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의선 56화>
첫 예선의 날이 밝았다.
처음 삼천이 넘었던 입맹 대회 지원자 중 삼차까지 합격해 정무맹 입맹의 자격을 얻은 자들은 팔십칠 명이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치러질 비무대회를 통해 사강 안에 든 네 명에겐 대주급 지위를 내리게 되며, 우승자에게는 만 냥의 상금과 정무맹 첫 비무대회의 우승자라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무맹 외당에 연무장에 설치된 네 개의 비무대를 둘러싸고 수천의 사람들이 이 대회를 보기위에 모여들어 정무맹의 안팎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우승자를 걸고 도박을 벌이는 이들이 있었다.
육십 년째 남경에서 조직적으로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는 만금회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들이 육십 년이나 남경에서 그들의 업장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철저한 신용 덕분이었다. 만금회를 거친 도박은 아무리 금액이 크다하더라도 만금회에서 책임지고 지불했다.
정무맹 비무대회는 만금회에서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얼굴 한번 보기 힘든 각파의 후기지수들과 젊은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비무를 하고 우열을 가린다!
도박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건수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만금회에서 예측한대로 역시나 정무맹 근처에 설치된 그들의 임시업장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평소 도박을 즐겨하는 사람들뿐 만아니라 도박에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이곳에 들려 자신이 예상하는 우승자에 돈을 걸고 배당표를 받아갔다.
“하성검문 하세웅에게 배, 백 냥 걸겠소!”
“난, 하북팽가의 팽가성에게 팔십 냥!”
“아니, 이보게 첫날 하세웅이 아무렇지도 않게 검기를 사용하는 걸 보지 못했나? 이번엔 하세웅이 우승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육기린 중에 우승자가 나오지 않겠나? 난 그들 중 팽가에 기대를 걸어 볼 생각이네!”
많은 사람들의 돈이 이번에 출전한 육기린의 제갈서원과 팽가성에게 몰렸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하세웅에게 걸린 돈 또한 적지 않았으며 백도방의 서환에게 배당하는 자들도 곧잘 있었다.
“율검. 오천 냥.”
임시업장의 책임자인 오광은 대뜸 오천 냥짜리 전표를 내놓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율검? 그런 참가자도 있었나?”
“있소. 그자에게 전부 걸어 주시오.”
오광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자신이 팔십칠 명의 비무대회 참가자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에 남지 못할 정도의 인물에게 오천 냥을 걸다니…….
‘돈이 너무 많아 땅바닥에 버리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냥 미친놈?’
오광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사내, 장연우를 쳐다보았다.
“괜찮겠소? 한 번 배당하면 끝이오. 이후 절대 취소 불가능하오.”
“괜찮으니, 어서 처리해 주시오.”
거침없는 장연우의 말에 오광은 전표를 건네받아 회계를 하는 수하에게 전해 주고 잠시 후 배당표를 받았다.
“당신이 율검이라는 자에게 배당한 첫 사람이오. 만약 이후에 율검이라는 자에게 배당하는 자가 없을 경우, 우승자가 율검이 된다면 배당금은 전부 가져가실 수 있소.”
“고맙소.”
‘고맙긴 우리가 더 고맙다. 너 같은 호구들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고 있으니.’
오광의 눈에 장연우는 무림인으로도, 부자로도 보이지 않았다. 오광은 결국 장연우를 어중간한 돈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는 호구로 결론지었다.
‘아마 집을 팔았거나, 담보로 빌린 돈이겠지.’
평소 도박장을 운영할 때도 이길 확률이 낮은 쪽이 배당금이 높으니 이런 식으로 한방 역전을 노리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확률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이런 자들은 대부분 돈을 잃고 후회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이런 비무대회는 운도 운이지만 기본적으로 실력이 받쳐 줘야 우승할 수 있는 대회였다. 듣도 보도 못한 무명인이 육기린 중 두 명과 백도방, 하성검문의 후계자를 꺾고 우승할 확률은 일 푼도 되지 않았다.
“그럼 돌아가 보시오, 무운을 빌겠소.”
나름 큰 금액을 배당한 고객이라 책임자인 자들이 직접 인사까지 건넸다. 장연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뒤돌아 만금회 영업장을 나서 사라졌다.
* * *
“이제부터 비무 예선을 시작하겠소. 네 개의 비무대가 준비되었으니 참가자들 또한 네 개의 조로 나누어졌소. 각 조에서 각 두 명의 인물이 팔강에 오를 것이고, 다시 추첨을 통해 팔강 대진이 완성될 것이오.”
제갈문의 설명이 이어졌다.
비무는 목검이 아닌 실제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로 진행되며 한쪽이 기권하거나 비무를 이어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심사관이 승패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비무가 이어지다 보면 한쪽이 월등한 실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치열하게 흘러갈 것을 고려해, 어느 정도 선까지의 부상은 인정하나, 상대를 폐인에 가깝게 상하게 하거나 죽이는 자는 실격하고 그에 대한 죄를 묻게 되었다.
어딘가 다녀온 장연우를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갔다 오시는 거예요?”
“기왕 율검이 참가하는 대회이니, 부수적으로 챙길 수 있는 이득은 전부 챙겨야죠.”
“부수적인 이득이요?”
“도박판에 가서 율검에게 돈을 걸고 오는 길입니다.”
“돈을요? 대체 얼마나?”
“오천 냥 걸었습니다.”
그 말에 설인영과 설도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오…… 오천 냥이나요? 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서…….”
“돈은 남경에 다녀온다고 하니 공노께서 챙겨 주시더군요. 자고로 남자는 전랑이 두둑해야 자신감이 산다고 하시더군요.”
설도희는 아깝다는 듯 장연우를 핍박했다.
“연우 오라버니! 그 돈이면 어제 오늘 보았던 최고급비단으로 제작한 비단옷이 몇십 벌인데…… 아아, 아까워라. 그 생돈을 그냥 날리다니……!”
자신에게 돈을 걸었다는 장연우의 말에 주위 분위기가 돈을 날린 것이 확정적이라는 듯이 돌아가자 율검이 내심 울컥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우승할지도 모르는 거잖아?”
“에이, 연우 오라버니라면 모를까, 각파의 난다 긴다 하는 후기지수들이 다 모였다는데. 율 오라버니가 우승 하는 건 어렵지 않겠어?”
설도희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율검은 평소 그답지 않은 높은 목소리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흥! 가문 안에서 곱게 자란 애송이들은 내가 전부 꺾고 우승해 주지!”
장연우는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설도희가 강하게 동기 부여(?)를 해 주자 시선을 참가자들 쪽으로 돌렸다.
‘일단은 제갈서원, 팽가성 그리고 하세웅 정도가 견제대상이군.’
그러던 장연우의 눈에 서환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녀석도 있군. 조만간 한번 부딪치겠어.’
백도방의 무인들이 자신들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인 장연우 일행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만 비무대회가 진행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환이 율검을 알아볼 것이다.
잠시 뒤 대진표 공개와 함께, 정무맹 합격자들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비무대회가 시작되었다.
총 네 개조로 나누어진 참가자들을 보며 장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그렇군.’
우승후보로 손꼽히고 있는 육기린인 제갈서원과 팽가윤, 그리고 삼세의 후계자들인 하세웅과 서환이 전부 다른 조에 배속된 것이다.
“저들이 사강 이전에 만나서 한쪽이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거겠지.”
이런 배정의 이면에는 각 문파의 친목과 비리가 끼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율검은 공교롭게도 서환과 같은 조였다.
“생각보다 빨리 만나겠는걸?”
문득 서환과 백도방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문득 궁금해지는 장연우였다.
* * *
“그들은 온 것인가?”
황보원의 물음에 제갈미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참가자 명단에, 설씨세가의 율검이 있습니다. 그때 보셨던 장 소협의 부관들 중 하나죠. 아마 장 소협 또한 이곳 남경에 있을 거예요.”
“그 친구가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군.”
황보원은 흑월마궁과의 격전 때를 떠올렸다. 장연우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장연우의 부관들이었던 조홍과 율검의 활약 역시 적지 않았다.
만약 그 둘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장연우가 깨어나기 전까지 흑월마궁의 공세를 버티지 못했으리라.
“한데 조홍이라는 젊은이가 아니라 율검 그 친구가 비무대회에 참가했다는 겐가? 그 친구는 살수 무공을 쓰는 아이였던 거 같았는데……?”
공개된 상황에서 정면 대결을 펼치는 비무대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공을 쓰는 자였다.
“어르신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글쎄구나. 조홍이라는 친구가 참가했다면 우승권에 가까웠겠지. 서원이와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이었으니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거다. 율검이라는 친구는 본선까지 진출할 수도 있겠지만, 우승까지는 힘들어 보이는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솔직한 황보원의 평가였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암투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정면 대결에서 제갈서원이나 팽가윤, 하세웅을 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래도 기대해 봐야겠군. 어떤 생각이 있으니 장연우 그 친구가 참가시키지 않았겠나?”
황보원의 말에 제갈미희는 흥미롭다는 듯 참가자 명단에 있는 율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번 대회의 최대 복병 중에 하나인 이름이었으니.
제갈문을 도와 정무맹 창맹식을 준비한 제갈미희 역시 이번 대회에 여러 문파의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제갈미희 역시 못마땅했지만 자신의 선에서 개입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숙부인 제갈문이 있었다.
‘이번엔 어떻게 우릴 놀라게 해 주실 건가요?’
제갈미희는 장연우로 인해 숱하게 놀랐던 소주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로 인해 뻔하게 흘러갈 비무대회가 조금은 재밌어지길 바라면서.
* * *
“제갈서원 승!”
“우와아아아!”
첫 비무를 가볍게 승리한 제갈서원을 향해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다. 특히나 만금회를 통해 제갈서원에게 돈을 건 자들은 목이 나가라 소리 질렀다.
“이대로 우승까지 해 주시오!”
“팽가성이건 하세웅이건 당신 상대가 안 되오!”
관중석의 뜨거운 환호에 우쭐해 할만도 하건만 제갈서원은 침착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그런 제갈서원을 향해 다가오는 일남일녀가 있었다.
“무공이 더 늘은 것 같군.”
“팽 형!”
다가온 이들은 바로 비무대회에 같이 참가한 육기린 중 하나인 벽력도 팽가성과 그의 여동생 팽가희였다.
오대세가는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지만 한 이름으로 묶인 그들은 교류 또한 활발했다. 그리고 특히 그들 중 제갈세가와 팽가의 사이는 돈독한 편이었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제갈서원, 제갈미희와 팽가성, 팽가희는 다른 세가의 자재들보다 친하게 자라 왔다.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가희, 너도 왔구나. 마지막으로 본 것이 이 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교류가 활발하다하지만 기본적으로 세가 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제갈서원도 이 둘을 본 것이 이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이 년 전에는 소녀 같던 팽가희가 이제는 버젓이 성숙한 숙녀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사람을 상대할 때에 정중하고 예의를 지키지만 거리를 유지하는 제갈서원이었지만 팽가희를 보는 제갈서원의 눈은 그런 제갈서원에게 평소 잘 볼 수 없는 따뜻한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