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최우신의 붓글씨(2)
[22년 전, 최우신은 정순명과 함께 붓글씨를 썼다.]
[과거와의 연결고리에 닿았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22년 전으로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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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신은 붓글씨를 함께 논할 정도로 실력높은 자가 찾아오자 친구로 삼을 결심을 굳혔다. 그 후 그의 바람대로 정순명과 최우신은 친구가 되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며, 어느 날은 한 자리에서 붓글씨를 쓰기도 했다.
정순명은 힘차게, 최우신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자네 붓글씨는 역시 힘이 넘쳐, 늘 부럽다니까."
"부럽기는 개뿔. 매일 날 이기려고 들면서."
"그냥 말만 그런거야. 자네 붓글씨야말로 대단하지."
"마음에도 없는 금칠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하세."
"잠깐!"
"왜 그러나?"
"합동 전시회 하려고 이렇게 한 자리에서 쓴 것도 처음인데, 기념으로 붓이나 나눠가지세."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짓을...."
"이 사람아 쓸데없다니. 이것도 다 추억이 되는게야."
그 후 두 사람은 실제로 붓을 나눠 가졌고 교류는 계속되었다.
인생을 바친 분야에 있어, 같은 수준의 이야기를 나누고 경쟁할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최우신은 뛸듯이 기뻐했다.
하나, 세간의 평가에 조금씩 휘둘리던 친구는 어느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고, 최우신은 그의 행방을 계속해서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이 친구야, 대체 땅으로 꺼졌어, 아니면 하늘로 솟은게야."
경쟁자임과 동시에 친구였던 정순명이 사라지자, 그는 무언가가 텅 빈 느낌을 받았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아있던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보름달이 환히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마당 평상에 화선지를 놓고 앉아있던 그는, 손에 든 붓을 바라보았다. 친구와 첫 합동 전시회를 준비할 당시 붓글씨를 한자리에서 쓰고 난 후 교환했던 붓이었다.
그는 그 붓으로 천천히 일기인지 시인지 모를 것을 써 나갔다.
글을 논하던 벗 오간데 없고.
두둥실 떠오른 달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이는구나.
뒤늦게 만난 나의 벗이여,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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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신의 아름다운 붓글씨 솜씨 관찰에 성공했습니다.]
[솜씨 일부를 가져옵니다.]
[과거의 교차점과 조우했습니다.]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보상이 주어집니다.]
[자신의 의지로 물품을 찾았기에 보상이 상향됩니다.]
[미션 수행시 정순명의 붓글씨 솜씨를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션 - 계절마다 한 번씩, 한 달 동안 붓글씨 전시회를 열어라.]
[조건 - 계절마다 새로운 작품이어야 한다.]
[제한시간 - 1년]
"손님?"
퍼뜩 정신을 차린 산하가 최우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네?"
"너무 오래 보고 계셔서...."
"아, 죄송합니다. 여기..."
"괜찮습니다."
사람좋게 웃던 최우신의 아들은 그 붓을 도로 유리진열장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사이 산하는 새롭게 떠 오른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대나무 붓 - 과거와의 작은 연결고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네 개의 작은 연결고리 완성으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1회에 한해, 허공을 격하고 물품의 과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제한거리 - 1m 이내]
그 후 전시회를 더 둘러본 산하는, 드디어 유리벽 너머에 있는 물품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1회용이기에,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보고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
능력을 얻은 후 처음 세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던 작고 허름한 상가를 둘러보던 산하는, 그리 오랜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건만 감회가 새로움을 느꼈다.
이곳에서 새봄이라는 알바생을 처음 만났던 순간도 기억났다. 그때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었는데.
"아이구, 이게 누구야."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산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할머니.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응 딸 집에 잠시, 손에 그건 뭐야?"
"이거 된장찌개요. 할머니 드리려고 포장해왔어요."
"뭘 이런걸 가져와. 다음부턴 빈손으로 와. 그나저나, 자네 장사 잘 되는 거 봤어. 내가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에이, 오셨으면 한번 들어오시지. 그냥 가셨어요? 한번도 안 오시고."
"손님이 바글바글한데, 괜히 민폐지. 뭐하러 들어가.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할머니도 뵐겸, 겸사겸사왔죠."
"뭔가 용건이 있는 건 아니고?"
겸연쩍어하던 산하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역시 할머니 눈치가 백단 이십니다. 저기 혹시 상가건물 아직도 내놓으셨나 해서 여쭤보러 왔어요."
"지금 장사하는 상가? 구입하게?"
"네, 그러고 싶습니다."
주름진 얼굴에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양옥희가 산하의 남은 손을 잡고 손등을 톡톡 두들긴다.
"미안해서 어쩌누."
"네?"
"매일 팔자고만 하던 우리 아들, 딸이 그 건물에 욕심을 내지 뭐야. 자네 장사 잘 되는 거 보고, 저 자리가 알고보니 끝내주는 자리라나 뭐라나. 절대 팔지 말라네. 참 바보 같지?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나도 이길수가 없네."
마음은 아쉬웠지만, 늘 잘해주던 옥희 할머니에게 티를 안내는 산하.
"아...그럼 어쩔 수 없네요. 괜찮습니다."
"미안해. 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자식한테 안 물려줄테니까. 편하게 장사해. 내가 오래오래 살거야."
"네, 할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온김에 뭐라도 하나 먹고 가. 아 그렇지 저기 저 따끈하게 데워진 꿀물이 참 맛있어. 추운데 얼른 들어가자고."
양옥희는 손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더니 잠겨있던 슈퍼문을 열었다.
"잠깐만 여기 앉아 기다려."
"네."
산하가 슈퍼 내부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녀는 슈퍼 안쪽의 작은 골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불을 켜고 손가방을 내려놓은 후, 외투만 벗어놓고 곧바로 가게로 나왔다.
문이 잠깐 열리고 닫히는 사이, 무심코 시선을 돌리던 산하는 뭔가 반짝이는 걸 본 것 같았다.
바깥에서 뻗어온 햇살에 반사된 걸 착각한건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양옥희가 온열냉장고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음료를 하나 꺼내서 산하에게 내밀었다.
"아, 얼른 받아. 늙은이 팔 떨어져. 돈일랑 줄 생각말고."
"네, 할머니. 잘 마시겠습니다. 아참! 저 그럼 상가 2층 세는 얻을 수 있을까요?"
"2층? 다음 사람 들어올때까지 그냥 쓰라고 했잖아."
"에이, 그래도 그럴수야 있나요. 그리고 1년 정도는 쓸 것 같아요. 도중에 누가 들어오면 어떡해요."
"그건 그러네, 알았어. 그거야 어려울 거 없지."
"감사합니다. 계약은 할머니 시간좋으실때 해요."
"그려."
왠지 친할머니처럼 느껴지는 양옥희를 잠시 바라보던 산하는 그녀가 정으로 내민 음료를 홀짝이며 슈퍼 내부를 둘러보았다.
"많이 낡았지?"
"아니요. 정감있어서 좋은데요?"
"그래? 그런것도 같고, 참 오래도 되었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키워내며 살아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어린 자식들과 혼자 살다보니 우습게 보는 사람도 많았기에,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강해져야만 했던 세월이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상가건물을 살 정도로 행운이 찾아온적도 있었고,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났었다.
언제 이토록 많은 시간이 흘러갔을까 생각하던 옥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산하에게 말했다.
"아무튼, 건물 못팔아서 미안해."
"에이, 할머니 뭐가요. 제가 괜히 마음만 불편하게 해드렸네요."
"아니야. 자네 열심히 사는 모습 참 보기가 좋아서 나도 주고 싶은데..."
그 후로 두 사람은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었다.
자식들은 자신이 쌓아놓은 재산만 믿고 빈둥대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산하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양옥희.
"아이구, 이 늙은이가 또 젊은사람 오래 붙들고 있었네. 얼른 가봐."
"할머니 또 쫓아내시네. 알았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건강하시고요."
"그려, 조심히 가."
옥희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트럭 운전석에 올라탄 산하는 구입할만한 상가건물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느 카페로 향했다.
오늘 너른 문화사의 대표 이민재와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카페내부로 들어선 산하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산하 씨, 여기요."
그곳을 돌아본 산하는 잡지사 기자 안도경과 이민재가 자리해 있는것을 발견했다. 곧장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산하는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왜 이렇게 일찍들 오셨어요?"
"오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앉으시죠."
"산하 씨, 앉으세요."
산하는 이민재와는 서먹한 사이지만, 안도경과는 꽤 친해진 편이었다.
그녀가 잠도 안 자가며 식당에 찾아와 줄을 서고, 바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도경 씨, 얼굴 좋아보이시네요? 잠도 안자는 강철체력!"
"그래요? 아마 어느 누구 덕분에 그럴걸요?"
"누구 덕분요?"
"에이, 다 아시면서. 들으셨겠지만, 오늘 두 분만 보시면 어색할 것 같다고 대표님이 저도 데려 오셨어요."
"그러고보니 토요일인데요?"
"특별수당 주시기로 하셨어요. 산하 씨 덕분에 이래저래 주머니가 두둑하답니다."
턱을 쓰다듬던 산하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요? 제 계좌번호는요...."
그의 장난을 적극적으로 받는 안도경.
"잠깐! 벼룩의 간을 빼 드시려 하다니. 아참, 그 식당사건 어떻게 잘 해결 되셨나요? 뉴스 봐서는 잘 해결된 것 같긴 한데. 나쁜놈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딱히 드러난 정보는 없는데."
"제가 취재한 맛집이잖아요. 더듬이를 그쪽에 딱 맞추고 있었죠."
"염탐인가요?"
재빨리 손을 내저은 안도경.
"아니요. 그런건 아니... 아차차, 대표님 죄송해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산하와 도경을 바라보던 이민재가 입을 열었다.
"아, 괜찮습니다. 제가 이 분위기 만들려고 일부러 도경 씨 데려왔거든요. 그런데 두 분 언제 이렇게 많이 친해지셨어요?"
어깨를 으쓱한 산하가 대답한다.
"친하다기보단 영업용 대화일겁니다. 그렇죠 도경 씨?"
".....아닌데요. 아니다. 맞나?"
세 사람이 조금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음료가 나왔다. 이 집의 바리스타가 오늘의 추천메뉴로 가게 앞 입간판에 적어놓은 핸드드립 커피였다.
그 향긋한 커피를 한모금 마시던 산하가 운을 뗐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아, 그렇죠. 갑작스럽게 들리실지도 모르겠는데, 산하 씨, 혹시 괜찮으시면 표지모델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네? 표지모델요?"
"네, 우리는 음악잡지도 하고, 요리잡지도 펴냅니다만, 산하 씨는 여기 두 곳 모두 해당되시는데, 둘 중에 마음대로 고르셔도 됩니다."
"글쎄요. 그런건 해본적이 없어서."
"시간만 조금 내주시면 됩니다. 일정도 맞춰드릴 거고요."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럼요."
"그럼 생각 좀 해볼게요."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 부탁드립니다."
이후 산하네 요리전문점 맛집코너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음악 잡지 쪽에 관한 이야기도 하던 세 사람은 한참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해질 무렵, 단독 본가로 돌아온 산하.
요즘들어 우는 게 줄어들긴 했지만, 유진은 정말 울보였다. 그의 동생 윤정이 말로는 삼촌껌딱지울보라고 하던가.
귀여운 유진이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산하가 거실로 들어서자, 아기를 안고 있던 산하의 형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유진아, 스톱! 울지마. 삼촌왔어. 삼촌. 삼촌."
어딘가 짜증이 났는지 울 태세를 보이던 유진이 산하와 시선을 맞췄다. 금세 방긋 웃는 자신의 딸을 바라보던 산하의 형수가 애원하듯 말했다.
"유진아, 내가 엄마야."
***
정순명의 붓글씨 솜씨를 백 퍼센트 가져올 기회를 얻은 산하는 미션 내용을 떠올렸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계절마다 한번씩만 전시회를 열면 미션완료였다.
미션에서 전시회를 하라고 했지, 어디 뭐 유명한곳에서 정식으로 하라는 소리는 안 했다고 생각하던 산하는 상가 2층에서 전시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옥희 할머니와 1년간 빌리기로 계약까지 해 둔 상태였다.
이런 이유로 산하는 영업을 끝내자마자 상가 2층에 올라와 테이블 위에 벼루를 올려놓고 먹을 가는 중이었다.
벌써 퇴근시간도 지났건만, 봉만두와 새봄은 눈을 반짝이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새봄은 기대감이 컸다. 그렇게 한번만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주더니, 오늘 붓글씨 써야하니 먼저 퇴근들 하라고 해서 기다리는 참이었다.
정말 메뉴판을 사장님이 쓰신걸까.
그런데 무슨 먹을 과장보태서 종일 갈고 있었다. 하지만 새봄은 서예를 조금 해본 입장에서 이해했다.
일종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런것으로 보인달까.
하지만 봉만두는 이해하지 못했다.
"형님, 이거 언제 끝나요? 설마 먹만 갈다가 집에 가시는 건 아니죠? 아니면 솜씨 탄로날까봐 뜸 들이시는 거?"
눈을 감고 먹을 갈던 산하가 잠시 손을 멈추더니 만두를 타박했다.
"어허, 이런 무식한 만두를 보았나. 만두 만두 봉만두. 자고로 붓글씨라 함은 마음 수양이니, 먹을 천천히 갈면서...."
산하의 짧은 설명을 듣고 난 봉만두가 고개를 끄덕이다말고 의문을 표한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형님 말투가 왜 그러세요?"
"내 맘이다. 봉만두."
"...."
그 후로도 산하는 한참이나 먹을 간 연후에 붓을 들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졸려 하던 봉만두가 그 행동 변화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새봄과 만두의 시선이 화선지에 집중 된 가운데, 먹을 찍은 산하는 붓을 서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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