테라핀의 원석입니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 흡수 및 전달 효율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광물입니다.]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아 기타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것들이 확실히 테라핀이란 점만 확인했으면 충분했다.

"한 박스에 원석은 27개씩 들었다. 해서 총 216개지."

"흠……. 생각보다 좀 적은 것 같은데?"

"욕심 부리는군. 저것만 해도 엄청난 양이다. 그리고 애초에 네놈이 이걸 제대로 들고 갈 순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

이 정도 양이면 일행과 적당히 나누어 들어도 움직임에 무리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럼……."

재호가 박스를 챙기려는 순간.

텁-

파이라가 그 행동을 막았다.

"뭐하는 짓이지? 이건 거래라는 걸 잊었나?"

칼리토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가로 테라핀을 받기로 했었던 것.

그리고 그 정보의 가치가 파이라가 납득할 수준이어야만 이 거래는 성사될 수 있었다.

"아, 그랬지."

재호는 바로 인정하곤 곧장 이야기해 주었다.

"칼리토는 자신이 마왕이 되려고 하는 중이야."

"……."

"……."

"그게 다냐?"

"응?"

투툭-

파이라의 이마에 다시 굵은 핏줄들이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칼리토가… 탐욕의 대공이 마왕 자리도 탐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 나를 비롯한 모든 대공은 그런 욕심을 다 가지고 있겠지. 설마 그런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해 주겠답시고 내게 이런 짓을 시킨 거냐?!"

그리고 과거 재호와의 거래를 위해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이미 짐작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고작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웃돈까지 주면서 테라핀을 박박 긁어모았단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오는 파이라.

그 과정에서 있었던 말 못 할 수모들이 떠오른 그는 당장이라도 재호를 공격할 듯 눈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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