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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10화 (10/445)

10화 아버지는 계획이 있다

***

<왕씨자원>

도심 외곽에 위치한 고물상, 여기저기 폐지가 쌓여있거나 녹슨 고철, 고장난 전자제품 등이 재활용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의 주인 왕씨는 대형 마대가 가득 쌓여있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쓰레기지만 자신에게는 큰 재산이었다.

먼지가 묻은 바지를 탁탁 털고 목장갑을 벗으려던 왕씨는 낯익은 누군가를 발견했다.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는 바로 산하였다.

"또 오셨네. 대체 뭘 찍을게 있다고 이렇게 와요?"

산하가 고물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말한다.

"제가 또 오래된 물건이나 버려진 물건에서 감성을 잡아내곤 하거든요."

"뭔 소린지 원...."

"죄송하지만 오늘도 구경 좀 하면 안 될까요?"

쫓아보낼까 생각하던 왕씨는 마음을 곱게 먹기로 했다. 딱히 해를 끼치는것도 아니었고, 일 하는데 큰 방해도 없었다.

"마음대로 하슈."

허락을 받자마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산하는 곧바로 고물상 안쪽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새로운 고물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십여분 넘게 빛나는 물건을 찾아 헤매도 눈에 띄는게 없었다.

'또 허탕이야?'

그때 저 구석에서 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혹시 햇볕에 반사된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지금까지 찾던 보물이었다.

'아자!'

용을 쓰며 주변 고물을 치워내자 본래 손수레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나왔다. 바퀴는 어디로 갔는지 둘 다 없고, 한쪽은 푹 찌그러져서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에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산하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으로 얼른 손수레를 만져보았다.

[12년전, 양옥자는 전통시장에서 식자재를 골랐다.]

[과거와의 연결고리에 닿았습니다. 확인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과거를 볼 순 없다고 생각한 산하가 제법 묵직한 손수레를 들어올린 후 왕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이거 살게요."

"그 고물은 또 뭐 하게요? 쓰지도 못 하는 걸."

"이게 참 멋있게 찌그러져서요. 집에 장식해 놓으려고요."

이곳을 운영하는 왕씨는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듯 산하를 바라보다가,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오천원만 줘요."

"잠시만요, 여기 받으세요."

고물상을 벗어난 산하는 손수레를 달랑달랑 들고가며 씩 웃었다.

'찾기 힘드네.'

***

집으로 돌아온 산하가 현관문 손잡이에 열쇠를 밀어넣던 찰나, 봉만두가 문을 열고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형, 어디 다녀와요?"

"면접보러 간다더니?"

"미뤄졌어요. 아니 그보다 그거 뭡니까?"

"이거? 멋있지?"

봉만두가 귀에 검지를 빙빙 돌리며 말한다.

"형, 혹시..."

"이게 진짜. 너 국물도 없어?"

"아, 형. 농담이었어요. 그건 진짜 뭐하시게요?"

"그냥 오는길에 주웠어."

"이제 장사도 제법 되는데, 고철은 왜 주우세요? 폐지줍기 겸업 하시게요?"

"뭐?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운동 좀 해."

봉만두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볼록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두들긴다.

"제가 어때서요? 이만하면 날씬하지."

"넌 자아도취가 너무 심해."

"형만 모르고 다 알아요. 저 날씬한 거. 아차 불어터지겠네. 형 이따봐요."

봉만두가 자신의 현관문을 닫고 사라지자, 희미한 라면냄새가 풍겨옴을 산하의 코가 감지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산하는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기도 전, 손수레부터 매만지며.

'어디 봐 볼까?'

[12년 전으로 다가갑니다.]

.

.

.

"에헤이, 안 된다니까요. 저도 남는 거 없어요."

"김씨도 순 장사꾼 다 됐어. 이거 딱 봐도 윤기가 없잖아. 가져온지 좀 됐지?"

"무슨 윤기가 없어요. 싱싱하기만 한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내 눈은 못 속여."

장사꾼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옆자리의 상인에게 눈을 돌린다.

"보세요. 이게 시들어 보여요?"

"싱싱한 것 같은데..."

"들으셨죠? 양 여사님, 진짜 싸게 드리는 겁니다."

"개뿔, 싸긴 뭐가 싸. 시들었으니까 이거 다 칠천원에 줘."

"아 정말, 양 여사님 이길수가 없다니까. 그럼 팔천원."

"안 돼. 그건 칠천원이 제 값이야. 조금 더 놔두면 못 써."

"어휴..알았어요."

오이를 담아서 양옥자의 손수레에 실어주던 장사꾼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 이런 귀신같은 할머니가 다 있어...'

.

.

.

[양옥자의 대표적인 재능 식자재선별 관찰에 성공하셨습니다.]

[솜씨 일부를 획득합니다.]

산하가 제법 쓸만한 걸 찾았다며 웃음 짓던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산하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혹여 아들이 실패에 마음아파 끙끙대다 잘못되지는 않을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여러모로 걱정하시는 게 분명했다.

그는 심려를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일부러 더 쾌활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아들이 훔쳐갔어?"

예상못한 전개에 산하는 약간 당황했다.

"뭐, 뭘요?"

"그거야 훔쳐간놈이 알겠지."

본가에 갔더니 아무도 없길래 일단 된장부터 가져오고, 나중에 말한다는 걸 깜빡했던 산하가 말을 더듬었다.

"어...그러게요. 어떤놈이 뭘 훔쳐갔을까요."

"빨리 이실직고해."

"어머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들, 흰소리 그만하고, 누가 된장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래? 그 큰 항아리 반이 비었어."

"이번주에 아버지 없을때 된장 담그러 갈까요?"

사실 산하는 시중에 파는 된장도 사서 만들어봤지만, 본래의 맛이 나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표 된장을 쓰는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된장 조달을 고심 중이기도 했다.

"어휴...됐어. 그건 엄마가 할테니까. 네 아버지 있을때 집에나 한번 와."

"아버지 싫어하실텐데."

"그 싫어하는 아버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너 오라신다."

"네? 수상한데..."

"수상하긴, 그래도 자식이라고 신경은 쓰이는가봐."

"엄마는 왜 남일 말하듯이 말해요."

"딱히 내 일은 아니잖니."

"엄마."

"귀 따가워. 잔말 말고 주말에 시간 비워 둬."

"네."

통화를 종료한 산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갈때마다 구박할때는 언제고 왜 오라시는거지.

***

본가 대문앞에 선 산하는 단독주택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담 너머를 바라보니, 따릉이가 알아채고는 멍멍 짖고 꼬리를 흔드는게 눈에 띄었다.

'아무도 없나...'

"박산하."

어딘가 차가운 음성에 뒤를 돌아본 산하는, 검은 봉지를 오른손에 든 아버지 박상태를 발견했다.

"아버지?"

"왜 남의 집을 훔쳐봐?"

"남의 집 아니고 부모님 집인데요?"

"이허, 이 놈이 진짜. 또 말대꾸야?"

"사실이잖아요."

"너 왜 왔어? 내가 집에 발도 들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아버지가 오라고 하셨다면서요?"

"누가 그래? 그건 그렇고 그거 접을거야 말거야?"

박상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며 말을 돌렸고, 산하는 또 올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생각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뭘 접어요?"

"포장마찬지 다섯번째 망할 마찬지 말이야."

"아버지! 이번엔 대박 마차라고요."

"대박마차 같은 소리하네. 이럴거면 가!"

"못가요."

대문이 벌컥 열리며 장순희가 외친다.

"길바닥에서 남 부끄럽게 정말. 너도 얼른 들어와."

찔끔한 박상태가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뒷짐을 지고 대문안으로 들어섰고, 산하도 뒤통수를 긁으며 내부로 향했다.

잠시 후.

고기가 맛있는 소리를 내며 불판 위에 올려지자, 윤정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와, 맛있는 냄새. 엄마 고기다 고기. 윤정이 왔어용. 어?"

윤정은 못볼걸 봤다는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있는 산하를 바라보았다.

"오, 윤땡. 왔냐?"

"내가 하지 말랬지?"

"윤땡이를 윤땡이라 하지 뭐라고 하냐."

"아, 진짜. 엄마 오빠 혼내 줘."

"둘이 알아서 합의 봐."

"아, 엄마."

"와서 고기나 먹어."

남매가 다투는 와중에도 박상태의 얼굴은 근엄하기 짝이 없었다. 깊은 고뇌가 자리하고 있어서였다. 어찌하면 체통을 지키고 된장찌개도 먹을 것인가.

"여보, 이거 좀 느끼하네."

"파무침이랑 먹어요."

"어? 어..."

첫 계획을 실패한 박상태는 다음 계획을 잡았다. 고기를 조금 더 먹고 난 후.

"역시 고기에는 된장찌개지. 여보. 얼큰한 된장찌...."

"오늘은 그냥 좀 먹어요. 어떻게 하나하나 다 차려서 먹어요."

왠지 모르게 기세등등해진 마누라의 타박에, 박상태는 말문을 닫았다.

'이게 아닌데...'

본래대로라면 장순희에게 해달라고 하다가, 네 엄마 고생하는것도 안 보이냐며 아들에게 떠 넘길 셈이었다. 이유없이 미워진 마누라를 홀겨보던 찰나.

"당신 날 왜 그렇게 봐요?"

"어? 어 아냐. 고기 잘 사왔네. 어디서 샀어? 그거 궁금해서 그랬지."

"당신도 참. 요 앞에 새로 개업한 집에서 사왔어요. 당신도 봤을걸요?"

박상태는 생각했다. 아냐, 마누라 그게 아니라고. 내가 된장찌개에 같이 먹으려고 소주도 사왔는데. 이러다 된장찌개는 맛도 못 보게 생겼다고. 그가 고심하던 찰나.

"어머님, 저 왔어요."

"왔니? 제동이는?"

마누라 장순희가 불렀나싶어 별 생각없던 박상태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연장근무래요. 저 혼자 왔는데, 괜찮으시죠?"

"당연하지, 얼른 와 앉아."

"언니!"

"넌 언니가 뭐야."

"아, 맞다."

"형수님 오셨어요?"

"그래, 아가. 잘 왔다."

며느리를 향해 인자한 표정을 짓던 박상태가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 1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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