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04화 (204/445)

204화 제 것입니다만 (1)

그러자 숟가락을 뱉어내며 ‘아버지, 이제 식사예절마저 버리신 겁니까’ 하고 불만을 토해내려던 윤호준이 멈칫했다.

아아, 태초에 콩이 있었나니.

향긋하고 구수하게 발효된 그 콩이 오랜 시간을 거슬러 너의 입안에 도착했노라.

느껴보아라.

그 어떤 맛이더냐?

천지를 뒤엎을 맛 아니더냐?

아직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

내면에서 이상한 울림을 전해 들은 윤호준은 자신의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 치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그런 음식인가 싶었던 된장찌개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맛깔난 데다 익숙하면서도,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듯 오묘한 맛이었다.

이곳에 어마어마한 산해진미를 가져다 놓아도 이 된장찌개 하나에 비견될 수 있겠냐고 생각하던 그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 이, 이게 대체 뭡니까?”

놀라는 아들을 힐긋 바라본 윤주상이 다시금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한다.

“된장찌개지, 뭐긴 뭐야? 맛봤으면 집에나 가.”

그의 퇴장 명령에 다급해진 윤호준이 테이블 위에 놓인 요리를 바라보며 항의한다.

“잠깐만요. 아버지, 아까 같이 먹자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흠칫했다. 아까는 별다른 생각 없이 말했고, 너무 시끄러워서 입 다물게 하려고 강제로 조금 먹이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혼자 먹기도 모자란데, 아들놈까지 뺏어 먹는다고?

위기감을 느낀 그가 요리를 자신의 앞으로 슬며시 끌어당기며 묻는다.

“안 먹는다며? 배부르다던 놈 어디 갔어?”

“아니 그게…… 에이, 모르겠다.”

손을 휙 뻗어 된장찌개가 담긴 그릇을 낚아챈 윤호준은 그걸 통째로 들이마셨다.

평소 식사예절 운운하며 고상한 척하던 아들놈이 이럴 줄은 몰랐던 윤주상이 황당한 표정으로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저, 저저. 다 먹어 버리겠네.

윤호준이 계속해서 그릇을 기울이고 된장찌개를 들이마시자 다급해진 윤주상은 말까지 더듬으며 외쳤다.

“이놈의 자식이…… 내 된장찌개를.”

음식 맛에 너무 심취한 윤호준은 아버지의 말은 듣지도 못한 채 된장찌개 국물을 들이켜더니 황홀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진짜 맛있다.”

“윤호준, 이럴 거야?”

“잠깐만요. 조금만 더…….”

“숟가락 가져와서 덜어 먹어.”

“네, 아버지 죄송합니다. 너무 맛있어서…….”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가 숟가락을 가져온 윤호준은 본격적으로 산하의 요리를 탐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고, 도대체가 보통의 맛을 가진 요리가 없었기에, 호준은 정말 태어난 이래로 정신없이 음식을 퍼먹었다.

특급 호텔이나 한정식집에서도 먹어 보지 못한 기가 막힌 음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새봄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퍼먹는 오빠의 모습이 코믹했던 나머지 속으로 풉 하고 웃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한참 후.

윤주상은 아들놈 때문에 배도 다 못 채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앉아 있던 윤호준의 관심사는 이제 주시완이 아닌 요리에 쏠려 있었다.

“아버지, 이거 하나같이 장난 아닌데요? 이런 걸 만드는 명장이 있었어요? 대체 이거 누가 만든 거예요?”

“봄이가 다니는 식당 사장.”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언급되자 윤호준은 재차 확인했다.

“네!? 뭐, 뭐라고 하셨어요?”

“다 알아들었으면서 모른 척하기는. 이제 먹었으면 가.”

“잠깐만요. 아버지.”

“왜 또?”

또 그 식당 사장이 누구냐는 둥 물어볼까 봐 귀찮기도 하고 염려도 되었던 윤주상이 얼른 아들을 내보내려고 하자, 호준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이걸 여태 혼자만 드신 겁니까?”

예상치 못한 항의성 질문에 당황한 윤주상이 멈칫하던 그 순간, 아들 윤호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게 있는데 왜 저는 한 번도 안 불러주셨어요?”

왠지 억울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들의 표정을 살피며 윤주상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허허허 크게 웃었다.

“아버지, 전 진지합니다.”

그 말에 웃음을 뚝 그친 윤주상이 물었다.

“왜 진지해?”

“이런 대단한 맛이라면, 사실 주시완이고 뭐고 필요 없지 않습니까? 몇 배로 잘 벌어서 돈으로 해치우면 그만이니까요.”

아들의 진지한 발언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윤주상이 신세 한탄하듯 말했다.

“그래? 우리 아들놈을 내가 잘못 키웠구나.”

“네?”

“이득이 될 것 같을 때는 간이든 쓸개든 다 떼줄 것처럼 굴다가, 더 큰 게 생기니까 헌신짝처럼 버리는 네 모습을 보거라.”

그게 왜 잘못이냐는 듯 윤호준이 물었다.

“……그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생리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걸 기업에만 적용했는지 궁금하구나. 그리고, 그토록 신의가 없다면 기업은 오래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해 본 게야?”

“……아버지.”

“그만 가 봐라.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자꾸나.”

평소와 다르게 무표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윤호준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섰다.

“예, 아버지.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봄이는 언제 들어갔대요?”

“아까 벌써 들어갔다.”

“아…… 그럼 가 볼게요.”

인사를 마친 그는 중문을 열고 사라졌고, 인상을 굳히고 있다가 서서히 입가를 씰룩이던 윤주상은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어휴, 큰일 날 뻔했네. 이건 나 혼자 먹어야지.”

아까부터 탁자 아래 숨기다시피 놓아 둔 천상주를 어루만지던 그는 얼른 술잔을 가져와서 한 병을 개봉했다.

그러자 향긋한 꽃 내음이 거실을 비롯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였다.

간다던 아들놈이 다시금 현관문을 밀고 들어와 중문을 드르륵 열었고, 윤주상은 얼어붙었다.

“……아버지? 이게 무슨 향입니까?”

“넌 또 왜 왔어? 이건 음…… 향수. 그래, 향수 냄새다. 거실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길래 뿌려 봤어.”

왠지 구차해 보이는 아버지의 변명을 듣고만 있던 윤주상이 되물었다.

“향수요?”

“그래, 향수.”

조금 전 엄청난 요리를 맛보고 나서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던 윤호준은 아버지의 전신을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아주 자그마하면서도 귀여워 보이는 도자기 병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버지 그건……?”

“…….”

말 없는 아버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윤호준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여태 가업을 잇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왔던 삶을 보듬어 주기라도 하는 듯, 향긋하면서도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꽃향기가 그의 후각을 지배했다.

저 드높은 천상에 꽃밭이 있다면 바로 이 향이리라.

향기롭고 또 향기롭도다.

그러한 가운데 이토록 편한 마음은 무엇인가.

그는 천상주의 향을 맡기 위해 숨을 몇 번 들이쉬다 말고 주방으로 척척 걸어가더니 술잔을 하나 가져와 윤주상에게 내밀었다.

“왜, 뭐?”

“아버지, 저도 한 잔 주세요. 다 눈치챘어요.”

아, 결국 아들놈에게 이것마저 뺏기게 생겼구나. 된장찌개는 왜 먹여서…….

잘 숨겨 놨었는데.

속으로 엉엉 울던 윤주상이 손을 벌벌 떨며 천상주를 아들의 잔에 따라 주었다.

“……그거만 마시고 가.”

“예, 아버지.”

고개를 돌려 천상주를 입안에 들이부은 윤호준이 눈을 부릅떴다. 속이 화한 것으로 보면 독한 증류주인데, 맛은 보통의 술과 비교조차 불가했다.

향에 이어 맛까지 이 정도라니.

“아버지! 이건 또 어디서 나셨어요?”

“……식당 사장이 만든 거야.”

“예!? 또요?”

“또는 무슨, 얼른 가.”

윤호준은 집 앞에서 새봄이 그저 해 보는 말인 줄로만 알았던, 우리 사장님만 한 신랑감이 흔한 줄 아느냐던 여동생의 대답이 귓가에 맴도는 걸 느꼈다.

그게 장난이 아니었나 본데?

대체 그 식당 사장은 뭐 하는 사람이야? 식당 사장이 맞긴 한 거야?

가만 있어 봐.

그럼 이거 만든 사람이 우리 봄이랑 결혼하면……!?

무언가를 곰곰이 떠올려보던 윤호준이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 잠깐만요. 이렇게 맛난 술 혼자 드시면 벌 받아요. 같이 마셔요.”

이건 아무리 아들이라도 나눠 주기 싫었는데.

이 찰거머리 같은 아들놈. 그래, 먹어라 먹어.

다시 한번 속으로 눈물을 흘린 윤주상이 술병을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윤호준의 술잔 바닥에 개미눈물만큼의 주황빛 천상주가 따라졌다.

“와…… 아버지. 이건 너무…….”

“시끄러우니까 그냥 이거 한 병 들고 집에 가.”

속으로 흐뭇하게 웃던 윤호준은 아버지가 내민 술병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일단 그러죠 뭐.”

천상주 한 병을 소중히 품에 간직한 윤호준은 다시 현관 중문을 열고 사라졌고, 윤주상은 가슴 어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다행이다.

한 병으로 막았어.

그때였다. 다시 현관 중문이 열리더니 윤호준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바람에 왠지 모르게 열 받은 윤주상이 소리쳤다.

“왜 또!?”

“아버지, 제가 생각해 보니까…… 역시 술은 아버지랑 같이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

“……호준아.”

“예, 아버지.”

‘아들아, 넌 오늘 진상이구나’라고 말하고 싶었던 윤주상은 그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다른 말을 던졌다.

“내일 일도 해야 하니 조금만 마셔.”

“네, 아버지.”

이날 밤 천상주 절반 이상을 아들에게 넘겨 줘야 했던 윤주상은 잠자리에 눕기 전 자신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다가 억울해하며 잠들었다.

그 손은 아들에게 된장찌개를 떠먹인 손이었다.

* * *

미래의 대단한 만화 플랫폼이 될지, 아니면 혼자 연재하다 사그라들 개인 블로그가 될지 모르는 웹툰 연재용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브리즈 툰’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기분 좋게 만화를 볼 수 있는 웹툰 연재처라는 뜻에서 산하가 붙인 이름이었다.

그는 완성된 홈페이지에 접속해 둘러보다 말고 손가락을 튕겼다.

이참에 문화콘텐츠 기업을 미리 만들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기에 먼저 웹툰을 편입시키고 다른 것도 천천히 집어넣으면 좋겠다고 여기던 산하가 동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동식이냐?”

“그래, 동식이다.”

왠지 퉁명스러운 대답이 그에게로 날아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친구를 겪어 본 산하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너 지금 웃고 있었지?”

“……내가? 아닌데?”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냐? 이 자식 이거 왜 웃고 있어? 복권이라도 당첨됐어?”

“하여간에 눈치는 빨라서.”

“뭔데?”

“별건 아닌데, 지금 파는 곳 말고 다른 오픈마켓 담당자한테서 먼저 연락 왔다. 한마디로 입점 제의지. 저번에 뭐 좀 문의하려고 연락할 때는 시큰둥하더니.”

“그래? 잘됐네.”

“그게 다야?”

“그럼 뭐? 춤이라도 출까?”

“……유치하기는. 왜 전화했어? 아, 생산 때문에?”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고. 문화 관련 기업 하나 만들어 볼까 하는데, 시간 나면 법적 절차 좀 밟아 줘.”

“엔터 말하는 거야?”

“그래,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연예인 활동 포함해서 문화적인 건 이쪽에서 하려고.”

“그러니까 일인 소속사 말이지? 뭘 그렇게 거창하게 말해.”

“어허, 동식이 이놈. 내가 말했지? 처음부터 크게 그려야 뱀 대가리는 된다고. 확장성 염두해서 치밀하게 만들려고.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할게.”

“알았다. 이름은 정해 놨어?”

“주식회사, 풍류.”

“뭐?”

“우리 조상님들이 또 풍류를 아셨지 않냐? 세계로 뻗어 나갈 문화기업 이름은 풍류로 낙점이다.”

“그거 어디 술집 이름…….”

“됐고, 내일이나 모레 공장 가서 보자.”

“예예, 박산하 씨.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래요. 하 전무.”

“하…… 뭐?”

“농담이다. 끊는다.”

“야, 야! 박산하.”

친구의 다급한 부름을 뒤로하고 통화를 종료한 산하는 풍류라는 이름을 되뇌어 봤다. 향후 세계적으로 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만든 풍류라는 이름.

과연 이 기업이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던 산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다 말고 노트에 끄적거려 놓은 웹툰 줄거리를 살펴보았다.

이제 4화까지 연재된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은 주인공이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멈춰 있었다.

<3편 - 종놈을 살살 구슬려 창고를 겨우 탈출한 주인공은 코를 드르릉 골며 잠들어 있는 형의 방으로 숨어 들어가 책자를 찾아본다.

하지만 아무리 뒤적여도 책자는 나오지 않았고, 실망한 그가 방을 빠져 나가려던 그때 무쇠 화로에 담겨 불에 타다 만 책자가 눈에 띄는데.

‘설마…….’

곧바로 약간 불에 타 버린 책자를 집어 든 주인공에게 ‘환상주’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기뻐하던 그는 세상에 환상주라는 광오한 이름을 붙인 사람이 대체 누굴까 궁금해하다가 책자를 품속에 집어넣고 몰래 그곳을 빠져나가며 생각했다.

이참에 그냥 이 집안을 탈출해서 나 홀로 인생을 살아 볼까.

하나 이 시대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느낀 그는 당분간만 더 이 집에 머물기로 하며 창고로 돌아간다.>

<4편 - 주인공은 거의 이틀 만에 풀려나는데, 계급 사회에서 서자로 차별받으며 삶의 목적이라는 걸 가져본 적도 없었고, 가질 생각조차 못 해 봤던 그의 눈이 빛난다.

그 이유는 책자에 나와 있는 환상주라는 술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적이 생긴 것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그 와중에 자신이 술을 훔쳤던 장소의 주인인 밀주 암상과 마주친다.

이 암상은 비위생적으로 적당히 만든 밀주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밀주방에 공급하는 고급술도 거래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소주를 도둑맞아 열 받은 상태였다.

그 밀주방 암상 우두머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난다.

“네놈은 그때 그!? 잡아라!”

도망치는 것 하나는 선수였던 주인공은 곧장 저잣거리 뒤편으로 물건을 넘어뜨리며 도망치던 끝에 간신히 위기를 넘겼나 싶어 한숨을 돌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주인공은 섬뜩함을 느끼며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리는데…….>

줄거리를 쭉 살펴본 후 총 네 편을 플랫폼에 업로드한 산하는 이번 미션의 제한을 떠올렸다.

[주의 - 식당 손님 및 지인에게 홍보 금지]

그렇다면 포털 사이트 광고나 영상 채널 광고를 넣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담당 편집자가 되어 주기로 한 강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디님, 잘 지내셨어요?”

“아니요.”

“어디 불편하세요?”

“말도 마세요. 길 걷다가 빙판에 미끄러졌어요.”

“저런…… 병원은요?”

“그냥 조금 쉬면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플랫폼은 다 만들어졌어요?”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홍보를 조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야 산하 씨는 쉽잖아요. 연예인이니까. 기자들한테 슬쩍 흘리는 건 어때요?”

“그런 방법은 왠지 안 쓰고 싶어서요. 연예인빨로 광고한다는 말 듣기도 싫고, 그냥 정석적인 방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정석이요? 어떤?”

“일단 플랫폼 광고부터 작게 하나 하려고요.”

허리를 주무르다 말고 눈을 반짝 빛내던 강선희가 상체를 끙 소리를 내며 일으켰다.

“역시, 산하 씨는 예술가 기질이 있어요.”

“네?”

“부가적인 도움을 배제하고 유입만 시켜서 오로지 작품성 하나로 승부하겠다. 이거 맞죠?”

미션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선희가 말한 승부욕도 함께였던 산하는 그것에 관해 생각해 보느라 잠시 말이 없었다.

“당황하셨구나. 그런데 그거 나쁜 거 아니에요.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멋진 자세라고나 할까요? 그런 자세 전 너무 좋다고 봐요. 굿!”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이렇게 가치관이 올바른 작가님과 함께하게 된 제가 감사하죠. 아 참, 사이트 주소 보내 주세요.”

“네, 바로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앱은 안 만들어요?”

“그건 천천히 의뢰하려고요.”

“아하.”

그 후 강선희는 플랫폼이 깔끔하고 모바일 웹이나 PC 전부 너무 좋다는 톡을 산하에게 보내왔다.

같은 시각.

툰툰월드 사무실에서는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대리님, 대체 어딜까요?”

“그러게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배 아파 죽겠어요. 어디서 데려갔으려나.”

“아무래도 세 곳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럴 거예요. 아쉽네요. 그중에 우리가 그래도 나을 텐데. 일단 조만간 노출 될 테니까 지켜봅시다.”

“네, 그나저나 진짜 배 아픈 곳은 따로 있겠네요.”

“그렇겠네요…….”

그들이 말하던 배 아픈 곳에 소속된 박재수는 대체 어떤 플랫폼에서 연재 중이던 작가를 훔쳐 갔냐며 한창 벼르고 있었다.

“어디야 대체.”

* * *

세상에는 이윤을 추구하는 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생성되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중에서 살아남아 제대로 된 수익을 내는 업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웹툰 업계도 비슷했다. 그중에서도 신생 플랫폼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좋은 작품도 드물었다.

HO엔터테인먼트 자회사에서 근무하는 최목찬은 이런 신생 업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형 플랫폼 위주로 살펴보는 중이었다.

요즘 지식재산권 활용 바람이 불어오자 회사 내부에서도 소설이나 만화를 영화나 애니메이션 또는 드라마로 만드는 것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눈에 딱 하고 들어오는 게 없었다.

머리를 긁적거리던 그는 포털 사이트에서 웹툰으로 검색어를 넣었고, 요즘 어느 업체에서 뭘 영상화했는지 뉴스를 살펴보았다.

그러던 도중 오른편에 떠 있는 웹툰 업체의 작은 광고를 발견했다.

<브리즈 툰>

묵직한 글자가 전부인 웹툰 광고 배너를 잠시 바라보던 최목찬은 내용을 보고 픽 웃었다.

<많은 것도 필요 없다. 단 하나의 작품만으로 승부한다.>

너무나 광오해 보이는 광고에 잠시 비웃던 그는 시선 끌어모으려고 별짓을 다 한다며 배너를 클릭해 보았다.

대체 뭘 어떻게 해 놨는지 구경이나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접속한 사이트가 너무나 썰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품도 달랑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겨우 네 편.

너무 어이가 없었던 최목찬이 소리 내어 말했다.

“이런 미친…… 광고비가 아깝다. 이 등신들아. 뭐야 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는 사이트를 그만 빠져나가려다가 웹툰 제목이 눈앞에 아른거려 멈추고 말았다.

어그로 제대로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한번 보고 가지 뭐.

최목찬은 곧장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을 클릭했다.

- 20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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