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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71화 (71/445)

71화 나쁜 생각(1)

"도경 씨 어디죠?"

대표의 물음에 그녀는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이에요."

맛집 주변이라 주차할 공간이 없기에, 조금 멀찍이 주차하고 걸어가는 세 사람.

몇 분 정도 걸어서 산하네 요리전문점 앞에 도착한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오로지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소음과 줄 선 손님들이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때, 너른 문화사 대표가 짧은 소감을 말했다.

"추운데, 기네요."

그 옆에 서 있던 편집장은 식당 주변부터 줄 서 있는 곳까지 쭉 살펴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시간에 사람이 많네요. 이거 아무래도 도경 씨 한테 사과해야 겠는데요."

두 사람의 생각을 듣고 난 도경은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며칠전만해도 혼쭐이 나서 사과문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드디어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속으로 산하에게 감사를 표하던 도경은 두 사람을 재촉했다.

"대표님, 편집장님. 어째 전보다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얼른 자리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지. 대표님 먼저 가시지요. 도경 씨랑 제가 준비해서 따라가겠습니다."

"아닙니다. 같이 합시다."

이민재는 대표라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손수 차 트렁크에서 텐트 가방을 꺼내는 모범을 보였고, 흠칫한 편집장이 그걸 얼른 뺏어들었다.

그리고 도경은 자질구레한 준비물이 든 가방을 챙겼다.

그 와중에도 몇 사람이 더 도착해서 줄을 섰는데, 세 사람은 발을 잽싸게 놀려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편집장은 잠이 오는 듯 하품을 크게 하더니, 텐트 내부를 휘 둘러봤다.

"이거 꼭 캠핑 온것처럼 신선하네요. 안 그렇습니까? 대표님."

"그러네요. 텐트 속에 들어와본게 얼마만인지. 그나저나 전 예나 지금이나 이해가 안 갑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요리잡지에 맛집코너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바닥에 흘리면서 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말이에요. 시간은 소중한건데. 그걸 잠깐의 맛과 바꿀 수 있느냐 그런거죠."

"아..."

편집장이 그건 나도 동감한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자, 도경은 말도 없이 빙긋 웃었다.

그러자 대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에게 말한다.

"도경 씨 왜 그렇게 웃으세요?"

"아, 죄송합니다. 사실 여기 요리 맛 보시면 그런 말씀 안 나오실거라고 생각해서요. 시간 안 아까우실 거예요."

"그래요? 맛집 코너에서도 극찬, 애독자도 극찬, 기대되긴 합니다. 이참에 저도 맛집에 줄 서는 거 이해 좀 했으면 하네요."

편집장도 대표의 말을 거들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앉아서 졸다가 하던 사이 해가 서서히 밝아왔고, 드디어 대기표를 나눠주는 직원이 등장했다.

그는 바로 봉만두였다.

"안녕하세요? 손님 고생하셨습니다. 이민재님 외 2명, 된장찌개 두 개, 두부전골 하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 뒤쪽 팀으로 주문을 받으러 가는 직원을 바라보던 이민재는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이 많은 사람이 먹고자 하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대기표를 받아냈다.

이것 때문에 줄을 서는건가 싶을 정도의 감정이랄까.

그러다가 의아함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도경 씨는 왜 두부전골을....?"

"아, 전 된장찌개 먹어봤으니 다른 거 먹어보려고요. 두부전골도 맛있다고들 하셔서요. 도전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래요?"

뭐 그런가보다 생각하던 이민재는 다시 텐트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신나는 걸음으로 식당 내부로 들어선 도경이 4인용 테이블 중 한곳에 앉았다.

이민재가 뿌옇게 김이서린 안경을 닦고 있자니, 도경이 말한다.

"대표님, 편집장님. 너무 놀라시진 마세요."

"알겠습니다. 기대하죠."

"그래요."

기다릴때부터 도경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한 것 중 하나였기에, 두 사람은 조금 지겹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미모의 여성이 밀차를 끌고 나타났다.

"식사 나왔습니다."

그녀가 모든 요리를 서빙하고 사라진 후 이민재는 눈만 끔뻑였다.

"저분도 연예인인가요? 지금 무슨 프로그램 촬영 중 인가보네요?"

"아니요. 저 분 여기 직원이세요."

"그래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이민재가 출출함을 느끼며 된장찌개를 바라봤다.

"자 드십시다."

회식자리에서 하던 것처럼, 이민재는 다들 먹으라고 손짓하며 호기심만 살짝 담긴 표정으로 된장찌개를 떠 먹었다.

그리고 석고상이 되었다.

굳어버린 그의 얼굴을 보게 된 편집장이 다급히 묻는다.

"대표님, 왜 그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이거...."

"네?"

"이거 너무."

"너무?"

"맛있습니다. 24시간 기다려서라도 먹고 싶을 만큼. 전 오늘에야 비로소 맛집 기다리는 거 이해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민재는 된장찌개를 흡입하기 시작했고, 어리둥절해하던 편집장도 된장찌개 맛을 보고는 미친듯이 퍼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던 도경은 마음속에서 브이를 그리고는 두부전골을 바라보았다.

이거 실수 한건 아니겠지? 된장찌개랑 차이 많이 나면 후회스러울 것 같은데.

잠시 잡생각을 하던 그녀는 두부와 국물을 함께 떠서 호호 불더니 입에 집어넣었다.

"......와."

점점 사라져가는 된장찌개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던 이민재가 묻는다.

"도경 씨 그것도 맛있어요?"

"네, 진짜 맛있어요. 물론 된장찌개가 더 맛있지만요."

"혹시..."

"네?"

"조금 맛 볼 수 있을까요?"

"네, 대표님."

새 숟가락을 꺼내서 도경이 주문한 두부전골을 맛 본 이민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정말 대박 맛집이네요. 도경 씨 취재 정말 잘 하셨어요. 덕분에 2월호도 잘 팔리고, 다음 달 월급 기대해도 좋아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대표에게 칭찬을 받는 도경에게 편집장도 사과의 말을 던졌다.

"도경 씨, 미안합니다. 제가 엄청난 실수를 했네요. 그간 잘 해 오셨는데, 의아하긴 했어요. 이 정도 맛집이 있을 줄이야. 아무튼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다음에 도경 씨 다른 실수하셔도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무섭기만 한 줄 알았던 편집장이 실수를 제대로 인정하는 면모도 있었구나 생각하던 도경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먹어보고 믿을 수 없었거든요."

"그럼 사과 받아주시는 거죠?"

"네, 그럼요."

세 사람은 그 후로 말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이토록 즐거워하는 손님들을 조리중에도 한 번씩 바라보던 산하는, 안경 쓴 손님 한명이 일어서더니 오픈 주방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게 되었다.

안도경이라는 잡지사 기자의 일행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지?

"실례합니다. 바쁘시겠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몰라서요."

"네? 무슨 일이신지?"

"저는 저쪽 안도경 씨 소속 잡지사 대표인 이민재라고 합니다. 혹시 나중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고개를 잠시 갸웃하던 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잠깐은 상관없습니다만."

"그럼 시간나실때 이쪽으로 연락 좀 주시겠어요?"

이민재가 내민 명함을 받아 든 산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영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산하는 그 명함을 대충 바지주머니에 쑤셔넣고 손을 씻은 다음 요리에 집중했다.

그때, 밖이 약간 소란스러움을 느낀 그는, 서빙을 하고 돌아온 강본무에게 부탁했다.

"밖에 무슨 일인지 봐 주시겠어요?"

"그럼요. 사장님.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강본무가 돌아와 말한다.

"사장님, 잠깐 나와보셔야 겠는데요."

"무슨 일인데요?"

"줄 서기 알바대행인가 문제로, 손님끼리 시비가 붙은 것 같습니다."

"알바대행이요?"

산하는 자신의 식당이 맛집으로 변해가는동안 줄 서기에 대해 여러가지 고민을 했다. 예약제를 비롯해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 봤으나 죄다 꼼수를 쓸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가장 공정한 방법인 줄 서기를 계속 시행중이었다. 그런데 알바대행이라니?

조금 화가 난 그는 밖으로 나가서 소란스러운 현장으로 다가갔다.

"조카는 무슨, 알바 맞잖아요. 말 하는 거 다 들었어요."

얼굴에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남성은 한때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가진 집터와 밭이 개발 되면서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

한마디로 졸부였다.

평소 돈 좀 있다고 으스대는 친인척에게 기죽어 살던 그는 이때부터 가슴을 쫙 펴고, 속된말로 돈 지랄을 하며 살았다. 고급 차량도 한대 사고, 빌딩도 사고, 서울에 집도 새로지었다.

거기에 더해 식도락이라는 취미까지 생겼다.

매일 놀고 먹으며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고 다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산하네 요리전문점의 된장찌개를 맛 보게 되었고.

주야장천 이곳을 찾는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매일 줄을 서야 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었던 그는 일당 알바를 고용해 줄 서기 대행으로 요리를 편하게 먹으려다 오늘 딱 걸렸다.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억울하다고 생각하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다 말고 호통을 친다.

"그래 알바 맞다.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고용했는데 무슨 상관이야? 당신도 꼬우면 알바 써."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돈이면 다야?"

"그래 다다 어쩔래?"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얼굴을 붉히며 싸우던 사내 중 한명이 산하를 보더니 반갑게 말한다.

"사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아니 여기 이분이 줄 서기 알바를 고용했지 뭡니까.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뭐든 공정하게 해야죠."

"줄 서기 알바요?"

"네, 조금전에 알바생이랑 자리 교체하는 거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요. 암만봐도 수상해서 따지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요?"

이런 일에는 아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산하는, 얼굴에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사내에게 단호히 말했다.

"손님, 알바대행 하시면 다음부터 입장 금지 합니다. 우리 공식 블로그에 공지 올릴테니까 주의해 주세요."

"아니, 나는...."

머리를 긁적이던 기름기 사내가 눈을 번뜩이더니, 조용하게 말한다.

"그렇지! 사장님. 내가 된장찌개 한 그릇 먹을때마다 백만원 드릴게요. 아니다. 회원권 그런 것 좀 파세요. 다이렉트로 바로 먹을 수 있게 해주시면 큰 거 한 장 낼게요. 오케이?"

세상에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던 산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건 안 됩니다."

조금은 차갑게 말하고 돌아서는 산하에게, 주변에 서 있던 손님이 손뼉을 쳤다.

"멋있다."

"알바대행 물러가라!"

"사장님 최고야."

"큰 거 한장 좋아하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사내는 구시렁거리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

이 세상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류와, 그런 사람을 이용해 돈을 버는 부류가 있다.

동만호는 후자였다.

그는 보통 인기좋은 공연 티켓을 매크로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싹쓸이해서 비싼값에 팔기도 하고, 돈을 받고 온라인 맛집 예약을 대행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각 플랫폼에서 팔을 걷어붙였고, 동만호는 수입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보고만 있어야했다.

그러던 도중 떠오른 생각.

길이 막히면 뚫으면 되지.

그 생각으로 인터넷 예약제를 시행하지 않는 맛집에 여러명의 사람을 동원해서 불만을 표현하게 만들었다.

한 두 사람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온라인까지 이용해 연일 불만을 토해내자 그 식당 주인은 예약제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 되자마자 예약을 상당수 쓸어가서 비싼값에 팔아먹은 동만호.

그 후 동만호는 이 방식을 여러 유명한 식당에 접목했고, 나쁜생각은 일부 성과를 거뒀다.

수입이 늘어난것에 기뻐하던 그는 새로이 개척할 맛집 후보를 수소문 중이었다.

그러다 돈 좀 있어보이는 몇 명에게 의뢰를 받게 되었다. 산하네 요리 전문점에서 편히 식사할 수 있게 해달라던가.

그들이 말하기로는.

보통은 사람을 고용해서 대신 줄을 서게 하고 요리를 편하게 먹었는데, 어느 날 다른 손님의 항의가 들어가는 바람에, 식당 종업원과 주인에게 딱 걸려버렸다고 했다.

그 후 줄서기 대행알바 금지를 선포한 산하네 요리 전문점. 한번만 더 걸리면 영구 입장 금지라고 했다던가.

"그냥 돈 받고 팔면되지. 까다롭기는."

그 덕분에 내가 돈을 벌긴 하는거지만 이라고 생각하던 동만호는,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예약제로 바꾸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라고 해봐야 다른 식당에 적용했던 그대로였다.

알바를 고용하고, 그곳에 줄을 서게하고, 계속 불만을 토로하고, 그것을 온라인에도 써대며 여론몰이까지.

성공률은 반반이었다.

주인의 의지가 강한곳은 실패하기 십상이었고, 그 외에는 성공했다.

동만호는 계획 시행전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방문했고, 어마어마한 줄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여기는 꽤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대로 한번 해봐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케이.'

그는 두 마리의 사자가 줄을 서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좋게 웃었다.

- 7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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