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귀의선-52화 (52/81)

<검귀의선 51화>

1장 남경에서

“이봐.”

서환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연우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이봐? 뭐냐 너는?”

“강압적으로 객잔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나간다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이유가 뭐지?”

“너희들은 백도방을 들어 보지 못했나보군.”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인가?”

서환은 당당하게 묻는 장연우를 보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도방을 아는 자라면 자신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시골 무지렁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이리도 피곤한 일이라니, 잘 들어라. 나는 백도방의 소방주 서환이다. 우리 백도방은…….”

“복주에서 이소검파를 겨우 제치고 복주 제일 방파로 떠올랐다고?”

“너…….”

서환이 장연우를 쏘아보았다. 자신들을 알고도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마치 말투가 동네 싸움에서 이겼다는 듯이 빈정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장연우는 작정한 듯 이죽거리며 서환에게 말했다.

“그 집 아들내미가 개차반이라더군.”

“이익!”

“당신 생각에도 당신들이 백도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당신들의 말에 따라야 하는가?”

분노한 서환이 막 출수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장연우의 물음에 행동을 멈추어야 했다. 그 물음이 향한 곳이 서환이 아니라 그와 함께 객잔 안으로 들어온, 아직까지 큰 행동을 보이지 않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백도방주의 장녀인 서효진이었다. 동생과는 다르게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갑작스럽게 물어 오는 장연우를 보며 묘한 눈빛을 띠었다.

‘우리의 신분을 알고도 저런 모습을 보인다라…… 다른 배경이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젊은 사내의 자존심?’

서효진은 심성이 곱거나 행실이 바른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간악하고 표독스러운 면이 더욱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서환처럼 생각 없이 행동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건 당신들의 신분에 달렸겠죠.”

하지만 그녀의 기본적인 생각은 서환과 비슷했다. 힘이 있는 자라면 대접받고 그렇지 않다면 굴복하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속한 곳은 백도방보다 규모적으로 훨씬 작은 곳이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장연우의 말을 들은 서환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누님, 아무리 남경에 수많은 무인들이 모였다 하더라도 뭘 그리 조심하십니까? 딱 봐도 어디 촌구석에서 올라온 무지렁이들입니다.”

서효진의 눈에도 설인영의 외모 외에는 그다지 특별해 보일 것 없는 일행이었다. 비록 설인영의 외모는 눈부셨지만 이들의 행색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상대방들의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자신들의 수준을 모르는 애송이들의 치기라 여기기로 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처리해라.”

서효진의 말에 서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주먹을 어루만졌다.

“자, 이제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이 잡것을 어떻게 처리할까나? 흐흐…….”

서환은 판단을 내렸다. 그저 한번 놀고 버리기엔 두 번 다시 이런 미인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설인영의 외모는 아름다웠다.

일단 무력으로 이들을 굴복시키고 설인영에게 힘의 격차와 백도방의 위세를 보여 준 다음, 그것을 빌미로 백도방으로 데려가 첩실로 삼을 생각이었다.

“일단 너부터 손봐야겠군. 아까, 백도방의 아들이 뭐 어쨌다고? 다시 한 번 지껄여 보거라.”

“백도방의 아들이 개차반이더라고 말했을 텐데? 개차반일 뿐만 아니라 대가리까지 나쁘군.”

“하하하…… 그 버르장머리 없는 주둥이를 뭉개 주마. 이 개자식아!”

서환이 장연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에는 적중당하는 순간 치아를 모두 잃을 정도의 강력한 경력이 담겨 있었다.

물론 주먹에 맞았을 때 이야기였다.

휙-

고개를 꺾는 것만으로 서환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장연우가 반대로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서환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와 함께 서환의 새하얀 치아 몇 개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큭…… 내, 내 이가……! 뭐, 뭣들 하느냐!”

서환은 고통과 충격에 몸부림치며 소리쳤고 서효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서환은 백도방의 후계자로 어렸을 때부터 벌모세수와 함께 온갖 영약을 복용했고 오늘날의 백도방을 만든 백도방주의 진신절학을 이어받은 몸이었다.

그를 고수로 키우기 위해 가문에서 투자한 자금 또한 어마어마했다. 때문에 그는 또래의 명파 후계자들에 비견될 만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저렇게 쉽게 나가떨어질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 장연우 일행의 당당한 행동에 느꼈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다시 서효진을 사로잡았다.

그 사이, 객잔에 진을 치고 있던 백도방의 무인들이 장연우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몸을 날리는 열 명의 백도방 무인들을 보며 장연우가 탁자 위에 있던 젓가락 통을 집어 들었다.

슈슈슈슈슈슉-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젓가락들이 한 번에 공중을 날아 달려드는 백도방 무인들에게 뿌려졌다.

푹푹푹푹푹-

“으악!”

“컥!”

단 하나의 빗나감도 없이 모든 젓가락이 달려드는 무인들의 팔과 다리를 관통했다.

손목을 관통당한 무인은 검을 놓치고 손을 부여잡고 쓰러졌으며 다리를 관통당한 무인들은 중심을 잃고 넘어져 신음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신형을 움직인 율검이 장연우의 암기술에 놀라 미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백도방 무인들의 사이를 누비며 그들의 혈을 점하고 제압했다.

스무 명에 달하는 백도방 무인들이 제압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였다.

“이익! 이아아악!”

악에 받친 서환이 입에서 피가 줄줄 세어 나옴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악을 쓰며 장연우에게 달려들었다.

“환아 멈춰!”

쾅-!

놀라서 서효진이 말렸지만 이미 장연우의 권격에 맞은 서환은 삼 장 정도를 날아가 객잔 벽에 부딪치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짧은 순간 사이 백도방 일행 중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서효진 하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당, 당신들은 누구죠?”

“네 동생이 한 말이 맞다. 우린 작은 무가에서 남경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지.”

“거, 거짓말하지 말아요!”

“거짓말? 내가 뭣하러 너에게 거짓말을 하지?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건…… 잘못됐어…….”

“말이 되지 않는 건 너희들의 행동이고 생각이다. 사람을 신분으로 나누고 너희보다 약자들 위에 서려고 하지 마라. 세상엔 너희보다 강한 자들이 훨씬 많고, 너희들은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약자니까.”

서효진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의 상대들보다 자신들이 약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가시죠.”

끄덕―

장연우의 말에 설인영이 동의하고 일행은 객잔 밖으로 향했다. 객잔 안을 구르고 있는 백도방의 무인들을 뒤로한 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장연우의 일행은 태연하게 그녀를 지나쳐 나갔다.

그 모습을 보는 서효진은 이를 악물었다.

치욕적이었다.

서환과 마찬가지로 서효진 또한 남부러울 것 없이 오히려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며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방금 전의 일은 그녀에게 크게 다가왔다.

‘감히 나와 우리 백도방을 무시해? 너희들을 정체를 알아내 반드시 복수해 주마!’

비록 오늘은 수치를 맛보아야 했지만 복건성의 패주인 백도방의 힘은 이정도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수와 검대들을 보유한 곳이 백도방이었다.

그녀는 떠나는 장연우 일행의 뒷모습을 표독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   *   *

월송 객잔을 빠져나와 한참을 고생한 일행은 어렵사리 빈 객실을 빌려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눈을 뜬 설도희는 전날에 다 못한 남경 저잣거리 구경을 마저 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객잔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다니, 어제 그렇게나 돌아다니고선 여기는 또 왜 온 거지?”

남자인 율검의 입장에선 이미 남경거리에 흥미를 잃었지만 그가 여자인 설도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도희의 기척을 느낀 율검은 조용히 설도희를 따라붙었다. 그냥 드러내놓고 함께 다닐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와 둘만 있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저잣거리의 한 좌판 앞에 서서 장신구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 설도희를 보며 율검은 혀를 내둘렀다.

‘대체 아까 본 장신구랑 무엇이 다른 거지?’

벌써 장신구 가게만 여섯 군데였다. 자신이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무언가 다르나 보다.

“까악!”

그렇게 슬슬 지쳐가는 율검의 귓가에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율검의 시선이 닿은 곳에선 한 왈짜패들이 길거리에서 월병을 팔고 있는 곳의 상판을 뒤엎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말했어, 안 했어? 세를 낼 형편도 안 되는 게! 네년이 이곳에서 장사를 하면 정직하게 세를 내는 다른 상인들에게 피해가 가잖아? 안 그래? 앙?”

“제,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당장 자리를 치울게요. 네?!”

월병을 팔던 여인의 애원에도 왈짜패들은 상판 위에 있던 월병들을 땅에 패대기치며 그것을 발로 지근지근 밟아 댔다.

“그렇겐 안 되지! 네년이 또 언제 우리 몰래 이것들을 내다 팔 줄 알고!”

“제발! 흐으윽! 그것들을 어떻게 만든 건데…… 이 나쁜 놈들아!”

“저리 꺼져!”

울면서 매달리는 여인을 왈짜패가 밀어 땅에 패대기쳤다.

“어, 엄마!”

여인이 나동그라지자 한쪽에 있던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소년이 달려와 여인을 부축했다.

“그러지 마!”

그러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먹을 움켜쥔 소년이 왈짜패에게 달려들었다.

탁!

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은 왈짜패에게 닿지 못했고 오히려 소년은 그들 중 한 명에게 목을 잡힌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컥컥…….”

“소, 소군아! 도, 도와주세요!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여인은 울며 발악하듯 외쳤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이 왈짜패들은 독사파의 건달들로 남경거리에서 유명한 자들이었다. 남경거리의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자들로, 관에 고발해도 관병들은 보여 주기 식으로 출동할 뿐이지, 저들을 포박해 가지는 않았다.

독사파의 뒷돈에 관병들이 매수되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고발한 자가 독사파의 잔인한 보복에 희생되었기 때문에 거리에 있는 자들 중 누구도 이 일에 끼어들 수 없었다.

율검은 상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광경은 남경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에서나 흔한 일이었다. 관과 작당한 왈짜패들은 세상 어느 곳이나 존재했고, 무림 세력들 또한 굳이 이런 일에 나서지 않았다. 그것은 정파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정도만 달랐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두가 모르는 척하는 사이 왈짜패에게 목이 잡힌 소년은 점점 의식을 잃어 갔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요?!”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고 율검의 시선이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화가 났는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씩씩대는 설도희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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