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다 모을 거야(3)
그 순간, 옆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고 그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나이 오십쯤 되었을까 싶은 사내가 울상을 하고 있었고, 그 맞은편의 와이프인듯 보이는 여성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안도경은 대체 무슨일인가 싶어 호기심이 생기는 바람에, 귀를 쫑긋하고 대화를 엿들었다.
"아니, 이게 왜 이렇게 빨리 사라져? 당신이 훔쳐 먹은 거 아니야?"
여성이 자신의 된장찌개가 담긴 뚝배기를 손으로 가린다.
"턱도 없는 소리 하지마요. 내거 뺏어먹으려는 수작인 거 다 아니까."
"어허, 무슨 소리. 내가 당신걸 왜 뺏어먹어. 내걸 주면 줬지."
"퍽이나 주겠다. 무슨놈의 밥을 게눈감추듯이 먹어요?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여보"
"또또, 그런 눈빛 하지마요. 절대 못줘요. 안 그래도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몰라서 아껴먹고 있구만."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하던 사내는, 마누라의 단호한 거부에 다시한번 울상을 지었다.
"여보, 오늘 청소는 내가...."
"어림 없어요."
"그럼 빨래는 어때?"
"노땡큐!"
마누라가 무심코 손을 치운 그때.
"에잇!"
어느새 사내의 숟가락은 마누라의 된장찌개 속으로 골인했고, 소중한 요리를 침범당한 그녀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 양반이 진짜! 상도덕도 없나."
재빨리 된장찌개를 숟가락 듬뿍 가져온 사내가 좋다고 웃더니, 그걸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한 다음 말했다.
"당신은 거기서 상도덕이 왜 나와. 우리가 장사꾼이야? 이건 그냥 부부간의 애정 문제지."
뻔뻔한 남편의 태도에 열을 올리던 그녀는 갑자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여보...."
흠칫한 사내가 고개를 뒤로 쭉 빼며 말을 더듬는다.
"당신 왜 그래? 무섭게..."
"무슨 소리 안 나요?"
"무슨 소리?"
"애정에 금 가는 소리!"
"안 나는데...."
"다음부터 밤새 줄 서서 포장해온 거 나 혼자 다 먹을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화들짝 놀란 사내.
"에이 여보.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 다시는 안 훔쳐먹을게."
"약속했어요?"
왠지 모르게 진지해보이는 음식 다툼을 훔쳐보던 안도경은 이번에는 정말 황당해졌다. 함께 줄을 서 있던 남자도 엄청나게 과장된 말을 쏟아내더니, 저기 저 부부도 그랬다.
마치 단체 연극에 속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저런 태도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대체 얼마나 맛있다고 저리도 호들갑이냐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녀는, 다시 자신의 된장찌개로 시선을 돌렸다.
'별거 없어 보이는데...'
이윽고 그녀는 공사장의 첫 삽을 뜨는 것처럼 진지하게 숟가락으로 된장찌개를 떠올렸다.
이내 후릅 소리와 함께 맛을 본 그녀는 입 안에서 축제라도 일어난것마냥 날뛰는 싱싱하고도, 즐거우며, 구수한 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된장찌개 맛은 맞는데, 된장찌개가 아닌 느낌이랄까.
그간 취재하면서 맛을 봤던 맛집과는 격이 다른 맛이었다.
세상에 신선의 음식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맛일까? 그제야 지금까지 겪어온 다른 손님들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한 방울도 뺏기기 싫은 그런 맛이었다.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면 화를 낼 것 같달까.
그 후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말도 없이 된장찌개를 신나게 퍼먹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땐 어느새 뚝배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쉽다...'
울상을 짓고 비어버린 그릇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리저리 다니며 일하는 이곳의 직원을 쳐다보았다.
'부럽다. 나도 여기 취직할까...'
그럼 많이 먹을 수 있겠지?
하지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산하에게 그런 요구를 한 손님은 무수히 많았으나, 아직은 직원 충원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계속 거절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한번 더 직원들을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본 후, 산하를 바라보다가 스마트폰으로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단순하게 맛있다는 말은 이 된장찌개를 깎아내리는 말이다. 이건 그야말로 미쳤다.>
남은 맨밥을 뚝배기 안에 집어넣어 국물 한방울까지 싹 닦아먹은 그녀는 다시금 아쉬운 표정을 한채 일어섰다.
"사장님, 진짜 잘 먹었습니다. 너무너무 맛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이제 취재 끝난거죠?"
"네? 글쎄요."
안도경은 다른 테이블에서 먹고있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슬쩍 훔쳐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제 생각에는 더 취재할 게 남은 것 같지만요. 일단 오늘 취재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잡지사 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들은 산하는 빙긋이 웃으며 그녀를 배웅했다.
"네, 그런데 언제 실리나요?"
"큰 변동사항 없다면, 아마도 새해 1월이 되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가볼게요."
"네, 살펴가세요."
"네, 그럼."
겨울 이불처럼 두툼한 외투와 가방을 집어든 그녀는, 산하네 요리전문점을 빠져나오며 행복하게 웃었다.
아직도 맛난 된장찌개의 맛이 입안을 감돌고 있었다.
'연차 내야지...'
이날 안도경은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직장상사의 의문스러운 눈길과 마주했다.
"뭐야, 맛집 취재는 잘 했어?"
"네!"
"그런데 왜 이렇게 행복한 표정이야? 선 봐? 남자 생겼어?"
"아니요."
"그럼?"
"진짜, 진짜진짜 맛있는 집을 발견했거든요."
"도경 씨 또 오버한다. 메뉴가 된장찌개라고 하지 않았어? 설마 그거 말하는 건 아니지?"
"그거 맞아요."
"뭐? 그게 뭐 별거 있어? 맛집이면 다 어느정도 하는 그런 맛 아니야?"
"아니요. 대리님 맛 보시면 기절하실걸요? 상상하던 그런 맛이 아니었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도경의 직장상사는 주변을 휘 둘러보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도경이 너, 내가 딱 보면 알아. 된장찌개같은 어이없는 핑계말고, 정말 무슨 일인데? 복권당첨됐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 둔 어느 날, 산하는 브레이크타임을 맞아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정순명의 친구라는 사람의 붓도 찾으러 가야하는데, 그 전에 천만원이라는 돈을 뜻깊게 쓰고 싶었다.
사실 좋은일에 쓰라고 했으니, 그냥 인터넷상으로 기부하면 순식간에 해결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산하는 그렇게 돈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그렇고, 뉴스에서도 기부단체의 비리와 불합리함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모은 돈, 정말 제대로 쓰고 싶었다.
또 하나,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미션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욕심도 함께였다.
그때, 슬그머니 다가온 새봄이 별을 박아놓은듯 예쁜 눈을 산하의 얼굴 근처로 들이밀며 노트북 화면을 반쯤 가렸다.
깜짝놀란 산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심쿵사 할뻔했네."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못 알아들은 새봄이 묻는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냐, 무슨 일인데?"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시나 해서요?"
"이제 연말이잖아. 좋은 일 하러 갔으면 싶은데, 보육원이라거나."
"그거 좋죠. 어디로 가실건데요?"
"글쎄, 아는 곳이 없어서. 알아보는 중이야."
"저 아는 곳 있어요."
"오! 봉사활동 좀 했나 본데."
"그 정도는 아니고요. 옛날부터 한번씩 가던 곳이요. 거기 원장님이 참 좋은 분이세요."
"그래? 거기가 어딘데?"
"네, 거기가 어디냐하면요..."
***
<하늘 보육원>
서울에서 조금 외진 보육원에 도착한 산하는, 이곳의 원장인 장도문과 원장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원래는 직원들과 다 같이 오는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오늘 같은 날 잠깐 오고마는 것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곧바로 원장실로 직행한 것이었다.
"원장님, 큰돈은 아니지만 좋은 일에 써주세요."
그는 버스킹 미션을 통해 벌었던 돈 천만원을 이곳 보육원장이 말해 준 후원계좌로 이체했다.
"이 정도면 큰돈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후 원장과 잠시 담소를 나누던 산하는 조금전 확인차 살폈던 그의 과거를 떠올렸다.
[5분전, 장도문은 아이들에게 옷이라도 하나 더 사 입힐 수 있겠다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이분은 정말 제대로된 보육원장이구나 생각하던 산하는 이곳 선반에 고이 모셔져 있는 무언가가 빛나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원장님. 저건 뭔가요?"
고개를 돌려 선반을 살펴보던 보육원장은 말없이 일어서더니 회초리를 가져와서 앉았다.
"이게, 우리 와이프가 살아생전에 쓰던 거예요. 엇나가는 애들 훈육한다고.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정말 부모처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을때 들던 거예요. 와이프도 애들 종아리 때리고 나면 참 그 날 밤은...."
원장이 만지작거리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회초리를 바라보던 산하는 조심스레 말했다.
"뜻 깊은 물건이네요."
"네, 남들에겐 그냥 쓸데없는 나무꼬챙이에 불과하겠지만, 저에겐 추억이 남아있는 물건이죠."
원장 장도문은 옛일이 생각나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말이 없었고, 산하는 그 회초리 끄트머리와 손가락을 슬그머니 접촉시켰다.
[16년전, 유미옥은 가출했던 아이를 겨우 찾아와서 혼냈다.]
[과거와의 연결고리에 닿았습니다. 확인 하시겠습니까?]
곧바로 확인한 산하.
[16년 전으로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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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옥과 장도문 부부는 몇년간의 결혼 생활에도 아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세상에 별의별 우여곡절로 인해 홀로되는 아이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된 두 사람은 의견을 모았다. 보육원을 설립하고 아이를 보살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자격증도 따고, 요건에 맞는 실무경력도 쌓아 보육원을 차릴 자격을 갖추었다.
하지만 보육원을 차리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값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때문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소문이 돌았는지 직접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부부는 서울에서도 아주 외진곳에 터를 잡고 보육원을 설립했다.
그 후로 원생이 점점 늘어났다. 갓난아이부터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그 바람에 두 사람, 특히 유미옥은 아이 어르고 달래는 스킬만큼은 최고가 되었다.
그렇게 부부는 아이들을 마치 친자식처럼 소중히 돌보고 아끼며 키워냈다.
때로는 엇나가는 아이가 나오면 어떻게든 데려와서 엄하게 교육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원장님은 엄마 아니잖아요..."
"누가 그래?"
"...."
"네 젖먹이 시절부터 내가 똥 기저귀 갈고 우유 먹이고 어르고 달래가며 키웠어. 그래도 네 엄마가 아니야?"
"......몰라요."
"모르면 종아리 걷어. 어디 쪼그만게 나쁜애들이랑 어울려서 가출을 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슬며시 종아리를 걷은, 원생이면서도 딸과 다름없는 혜선의 종아리를 몇번이고 내리치던 유미옥은 오늘따라 마음이 더욱 아파옴을 느꼈다.
직접 배아파 나은 자식은 아니지만, 친자식보다 더 소중하게 키웠는데, 어찌 이리도 마음을 몰라줄까.
왠지 모를 서글픔에 눈물 한줄기가 그녀의 눈가로 흘러내렸다. 그 눈물을 보게 된 혜선은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얼른 유미옥을 끌어안았다.
"엄마 왜 울어...내가 잘못했어. 응? 이제 가출 안 할게. 진짜야."
평소 그녀를 친 엄마와 같이 여겼지만, 학교 친구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군거림에 삐뚤어졌던 그녀는 다시금 이 분이 내 엄마임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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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 관찰에 성공하셨습니다.]
[갓난 아이는 높은 확률로 당신을 좋아하게 됩니다.]
[19세 이하 인간은, 당신의 말에 순순히 따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울게 만들어라 연계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신중한 행동으로 인해 가산점이 부여됩니다.]
[마운틴R 활동당시 완성했던 목소리의 93%를 획득했습니다.]
산하가 눈앞의 메시지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한참이나 옛 생각에 잠겨있던 장도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 이제 가볼게요. 차 잘 마시고 갑니다. 원장님 건강하세요."
"아, 벌써 가시게요? 감사합니다. 산하 씨도 건강하시고, 후원금 정말 고맙습니다. 늘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이곳 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보육원을 빠져나오던 산하는, 이 능력은 대체 어디에 쓰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중에 결혼이라도 하면 아이 기를때 써야하나.
일단 조카한테 테스트라도.
***
크리스마스 이브.
"딸 미안하다. 오늘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금방 올게, 알았지?"
".....다녀오세요."
오늘은 식당도 문을 닫았기에, 홀로 집에 앉아있던 새봄은 주방으로 향했다. 저녁으로 먹을 겸, 연습겸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서였다.
머리끈을 이용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재료를 손질하려던 그때였다.
톡이 왔다.
사장님은 오늘 할일 있으시다고 했으니, 광고인가. 아니면 친구일까.
잡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살펴 본 새봄은 활짝 웃었다.
[새봄아 노올자]
[뭐하고요?]
[뭐하긴 이브날은 사람 미어터지는 길거리 구경이 최고지.]
[생각 좀 해보고요.]
[10초 만에 대답 안하면 혼자 간다.]
[10]
[9]
[알았어요. 가요.]
[오 역시 선택이 빨라, 집이 어디야? 데리러 갈게.]
[여기가...어 아니에요. 그냥 알아서 갈게요. 식당앞으로 가면 돼요?]
[오케이, 식당앞으로 출발!]
휴대폰을 내려놓은 새봄은 얼른 앞치마를 벗고 거울앞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뾰루지가 하나 났는데, 흉하진 않겠지. 화장을 조금 진하게 할까. 그건 아닌가.
복잡한 생각을 이어가며 바삐 움직이던 새봄은 한참후에야 집을 나섰다.
[봄봄봄, 언제 오는거야?]
[다 왔어요.]
[알았어.]
새봄은 식당 앞에 도착하고나서 식당 내부를 들여다봤다. 캄캄한 게 뭐가 보이지를 않았다.
"뭐야..."
그녀는 곧장 산하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 순간 식당 내부가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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