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배짱이 두둑해(2)
붓글씨 전시회장이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린 그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차 열쇠를 챙겨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육상호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자니, 이 주류 회사의 대표 육대만이 코너를 돌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라고 부를뻔했던 그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아, 육 팀장. 어딜 그리 급히 가나?"
"이번에 신제품 홍보 때문에 한번 만나 볼 사람이 있어서 가는 길입니다."
"만나볼 사람이라. 뭐 그리 급한건 아니지?"
"네, 대표님."
"그럼 나랑 차나 한잔하지. 대표실로 오게."
".....네, 대표님."
오늘은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저러시나 싶었던 육상호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아버지이자 이 회사의 대표인 육대만의 뒤를 따라갔다.
이내 대표실로 들어선 두 사람 중에서도 육대만이, 비서가 방금 내온 차를 한모금 홀짝이더니 말한다.
"요즘 일은 할만해?"
"네, 대표님."
"아, 여기는 둘 뿐이니까. 편하게 해."
"예, 아버지."
"거참, 편하게 하라니까."
"아버지 왜 또 부르셨어요?"
"어허, 이놈의 자식이 편하게 하라니까, 제 아버지를 협박하네."
"제가 언제요?"
"롸잇 나우!"
"아우 아버지 발음 구려."
"이놈이 이거 유학까지 보내줬더니, 아들 자꾸 그러면 국물도 없어."
"아이구 죄송합니다. 대표님."
"어쭈? 이제 비아냥까지?"
"아버지 저 나름 바빠요. 무슨 일이신데요?"
"무슨일은 인마, 일 중독자 아들 숨 좀 쉬라고 불렀지."
허탈한 표정이던 육상호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진짜 이러실거예요?"
"그래 이놈아 이럴거다. 그래서 정확히 어디 가던길이야?"
"어, 그건 비밀인데요."
"비밀 같은 소리 하네. 너 인마 알아보면 다 나와."
"제 뒤에 사람 붙이셨어요?"
"글쎄올시다. 육상호 씨."
"아버지!"
"에라 이놈아 내가 그리 할짓 없어 보이냐? 그래서 어디 가던 길인데?"
"신제품 CF 때문에요. 붓글씨 장인중에 괜찮은 사람 발견했거든요. 찾아가 볼 예정입니다."
"이번 건은 그냥 광고기획사에 맡기라니까, 말을 안 들어요. 넌 인마 이제 이 자리에 앉아서 회사를 진두지휘 해야 할 몸이야. 그 홍보 하나에만 매달리면 경영은 누가해?"
"아버지, 그건 그때 가서 잘 할게요. 저도 제 일에 자부심이란 게 있습니다."
"알지 알아. 나 몰래 사원으로 입사해서 그 자리 올라온 거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모른척도 해줬잖아. 지금은 다른 사원한테 들켰지?"
"어째 놀리시는 거 같은데요?"
"아냐. 아냐. 다른집 자식들은 무슨 전무이사니 본부장이니부터 시작하는데, 너는 싹수가 된 놈이지. 안 그러냐?"
"아버지. 저 가봐야합니다. 집에서 뵐게요."
벌떡 일어서는 아들을 나무라는 육대만.
"어허, 이놈이. 애비가 말을 하는데."
"본론을 말씀 안 하시고, 빙빙 돌리기만 하시니까 그러죠."
"알았다. 앉아 봐."
"예."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야? 이제 경영수업 제대로 받아야지. 사원부터 시작했으니 회사 굴러가는 전반적인 흐름은 대충 캐치했을테고."
"때 되면 할게요."
"때가 되면이라. 나 늙어죽으면? 네 증조할아버지가 참 좋아하시겠다."
아버지의 시선이 가리키는 진열장의 도자기를 슬쩍 바라보던 육상호가 씩 웃는다.
"에이 아버지 아직 짱짱하신데."
"짱짱하기는,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일 얘기나 하자. 그래서 붓글씨 누구?"
"아, 맞다. 아버지 원래는 웅찬성 명인이랑 하려고 했었거든요."
"웅찬성? 그래서?"
"그 분 말고 더 괜찮은 분을 찾았는데, 돈 좀 써야 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세우신 주류회사를 물려받아 삼대 째 운영중인 육대만은 아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돈?"
"네, 돈이요. 이번에 CF 제대로 찍어보려고요."
"이놈아 CF효과가 재수 좋아서 팡 터지지 않는 한 거기서 거기지. 어떻게 찍으려고?"
신나서 입을 여는 육상호.
"그러니까요. 한 붓글씨 장인이 붓을 들어 먹을 찍더니, 우리 전통주 이름을 여백에 멋지게 써내려 가는 겁니다. 거기에 노배우가 고개를 들더니, 세상의 흐름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 갑니다. 주성양조 전통주 민들레주. 뭐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정도?"
"아우 구려...."
"아버지!"
"이놈이 이게 누굴 닮아서 목청이 이렇게 커. 그래서 그 붓글씨 장인 얼마나 주려고?"
"아직 결정된건 없지만, 일단 오천이요?"
"오천? 제대로 보고해 봐."
"네, 그러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은 직접 챙겨야 성미가 풀리는 그는, 홍보팀장의 보고를 받고 뉴스기사를 살폈다.
"3억이라... 이 사람 붓글씨가 적절한 것 같다고?"
"네, 아버지. 제가보기에 이 사람 붓글씨가 우리 전통주 글씨로 제격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무명인데 왜 이리 비싸?"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작품만 놓고 봐서는 아주 훌륭합니다. 제가 붓글씨 명인 많이 찾아봤는데, 이 만한 명필은 없었기도 하고요."
"그래? 그래도 광고비는 과도하게 비싼 거 아냐? 고작 글자 몇자에 오천이나 주자고?"
"아버지, 이 뉴스에 난 작품을 얻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가 3억이라는 금액에도 판매를 거부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 금액은 제시해야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상업적인 용도라서 받아들이지 않을수도 있고요. 일단은 한번 만나서 얘기는 나눠 보려고요."
겉으로는 타박해도, 평소 신뢰하는 아들을 잠시 바라보던 육대만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의자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고, 육상호는 다시금 설득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아버지, 어쩌면 그 정도 값어치를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광고효과를 낳을지도 모릅니다. 화제성이 좋아보였거든요. 그리고 이 작품 좀 보세요. 이게 그분이 쓰신 작품입니다."
화제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턱을 괴고 고민하던 육대만은, 아들이 내민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산하의 작품 사진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 참, 생각보다 멋지구나. "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다음 생각을 꺼냈다.
"글자 몇 개 쓰고 억단위로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 흥행에도 좋을 것 같고..."
"네? 억단위요? 아까랑 말씀이 다르신데..."
"이놈아. 줄 거면 1억 이상은 줘야 소문이 나지, 오천이 뭐야. 오천이. 쪼잔한 놈. 우리 회사 이미지가 있지."
"......."
"그리고 네놈이 그리 말할 정도면, 1억 이상 집행할 값어치도 있겠어."
"그러시면...?"
"좋아. 알아서 진행해 봐. 1억으로 안 되면 2억까지는 허용한다."
"2억 이나요?"
"작품에 그만한 값어치가 있으니 다들 돈을 주려고 했겠지. 그리고 사람이 돈을 써야 할때는 팍팍 써야하는 법이다. 나머지는 재무팀이랑 알아서 하고."
"예, 아버지. 아니 대표님."
"그렇다고 막 퍼주지는 말고. 상황 봐가면서"
"알겠습니다. 아직 확정지은것도 아닌걸요. 아버지, 저 아마 집으로 바로 퇴근할 것 같아요."
"알았다. 집에서 보자꾸나."
"네."
곧장 대표실을 빠져나온 그는 일단 산하의 붓글씨 솜씨도 직접 보고, 얘기정도만 나눠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한참 후,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찾아온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야 여긴....?"
일층에서 인기 좋은 식당을 운영한다는 내용만 인터넷에서 얼핏 봤지, 이런 엄청난 맛집인줄은 몰랐던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식당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손님을 안내하던 만두가 다가오더니 묻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실례합니다. 여기 사장님을 만나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선약이라도?"
"선약은 없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5분 정도면 됩니다."
"네,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만두는 곧바로 산하에게 보고했고,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요한 일? 지금은 바쁘니까 이따가 브레이크타임에 오시라고 해."
"네, 형님."
오자마자 퇴짜를 맞은 육상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시작부터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한참 후.
브레이크 타임에 산하를 겨우 만나게 된 육상호는,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사내의 얼굴을 보다가 자기 소개를 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주성양조, 홍보팀장 육상호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박산하라고 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잠시 살펴보던 산하는 그를 의문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곳은 아버지가 즐겨마시는 막걸리도 생산하고, 자신이 가끔 마시는 소주도 생산하는 나름 이름있는 회사였다.
"주류회사에서 무슨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작가님 붓글씨 솜씨를 우리 주류 광고에 활용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다말고 눈을 두어번 끔뻑이며 산하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육상호가 무릎을 탁 친다.
"맞네요!"
"네?"
"하산해 씨 아니십니까?"
"그거 알고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요. 빠르게 오느라 그건 미처. 아까부터 긴가민가 했는데, 설마 붓글씨 장인께서 가수이실까 생각해서 물어 보기를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제가 하산해 맞습니다."
육상호는 이 사람이다 라고 속으로 외쳤다. 3억이라는 뉴스기사와 함께 더 큰 화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채은과 듀엣 음반까지 낸 사람이 붓글씨를 잘 써서 글자 몇 줄 쓰고 억단위로 받아갔다.
이런 뉴스기사까지 뜬다면, 알아서 홍보되는 효과도 있을 듯 싶었다.
그는 산하를 만나기 전만해도 간을 조금 보고 결정하려고 했었으나, 지금은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이거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데요."
"무슨 생각이...?"
"작가님이 붓글씨 쓰시는 일반 작가님이신줄로만 알았는데, 이미 가수로는 어느정도 팬덤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서요."
"팬덤 정도는 아닙니다만."
하산해라는 가수에 관해 아는 것이 제한적인 육상호는, 그 내용을 풀어냈다.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괜찮은 팬층을 가지고 있으시더군요. CF는 조금 나이있으신 분을 쓸 생각이긴 합니다만, 뉴스에 하산해 씨가 붓글씨를 썼다는 내용을 살짝 흘려서 홍보해도 될까요? 그에 합당한 금액도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크게 나쁠것 없다고 생각하던 산하는 곧바로 결정하지 않고 대답했다.
"뭐, 그거야 얘기 좀 더 들어보고 결정할 문제 같네요."
"네, 그러셔야죠. 그런데 호칭을 뭐로 통일할까요?"
"그냥 박산하라고 불러주세요."
"네, 그럼 산하 씨라고 호칭하겠습니다. 산하 씨. 이번 작품 전시회에서 선보이신 서체중에 오른쪽에 쓰셨던 그 부드러운 붓글씨, 광고에 선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광고라...어떤 광고죠?"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전통주 하나를 새로 출시하거든요. 거기에 쓸까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산하는 그의 과거를 들춰보았다.
[7분전, 육상호는 설마 2억이나 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마침 집을 사려면 돈이 더 필요했던 산하는 좋아하는 내색은 하지 않고 태연하게 물었다.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부터 여쭤봐도 될까요?"
"네, 뉴스기사를 보고 작가님 작품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정말 명필이시더군요. 그러다가 댓글에 산하 씨 작품 전시회장 주소를 알려주는 분이 있어서..."
"그러셨군요. 그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그러면 제 글자의 값어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산하는 단순히 얼마 주실거냐고 돌려 물은거지만, 육상호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뉴스기사에서 논란이 되었다는 이유로 3억을 거부했듯이, 뭔가 철학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그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금보다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뵌거고요."
아니 얼마 줄 거냐고?
속으로 구시렁 거리던 산하는 잠시 말이 없었고, 육상호는 내가 뭔가 말을 잘못했나 생각하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산하 씨, 단도직입적으로 1억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떠실는지?"
눈치를 보는 육상호를 바라보던 산하는 테이블을 검지로 톡톡 두들기면서 말을 흐렸다.
"1억이요.....?"
이를 오해한 육상호가 덥지도 않은데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물론, 산하 씨가 붓글씨를 완성하시는 동안의 노고는 작품을 봤기 때문에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한참이나 수박 겉핥기식의 대화를 나눴고, 이제는 산하를 CF대상으로 점 찍어버린 육상호는 1억 2천을 불러볼까 하다가 멈칫했다.
3억에 작품 파는 것도 단호하게 거절했는데, 간본다고 생각해서 거절해버리면 어쩌지.
이 만큼 대단한 조건은 없지 싶은데, 팬덤있는 연예인이면서 명필이라니.
게다가 이 사람은 언젠가 대단한 스타가 될지도 모를 노래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연예인한테 이 정도는 줘야지.
아버지도 이것까지 말씀드리면 이해하실거야. C급 연예인도 2억미만으로 받아가니까. 비록 붓글씨 쓰는 모습만 나온다지만 괜찮아 보이는데.
희소성과 그의 가치를 신중하게 따져보던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최후의 가격을 토해냈다.
"산하 씨, 일단 2억! 2억 기본으로 하겠습니다. 제 권한으로 드릴 수 있는 최대치이고 대표님과 협의해서 더 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산하 씨의 붓글씨 촬영과, 사용료, 조금 전 말씀드렸던 하산해라는 예명을 활용하는 값이 포함된 금액입니다."
최우신이 수련한 세월만 생각하더라도 이 정도는 받아야 합당하다고 생각하던 산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신겁니까?"
"반 정도는요? 제가 아는게 별로 없어서요. 자세한건 나중에 제 변호사랑 같이 정해도 되는거죠?"
"그럼요. 감사합니다."
***
며칠이 더 흐르고, 육상호는 아버지에게 임시 보고서를 내밀었다.
"2억 이상? 이놈이 이거 막 퍼주지 말라고 했더니만."
"아버지, 알고보니 그 붓글씨 장인이 연예인이어서요."
"연예인? 누구?"
"보고서부터 봐주세요. 그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알았다."
【박산하】
활동내역
* 라디오 백철우 모창대회 최종 우승
* 다큐멘터리 세월의 맛 일부 출연.
* 맛의 맛 고정 출연 중. 노년층에 대단한 팬덤을 형성.
* 민채은과 듀엣 음반 발표로 인기몰이.
* pbs라디오 방송국과 협업으로 게릴라 콘서트.
* 붓글씨 명인인 웅찬성도 한수 접어줄 정도의 명필로, 첫 작품 전시회에서 3억 제시받았으나 거절해서 이야깃거리 풍부.
향후 활동계획
* 미정
특이사항
* 어마어마한 수의 단골을 가진 맛집 운영중.
모델료
1년 - 2억 이상
참조 - 정확한 모델료는 합의해서 결정
광고적합성 ★★★★★
인지도 ★★☆☆☆
미래가치 ★★★★★
"아버지, 어떠세요?"
"노년층에 어필이라. 어느 정도길래? 난 잘 모르는 사람인데."
"자세한건 정식 보고서에 넣을 겁니다만, 박산하 씨가 소리꾼으로 장난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노년층에 팬이 많습니다. 그리고 회의 해보니까, 팀원중에도 산하 씨 팬이 있더라고요."
"그래? 그런데 소리는 또 뭐야?"
"그게 제가 알아보니까, 파면 팔수록 재능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재능이 일반적인 수준도 아니고, 전문가도 몇 수 접어 줄 정도라서, 미래가치를 높게 잡았습니다."
"그 정도야?"
"네, 아버지. 다큐 프로그램에 나온 판소리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그러자꾸나."
"노트북 좀 쓸게요."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육상호는 노트북을 가져와서 산하가 출연했던 판소리의 한 장면을 재생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만 살짝 떠올라있던 육대만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이 사람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그러니까요. 장난 아니죠? 그리고 이것도 들어 보세요."
그는 산하가 백철우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도 아버지에게 들려줬다.
"허..."
"붓글씨에, 대중가요에, 판소리까지. 아참 맛집도 있고요. 어느 하나 예사로운 게 없더라니까요."
신중한 표정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재생해보고, 아들의 설명을 추가로 듣던 육대만이 소파 팔걸이를 소리가 날 정도로 내리쳤다.
"이 사람 물건이구나. 물건이야. 1년 하지 말고 더 길게 하자고 해봐. 그리고 이 정도면 CF에 직접 나와도 되겠어. 우리 전통주가 노년층에 어필하는 것이니, 딱이구나 딱이야."
"그런데 아버지, 저도 그 생각 들어서 산하 씨한테 물어봤는데, 아직은 길거리 편하게 다니고 싶다고 얼굴 노출은 거부했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육대만이 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런 아쉽구나. 그러면 네가 계획했던 거라도 진행해봐."
"알겠습니다. 그럼 총 금액은 얼마나 책정하면 될까요?"
어느새 산하의 소리에 반해버린 육대만이 손가락 세개를 펼쳤다.
"삼억이나요? 그건 얼굴 노출 없는 거 생각하면, 조금 과한 것 같기는 한데."
"이놈아 그 정도면 길게 보고 친하게 지내야지. 1년에 삼억 기준으로 가. 더 길게 계약하면 좋고. 미래가치 생각하면 이 정도 줘도 되겠어. 그리고 계약할때 내 방에서 해. 얼굴 한번 봐야겠다."
사심을 드러내는 아버지를 보며 씩 웃는 육상호.
"아버지, 일 할때는 사심 넣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이놈아. 내가 언제 사심을 넣었어? 내 나름 중요한 계약같아서 얼굴 보려는건데."
"정말 그럴까요?"
"이 녀석이!"
"농담입니다. 아버지 저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황급히 나가버리는 아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대만은, 다시금 산하의 판소리 장면을 재생하며 중얼거렸다.
'진짜 물건이네...'
***
주류제품 광고출연 제안이 오가던 어느 날.
원거리에서 과거를 읽어올 수 있는 일회성 능력을 놓고 고민해오던 산하는 오늘 결심을 굳혔다. 도자기도 있고, 산수화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궁금한건 독립운동으로 이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쳤던 백범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였다.
차량을 주차하고 백범김구 기념관으로 들어선 산하는 회중시계를 찾아내고 심호흡을 했다.
'가자!'
유리 진열장 위에 손을 올린 산하는 감으로 느껴지는 그 능력을 사용했고, 이내 회중시계의 과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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