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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180화 (180/445)

180화 착하지 (1)

오늘 노숙자들 마음을 조금 더 원활하게 돌려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산하가 목소리를 가다듬던 사이, 그를 멀리서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드라마작가 최선혜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하산해가 게릴라성 공연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금 전 부리나케 달려온 참이었다.

물론 그녀 혼자만 온 건 아니었다.

바로 곁에는 같이 대본에 관해 상의하다가 끌려온 박동구 피디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는데, 조금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

“작가님, 꼭 저 사람으로 하셔야겠어요?”

“네, 저번에는 제가 양보했잖아요. 이번에는 꼭 저분이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중후반 부분 OST는 꼭 저분이 불러주셔야 해요. 피디님도 산하 씨 노래 들어 보셨으면서.”

“그야 그렇죠.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에도 그 정도 급의 가수로 해 드리겠다고.”

“그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왜요, 도대체 왜요?”

“아시잖아요.”

“작가님께서 감성을 예민하게 타고나셔서 그런 거예요. 제가 듣기에는 최정상급 다른 가수가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던데…… 그분들도 저분 비슷하게 해요.”

“절대 아니거든요?”

“비슷하다니까요?”

“아니라고요.”

“비슷한데…….”

오로지 디지털 매체로만 산하의 노래를 접했던 박동구 피디는 살짝 심술이 나서 산하의 노래 솜씨를 조금 평가절하 중이었다.

선배이자 ‘스타의 목소리가 들려’ 프로그램 담당자인 심장원 피디를 통해 산하에게 OST 제안을 여러 번 넣어 봤지만 매번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연락조차 안 되냐고 속으로 구시렁대던 박 피디가 최선혜를 설득해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산하의 노래가 터져 나왔다.

바로 문화의 힘이 실린 마운틴R의 목소리였다.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이야…….”

이 노래는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힘들어하던 작곡가가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자식을 처음으로 맞이하고, 쌍둥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며 지은 노래였다.

부모의 마음이 가득 실린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단순히 생각하기로는 어린이날에 불러야 마땅한 가사 같았지만, 이 노래는 주로 어버이날에 불리고 있었다.

노래에 담긴 감성 자체가 ‘부모님이 이런 마음으로 나를 키워 주셨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산하가 문화의 힘을 싣고 슬픔까지 담아서 이 노래를 부르자, 박 피디는 어버이에 관한 감사함이 저절로 치밀어 오르고, 왠지 모르게 눈에서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지는 것에 화들짝 놀라 버렸다.

영상 채널에서 그의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는 ‘와 잘 부르는데’, ‘감정 좋고’였다면.

지금 현장에서 라이브로 산하의 노래를 듣는 박동구 피디의 심정은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는 감동이었다.

현장과 디지털 매체의 차이가 난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던 그는 최선혜 작가의 강한 주장을 떠올렸다.

반드시 하산해여야만 한다던 그 말.

그녀의 말처럼, 박동구 피디도 저 사람이 OST를 부르면 사극에 큰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 스타 작가는 듣는 귀도 다른 건가. 하산해가 이 정도 실력일 줄이야. 심 선배가 뻥 치는 줄 알았더니 정말이었네.

감동이 계속해서 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노래에 귀 기울이던 그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의식하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최선혜 작가는 어느새 볼펜 하나를 꺼내 들고 따닥 소리가 나도록 무척이나 빠르게 눌러대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흥분할 때 나타나는 버릇 중 하나였고, 박 피디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산하의 노래에 몰입한 상태였다.

이제 그 노래가 후반부로 치닫다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광장이 조용해지던 무렵, 몇 초간의 정적을 뚫고 시민들이 하나둘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이내 갈채와 환호성이 되어 서울역 광장을 울렸다.

“하산해! 하산해! 하산해!”

사이비 종교의 정점에 올라선 교주를 방불케 하는 모습에 최선혜 작가와 박동구 피디도 동참하여 산하의 예명을 연호하고 있었다.

그만큼 감동적인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눈을 마주친 작가와 피디는 눈을 빛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무언의 동의였다.

두 사람이 그렇게 합의점을 찾고 산하에게 어떻게든 제안을 넣어 보려고 할 때.

옛 서울역사 구석에서 때로 얼룩진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한 노숙자는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염병하네…….”

여태 노래도 잘 부르고 감동적이긴 했지만, 이번 노래만큼은 그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세상을 인지할 무렵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부모는 ‘개차반’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자신은 배를 곯더라도 자식 입에 먹을 걸 먼저 넣어 주는 게 부모 마음이라지 않던가.

하지만 그의 부모는 달랐다.

자식은 쫄쫄 굶기고 자기 배만 채웠으며, 학대까지 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고마움 따위는 전혀 갖고 있지 않던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빈손으로 집에서 탈출했다.

정서적으로 피폐한 상태였던 그는 아직 이십 대 중반인데도 노숙자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힘들게 자라서인지, 별달리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서였다.

덩치가 좋은 그는 노숙자들 사이에 군림하며 왕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아픔도 계속 가라앉아 뭐라도 할 마음이 생긴 것이었다.

거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나저나 이 짓도 슬슬 관둘까.

얼마 전 나름 친하게 지냈던 노숙자 김동권이 새 삶을 찾겠다며 사라진 후 처음으로 해 보는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김동권에 비해 그 결심이 느렸던 그가 뭘 해 볼까 궁리하던 그때였다.

이곳을 가끔 오가는 철학관 노인이 서서히 걸음을 멈춰 세우더니 광상익을 보며 말했다.

“허어…… 정말 여기 있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괜히 기분 나빠진 광상익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또 그 소리! 어이 노인장, 사람 신경 긁지 말고 가던 길 가쇼.”

그는 노숙자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배운 걸걸한 말투로 노인을 위협하는 척했지만, 상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이상해.”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재수 없게.”

침을 탁하고 뱉은 광상익이 이불을 둘둘 말아 챙겨 들고 다른 쪽으로 향하던 무렵이었다.

“거 젊은이, 관상이 좋다니까.”

나쁜 말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나쁘게 들렸다. 이따위로 살고 있는데, 뭐? 관상이 좋아?

뿔이 난 광상익의 입에서 말이 험하게 튀어 나갔다.

“지랄 마쇼.”

조선 시대 장군이 나타난다면 바로 그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골이 장대한 광상익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어딘가로 향했다.

* * *

서울역 공연 6회차가 끝났을 무렵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었다.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OST를 불러줄 수 없겠냐고 설득하던 최선혜 작가와 박 피디를 떠올린 산하는 그만 풉 웃고 말았다.

울었는지 눈두덩이는 퉁퉁 부은 데다, 마스카라가 번져 판다 모양새를 하고 있던 최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허락해 줄 때까지 찾아오겠다고 말하던 두 사람의 간절한 눈빛 때문에 긍정적으로 검토는 해 보겠다고 말해 주었던 산하는 오늘 7회차 공연을 위해 해가 지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이 시간이면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가 서울역으로 오는 노숙자가 제법 있다는 말을 공무원 민준호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클래식 기타까지 들고 현장에 도착한 산하는 시청에서 준비해 준 의자에 앉아 현을 튕겼다.

그리고 막 노래를 부르려던 찰나, 가까이 접근한 덩치 좋은 노숙인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보쇼.”

고개를 돌린 산하의 눈에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바로 광상익이었다.

“저요?”

“거기 당신 말고 누가 있소? 거 오늘은 얼마나 부를 거요?”

“글쎄요. 그건 왜요?”

“아, 나도 스케줄이 빡빡하니 그러지.”

노숙자가 밀고 들어오자 코를 막으며 멀찌감치 물러섰던 일반 시민들이 왠지 웃긴 광상익의 말투와 내용에 웃음을 터뜨리려다가 부리부리한 그의 눈초리에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들과 달리 산하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아마 한 시간쯤 부를 것 같네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덩치 좋은 자신이 눈을 부라리면 지나가던 개도 깨갱거리며 도망치는 판인데, 눈앞의 가수인지 뭔지 모를 사내는 속된 말로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심지어 태연하게 노래를 시작한다지 않는가.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긴장한 모습의 경호원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가 꽤 마음에 들었던 광상익은 피식 웃고는 어딘가에서 주워온 이불을 옆구리에 낀 채 건물 모퉁이로 향했다.

그곳에서 노래를 감상할 생각이었다.

그런 노숙자 광상익의 모습을 바라보던 산하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가 손에 든 어떤 물건에서 빛이 어리고 있었다.

뭐야 저거? 저런 게 왜 여기서 나와?

산하는 그의 이름이라도 알아두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28분 전, 광상익은 또 지나가다 말고 헛소리를 하는 노인 때문에 뿔이 났다.]

과거에서 얻어낸 정보를 살펴보던 그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노숙자 물건을 어떻게 만지지? 돈 주고 산다고 해 볼까?

“산하 씨? 무슨 문제라도?”

민준호의 물음에 산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시작할게요.”

* * *

이미 장도산이 작곡한 노래는 녹음도 끝내고 앨범 제작까지 들어간 마당인데, 동시 출시하려고 했던 배일상의 음반 커버용 수묵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산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아니야.’

이럴 때 문화의 힘이라도 딱 떠주면 좋겠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자 그는 이제 수묵화는 그만 그리고 공연이나 하러 가기로 했다.

오늘 부를 노래를 떠올리며 점검해 보던 산하는 문득 광상익이라는 노숙자를 떠올렸다.

일단 말부터 걸어봐야겠는데, 뭐라고 말을 걸지?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서 쉽지가 않겠어. 일단 미션 완료하고 주변 잠잠할 때쯤 슬쩍 말해 보는 게 좋겠지?

좋았어.

그의 물건을 만져 볼 방법을 떠올리던 산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울역 광장으로 향했다.

지금은 쌀쌀하다 못해 추운 아침.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한 산하가 마이크 앞에 서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여전히 슬펐으며, 가슴을 울렸다.

6회차 공연 당시 떠 준 문화의 힘 덕분에 노숙자 해산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명 자활률을 대폭 올렸던 산하는 현재 수치를 확인했다.

[현재 97%/100%]

오늘만 부르면 미션도 완성이라고 생각하던 산하가 저 멀리서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주저앉아 건물 외벽에 기대어 있는 광상익을 힐긋 바라보고 난 후 노래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난 후, 박수갈채를 받던 산하는 미션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션 - 노숙자 해산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슬픈 감정을 자유자재로 노래에 담아내는 솜씨가 90%로 상향되었습니다.]

[미션 완성으로 인해 재능 포인트 1점이 적립되었습니다.]

재능 포인트가 미션을 완료하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낸 산하가 새로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재능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야 상단에 1이라는 숫자가 새겨졌고, 그걸 바라보자 떠오른 메시지였다.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던 산하가 사용한다고 생각하자 곧바로 시야에 투명하면서도 작고 네모난 메뉴가 나타났다.

[문화의 힘 발동 - 1포인트]

[과거가 담긴 물건 찾을 확률 소폭 상승 - 2포인트]

[미션 힌트 - 3포인트]

[특별한 농장 3.3제곱미터 확장 - 5포인트]

- 18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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