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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79화 (79/445)

79화 러브레터(4)

그것은 바로 액자의 한쪽면이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산하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끔뻑이던 그의 눈동자에 혼란이 찾아왔다.

당연히 그분들의 호가 쓰여있어야 마땅한데.

두 명인의 합작품이 아니라고?

그는 이미 산하네 요리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머릿속에 떠올랐음에도 애써 부정하고 싶어졌다.

오랜세월 붓글씨를 사랑하고 써 왔음에도 눈앞의 작품에 댄다면 중간 실력에도 미치지 못해서였다.

거기에 더 중요한 건 붓글씨 솜씨가 너무 똑같았다.

이 대단한 붓글씨를 한 사람이 다 썼다니.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말해보게. 이게 진정 사실인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자세한 설명없이 데려왔던 정 부장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두 번째 카드를 꺼낼때라고 생각하던 정 부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에게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1층 식당내부에 걸려있는 메뉴판 액자가 찍혀있었다.

"이사님, 이걸 보시면 제법 믿음이 가실겁니다."

"이건 또 뭔가? 이건 정순명 명인의...."

정 부장은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하듯 말했다.

"이것도 식당 사장님이 직접 쓰시고 벽에 걸어놓으신 겁니다."

부하직원이 내민 스마트폰을 받아든 그는 무심코 글자를 읽어나갔다.

"된장찌개 오천원....전 메뉴 포장 가능?"

읽어내려가던 그의 표정이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고개를 들었다.

"이게 여기 식당에 걸려있다고 했나?"

"네, 사장님이 기존 메뉴판 너무 없어보인다고, 붓글씨로 쓰셨답니다. 저도 최근에야 봤는데, 신기했습니다."

무언가 잠시 생각하던 그가 다시 묻는다.

"이분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겠지?"

"제가 알기로는 이제 막 서른이신걸로."

생각이 모두 빗나가자 정 부장의 직장상사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그 나이에 이런 붓글씨를? 그것도 두 가지 전부? 명장들의 붓글씨를 오랜기간 계속해서 보고 따라 그렸다고 해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리도 똑 같이? 자네 말 좀 해보게. 배워보니 그렇게 되던가?"

"그게 이사님, 저는 천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정 부장이 내뱉은 천재라는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재?"

"네, 여기 사장님이 천재십니다. 요리, 노래 두 가지만 해도 어디 방송에 나오는 셰프나 가수 뺨 치는 수준이거든요. 이제 더 추가된 것 같습니다만."

"자네 뭐라고 했나?"

"여기 식당주인이 요리, 노래도 전문가 이상으로 잘 하신다고 했습니다. 특히 여기 된장찌개는 한번 드셔보시면 못 벗어나실 겁니다. 그 정도로 훌륭하고 맛있습니다."

아직도 혼란함이 가시지 않은 눈빛이던 그가 한가지 의문을 드러냈다.

"고작 된장찌개같은 음식이 말인가? 줄 서 있는 걸 보아하니 맛있긴 하겠지만, 그건 너무 과한게 아닌가?"

"고작 된장찌개라기엔, 이사님이 즐겨 찾으시는 한식 전문점은 평범하다고 할 정돕니다."

정 부장은 또 한 사람에게 된장찌개의 위엄을 전달했다고 생각하자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이 말을 듣게 된 그의 직장상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했나? 평범? 그 집이 얼마짜린 줄 몰라서 하는 얘긴가?"

"물론 압니다. 맛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곳의 요리에 비하면 평범함이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집 요리가격이 이곳 된장찌개에 붙여야 할 가격같네요."

"허....."

오늘 아끼던 부하직원 때문에 두 차례나 놀라버린 그는 열등감을 가라앉히며 생각을 정리했다.

정 부장이 들통날 거짓말을 계속 늘어놓을 사람은 아니니, 이 작품을 정말 젊은 천재가 썼다면 발전가능성은 한참이나 남았고, 거기에 다른분야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하니.

그 말인 즉슨, 크게 알려지지 않은 지금이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로구나.

만약 정 부장의 말에 거짓이 섞여있다고 해도 작품의 가치가 뛰어남은 틀림없으니, 손해는 없을테고.

액자속에 담긴 작품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생각하던 그가 조용히 말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작품은 반드시 구입해놔야겠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정 부장은 그와 함께 전시회장에 걸린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감상했다.

삼십번째 작품을 눈여겨보던 정 부장의 직장상사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주 좋군. 이거 욕심이 더 생기는데. 이 작품 주인에게 당장 구매의사를 타진해보게."

"이미 말씀은 드려놨습니다. 전시회 끝나면 연락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정 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정 부장, 이러니 내가 자네를 아끼는게야."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위로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줄서기와 아부.

같은 능력일지라도 살갑게 다가오는 부하직원을 먼저 당겨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신물이 났던 정 부장은 이젠 익숙해진 태도로 그에게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칭찬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화답하던 정 부장의 직장상사가 입을 열었다.

"온 김에 그 대단하다는 된장찌개 한번 먹고가세. 이 작품 주인도 만나볼겸."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던 정 부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게 이사님."

"왜 그러나? 기다리는 것 때문에 그러나? 나도 맛집 기다려야 하는 건 나름 잘 알고있네. 자네가 극찬하는 그 정도 맛이라면 몇 시간이고 기다릴 용의가 있어."

"그래도 아마 못 드실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여기 영업시간도 짧고, 재료 떨어지면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새벽부터 줄 서는 곳이거든요. 게다가 주인분이 바쁘셔서, 바 테이블에서 요리 먹을때 말 붙이는 것 말고는 따로 대화하기도 힘듭니다."

안 된다는 말에 별 다른 짜증은 내지않고 생각이 많은 눈동자로 잠시 서 있던 그가 정 부장에게 말했다.

".....거 까다롭군. 사실이라면 까다로울 만도 하고. 알겠네. 자네가 그리도 칭찬했으니, 언제건 반드시 먹어봐야겠어."

"아니면 이사님, 제가 줄 서서 포장해오고 같이 드시는 건 어떠십니까? 홀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퀄리티를 보장합니다."

"포장? 그것도 괜찮지. 하지만 난 이곳 사장을 한번 만나봐야겠네. 자네가 말한 요리도 같이 먹고 말이지. 편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인생이란게 정공법이 잘 먹히는 때가 있는 법이야. 이곳 주인이 식당 운영 하는 법을 보아하니, 정공법이 먹힐 스타일이란 말이

지."

감탄한 척 하던 정 부장이 진중한 표정으로 아부를 떤다.

"역시 이사님, 걸음마다 깊은 뜻이 있으시군요."

하하 웃던 그는 정 부장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렸다.

"이 친구 별 말을 다 하는군."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를 힐끔 바라보던 정 부장은 된장찌개로 점수 좀 따겠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때, 근처에서 관람하던 다른 관람객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재수없다는 눈빛으로 수군거렸다.

***

울보 유진이 때문에 매번 단독 본가로 출퇴근을 반복하던 산하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전시회가 끝나면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그냥 소장할까, 아니면 경매에 부쳐서 팔아버릴까. 아니면 정열이 아저씨한테 팔까.

그 와중에 마당에서 나 좀 봐달라며 꼬리를 팔랑개비처럼 흔드는 따릉이를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데려올때만 해도 손바닥만하던 녀석이 저렇게 컸네.

'언제 였더라...'

산하는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

.

.

날이 갈수록 짠돌이로 변해가던 박상태는 윤정이가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말에 질색했다.

싸고 먹고 시끄럽게 짖어대기만 하는 놈을 어디다 쓰냐고 하며.

그 돈 있으면 날 달라고 했다.

하지만 생활에도 여유가 조금 생긴 어느 날.

박상태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반복했는데, 부슬비가 내리던 오후 폐가에서 강아지새끼 울음소리를 들었다.

뭔가 싶어 그곳으로 다가간 박상태.

그 근처에 있던 형제 강아지들은 다 저세상으로 가 버렸는지 움직임이 없었고, 딱 한놈이 살아남아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낑낑거렸다.

"이 불쌍한 놈. 에라 모르겠다. 너도 먹고 살려고 태어났는데."

쪼그려 앉아 고민하던 그는 달달 떨고있는 그 새끼 강아지를 더럽다 여기지 않고 품속에 안았다.

마침 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산하는, 막 퇴근한 아버지의 품속에서 고개를 슬그머니 내민 작은 강아지를 보게 되었다.

"아버지 그거 뭐예요?"

"보면 모르냐? 강아지 새끼 아니냐."

"어디서 사오셨어요? 아버지 애완동물 싫어하시잖아요."

"오다가 주웠다."

"네?"

그때, 욕실에서 씻고 나오던 윤정이 그 강아지를 보고 외쳤다.

"와, 강아지다! 아빠 어디서 났어? 내 소원 들어준거야?"

방방뛰며 좋아하던 윤정이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언니가 네 이름 지어줄게."

그러자 박상태가 강아지를 자기 앞으로 데려오며 말했다.

"어림없다. 얘는 오늘부터 따릉이다."

"그게 뭐야 아빠. 촌스러워."

"시끄러."

평소 애완동물이라는 것에 기겁하던 박상태는 그렇게 강아지를 기르게 되었다.

.

.

.

옛 생각에서 현실로 돌아온 산하는 따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릉아, 밥 먹었어?"

"멍!"

"짜식. 우리 아버지 안에 계시냐?"

한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대문안으로 들어서던 박상태가 그를 보고 한소리한다.

"너 인마, 왜 따릉이 괴롭혀?"

"괴롭히기는요. 쓰다듬어 준거죠."

그때 산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잠시만요. 네, 도경 씨."

"통화 잠시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우리 잡지사에서 산하 씨에게 제안드릴게 있는데요."

"제안이요?"

"네, 그 붓글씨 때문에요. 패션이랑 접목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패션이요?"

"네, 원하시면 패션 전문가도 연결해드리고, 여러모로 도와드릴게요. 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요."

이 붓글씨 솜씨면 여러곳에 쓰이겠다고 생각해오던 산하였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음, 생각해볼게요."

"네, 천천히 생각해보시고 좋은 답 주세요. 아참 이번에 취재한 스파게티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요? 그거 올해 안에 더 맛있어 질 텐데."

"네? 진짜요?"

"아마도요?"

산하의 스마트폰에서 여자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려오자, 박상태는 아들이 전화통화를 종료할때까지 기다려 묻는다.

"도경이라... 내 며느릿감이냐?"

"네!?"

"왜 그리 놀라? 어디 한번 집으로 데려와 봐."

"에이 아버지 여자친구도 아니고 며느릿감도 아닙니다."

"아니기는, 이 자식은 이상한거는 철판을 깔고, 이런건 부끄러워해요. 잔말말고 데려와."

"진짜 아니라니까요. 그냥 업무상 통화입니다."

아들의 말을 변명으로 듣던 박상태가 피식 웃고는 현관으로 가버렸다.

"아버지, 진짜 아닌....데."

말을 흐리던 산하는 눈을 몇번 끔뻑이다가 무심코 새봄을 떠올렸다.

'집에 잘 갔나?'

[새봄아, 집이야?]

[네, 사장님은요?]

[나는 조카보러 본가에, 잘 들어갔나 해서, 내일 보자.]

갑자기 날아온 톡에 기분 좋아하며 답장 하던 새봄이 내일 보자는 말에 볼을 부풀렸다. 단 세 줄만에 대화를 끝내다니.

"이 사장님이 정말..."

그러면서도 그녀는 답장을 잊지 않았다.

[네, 사장님 내일봐요.]

***

산하의 붓글씨 전시회가 인기리에 개최되던 어느 날, 한정규 피디는 산하에게 제안을 받았다.

민채은과 봄날 게릴라 콘서트를 계획중인데, 재미삼아 함께하실 생각 없느냐고.

이런 제안도 첫 인연을 맺은 의리가 있어서 제안하는 거라나 뭐라나, 당연히 한 피디는 그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심지어 장난기마저 발동한 그는 디제이 조칠용과 고정게스트인 이창난까지 속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꽃샘추위가 막 지나가고, 남도에는 따스한 훈풍이 불어오는 봄날이었다.

원래는 타 프로그램 재송출 시간이지만, 상부에 허락을 받고 낮 시간대 방송을 계획한 한정규는 음흉하게 웃었다.

심지어 보이는 라디오였다.

'깜짝 놀라보시죠.'

조칠용이 방송을 하다 말고 화들짝 놀랄 것을 기대하던 한 피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관광객이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꽃을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조칠용과 이창난이 자신들의 매니저가 몰고 온 차량에서 내리더니 기지개를 켰다.

"와, 한 피디님 시간대 어떻게 조정하신겁니까?"

목을 주무르며 질문하는 조칠용에게 씨익 웃으며 대답해주는 한정규 피디.

"그게 다 능력이라는 거 아닙니까?"

조칠용이 곧바로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 인사한다.

"아, 예.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그거 지금 비꼬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한! 정규 피디님!"

평소 두 사람은 친하다보니 장난을 치곤 했는데, 한정규 피디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장난을 맞받아쳤다.

"비꼬는 거 맞네. 조칠용 디제이님 이런식이면 저 피디 못합니다."

"저도 디제이 못합니다. 때려치우고 술이나 한잔하시죠?"

"그럴까요?"

그때 이창난이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며 혀를 찬다.

"두 분 너무 썰렁하고 유치하네요. 개그맨 시험 보시면 바로 탈락입니다. 그나저나 와 공기 좋고. 꽃도 이쁘고."

조칠용과 한정규 피디가 공기를 훅 들이켜는 그의 양 옆구리를 함께 찔렀다.

"아우! 나 죽네."

"이창난 씨 피디 손맛이 어떻습니까?"

"디제이 손맛은 어때요?"

세 남자의 재미없고 유치한 장난을 바라보던 작가 송나희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참 후.

봄꽃이 가득한 야외에서 조칠용과 이창난이 멘트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소환하라, 추억의 가수. 디제이 조칠용입니다. 옆 자리에는 늘 함께하시는 이창난 씨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따뜻한 봄이 찾아왔는데요. 여기 보이십니까? 산수유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현재 봄 특집으로 야외에서, 그것도 낮 시간에 방송을 하게 돼서 감회가 새로운데요...."

조칠용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거 제가 할 멘트였는데, 이러실 수 있습니까?"

"먼저 하는 놈이 임자라고 하셔서, 제가 해봤습니다."

"네, 이창난 씨 오늘도 뻔뻔한 모습 보여주고 계십니다. 자 오늘 소환할 추억의 가수는 누구죠?"

"네, 오늘 소환할 가수는...."

한참이나 추억의 가수 노래를 듣고 광고도 나가고 멘트를 이어가던 그들은 방송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확인했다.

추억의 가수가 대표적인 코너일 뿐이고, 이 프로그램 안에도 요일별로 여러 코너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은 신청곡을 받는 시간이었다.

그냥 라디오인데다 인기 연예인까지는 아니라서 엄청난 주목은 못 받았지만, 이런 모습을 구경할 기회가 잘 없는 관광객들 일부가 멀찍이서 빙 둘러싸고 신기해하며 구경중이었다.

그리고 일부는 무관심하게 꽃 구경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떤 이는 유모차를 밀고, 커플은 손을 잡고, 부부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진 찍느라 정신 없던 그때.

조칠용이 멘트를 이어간다.

"자, 신청곡 들어와있죠?"

"네, 봄에 헤어진 그 사람이 생각난다고, 마포구에 사는 이지영 씨가 신청해 주셨습니다. 민채은과 하산해가 불렀죠? 파스타 사랑."

"저도 참 좋아하는 노래네요. 함께 들어보시죠."

그런데 나와야 할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살짝 당황한 조칠용이 눈짓으로 한 피디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한정규 피디와 송 작가가 시치미를 딱 떼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송 사고구나 싶었던 조칠용과 이창난이 재빨리 애드립으로 무마하려던 그때.

라디오 방송중인 테이블과 가까운, 그러니까 군청에서 관광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지어놓은 초가집 문이 삐걱소리를 내며 열렸다.

- 8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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