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특급 신상 (4)
짧은 로딩 후 하나의 웹툰 에피소드 목록이 화면에 나타나자 그녀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그것을 주시했다.
엥? 달랑 두 개뿐이네.
보통 이것보단 분량이 조금 더 많아야 편집자로서의 감을 발휘할 수 있지만, 어차피 직업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고 생각한 강선희는 곧장 1화를 클릭했다.
그리고 ‘대체 어떤 악플이길래 자신에게 SOS를 요청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내용을 보기도 전에 END 키를 눌러 제일 아래의 댓글 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놀라 버렸다.
무슨 놈의 댓글이 이렇게 많아?
악플러 제대로 붙었다는 말을 토해내려던 그녀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며 다른 말을 내뱉었다.
“응!? 이게 뭐야?”
- 작가님, 저 매일 기다려요. 이 정도 퀄로 그리기 힘들다는 거 다 알지만, 제발! 플리즈!
- 설마 접으신 거 아니죠? 연재, 연재가 필요합니다.
- 끝장나는 만화에 왜 손님이 없어, 흐흐 나만 몰래 아껴 봐야지.
- 꿀잼이로다. 그런데 너무 감질나서 1년 후에 올게요. 그때는 완결이기를…….
물론 가끔 한두 개의 악플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찬사 일색의 댓글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 반응에 황당해하던 그녀는 대체 무슨 작품이길래 이러나 싶어서 곧장 웹툰 첫 화면으로 돌아갔다.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
제목은 시대에 맞도록 잘 지었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천천히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독자들도 그랬듯 스크롤을 마저 내리지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흑백이네?
가끔 1화는 이런 식으로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참작하던 강선희가 스크롤을 더 내렸다.
그러자 절대 초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림 솜씨가 나타났다.
적절한 펜 터치는 기본이요, 사람의 표정, 하다못해 배경에도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거기에 더해 거칠거나 역동적이어야 할 부분은 또 그 상황에 잘 녹여서 연출되어 있었다.
바로 쇠똥이의 수묵화 솜씨가 반 이상 배어 있는 탓이었는데,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라 할 만했다.
그녀는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스크롤을 아주 천천히 내리며 1편을 감상하고 2편도 마찬가지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뱉은 한마디.
“……뭐 하는 사람이야?”
수묵화를 그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만화 연재는 또 다른 분야였다. 둘 다 그리는 영역이라고는 하나 기법은 물론 작업 방식도 다르다는 말이었다.
한데, 만화마저 전문가 뺨치는 솜씨인 것을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던 그녀는 그의 만화에서 표운성의 향기를 느꼈다.
하지만 복제한 그림체는 아니었다. 영향을 받아서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한 것 같달까.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그녀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산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다 보셨어요?”
“네, 다 봤어요.”
“혹시 고칠 점이라도……?”
“우리 같이하는 거 어때요?”
“네?”
밑도 끝도 없는 발언 이후에 강선희는 흥분한 기색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이 정도 작품이면, 곳곳에 장치도 깔아 두고 스토리도 살짝만 손 보면, 이쪽 업계 확 잡아먹을 수 있겠어요. 세상에 어쩜 이런 솜씨를 속이실 수가 있어요? 전 생판 초보이신 줄 알았잖아요.”
“저 초보라고는 말 안 했는데…….”
“어쨌거나요. 지금 느껴지실지는 잘 모르겠는데, 옛날 만화부 재직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막 활활 타오르는 거 있죠? 돈 안 받을 테니까, 생각 한번 해 보세요.”
“그거 좋네요. 같이하죠.”
산하에게서 곧바로 긍정적인 답변이 터져 나오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강선희였다.
설득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외에도 구체적으로 물어볼 줄 알았는데, 지금 승낙부터 한 거야?
“지금 좋다고 하신 거예요? 제가 뭘 얼마나 같이 하자고 하는지 안 물어보세요?”
“그야 만화 연출이나 스토리나 다양하게 같이 상의해서 연재하자고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제가 알기로 강선희 편집자님은, 아 요새는 피디님이라고 하던가요? 굉장히 유능하신 분으로 알고 있거든요. 한때 표운성 작가님을 정상 반열에 올려놓으셨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녀는 산하의 갑작스러운 칭찬 공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겨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에이, 아니기는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직접 같이하자고 하셨으니까 도망가시면 안 돼요.”
이게 아닌데, 분명 내가 제안했는데 왜 제안받는 느낌이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선희에게 산하가 물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할까요?”
“그……그래요. 만나서 얘기해요.”
“네, 그럼 남은 하루도 잘 보내시고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은 강선희는 얼떨떨했다. 그 가운데서도 흥분을 감출 길이 없다 보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서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곧장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가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랬다.
표운성 사건 이후 이 분야의 일을 거의 내려놓고 살아왔지만, 그녀에게 만화 편집자는 천직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게 마음에 드는 만화여야 제 실력이 나오는 그녀였지만, 지금 강선희는 그런 작품을 만난 참이었다.
이 만화를 멋지게 수면 위로 끌어올려 보자고 다짐하던 그녀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산하의 웹툰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 * *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전광판에 영국발 항공편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뜨자 린다는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꽤 오래 못 본 아버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오는 아버지를 발견한 린다가 두 손을 들고 마구 흔들었다.
“아빠, 여기!”
“오, 린다. 제법 포동포동해졌구나.”
“뭐라구요? 만나자마자 인신공격하시는 거예요?”
“딸, 농담이다. 농담. 그래 한국 생활은 어떠냐?”
“말씀드렸던 대로 재밌어요.”
“섭섭하다, 어떻게 이 아빠를 홀로 놔두고 그럴 수가 있느냐.”
그는 장난으로 말했지만 린다는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
“아빠, 가요. 외할머니에게 인사도 드리고, 제가 진짜 엄청 우주적으로 맛난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
“음식? 딸,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난 한국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단다.”
“알아요. 하지만, 그래 봐야 아빠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일 테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냐?”
“맛보시면 알아요.”
아버지의 여행 가방을 낚아챈 린다는 곧장 공항 앞에 줄지어 선 택시를 타고 외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단독주택 앞에서 내린 린다가 트렁크에서 여행 가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빠, 여기에요.”
낯선 주택가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린다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그 찰나, 창가에서 영국인 사위를 기다리던 조복순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어? 할머니?”
“어디 보자. 우리 사위 인물 좋네…….”
보통 첫 만남에는 어색하게 인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조복순은 사위에게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친근하게 대했고.
린다의 아버지는 그 분위기를 읽고 활짝 웃으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어설픈 한국말을 내뱉었다.
“즈앙모늼? 판캅씁니다.”
“아이구, 우리 사위 한국말도 잘하네. 손녀야, 레…… 뭐시기라고?”
“레이몬드요.”
이후 장모와 사위는 잠시 린다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고, 조복순은 내 정신 좀 보라며 허둥지둥 말했다.
“자자, 레이몬드 사위 들어가자고.”
“잠깐만요. 할머니.”
“응? 왜? 아아…… 우리 사위 한식 별로 안 좋아한대서 따로 안 차렸어. 피자나 시켜 먹을까?”
“아니에요, 할머니. 저 일하는 곳 사장님이 오늘 점심 해 주신다고 했어요.”
그러자 조복순이 손녀를 나무랐다.
“저런…… 안 그래도 신세 많이 졌는데, 자꾸 그러면 어째. 그리고 한국 음식 안 좋아한다면서?”
할머니가 말릴까 봐 미리 말도 안 하고 있었던 린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래요. 그런데 사장님이 오늘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랑 아빠랑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사위를 기다리느라 점심도 안 먹고 기다리던 조복순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이미 그리하기로 했다는데 어쩌겠어…….”
“할머니 허락하신 거죠? 잠시만요.”
그사이에 여행 가방을 대충 현관 안쪽에 보관한 린다가 왠지 미안한 기색을 띠는 할머니에게 돌아와 팔짱을 꼈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 레이몬드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 아빠, 가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된장찌개 맛보여 줄 생각에 신이난 린다는 탭댄스라도 출 기색으로 발걸음을 경쾌하게 놀리며 산하네 요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그 시각.
새봄은 린다네 가족을 위해 엄선한 식자재를 살펴보던 산하를 보며 말했다.
“린다 오늘 기분 엄청 좋아 보였죠?”
“아마도? 이제 오실 때가 됐는데…….”
점심 장사가 이제 막 끝난 참이었고, 린다네 가족을 위해 휴게실도 비워 둔 산하가 바깥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사장님, 저 왔어요.”
“어서 와, 안녕하세요?”
조복순은 민폐가 많다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레이몬드는 인사를 하다 말고 된장찌개 특유의 향을 맡더니 티 안 나게 인상을 찌푸렸다.
음, 이게 무슨 냄새야.
설마…….
왠지 심각해진 레이몬드는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심정으로 딸의 뒤를 따라 휴게실로 들어서더니 영어로 말했다.
“딸, 이 아빠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르구나. 난 먹은 것으로 칠 테니 외할머니랑 많이 먹으려무나.”
“아빠도 참, 후회하시려고.”
“후회란 없다. 딱 냄새를 보아하니 이 냄새가 네가 대접하겠다는 그 음식 냄새 아니냐?”
“맞아요. 된장찌개 냄새 좋죠? 아…… 좋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딸에게 한국인의 피가 강하게 흘러서 이런 음식도 잘 먹는다고 여기던 레이몬드가 껄껄 웃었다.
“된장찌개? 딸, 이 아빠는 사양하마.”
“그럼 딱 한 입만 맛보세요. 그럼 저도 더는 안 권할게요. 사실 오늘이 첫날만 아니었으면 아빠한테 이렇게 여러 번 권하지도 않고 제가 다 먹었을지도 몰라요.”
딸이 일부러 장난을 치는 거라고 여기던 그가 말했다.
“그래그래, 난 괜찮으니까 오늘 내 몫까지 다 먹으려무나.”
“아빠, 후회하지 마요.”
“그럼, 난 후회 안 한단다. 그나저나 장모님이 방금 뭐라고 하신 거야?”
“아빠 관광이라도 시켜 줘야겠다고 하셨어요.”
“아하! 즈앙모늼 솨랑함니다.”
“그랴그랴.”
처음 만난 장모, 사위 두 사람이 린다라는 완충재를 통해 조금씩 친근감을 쌓아가고 있을 무렵 산하가 휴게실로 들어섰다.
물론 언제나 애용하는 철가방은 기본이었다.
“자, 식사 나왔습니다. 할머님 많이 드세요. 린다도 많이 먹고.”
린다는 사장님을 대신해 그의 인사말을 통역해서 아빠에게 들려주려 했다. 그 순간 산하의 입에서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가 쏟아져 나왔다.
“린다 아버님, 반갑습니다. 린다가 얼마나 착하고 똘똘한지 일을 참 잘해요. 아무쪼록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에 놀란 린다는 사장님이 영어를 저렇게 잘하셨다니 등등의 대사를 속으로 외치며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고, 산하는 휴게실 밖으로 사라졌다.
“린다, 네 보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모양이구나.”
“어…… 아닐걸요.”
“아니야? 그럴 리가. 딱 미국 원어민 발음이잖아. 그건 그렇고 자, 린다 아빠는 정말 괜찮으니 많이 먹도록 하렴. 외할머니께도 맛있게 많이 드시라고 전해 드리고.”
“네, 그래도 아빠 조금은 드세요. 아셨죠?”
딸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눈 질끈 감고 한입 정도는 먹어 주겠다고 마음먹은 레이몬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버지의 기색을 눈치챈 린다가 속으로 말했다.
한번 드시면 놀라실걸요.
이윽고 조복순이 숟가락을 들고 된장찌개를 떠서 처음 맛보자, 돌고래와 같은 기괴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레이몬드가 ‘장모님 괜찮으시냐’라는 말이 한국어로 뭐였는지 생각할 무렵이었다.
린다 또한 황홀한 표정으로 된장찌개를 게걸스럽게 퍼먹는 것이 아닌가.
딸의 식사예절이 영 엉망이 됐다고 생각하던 레이몬드는 나중에 한번 얘기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조복순을 관찰했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 전 이상한 소리를 내던 것과 달리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음…… 그럼 어디 나도.’
레이몬드는 린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냄새가 너무 마음에 안 들다 보니 손까지 부들부들 떨던 그는 된장찌개를 개미 눈물만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음.
음?
응!?
맛에 놀라 서양인 특유의 뾰족한 코를 씰룩이던 레이몬드는 곧바로 된장찌개를 조금 더 많이 떠서 입에 집어넣었다.
“오, 세상에…… 이런 맛이…….”
세상을 향해 두 팔 벌려 찬양이라도 부를 기색이던 레이몬드는 황급히 건더기를 비롯해 국물까지 듬뿍 떠서 또 한 번 맛을 보았다.
아아…… 된장찌개라는 한국 음식이 이런 맛이었던가.
이럴 수가.
이걸 왜 이제야 먹어 봤단 말인가.
놀랍다. 놀라워.
세계 여행을 여러 번 해 봤지만,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진미가 아닌가.
된장찌개는 영국 토종 사람인 레이몬드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버렸고, 린다는 정신없이 밥을 먹다 말고 아버지의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역시 사장님표 된장찌개. 아빠도 별수 없죠?’
그 와중에 레이몬드는 된장찌개를 마구 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도 없는 식사 시간이 끝나자마자 레이몬드가 린다에게 물었다.
“딸, 된장찌개가 이렇게 맛있다니, 놀랍구나.”
“보세요. 제 말이 맞잖아요. 그리고 이 맛은 사장님 된장찌개가 특별해서 그래요. 저 다른 곳에서 먹어 봤는데, 좀 그랬어요. 저도 여기 아니고는 잘 안 먹어요.”
“그래?”
이곳에서 장기 보존용 된장찌개라도 사서 돌아갈 예정이었던 레이몬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러면 곤란한데.
“아빠 왜요?”
“린다.”
“네, 아빠. 말씀하세요.”
“귀국 일정을 미뤄야겠구나.”
“네!?”
딸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레이몬드는 된장찌개의 황홀한 맛에 푹 빠져 일주일로 예정했던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아아, 된장찌개여.
* * *
린다의 아버지 레이몬드는 이곳의 룰을 지키겠다며 새벽부터 텐트를 치고 식당 앞에서 대기 중이었고, 이걸 알게 된 산하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린다에게 물었다.
“린다, 이래도 되는 거야?”
“걱정 마세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사장님 정말 외국 살다 오신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이상하다…….”
“이상하기는. 자자, 영업 준비 시작합시다.”
같은 시각.
산하가 연재 중인 플랫폼 승급 담당자는 오전 미팅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급이 높은 박재수는 부하 직원 중 한 명이 마지막으로 보여 준 웹툰을 살피며 눈을 크게 떴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내가 볼 때 이건 길게 가지 못해요.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이네요.”
저 인간이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웹툰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을 한 번 더 들여다본 부하 직원은 속으로 어이없어했다.
길게 못 간다고?
저 정도 작품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또 자기가 어떤 작가 키웠다는 둥 미친 소리 하려고 저러지?
하지만 자신이 무슨 힘이 있냐며 속으로 애만 태우던 그때, 박재수가 말을 이어 갔다.
“자, 다들 이해 못 하는 모양인데,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 알죠?”
“네…….”
“네.”
“그건 바로 이런 걸 두고 얘기하는 겁니다. 채색도 안 하는 무성의함, 연재 주기도 엉망인 불성실함, 거기에 무거워서 마음마저 불편한 스토리까지. 어느 하나 시대 흐름과는 맞지 않습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부하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눈여겨보았던 부하 직원 한 명은 황당하기만 했다.
이 작품은 그런 걸 다 뚫어 버릴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그가 내심을 토해내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과장님…….”
“자, 내 말 끝까지 들어요. 그래도 그림체는 나름 좋습니다. 순차적으로 승급은 하되, 본 계약 전에 앞서 내가 말한 바는 다 뜯어고치도록 만드세요. 스토리 가볍게 하고, 연재 주기 제대로, 채색도 하고, 아셨죠? 그럼 그럭저럭 쓸 만하겠어요.”
“그러다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리면…….”
박재수는 부하 직원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리는 최고의 플랫폼이에요. 계약 제의만 해도 좋아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그런데 어디로 갈까요?”
“……죄송합니다.”
잠시 후.
미팅을 끝내고 회의실을 빠져나오던 부하 직원은 토할 지경이었다. 박재수에게 혐오감마저 들었던 그는 봄봄봄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무척이나 아까웠다.
이러다가 계약하고 그 작품 망가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래도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냐고 생각하던 그는 봄봄봄이라는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 * *
웹툰을 연재해 보기 위해 신규 계정을 팠던 산하는 여전히 메일함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세 번째 연재분을 그리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서울 지역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자 통화 종료를 터치했다. 모르는 번호여서였다.
스팸일 거라고 생각하던 그가 웹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제 막 펜 터치 작업을 마무리하던 무렵이었다.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봄봄봄 작가님, 저는 현재 연재 중이신 플랫폼 담당자입니다. 메일함 확인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산하가 작업물을 저장하고 메일함을 열어 보았다.
<……승급 안내드리며, 더불어 현재 연재 중인…….>
재미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아 이런 메일까지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하하 웃던 산하는 메일을 천천히 훑어 내려갔고, 그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지더니 끝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뭐야 이거. 말만 정중하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잖아.
절대 이렇게 할 생각도 없었지만, 원래 이런 건지 궁금했던 산하가 강선희에게 전화를 걸어 메일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마저 어이없어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음…… 다들 바보만 모여 있나 보네요. 장님일지도 몰라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산하 씨 작품 엄청 괜찮아요. 그렇게 막 뜯어고치면 작품만 망가지니까 무시하시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시는 거 어떠세요? 툰툰월드도 괜찮고, MJ툰도 괜찮고…….”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하다가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싶었던 산하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장난스레 말을 내뱉었다.
“그냥 확 플랫폼 하나 만들까 봐요.”
“농담이시죠?”
“당연…….”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산하의 눈앞에 실로 오랜만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션 - 나 홀로 플랫폼]
[자신만의 플랫폼을 만들어 만화를 혼자 연재하고 일정 수 이상의 구독자를 끌어모으자]
[주의 - 식당 손님 및 지인에게 홍보 금지]
[현재 0/10,000]
[보상 - 표운성의 만화 재능 100%로 상향]
- 20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