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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7화 (37/445)

37화 조금 할 줄 알아요(3)

봉만두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렸다. 이른아침부터 저 형님이 왜 저러실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머리털요?"

"그래, 미용실에서 이렇게 이렇게 자르잖아."

일부러 장난 치는거라고 이해한 봉만두가 갑자기 하하하 웃었다.

"에이 형님, 저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멀쩡해요. 자 보세요. 이렇게 웃고있잖아요."

산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웃으니까 보기좋네. 머리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어디서 다듬을래? 그냥 네 방 욕실로 하자."

조금전의 우울한 표정은 어디로갔는지, 봉만두는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형님 아침부터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뭘 왜 이래, 공짜로 해주겠다는데."

난간벽에 찰싹 붙어 있던 봉만두가 자신의 자취방 현관을 향해 슬그머니 발을 옮긴다.

"설마 엊그제 알바 안 갔다고, 화풀이 하시는겁니까?"

"내가 그렇게 졸렬해보이냐? 그냥 연습 상대 좀 해달라는거지."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봉만두가 항의한다.

"아니, 헤어 다듬는 연습은 왜 또 하시는 건데요? 어디 쓰시게요? 형님 자격증은 있으세요?"

뻔뻔한 표정으로 말하는 산하.

"단 둘이 구석에서 조용히 깎는데, 자격증까지 찾고 그래."

그가 말하는 사이 봉만두의 발이 잽싸게 움직였다. 현관 문이 막 열리던 찰나.

"잡았다 요놈!"

뒷덜미를 잡힌 봉만두가 버둥거리며 외친다.

".....사람 살려. 야매 미용 사람잡네."

"놀라기는, 내가 설마 박박 밀기라도 하겠냐? 가자, 새롭게 태어나는거다."

"........살려주세요 형님, 야매 미용은 정말 안 됩니다."

"너 인마 내 된장찌개 맛 알지?"

이상한 질문에 바둥거림을 멈춘 봉만두는 호기심이 생겼다.

"알죠. 그건 왜?"

"그게 다 긴 세월동안 단련해서 얻은거야. 봐라. 계속 망하다가 이제 잘 되잖아. 이 미용기술도 마찬가지거든. 내가 제대로 수련했다니까."

이상한 포인트에서 설득당하기 시작한 봉만두가 질문한다.

"마네킹 인형이랑요?"

"어? 어..."

"그런데 왜 자격증은 없으세요?"

"그게 다 시간도 없고, 그래서 그렇고 그런거야."

산하의 얼버무림에 뭔가 불안해하던 봉만두는 결심이 굳은 듯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면접 떨어진 것 때문에 자포자기한 표정이랄까.

"좋습니다. 어차피 스포츠로 한번 밀까 고민했었는데, 가시죠.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지만, 연습한번 하시고 이쁘게 밀어주십시오. 이 봉만두의 귀한 머리칼, 그냥 내 드리겠습니다."

그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의 자취방 현관 안으로 씩씩하게 들어가버렸다.

만두가 너무 심하게 거부하길래 슬슬 그만 하고 출근하려던 산하는 살짝 당황했고, 그 마음도 모르는 봉만두가 현관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킥킥대며 웃는다.

"왜요 형님, 제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니까 겁먹으신겁니까? 그럼 그렇지. 저 웃기려고 그러신 거였죠? 뜬금없이 머리칼 다듬어 주신다고해서 장난인 거 알았습니다. 이제 그만 출근하세요. 저도 이제...."

잠시 후.

촌스럽지만 따스한 백열등이 욕실 내부를 노랗게 물들인 가운데, 봉만두가 의자 위에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앉아있다.

그의 등 뒤편에는 분홍색 빨래집게 두개가 집혀있었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와 같은 표정으로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만두가 입을 열었다.

"형님...."

"왜."

"땜빵은 안 됩니다. 밀면 흉하거든요."

"알았어. 가만히 있어봐."

"형님."

"또 왜?"

"이런 촌스러운 꽃무늬 보자기밖에 없습니까?"

"그게 다야. 저번에 집에서 김치 가져올때 쌌던거라서."

코를 킁킁 거리던 봉만두가 말한다.

"어쩐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했습니다."

"자, 간다!"

"잠깐, 형님."

"왜 자꾸 불러."

"지금이라도 무르면...."

"안 돼 돌아가."

"....."

"형님 정말 땜빵은 안 됩니다. 그리고 기왕 해주시는 거 투블럭으로..."

"넌 댄디가 어울린다니까."

산하는 커트용 가위를 몇번 접었다펴며 씩 웃었고, 그 빛나는 가위날을 거울로 보게 된 봉만두는 불안해져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내가 대체 왜 허락했지라고 생각하면서.

그 후회는 산하의 현란한 빗질과 가위놀림으로 인해 순식간에 더 커졌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컷, 그리고 컷!

이내 욕실내부에는 사각거리는 소음만이 남았다. 검은 머리털이 어깨와 욕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동안, 만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지금 이 형님이 마구잡이로 잘라대는거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형님, 지금 제대로 하시는 거 맞습니까? 안보고 막 자르시는 것 같은데...."

"그걸 바로 노련함이라고 하는 거야. 입에 머리칼 들어간다. 입 닫아."

"......이건 아닌데. 형님! 잠깐만요."

"닥쳐, 집중 떨어지잖아. 땜빵 만든다?"

"......"

10분 후.

어깨와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칼을 힐끔거리던 봉만두는, 거울속의 자신을 자세히 살피며 눈만 끔뻑였다.

"형님...."

"왜? 다 끝났어."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머리칼을 슬쩍슬쩍 만져보기까지 하던 그가 감탄사를 흘렸다.

"형님 이게 말이 됩니까?"

"뭐가?"

"어떻게 제 단골 미용실 원장님보다 잘 자르십니까? 와, 진짜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잘 어울리는 헤어 처음이에요. 감아서 드라이까지 하면 멋지겠는데요? 정말 댄디가 어울리긴 하네요."

"내가 말했지? 좀 할 줄 안 다니까.."

"에이, 형님 이건 좀 할 줄 아는게 아니라 전문가 수준인데요? 빨리 진실을 말씀해보십쇼."

"뭘?"

"재능 없어서 식당에 매진했다는 거 다 뻥이죠? 이건 완전 천재잖습니까? 요리도 잘해, 노래도 잘해, 헤어까지....이 불공평한 세상."

"시꺼, 머리 다듬어 줬으니까, 머리감고 바로 식당 출근해."

"네? 그렇게 일찍요?"

"그래, 놀면 뭐할거야. 이따가보자."

"네, 형님. 멋진 헤어 감사드립니다. 진짜 마음에 들어요. 다음에도 해주세요."

헤어 다듬기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를 확인한 산하가 흐뭇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다음부터는 이만원."

"네!?"

"다음엔 자격증이 있을거야, 그럼 귀한몸이잖아. 그러니까 이만원."

***

봉황부동산을 운영하는 최팔봉이 허허 웃으면서 믹스 커피를 세잔 가져왔다. 그 커피를 홀짝이던 슈퍼할머니 양옥희가 입을 열었다.

"우리 산하가 하는거면 진작 말하지."

"그럼 깎아주시게요?"

"암, 깎아주고말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청년도 보기 드물어. 나라도 도와야지."

"하긴, 그렇습니다. 그럼 얼마나?"

최팔봉의 질문을 받은 양옥희의 시선이 산하에게로 향했다.

"1층만 빌린다고?"

건물 전체를 다 빌리려다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었던 산하는 일단 1층 전체만 빌리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2층은 필요할때 빌리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할머니."

"보증금은 한칸값만 받고, 월세는 100만원. 됐지?"

"안 그러셔도 되는데, 진짜 감사합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러는게야. 화이팅이야?"

"네!"

잠시 후 계약서를 수정해서 가져온 최팔봉이 각자앞에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 두 분 다 잘 살펴보시고 도장 꾹 찍으시면 끝입니다."

계약서를 쭉 훑어본 산하는 도장을 찍었다. 인도일은 2개월 후였는데, 양옥희가 수리를 좀 하고 세를 주겠다고 해서였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뭘 감사해. 내가 감사하지. 잘 해봐."

"네, 할머니."

***

"죄송합니다. 재료가 다 소진됐습니다."

"아...다음에 올게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떠나가는 손님을 잠시 바라보던 산하는 테이블을 닦고 있는 새봄에게 말했다.

"그만 하고 우리도 좀 쉬자."

"네, 이것만 닦고요."

"새봄아 만두야, 우리 조금 있으면 이사가는 거 아냐?"

"어? 형님 언제요? 어디 계약하셨어요?"

"사장님 진짜요?"

"그래, 저쪽아래 좀 넓은데로 계약해놨어. 두 달 후에 수리끝나고 인테리어 하면, 여기 계약은 얼추 한달 좀 넘게 남겠다."

"오! 형님 장난 아닌데요? 순식간에 확장이전."

"또 오버한다. 누가 들으면 건물사서 가는 줄 알겠다."

"거기 많이 넓어요?"

"넓지. 상가 두 칸 통으로 쓸거야."

"와!"

"자, 새로운 소식은 여기까지, 오늘 간식은 뭐 먹을까?"

"전 스파게티 주세요."

"형님, 전 비빔국수."

"통일해라."

강렬한 불꽃을 튀기며 눈싸움을 하던 두 사람 중에서 봉만두가 먼저 눈을 깔았다.

"형님 저도 스파게티요."

그들이 막 간식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냈을 무렵이었다. HO엔터테인먼트 대표 곽기훈이 또 산하의 식당에 찾아왔다.

"산하 씨. 오늘은 제가 비장의 무기를 가져왔어요."

"네? 전 아직 생각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산하가 거부하자 그가 서류 한장을 내놓는다.

"이래도요? 조건 한번 보세요. 백지수표나 마찬가집니다. 원하는대로 해드린다니까요. 우리 문화의 힘을 세계 만방에 펼쳐봅시다."

".....너무 거창하신 것 같은데요?"

"그럴리가요. 산하 씨 실력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은 할일이 너무 많아서요. 나중에 정말 필요할때 연락드릴게요."

부정적인 대답을 듣자마자 어깨가 축처진 곽기훈이 힘없이 말한다.

"음....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여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곽기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였다.

"또 오시게요?"

"네, 또 와야죠.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저기...."

"네?"

된장찌개 좀 먹을 수 없냐고 물어보려던 곽기훈은 염치가 없는 것 같아 그냥 가기로 했다.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뭔가를 말하려다가 망설이기만 하던 그가 사라지자 새봄이 다가와 묻는다.

"저 아저씨가 또 뭐래요?"

"글쎄, 문화를 세계만방에 펼치고 싶으시다는데?"

"???"

***

황수호 피디의 프로그램 기획안이 통과되었는데, 새롭게 제작될 다큐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향토음식을 찾아서>

방문한 지역의 식재료와 전통음식을 소개하고, 셰프가 음식도 만들어 마을주민에게 맛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황수호 피디에게 시사교양국 담당 CP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식을 맛 보여주고 반응을 찍는다고? 차라리 예능을 해라."

"무슨 소리십니까? 이건 엄연히 다큐입니다. 단지 시대의 흐름을 조금 섞은 것 뿐이죠. 다큐인데도 의외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난 프로그램이 될 겁니다."

"잘났다. 박박 잘도 우기네. 이 질긴놈."

"사랑합니다. 국장님."

"징그럽긴 더 징그럽고, 저리가, 꼴도보기 싫어. 성공 못하기만 해봐라."

황 피디는 국장과 있었던 대화를 떠올린 후 이번엔 반드시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 프로그램의 작가를 맡게 된 자우정이라는 여성이 앉아있었다.

"피디 님, 그 박산하라는 분 잘 할 수 있을까요? 조금 알려진 셰프님을 모셔오는게 나을 것 같은데."

"우정씨가 몰라서 그렇지 대단한 맛집 운영하신다니까요. 세월의 맛에도 한번 출연하셨고. 실력도 좋습니다."

"맛집 운영이랑 프로그램은 다른거잖아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녹아들지 못하면.... 뭐 그래도 황 피디님 말씀이니까 믿고 가요."

"바로 그겁니다. 역시 내 맘 알아주는건 우정 씨 뿐이야."

"제가 또 한 긍정 하잖아요. 망하면 또 새로 파면 그만이죠."

"그거 긍정적인거 맞아요? 어째 저주하는 것 같은데. 저 이번거 망하면 국장님한테 죽습니다."

"아니에요. 피디님. 긍정적인 시그널이라니까요. 그런데 그분 언제오세요?"

"올 시간 됐어요. 아, 저기 오시네. 박 셰프님! 여깁니다."

카페로 들어선 산하는 황 피디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아이구, 우리 박 셰프님 오늘도 훤칠하니 잘 생기셨네."

"피디님, 혹시 전생에..."

'네?"

"아닙니다."

"아니 궁금하게 왜 이러세요. 전생에 뭐요?"

"아니라니까요. 소개부터 해주셔야죠?"

"아, 그렇지. 이쪽은 자우정 씨, 작가님이세요. 작가님? 이쪽이 박산하 씨입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자마자 황 피디는 프로그램 설명부터 들어갔다.

"이번 프로그램 제목이 확정됐어요. 향토음식을 찾아서라고....."

자우정 작가는 황 피디가 박산하라는 사람에게 왜 저렇게 쩔쩔매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촬영 일정까지 저 사람에게 맞추다니.

한참 후.

"거기 이장님이 조금 짓궂으셔서 이것저것 시키려고 하실테니까, 그냥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넘어가세요. 설명은 여기까지하고,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다음 달 하순부터 촬영한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또 없으세요?"

"다른건 괜찮습니다."

"그럼 산하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잘 부탁드려요."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 대박내요."

[누군가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자,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짐작대로라는 걸 깨달은 산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저녁 무렵, 본가 단독주택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선 산하가 외쳤다.

"저 왔어요!"

그러자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윤정이 튀어나오며 애교가 가득담긴 목소리로 인사한다.

"오빠 왔어?"

"너... 뭐 잘 못 먹었냐?"

"왜? 오빠, 나 멀쩡해."

왠지 느끼해 보이기까지 하는 여동생의 눈빛을 바라보던 산하는,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아 그래, 너 마침 잘 만났다."

윤정은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질문했다.

"왜? 뭔데?"

- 3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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