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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157화 (157/445)

157화 배우러 왔는데요 (2)

산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끔뻑이다가 되물었다.

“네?”

“소리꾼 박산하 아니십니까?”

“어…… 맞긴 합니다만.”

혹시 생김새만 비슷한 사람을 자신이 오해했나 싶어 불안해하던 정상면의 얼굴에 기쁨이 감돌았다.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한 표정이었다.

“와, 역시 맞군요. 대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그게…….”

그는 산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여기에 강의하러 오셨구나. 이렇게 귀한 분을 원장님이 어떻게 모셨는지, 정말 수완도 좋으시지.”

정상면은 이곳 학원장이 걸그룹까지 끌어당겨서 교육받게 한 것에 탄복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가 막히게도, 자신의 후임으로 소리꾼 박산하를 모셔왔다고 생각하자 학원장을 존경하는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소리꾼 박산하가 누구던가.

점점 죽어가는 판소리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장본인 아니던가. 단순히 연예인이 판소리를 해서 유명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의 실력은 현역 소리꾼 뺨을 두 번 때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자신이 부원장으로 올라간 후 뒤를 이어 강의할 후임으로 어떤 사람이 올지 무척 걱정하던 강사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반겼고, 산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곁에 다가온 접수처 직원을 흘깃 바라보다가 진실을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도 전에 강사 정상면이 접수처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산하 씨에게 학원을 구경시켜 드리던 중인가요?”

실타래가 헝클어지듯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끼던 중년 여성은 그건 아니라고 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구경 중인 게 맞았다.

그래서 일단 고개부터 끄덕였다.

“네? 네. 그건 맞는데…….”

그녀가 뒷말을 잇기도 전에 정상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귀한 분이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일하면서 자주 마주치게 될 거예요. 귀빈도 이런 귀빈이 어디 있어요.”

그의 극찬을 듣던 중년 여성은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산하를 향해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 했다.

그때였다.

교육하던 강사가 복도로 빠져나가자 호기심에 다가왔던 신생 걸그룹 ‘무차차’가 우르르 몰려오더니 눈을 크게 뜨고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그녀들은 걸그룹이 되겠다고 모였지만 아직 교육을 받던 중이었기에, 연예인을 볼 때마다 신기한 눈초리를 했다.

“와, 선배님이다!”

“저음 사냥꾼 선배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잠깐만, 우리 소개부터 해야지.”

“아, 맞다. 둘, 셋!”

아직 고교생, 아니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다섯 명의 여성이 산하를 향해 동시에 외쳤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다정다감 무차차입니다!”

산하는 ‘스타의 목소리가 들려’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조금 더 끌어올렸고, 거기에 나름 같은 가수라서 그런지 걸그룹 무차차는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동작까지 맞춰 인사하는 그녀들 때문에 조금 당황한 산하가 마주 인사하자, 뒤에 서 있던 중년 여성은 입을 헤 벌리고 눈만 깜빡였다.

이 사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강사님도 알고, 걸그룹 아이돌 교육생도 알다니…… 유명한 사람인가? 처음 보는데…….

그녀가 여전히 혼란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이,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강사 정상면이 산하에게 물었다.

“제 후임으로 산하 씨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부터 일하십니까?”

말할 틈이 없어 조용히 있던 산하는 이제야 진실을 얘기할 수 있었다.

“전 배우러 왔는데요?”

“네? 배우러…… 아! 교육 커리큘럼이요? 확실히 가르치는 것과 현역 활동이 조금 다르긴 하죠. 처음이실 테니, 그거야 당연히 자세하게 알려 드릴 겁니다. 염려 마세요. 그래서, 언제부터 교육 가능하십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정말 배우러 왔습니다. 학원에 등록해서 수강생으로요.”

산하가 사실을 토로하자, 강사 정상면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네? 수강생이요?”

이즈음 접수처 직원인 중년여성이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머, 정 선생님. 이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이세요?”

그러나 정상면은 그따위 질문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자신의 의문부터 해결하려 들었다.

“어…… 잠시만요. 그러니까, 산하 씨가 강사가 아니라 수강생으로 오신 거라고요?”

“네, 맞습니다.”

“……음.”

산하의 대답을 듣자마자 뭔가가 처음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하던 정상면은 부끄러움을 만회하고자 산하와 함께 온 직원에게 물었다.

“아니, 이분 모르세요? 소리꾼 박산하. 향후 판소리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

접수처 직원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만 끔뻑이고 있자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던 그가 산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정말 수강생으로 오신 건가요?”

“네.”

정상면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뭐라 중얼거릴 때, 산하가 접수처 직원에게 말했다.

“저, 제가 시간이 많이 없어서, 견학 좀 했으면 싶은데요.”

“아, 네. 이쪽으로…….”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곳에서 제일 당황한 사람은 접수처 직원이었다.

인센티브 더 받아 보겠다고 소리도 배우라고 꼬셨더니, 뭐? 소리꾼이라고? 그것도 유명해?

부끄럽게 정말.

그녀는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앞장섰다.

그 뒤를 산하가 따라가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듣고 있던 걸그룹 무차차가 아쉬운 목소리로 외쳤다.

“선배님!”

“살펴 가세요!”

이 와중에 정상면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수강생이라니. 그런데 뭘 배우시려고?’

이날, 견학을 하고 학원을 빠져나온 산하는 인도에서 그 건물 3층을 올려다보았다.

‘재밌는 사람들이네…….’

아까 있었던 잠깐의 헤프닝을 떠올리던 그는 피식 웃고는 새봄에게 톡을 보냈다.

[뉴봄님 계신가요?]

[뉴봄은 없고 새봄은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혹시 새봄님 시간 있으신가요?]

[무슨 용건이시죠?]

[새봄님 존안을 뵈었으면 해서요.]

[그건 조금 생각해 볼 일이군요.]

[그렇구나. 그럼 안녕히 계세요.]

[치사해.]

[우리 봄이 뭐가 치사하실까.]

[먼저 도망치는 게 어딨어요.]

[그래야 우리 봄이 빨리 만나지.]

[흥흥, 그럼 어디서 만날지 말해 보세요.]

[만복이네 약국 앞에서 만나서 야간 드라이브 갈 건데요.]

[좋은 생각이에요. 가요 가요. 저 준비하고 있을게요.]

양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곰돌이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모양새의 이모티콘이 새봄에게서 날아오자, 산하는 싱긋 웃었다.

“귀여워라…….”

* * *

미션 실패로 인해 며칠째 팬카페에 접속해서 의미 있는 댓글을 달던 산하는 오늘도 5분 정도 댓글을 달다가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 사실 박산하는 유부남이라던데, 다들 알고 계세요?

- 진짜요? 와, 까맣게 몰랐네.

- 뭐라는 거야. 당신 뭐 하는 사람임? 증거 있어요? 명예훼손 고소 각인데.

- 누가 봤대요. 애도 둘이나 있다는데요?

- 이 사람 뭐임? 영자님 나와라 오바!

이런 억측과 추측성 글이 저번에도 몇 번 올라왔다. 팬 카페를 아예 출입조차 안 할 때는 괜찮았는데, 이런 글을 한 번씩 보고 있자니 산하는 어이가 없었다.

지난번에는 우리 동네 편의점 운영하던 사장님이라고 하지를 않나.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무슨 이유로 유부남이라는 거냐며 모니터 화면을 째려보던 산하가 댓글을 달았다.

[하산했나요 - 제가 알기로 하산해 씨는 완벽한 미혼입니다.]

[현재 921/5000]

- 와, 진성 팬이다. 요새 댓글 겁나 달고 다니는 사람임.

- 그쪽은 증거 있어요?

- 미혼인지 유부남인지 알게 뭐람. 그냥 전 하산해가 좋음.

산하는 뭐가 됐건 자신이 좋다는 사람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았다.

[하산했나요 - 저도 그냥 하산해가 좋습니다.]

그러자 그의 댓글에 대댓글이 또 달렸다.

- 박산하 씨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물론 장난성 댓글로 보였지만, 산하는 속으로 뜨끔했다. 다음엔 다른 계정으로 달아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오늘은 댓글을 이만 달기로 했다.

사실 이 벌칙이 그저 페널티라고만 생각하면 고통스러웠겠지만, 산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팬들의 응원, 그리고 비판, 때로는 비난, 거기에 요청까지, 평소 눈여겨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중에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던 산하는 곁에 앉아 있던 새봄에게 말했다.

“이제 갈까? 봄봄봄.”

“다 끝나셨어요?”

“응, 끝났어.”

“그런데 갑자기 댓글은 왜 다세요? 팬 관리?”

“팬 관리라기보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아하! 그런 거였구나. 팬카페인데도 악플이 많네요. 제가 혼내줄까요?”

“그래 줄래? 농담이야. 아마 곧 쫓겨날걸? 날 싫어하는 사람들인가 봐.”

“싫어한다기보다 샘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 아무튼 갑시다. 윤새봄 사원.”

“오늘은 저 혼자 갈게요.”

“왜? 안 돼.”

“오늘 여동생 소원 들어주기로 하셨다면서요. 혼자 가도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그리고 그건 아직 시간 있어.”

“고집쟁이,“

“역시 우리 봄이가 뭘 좀 아네. 봄이를 향한 사랑 고집은 영원히…….”

또 낯부끄러운 말이 나오자 왠지 부끄러웠던 새봄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게 구석을 가리켰다.

“어! 저기!”

바퀴벌레라도 나왔나 싶었던 산하가 얼른 그곳을 돌아보았지만, 샅샅이 훑어봐도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응? 아무것도…….”

산하가 뒤를 돌아보는 사이 백팩을 멘 새봄이 출입구 앞으로 뛰어가 배꼽 인사를 했다.

“사장님, 이만 가 볼게요. 바이바이.”

당황한 산하가 얼른 일어서며 말했다.

“어쭈? 윤새봄 사원, 거기 섭니다.”

“메롱! 버스 타고 갈게요. 걱정 마세요.”

배시시 웃던 새봄이 문을 열고 도망쳤다.

쫓아나간 산하는 어느새 저만치 뛰어간 새봄을 보며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싫어요. 내일 봐요!”

자신의 손바닥에 뽀뽀를 한 새봄은 산하에게 날리듯 손을 휘젓더니, 이내 통통 튀는 신나는 걸음걸이로 더 멀어졌다.

따라가려 한다면 따라갈 수 있겠지만, 저렇게까지 하는 그녀를 따라가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장난인 줄 알겠지만 그녀 또한 산하의 시간을 아껴 주기 위해 배려하는 것이었고, 이걸 잘 알고 있는 산하는 왠지 아쉬워서 중얼거렸다.

‘우리 봄이, 착하기는…….’

앞으로 댓글은 집에서나 달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산하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가게 문단속을 했다.

이날 밤, 약속한 시각에 맞춰 본가에 도착한 산하는 단독주택이 어딘가 떠들썩함을 느꼈다.

차를 세우고 식자재가 담긴 박스를 든 채 마당으로 들어서자 하하 호호 웃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산하는 귀를 접은 채 엎드려 있던 따릉이에게 물었다.

“따릉아, 분위기 좋다. 그치? 사람 사는 냄새 나네.”

“…….”

오늘따라 짖지도 않는 따릉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산하가 현관문을 살짝 열고 들어서자 떠들썩하던 거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윤정의 친구들이 산하를 알아보자마자 앞다투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정이 데려온 친구는 총 일곱 명, 그녀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산하를 바라보고 있자 그의 여동생은 일시적으로 조금 우쭐한 표정이 되었다.

입꼬리마저 살짝 올라간 여동생을 슬쩍 살펴보던 산하는 그녀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보네요. 다들 반갑습니다. 윤……정아?”

평소처럼 윤땡이라고 부르려 했던 산하는, 이왕 기 살려 주는 거 제대로 불러주기로 했다. 그 때문인지 흠칫하던 윤정이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

“응, 오빠. 왜?”

“아, 부럽다. 나도 저런 오빠 있었으면…….”

“나도나도.”

“윤정이 넌 좋겠다.”

“맞아.”

친구들의 칭찬에 윤정은 자신의 오빠를 친근하게 바라보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오빠, 뭐 도와줄 거 있어?”

“아냐, 친구분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어. 금방 만들어 줄게.”

“알겠어. 고마워.”

그는 대단히 가식적인 상황을 이겨내려 노력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부모님은 시골에 내려가신 상황이기에, 윤정과 그녀의 친구들 몫만 만들면 완성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주방으로 들어선 윤정이, 만들어 놓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나르려다가 냄비에 묻은 소스를 살짝 맛보더니 어깨가 으쓱하는 게 아닌가.

대충 봐도 친구들에게 맛보여 주면 부러워할 것을 알고 신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손지유의 토마토 스파게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백 퍼센트에 달하는 손지유의 토마토 스파게티는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던 산하는 윤정을 다급히 불러세웠다.

“스톱!”

- 15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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