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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177화 (177/445)

177화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 (2)

서울역? 갑자기 웬 서울역?

고개를 갸우뚱하던 산하는 곧장 물어보았다.

“시에서 갑자기 왜 그런 제안을 하시는지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오자마자 이상한 제안을 하는 그에게 무언가 질문을 더 이어 가려던 산하는 최근 자신에 관한 뉴스가 퍼뜩 떠올랐다.

제목은 다 다르지만, 공통적인 뼈대는 같았다.

서울역 노숙자였던 남자를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나 뭐라나.

설마 그걸 보고 온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중년의 사내는 옆자리에 놔둔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펼쳤다.

그곳에는 어떤 숫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그 옆에는 그래프도 그려져 있었다. 그는 그중에 한 부분을 짚어 보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노숙자 증감 추세 자료입니다. 보시면 노숙자 수가 매년 점점 늘어나는 걸 확인하실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 보이시죠? 노숙자가 하강 곡선을 그리면서 갑자기 확 줄었어요. 이때만 해도 우리 시에서는 노숙자를 위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게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더 얘기해 보라는 듯 산하가 집중한 채로 아무 말도 않자, 중년인이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정책에 조금 더 힘을 싣고, 예산도 넉넉하게 배정했죠. 그런데 웬걸. 줄기는커녕 더 늘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왜 노숙자 증가세가 하강 곡선을 그렸는지 이유를 계속해서 찾았고, 그 원인이 산하 씨에게 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제가요?”

“네, 그 당시 노숙자 수가 줄어들 때 자활지원과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누가 노래를 해서 줄었다, 뭐 이런 말이었죠.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는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 실제 사례를 접하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사례였고, 지금 이렇게 제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살기 좋은 서울, 깨끗한 서울’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서울시장이 가장 찜찜해하는 건 노숙자 증가 문제였고, 그 때문에 압박을 받은 부하 공무원들은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산하를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아래쪽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고 산하를 찾아온 사람은 복지기획관 업무 총괄 민준호였다.

서울시장 자리는 그저 한 도시의 수장이 아니라 대선으로 나아가는 길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자리였기에, 현 시장의 닦달은 장난이 아니어서 그까지 직접 나선 것이다.

사실 통계니 뭐니 확실한 것 같다며 들이대긴 했지만,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뭘 해도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삶을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자활률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예산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만약 가수 한 명에게 공연비를 지불하고 노숙자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실험을 해 보려는 거였다.

그 실험에 동참할지 어떨지 묻는 그에게 산하가 대답했다.

“공연은 좀…… 안 좋을 것 같은데요?”

서울시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생각한 민준호가 다급히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 산하 씨, 이거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분들에게 삶을 되찾아 주는 일이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면…….”

“그게 아니라, 정식으로 공연한답시고 무대 설치하면서 뭐 하고 하면 제 팬들만 몰려들잖아요. 노숙자분들은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요?”

“그럼……?”

“그냥 예전처럼 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처럼이라시면?”

“버스킹이요. 저도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시간 날 때 가서 하기 좋거든요.”

중년 사내는 뭐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공연만 해 준다면야.

“그럼 허락하시는 겁니까?”

“네, 공익 목적이니까요.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큰 기대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 하나를 얻었다고 생각하던 그는 서울시에서 줄 수 있다고 책정한 공연비를 산하에게 말해 주었다.

보통 유명 아이돌 가수는 행사 한 번 뛸 때마다 몇천만 원을 받고, 트로트 가수도 기본 삼백에서 많게는 삼천 이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산하는 스목들에서 꽤 인지도를 높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확실한 계획에 예산을 잔뜩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금액은 적당한 선에서 책정되었고, 사실상 콘서트는 해 봤어도 행사비는 처음 받아 보는 산하는 이게 적절한 금액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에 천만 원.

다른 가수들이 노래 몇 곡 부르고 받는 것에 비해서는 적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 산하 씨. 이게 다가 아닙니다. 금액은 추후 재조정 가능하고, 필요하시면 경호를 비롯한 지원팀도 붙여 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미션 - 노숙자 해산 프로젝트]

[서울역을 떠도는 노숙자의 심금을 울려 사회로 돌려보내자.]

[보상 - 목표 자활률 달성 시 슬픈 감정을 자유자재로 노래에 담아내는 솜씨가 90%로 상향됩니다.]

[현재 0%/100%]

[일정 수 이상의 미션을 받으셨습니다. 지금부터 재능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생겨난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던 산하는 저게 대체 무엇인지 생각했다.

재능 포인트?

어디에 쓰는 거야?

갑작스럽게 뜬 창을 보고 생각하느라 말이 없던 것뿐인데, 오해한 민준호는 확실히 공익 목적이긴 해도 행사비가 너무 적게 책정되었다고 여겼다.

한두 곡도 아니고, 한 시간이면 꽤 많이 노래할 텐데.

아무래도 금액은 조금 더 건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산하 씨, 행사비는 제가 책임지고 더 올려보겠습니다. 그리고 효과만 검증되면 훨씬 많은 금액을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자신의 이미지도 있고, 미션도 뜬 데다, 이런 일에 구차하게 돈돈 소리를 내긴 싫었던 산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이거 당장 해야 하나요?”

“아니요. 당장은 아니고, 육 개월 안에만 해 주시면…….”

“아, 그럼 넉넉하네요. 일단 공연은 버스킹 형태로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사람만 조금 붙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예산이 모자라서 걱정이었던 민준호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괜히 화려하게 무대 꾸미거나 행사비를 더 주실 필요는 없어요.”

“네, 뜻이 그러시면, 알겠습니다.”

계약과 관련되어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두 사람은 악수를 했고, 민준호는 이따가 밥 먹고 가라는 산하의 말을 듣더니 일이 바쁘다며 떠나갔다.

그러자 봉만두가 혀를 찼다.

“형님의 된장찌개를 걷어차다니, 복도 지지리도 없지…….”

유나세와 린다도 그에 호응했다.

“그러니까, 와! 아무리 바빠도 우리 사장님 된장찌개를 포기해?”

“맞아 언니.”

마지막으로 새봄이 말했다.

“맛을 몰라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사장님, 아까 그분이랑 무슨 말씀 나누셨어요?”

“그냥 뭐랄까…… 공익 캠페인에 참여해 달라는데?”

“공익이요?”

“쉿!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다쳐.”

“?”

다들 궁금해하는 가운데 산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천상주90 판매 돌입, 애주가 축제 분위기>

<전통주 생산자 박산하, 온·오프라인 동시 판매 결정>

식당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현장 판매 50%, 온라인 50%로 천상주90을 판매하기로 한 산하는 한창 뽑기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줄을 서 있던 손님들은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자신이 뽑히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산하네 요리 전문점의 맛있는 요리도 먹고, 유명한 전통주까지 챙겨간다면 오늘 운빨은 끝장이라고 생각하면서.

같은 시각.

곽기훈은 산하의 옆구리를 찔러 얻어낸 천상주90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조차도 실로 오랜만에 보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어디서 마셔야 잘 마셨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해 보던 그는 문득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이렇게 좋은 술을 혼자 마시려니 찔린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매번 승계를 잠시만 미뤄 달라고 해 오던 터였기에 미안함도 함께였다. 남들은 이런 재벌 그룹을 물려받으라고 하는 것에 부러워했지만, 그에게는 사실상 부담이었다.

하고 싶은 건 문화 관련 사업인데, 재벌 그룹 수장 자리에 올라가면 다양한 계열사를 움직여야 하기에 원하는 걸 하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하긴 해야겠지?

그 전에.

딱 1년만.

정말 딱 1년만 기다려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명예회장에게로 향한 그는 비서에게 말했다.

“저 왔다고 전해 주세요.”

비서가 대답하기도 전에 명예회장실 문이 열리더니 곽춘일이 나타났다.

그의 눈길에는 신기함이 담겨 있었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도망치고, 승계받으라고 할까 봐 잘 찾아오지도 않던 손자놈이 찾아오다니.

오늘이 무슨 날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는 손자에게 들어오라는 뜻으로 눈짓을 했다.

이윽고 손자와 마주 앉은 명예회장 곽춘일은 허허 웃었다.

“드디어 우리 손자가 마음을 제대로 먹은 게로구나. 이 할애비를 직접 찾아왔다는 건, 이제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아니요.”

곽춘일이 떫은 감 씹은 표정을 보였다.

“……이 할애비를 놀리는 게야?”

“에이, 우리 명예회장님을 누가 놀리겠어요.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께 꼭 맛보여 드리고 싶은 술이 있어서 가져왔죠.”

“술? 이런 대낮에?”

“네, 잠시만요.”

곽기훈은 들고 온 가방에서 꽁꽁 포장된 천상주90을 꺼냈다. 얼마나 두껍게 포장했는지, 물건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무슨 귀한 술인데, 그리도 꽁꽁 쌌어? 그리고 이 할애비 술 끊었다.”

실망해야 마땅하건만, 곽기훈은 활짝 웃으며 되물었다.

“진짜요? 진짜 끊으셨어요?”

“어째 네놈은 오늘도 수상하구나?”

“수상은요. 그냥 할아버지 건강이 좋아지시겠구나 한 거죠. 그럼 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허! 어딜 간다는 게야?”

“술 끊으셨다면서요?”

“이런 고얀……. 한 잔 정도는 괜찮으니 앉거라.”

조금 실망한 기훈이 자리에 도로 앉으며 말했다.

“한 잔으로 만족 못 하실 텐데…….”

“기훈아, 할애비가 내뱉은 말 어기는 거 봤느냐?”

“어…… 가끔이요?”

“어허, 이 손자놈을 어찌할꼬.”

곽춘일이 머리 쥐어박는 시늉을 하자, 기훈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외쳤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한잔이에요. 진짜 한잔, 믿습니다.”

“이놈아, 요즘은 무게감도 없고. 어찌 그리 새털처럼 가벼워? 자고로 윗자리에 앉으려면 진중한 맛이 있어야 하거늘. 이게 다 그 엔터 때문 아니냐?”

두꺼운 포장을 열심히 풀어헤치던 기훈이 봉인을 풀며 말했다.

“엔터 때문은 아닐걸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상주90이 담긴 술병의 입구가 열렸다. 그곳에서 은은하면서도 품격 있는 향기가 흘러나와 명예회장 곽춘일의 코점막을 자극했다.

꽃! 꽃이 가득하구나.

이 꽃밭에 구르면 여한이 없겠으니.

보아라, 마셔라.

날 보고도 아직 안 마신 게야?

콧속으로 들어온 향이 마치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들짝 놀란 곽춘일이 주름진 손으로 술병을 가리켰다.

“이…… 이 술은 대체 무엇이냐?”

“전통주요. 우리 산하가 만드는 거예요.”

곽춘일은 지난번 손자와 함께 스목들 방송을 보게 되면서 산하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박산하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산하? 그 박산하?”

“네, 그 박산하 맞아요. 자, 한잔 받으세요. 진짜 귀한 거니까 흘리지 마시고요.”

아담한 병에 담긴 천상주90을 뭔가에 홀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곽춘일은 술잔을 코앞으로 가져다대며 향을 음미했다.

은은하면서도 그윽한, 종일 맡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 향에 곽춘일은 마치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도 좋아졌고 마음이 편해졌다.

어찌 이런 술이 다 있을꼬.

신기해하던 곽춘일은 이내 술잔을 기울였고, 술이 들어가자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럴 수가!’

향도 심상치 않더니 맛도 장난이 아닌 것에 놀란 곽춘일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천상주를 음미했다.

목 넘김도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입안에 은은한 꽃향기가 느껴졌는데, 일반적인 꽃향기라면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건 그렇지 않았다.

맡으면 맡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기만 하는 너무나 좋은 술이었다. 그뿐인가 뭔가 입안에 짝짝 들러붙는 듯 당기기까지 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에 곧장 술잔을 손자에게 내밀었다.

“한 잔 더 따라 보거라.”

곽기훈이 불안한 표정으로 항의하듯 말했다.

“할아버지, 한 잔만 드신다고 하셨잖아요. 건강 생각하셔야죠.”

약속을 지키라는 손자놈의 눈빛에, 곽춘일이 헛기침을 하더니 그를 타박했다.

“어허, 이런 술인지 알려 주지도 않고 이 할애비를 기만한 죄를 정녕 모르느냐? 건강은 무슨.”

이러다가 천상주 다 털리겠다고 생각하던 그가 급히 천상주 술병을 들어 올렸다.

“……잠시만요. 저도 한잔만 하고요.”

명예회장에게 뺏길세라 자신의 술잔에 얼른 술을 따른 곽기훈은 입에 술을 머금더니 눈을 감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예전 천상주보다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그 사이 직접 술병을 가져와 천상주를 술잔에 가득 따른 명예회장이 허허 웃었다.

“좋구나. 좋아.”

퍼뜩 눈을 뜬 기훈은 아껴 마시려고 입에 머금고 있던 천상주를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할아버지! 반칙! 그렇게 많이 가져가시면 어떡해요?”

“이놈아, 이 할애비 먹는 게 그리도 아깝더냐? 크으…… 좋구나. 좋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거의 동이 나 버린 술병을 바라보던 곽기훈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안 돼.”

* * *

서울역, 평일.

낮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그곳 광장 한편에 볕을 쬐는 노숙자가 여럿 있었다. 구걸한 돈으로 사 온 소주를 마신 그들 중 한 명의 이름은 송석철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바위와 쇠처럼 단단한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지어 줬지만, 그는 자영업을 하다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이곳의 노숙자 중에서도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이젠 정말 완연한 노숙자가 되어 노상방뇨는 기본이요, 시비를 걸어 화풀이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심지어 노숙자끼리 패싸움을 벌이는 일도 허다했다.

그는 간지러운 배를 벅벅 긁으며 씻은 지가 언제인지를 떠올려 보았다.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 나기만 했다. 그저 술이나 더 먹고 알딸딸하니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의 졸린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기타를 내려놓고 스피커를 설치하는 등 분주한 그 사내를 바라보던 송석철은 침을 퉤 뱉으며 걸걸하게 말했다.

“염병, 시끄럽게 또 지랄할 모양이네.”

가서 시비라도 걸어볼까 해서 벌떡 일어선 그는, 그 사내의 주변에 덩치 좋은 남성들이 포진해 있음을 보고는 발걸음을 되돌렸다.

조금 춥긴 하지만, 지하도로 내려가 만만해 보이는 행인에게 돈이나 뜯어낼 계획이었다.

자신보다 더 막 나가는 노숙자는 역무원이고 군인이고 구별 없이 시비를 걸고 가래를 뱉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석철은 그저 적당히만 했다.

그렇게 시비를 걸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 있다는 것에 회의감이 진하게 몰려오곤 했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자다 보니 뻐근한 어깨를 한번 돌려보던 그가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한정효의 <날도 저무는데>를 첫 곡으로 정한 산하는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천천히 마이크를 들어 올리고 무려 90%에 달하는 슬픈 감정을 끌어냈다.

“날도 저무는데, 오지 않는 아버지…… 내일은 오실까, 하염없이 바라보네…….”

- 17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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