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152화 (152/445)

152화 다섯 번째 연결고리 (1)

<민선우 - 51%>

<유태성 - 32%>

<하산해 - 17%>

스크린에 뜬 투표 결과를 잠시 응시하던 MC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게스트 백성수에게 물었다.

“자, 백성수 씨. 시종일관 민선우 씨를 선택하셨는데요, 투표 결과는 마음에 드십니까?”

“네! 아주 마음에 듭니다. 민선우 씨가 확실하거든요.”

그 말고도 여러 게스트에게 의견을 물어보던 MC 최웅석은 큰 동작을 취하며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럼 바로 정답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최종 투표 결과로 나온 민선우 씨는!”

게스트와 방청객이 긴장되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따라 하던 그 순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효과음과 함께 스크린에 결과가 떴다.

<불일치>

“아…… 저음 사냥꾼은 민선우 씨가, 아니었습니다! 안타깝네요. 이 프로그램 최초로 9회차에 접어드는 저음 사냥꾼님! 소감 한 말씀 해 주시죠?”

그러자 저음 사냥꾼의 변조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실망입니다. 9회차라니요. 팬카페 여러분, 제발 좀 맞혀 주세요. 제 팬인데 왜 절 못 알아 보시는 거죠? 지금 협박받고 있습니다. 심 피디님, 살려 주세요.”

“네, 들으셨죠? 저음 사냥꾼님이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매일 숨어다니느라 괴로운 모양인데요. 다음 회차에는 여러분들이 꼭 맞혀 주시기를 희망하며, 저음 사냥꾼님의 노래 한 곡을 더 듣고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최웅석이었습니다. 스타의 목소리가 들려!”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산하의 여동생 윤정은 두 손을 모아 볼에 가져다 대고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저음 사냥꾼 너무 멋있다. 노래 잘하지, 유머러스하지. 무뚝뚝하고 성격 나쁜 박산하랑은 천지차이네. 대체 누굴까? 오빠도 연예인이잖아.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 없어?”

산하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야.”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럼 그렇지, 내가 뭘 바란담’ 하고 중얼거리던 윤정이 혀를 찼다.

“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투표 결과 보니까 자존심 상해?”

“그래, 자존심 상해.”

“왜 자존심 상해? 후보에 이름도 올랐잖아. 17%! 밖에 안 되셨지만. 안 그래요? 17퍼센트 씨?”

“닥쳐.”

“메롱!”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을 놀려대는 윤정을 바라보다가, 제 오빠도 못 알아보는 이 멍충이를 어쩌지라고 생각하던 산하가 벌떡 일어섰다.

“가려고?”

“그래, 잘 있어라. 박윤땡.”

“흥, 잘 가라. 박십칠.”

“뭐 인마?”

“왜애, 십칠퍼센트잖아.”

킥킥대며 웃는 여동생을 노려보던 산하가 한마디를 던졌다.

“이런 똥멍충이. 나 간다.”

“다음에 봐요. 박십칠 씨.”

“…….”

* * *

산하가 새로운 천상주 개발과 식당 운영, 그리고 스목들에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무렵.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날아와 해외 지사 업무를 맡았던 고상식은,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로 휴양을 왔다.

예정되었던 업무도 끝났기에,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앞날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짙푸른 하늘을 보며 음침하게 웃던 그는, 넘실대는 파도로 시선을 돌리며 선베드에 드러누웠다.

현재 그는 도일그룹 후계 순위에서 조금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화학을 물려받는 선에서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나름 경영 능력이 있다 보니 회장이 그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하나, 그의 경쟁자도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도일그룹의 장손과 작은아버지의 차남이 주 경쟁자였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고상식은, 황급히 뛰어오는 자신의 비서를 발견했다.

쉬는 중에 마주하자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 고상식이 차갑게 말했다.

“뭐야?”

“저, 그게…….”

“그게 뭔데?”

“조금 전에 회장님께서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지시?”

“네, 브라질 해외 지사로 가시라는…….”

어이없다는 듯 큭큭대며 웃던 고상식이 상체를 천천히 일으키더니, 옆에 놓여 있던 차가운 음료를 벌컥벌컥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해 봐. 뭐라고?”

“브라질…….”

현재 브라질은 예전보다 치안 상태가 더욱 불안정해진 참이었다. 재수 없으면 가드를 데리고 다니다가도 죽는 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도 지사장이 무장 강도에게 잡혔다가 겨우 풀려났다던가.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져, 경제 성장률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였다.

이걸 떠올리던 고상식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 시발…….”

“네?”

어느새 미친놈처럼 부드럽게 미소지은 고상식이 말했다.

“아니야, 우리 회장님 참 좋은 분이라고. 그래서, 브라질에 얼마나 있으래?”

“회장님 귀국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이때만큼은 참지 못한 고상식이 유리컵을 선베드 한편에 내리쳤고, 이내 그의 손은 피로 얼룩졌다.

화들짝 놀란 비서는 얼어서 말이 없어졌다.

고상식은 음침하게 웃기만 하다가 조용히 뇌까렸다.

“뭐 어쩌겠어. 내가 힘이 있나요.”

언제까지 부려먹나 보자며 미친 망아지 눈빛을 쏘아내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까라면 까야지.”

손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어딘가로 걸어가는 자신의 상사를 바라보던 비서는, ‘이러다 내가 제명에 못 죽지, 이 자리를 어떻게 그만두지?’라고 생각했다.

고상식은 걸음을 멈칫하더니 스산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안 와?”

“네? 네! 지금 갑니다.”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속으로 울부짖던 비서는 눈짓으로 다른 수행원에게 이곳을 치우라고 지시를 내린 후 부리나케 그를 뒤쫓아갔다.

같은 시각.

도일그룹 회장실.

“어떻게 행동하던가?”

컵을 깨서 피를 흘리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소식을 떠올린 그는, 평소대로 조금 순화해서 전달하기로 했다.

괜히 재벌가 자손 망나니라고 해서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회장의 눈 밖에 나는 수가 있었다.

어차피 회장의 정보 루트는 여러 곳이라, 이렇게 말해도 상관없었다.

“겉으로는 웃지만, 행동은 거칠었다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주름진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 됐네. 말 안 해도 잘 알지. 그놈에겐 폭군 기질이 있단 말이지.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가.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게…….”

“뭘 그리 어려워하나? 자네나 나나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럼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이 거친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때로는 상식이 같은 놈도 필요한 법이야. 과감하고, 잔인하고, 거친, 그런 거 말일세.”

“그러시면, 그룹 후계를…….”

“아아, 예단 말게. 단지 점수를 조금 추가했을 뿐이니까. 최종적으로 물려받을 놈은 아직 정하지 않았네. 어쨌거나 상식이 놈은 너무 과해서 말이지. 일단 브라질에서 어찌 하는지 보고 생각하세.”

“네, 회장님.”

곧 회장실에 혼자 남게 된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벽에 걸린 세계 전도를 바라보았다.

‘어디 절벽을 기어올라와 보거라. 그리하면 이 왕국은 네놈들 것이다.’

* * *

<9회차에 접어든 저음 사냥꾼, 궁금증 자아내>

<스목들 이번 힌트는 야구, 너무 추상적인 힌트라며 항의 이어져>

- 스목들 피디는 진짜 각성해라, 힌트가 이게 뭐야?

- 맞아요. 저번 힌트도 마찬가지. 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있죠. 근데 이번에도 너무 광범위하네. 연예인 야구팬은 너무 많은데.

- 자자, 다시 힌트를 추려 봅시다.

- 저번에 유력한 후보 빠졌어도 아직 많네요.

- 이러다 10회차까지 가겠네.

‘야구를 좋아한다’라는 힌트를 ‘야구 마니아’로 해석한 네티즌들이 후보군을 골라내고 투표하고 있을 무렵.

장도산은 모니터 화면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책상 위를 파리채로 탁탁 두들겼다.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탁!

생각을 이어 가다 말고 파리를 한 방에 잡은 장도산은 기분 좋게 웃으며 남은 손으로 배를 통통 두들겼다.

“자식이, 그리 될 줄 왜 몰랐던가. 파리 이놈. 애도를 표한다.”

하산해, 즉 산하에게 곡을 주고 난 뒤로 그가 부른 노래나 판소리 등을 즐겨듣던 그는 <진주난봉가>의 음률에 맞춰 이미 죽어 버린 파리를 향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다시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잡지, 사진, 술, 야구…… 이거, 하산해도 포함인데.

특히 하산해는 만찬주로 선정된 천상주 생산자였다.

많은 사람이 애주가 위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런 것도 가능성이 있단 말이지. 개막전 시구도 그렇고.

그런데, 또 그렇다고 하기엔 음색이 너무 심하게 달라. 그저 그런 평범한 노래 실력도 아니고, 저 정도 수준급 실력을 두 가지나 가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법인데 말이야.

비슷하기라도 해야지.

작곡가인 장도산마저도 백철우의 환생과도 같은 산하의 노래에 깜빡 속아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여전히 파리채를 툭툭 내리치며 고민에 빠져 있던 그는 다시 한번 파리채를 휘둘렀다. 그곳에는 모기 한 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그 작은 핏자국을 휴지로 닦아 내려던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파리채를 집어 던졌다.

‘옳지!’

예전에 보았던 탐정 영화에 의하면, 사람의 걸음걸이도 주효한 단서였다.

장도산은 다큐에 출연한 하산해와 방송에서 뒤돌아 선 채 노래를 부른 후 무대 뒤로 사라지는 고릴라의 걸음걸이를 비교해 보기로 했다.

사실 그에게 그리 큰 기대까지는 없었다. 그저 재미 삼아 해 보려는 것이었다.

내심 저 목소리가 하산해 목소리일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말하기를 그의 백철우 모창이, 사실은 모창이 아니라 본인이 원래 가진 목소리라고 했다.

그 말에는 장도산도 동의하는 바였다.

꾸며 낸 목소리로 백철우가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노래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상해.’

미지의 감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잠시 후.

산하가 출연했던 소리꾼 박산하의 향토 음식 기행을 재생하고, 다른 창에선 스목들 프로그램을 재생한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두 인물의 걷는 모양새를 살폈다.

한 걸음, 두 걸음.

“!?”

뭐야, 똑같은 것 같은데?

그저 재미 삼아 탐정 놀이에 심취하려 했던 장도산은 눈을 부릅떴다.

다시, 또다시 재생을 누르며 열 번 넘게 그것을 확인한 그는 벌떡 일어섰다.

“하산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냉장고를 열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장도산이 곧장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바로 산하였다.

“네, 선생님. 어쩐 일이세요?”

“저…… 물어볼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혹시…….”

당신이 마운틴R이냐고 물어보려던 그는, 스목들 프로그램이 어떤 보안 정책으로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기에, 멈칫하고 질문을 보류했다.

이런 식으로는 알아내기 힘들 테고, 알아낸다고 해도 산하의 입장만 곤란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알아낸 것은 그저 추측일 뿐,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괜히 말했다가 다른 가수를 들이댄다며 하산해가 기분 나빠할 수도 있었다.

“선생님?”

“아, 미안해요. 다음 앨범이 언제쯤 나오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요.”

“그러셨구나. 저도 확실한 일정은 못 잡았는데, 크리스마스 전에는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원래 물어보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항을 몇 가지 더 물어본 장도산은 이내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에이, 설마 하산해가 고릴라일까? 말도 안 되지.’

그저 내 망상일 뿐이야.

그 모습은 과거보다 상당히 소심해진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진군하라>를 작곡해서 세상에 내놓고 온갖 비웃음과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과거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이건 반드시 뜬다’라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좌절감에 빠져 상당히 힘들어했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 * *

휘파람을 불며 솔잎을 딴 산하는 효과를 살펴보았다.

[솔잎 - 날카로움이 5.9%만큼 상향되었습니다.]

“……하.”

대체 이게 뭐냐고 중얼거리던 산하는 이놈의 분재용 소나무를 교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근처에 심어 놓은 꽃을 향해 손길을 뻗으려 했다.

그 순간.

[오랜 기간 과거와의 작은 연결고리를 완성하지 않았습니다.]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자정 이후부터 모든 능력의 효과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그걸 바라보던 산하는 얼굴을 찌푸리는 게 아니라 그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뭔가 제재 사항이 있을 것 같긴 했는데, 그게 없어서 오히려 의아해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잊고 있었네…….’

페널티가 주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에 마음이 편해진 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증조할머니의 조선식칼, 백철우의 마이크, 종갓집의 무쇠솥, 최우신의 대나무 붓이 가진 연결고리를 완성했는데.

이 모든 것의 조건은 물건에 능력을 남긴 자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짐작해 왔다.

물건의 능력을 활용할 때 주어지는 미션과는 방향성이 조금 달랐다. 하나가 염원이라면, 또 하나는 안타까움? 아니면 미련이라고 해야 할까.

조선식칼은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된장찌개 맛보여 주기를 원했고, 백철우의 마이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비빔국수를 대접하기 원했으며, 무쇠솥은 며느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를, 최우신의 대나무 붓은 조금 색다르게도 자신의 붓글씨가 정순명의 붓글씨와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짐작일 뿐, 확실한 방향성이 없기에 산하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우선은…… 스파게티?’

* * *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바닥에서 작은 개인 커피숍을 바라보던 산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주소를 확인했다.

‘여기 맞네.’

페널티로 인해, 급작스럽게 식당 휴업 선언을 하고 이곳을 찾은 산하는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이나 덥다고 생각하며 가게 내부로 들어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대답하는 사람은 과거에서 들여다본 스파게티의 주인공 손지유와 전혀 닮지 않았다.

잘못 짚었나. 아니면 그냥 아르바이트생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산하는 몇 개 없는 테이블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이내 주문한 음료를 받아들고 한 모금 쭉 빨아 마시며 고민에 빠지던 찰나.

한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 15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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