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제 것입니다만 (4)
이메일을 보낸 그는 희희낙락하며 다른 보고서는 한편으로 휙 밀어놓고, 봄봄봄이라는 작가의 작품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설 팀장은 이놈이 왜 이리 웃고 있나 싶어 슬쩍 다가왔다.
“송혜성?”
“…….”
“혜성아?”
“……네? 팀장님 부르셨어요?”
“너 왜 그렇게 해맑게 웃고 있어? 사람 불안하게.”
“어, 맞다. 팀장님 저 작품 하나 발견하고 영상화 제안서 보냈어요.”
설덕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제안서를…….”
“누구 맘대로?”
“……그러게요? 저도 모르게 그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송혜성에게 삿대질했다.
“너…… 너너 내가 신신당부했지? 선 보고 후 조치! 팀 회의, 상부 보고 다 어디로 빼먹었어?”
송혜성은 생각했다.
팀 회의 같은 걸 하면 뭐 하고, 상부에 보고하면 뭐 해. 밤새 작성해서 올린 보고서 중에 제대로 통과된 게 있기나 하던가.
매번 이런 이유 저런 이유 들이대면서 반려되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데.
여기까진 좋다 이거야. 윗선에서 쓸모없다느니 뭐니 지껄이면서 해체한다는 소문도 똑똑히 들었다고.
보고서 중에 5%라도 통과시키고, 성과 확인하고 그런 소리를 하든가. 죄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려시키는데, 무슨 성과가 나오겠어?
팀장님은 열도 안 받으시나. 이 팀 완전 쓰레기 취급인데.
에이 몰라.
자르든가 말든가. 이번에 잘리면 미국으로 돌아가든가 해야지.
그러나 그는 내심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송혜성을 보자 마음 약해진 설 팀장은 에휴 한숨을 내쉬고는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혜성아.”
“네…….”
“내가 누누이 얘기했잖아. 의욕이 앞서는 것도 좋지만 절차대로 하라고. 연락 넣어 놨는데 위에서 영상화 안 된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 작품 작가한테 뭐라고 할래?”
그의 질문에 송혜성이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요. 팀장님.”
“뭐?”
“이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영상화 혁신팀이라고 만들어 놨으면 그 팀에 권한을 어느 정도 줘야지. 보고서만 올리고 허락이나 주야장천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혁신이 이뤄집니까? 윗선에서 최신 트렌드에 맞춰 볼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매번 옛날 방식에 고리타분한 거만 얘기하다 반려하고. 성과가 있네 없네. 팀장님, 저는요. 진짜 이런 거 보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 이 방송국 안 망하는 게 용하죠. 이게 무슨 혁신…….”
얼굴이 하얗게 탈색된 설 팀장이 주변을 잽싸게 살펴보더니 후다닥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미치겠네. 송혜성,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도대체 넌 누가 데려왔냐?”
“웁우우웁(설 팀장님이요).”
“어휴, 이 사고뭉치 송혜성, 나까지 날아가겠네. 넌 왜 날이 갈수록 겁이 없어지냐?”
“으으읍읍(그런 거 안 키워요).”
“그래, 내가 원죄인이다. 참아야지 어쩌냐?”
“…….”
설 팀장은 송혜성의 눈을 한번 노려보다가 손을 뗐고, 송혜성은 침을 퉤퉤 내뱉는 시늉을 했다.
“팀장님 손 씻으셨어요?”
“아, 이 자식은 정말…….”
“안 씻으셨구나. 그런데 팀장님 제가 살짝 주워들은 게 있는데, 우리 해체되고 드라마국 새로 편성해서 나간다는 게 사실이에요?”
“……너 그래서 막 나가는 거냐?”
“……진짜인가 보네요. 그럼 우리 낙동강 오리 알이네. 그래서 이젠 보고서고 뭐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백 퍼센트 반려구나.”
끄응 신음을 흘리던 설덕수가 말을 돌렸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대체 누구한테 이메일 보냈어?”
언제 우중충했느냐는 듯 환하게 웃어 보이던 송혜성이 얼른 산하의 작품 첫 화면으로 돌아가 그 웹툰을 가리켰다.
“이 작품 연재 중인 플랫폼 공식 메일로 보냈어요. 연락 수단이 이거랑 게시판뿐이어서요.”
“여긴 뭐야?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신생 같아요.”
“그래? 어디 보자…….”
화면을 잠시 살피던 설덕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혜성아, 이거 대체 뭐냐? 다음 장 더 넘겨 봐.”
“죽이죠? 여기 앉아서 보세요.”
혜성이 자리를 비켜 주자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의자에 앉은 설 팀장은 1편부터 쭉 감상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5편에 접어들었다.
<5편 - 가만히 있다가는 이대로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이 어렵사리 입을 연다.
“이보시오…….”
“닥쳐라 쥐새끼. 모가지 날아가기 싫으면 따라와.”
잠시 후 빛 한점 안 드는 밀실로 끌려간 주인공은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등잔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뻐드렁니가 인상적인 사내가 내부로 들어서서 묶여 있는 그를 노려보았다.
“어이, 쥐새끼. 너 용감하다? 소주를 훔쳐? 열 배로 갚을 테냐, 아니면 죽을 테냐?”
“살려 주시오. 그럼 은혜는 꼭 갚겠소.”
“살려 달라는 놈치고 은혜 갚은 쥐새끼 못 봤다. 너 어디 사는 누구야?”
“상막골 웅삼이올시다.”
“웅삼이? 처음 들어 보는 놈인데, 넌 뭐 하는 놈인데 겁도 없이 술을 훔쳐? 죽고 싶어 환장했어?”
주인공은 조금 더 머리를 굴려서 아예 다른 사람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예, 죽고 싶소.”
“뭐? 이거 미친놈 아냐?”
그는 어릴 적 어미는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비는 군역이 어쩌고저쩌고, 혼자 된 몸으로 살아가는데 재수가 없으려니 모든 게 쫄딱 망해서 죽고 싶은 마음인데, 가업으로 물려받은 술 빚기가 끊길까 두려워 아직 숨이 붙어 있노라고 거짓말했다.
그러자 암상 두목은 그의 사연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술 빚기에 관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가전 비법이 있다 하였느냐?”
“예. 그 향은 천 리를 갈 지경이온데 황홀하기가 그지없고, 그 맛은 또 혀를 농락하여 안 마시고는 못 배길 지경이니, 이 술을 이름하여 천하제일주라 부릅니다.”
침을 퉤 하고 뱉은 암상 우두머리가 그를 노려본다.
“듣고 있던 내가 미친놈이지.”
“한 번만 믿어 주시오. 내가 그 술을 만들어 보이면 믿으시겠소?”
암상 두목은 자신에 찬 그의 표정을 보며 생각에 빠지고, 주인공은 제발 넘어가 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암상 우두머리가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저 새끼 데려와.”
그 후 주인공은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은 밀주를 만들어내는 장소였다.>
웹툰을 끝까지 다 본 설덕수가 고개를 돌려 송혜성에게 물었다.
“이거 제안서 보냈다고 했지?”
“네.”
“스토리가 아직 초반부이긴 한데, 이 정도면 상부에서 허락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너 잘했다는 거 아니다? 조심해?”
“네. 그런데 제가 볼 땐, 안 떨어질 것 같아요. 요새 PPL 덕지덕지 처바르는데, 사극이니까 안 된다고 할걸요? 뻔해요.”
“……나도 알아 인마. 그래도 이건 기대해 볼 만해.”
* * *
산하는 간만에 짬을 내서 공식 이메일을 확인했다. 플랫폼 개설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스팸 메일이 그득한 가운데 눈에 띄는 메일이 있었다.
바로 QBS방송국에서 온 메일이었다.
호기심을 표출하던 산하는 메일을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내용은 길디길었지만, ‘네 웹툰 좋아 보이는데 영상화 한번 하자, 아래 전화번호로 꼭 연락 주었으면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고작 다섯 편 만에 이런 제안을 받게 된 산하는 신기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아직 홈페이지 유입도 얼마 없는데 그중에 방송국 관계자가 있다니. 어디, 이야기나 들어 볼까.
그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메일에 기재된 전화번호로 연락했다.
“네, QBS 영상화 혁신팀 송혜성입니다.”
“안녕하세요? 메일 주셔서 연락드렸는데요.”
“메일이요? 혹시 어떤 작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작가님 작품 너무 감명 깊게 봐서 메일 남겼습니다. 혹시 만나서 대화 가능하실까요?”
“이번 주는 제가 너무 바빠서 안 될 것 같은데, 다음 주는 괜찮습니다.”
“네, 그럼 다음주에 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미팅 약속…….”
비슷한 시각.
HO엔터테인먼트 자회사 HO스튜디오 사무실에 갑자기 난입한 곽기훈이 대표실에서 보고서를 받아 읽고 있었다.
“곽재호 대표님.”
“네, 말씀하십시오.”
“이거 말고 더 없습니까?”
“마음에…… 안 드십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런 작품으로는 세계는커녕 국내 일부 연령층도 제패하기 힘들겠어요.”
곽기훈, 네가 뭘 알아, 뭘 아냐고! 왜 갑자기 찾아와서 사람 복장을 뒤집어 놓는 건데!
빨리 할아버지 말대로 경영이나 하고, HO엔터는 내놔.
속으로 불만을 토해내던 곽재호가 겉으로는 흐흐 웃었다.
“형…….”
“스읍…….”
“네,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제 한 달 준다. 그때까지 이 지경이면…….”
곽기훈이 스산하게 웃으며 목 긋는 시늉을 하자 곽재호가 버럭 화를 냈다.
“형! 진짜 이럴 겁니까? 저도 열심히 한다고요.”
“쉿! 성과도 없는 게 목소리만 커서는, 날려 먹은 돈이 얼마인 줄이나 알아? 작년에 우리 기록 갈아치웠지? 관객 23만 명?”
“…….”
“나 간다.”
대표실을 빠져나온 곽기훈은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며 복도로 빠져나가다가 한 사원의 모니터 화면을 보고 멈칫했다.
뭔가 사람을 확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잔뜩 긴장해 있던 최목찬이 침을 꿀꺽 삼키다 말고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괜찮아요?”
“네, 컥…… 괘,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저 만화는 뭡니까?”
기침이 겨우 가라앉자 최목찬이 곽기훈의 시선을 따라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어…… 그게,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웹툰 작품 중 하납니다.”
“그래요? 어디 좀 봅시다.”
“네? 네.”
곧 최목찬의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웹툰을 살펴보던 곽기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급기야 무릎을 탁 내리쳤다.
“그래요. 바로 이겁니다.”
“네!?”
“이런 걸 영상화해야지! 왜 보고서에 이건 없어요?”
“어…… 아직 편수가 얼마 안 돼서 지켜보던 중입니다.”
“지켜볼 새가 어디 있어요? 누가 채가기 전에 당장 연락부터 넣어요.”
“네!?”
“내 말 못 알아들어요? 대표한테는 내가 말해 둘 테니까 바로 연락해요.”
“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그런데…….”
“뭡니까?”
“여기 작가한테 따로 연락은 힘들어서요. 플랫폼 전화번호는 없고 메일 주소뿐이라,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일단 보내 봐요.”
곽기훈이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가운데, 최목찬은 다급히 메일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상화 전문 스튜디오에서……>
* * *
[‘연계 미션 - 난 빠른 게 좋아’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웹툰을 그릴 때마다 작업 속도에 가변성이 주어집니다.]
며칠간 잠도 줄여가며 고퀄리티의 웹툰 두 편을 그려낸 산하는 미션 완료 메시지를 확인 후 마치 좀비 같은 기색으로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만세!”
그가 만세를 부르는 이유는 다름 아닌, 맘에 드는 두 편이 나와서였다.
이미 5편을 강선희에게 보여 주고 칭찬을 받았던 산하는 6편까지 완성한 지금, 웹툰 그리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다음 편은 어떻게 연출해 볼까 궁리하던 산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일 오전에는 방송국 관계자와 미팅이 있기에 얼른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 미션 완료로 얻은 능력부터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산하는 잠은 조금 미루고 작업용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웹툰을 위해 새로이 마련한 최신 사양의 컴퓨터는 소음 하나 없이 순식간에 부팅되며 바탕화면을 드러냈다.
곧장 그림을 그리고자 하던 산하는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당일 웹툰 작업 속도가 1.2배 향상됩니다.]
오, 이런 거였구나.
어디 한번 그려 볼까.
슥슥슥 간단한 스케치를 해 본 산하는 전보다 확연히 빨라진 듯한 작업 속도에 대만족했다.
이러다가 혹시 2배도 나오고 하면 작업 속도가 엄청 빨라지겠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던 산하는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영상화 혁신팀 회의실.
송혜성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진짜 반려할 줄은 몰랐는데요.”
이젠 설덕수도 지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넋두리하듯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니, 진짜 이걸 왜 반려해요? 사극풍이고 아직 스토리도 짧아서 두고 보자는 게 말이 돼요? 두고 보면 남이 다 채가고 말지. 이건 제가 볼 때 그냥 억하심정이 있어서 막 돌려보내는 거예요.”
“진정해라. 혜성아.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진정 못 해요. 작가님도 이해 안 가실걸요?”
그러자 다크서클 가득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던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한때 드라마 공모전 수상자 중 한 명이었으나 수상 작품 중 단 한 편만 영상화되고 자신의 작품은 빛도 못 본 채 묻혀 버린 기억을 더듬고 있던 와중에 이 대화를 들었다.
“전 이해돼요.”
“네!? 어째서요?”
그간 별말 없던 그녀도 내심을 토로했다.
“사장이고 임원이고 대충 자리만 지키면서, 방송국 내에 어쩌다 잘 되는 프로그램으로 자기 치적 쌓기만 바쁘잖아요. 시장이 급변해서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지금 이 팀도 대충 외부에 보여 주기식으로 던져 놓은 거 아닐까요? 아마 뭘 하든 관심도 없을 거예요. 팀장님이나 혜성 씨, 그리고 저 보세요. 각 국에서 좀 튄다 싶은 못난이로만 엄선해 놨잖아요.”
혜성이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인정해요.”
한숨을 푹 내쉬던 설덕수가 모두에게 말했다.
“자자, 우울한 얘기 그만들 하고. 혜성이 너 그 작가님한테 죄송하다고 잘 얘기해.”
“……네.”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내쉬던 송혜성은 오늘 만나기로 한 작가에게 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미안하기만 했다.
괜히 주체못하고 막 질러서 엄한 사람에게 피해만 주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습기만 했다.
잠시 후.
작가님 헛걸음만 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어 미안해하던 송혜성은 산하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여보세요?”
“네, 저기……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지금 어디신가요?”
“아, 약속 장소로 가는 길입니다.”
아직 출발 전이면 출발 안 하셔도 된다며 용서를 구하려 했던 송혜성은 아무래도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따가 뵙겠다고 말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약속 시걱이 다가올 무렵, 송혜성은 택시에서 내려 한 카페를 바라보았다.
이곳이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였다.
‘어떻게 말씀드리지…….’
너무 미안해서 아직도 뭐라고 사과하면 좋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속으로 갈팡질팡하던 그는 카페 유리문을 바라보다가 한 남성이 카페를 향해 걸어오는 걸 보게 되었다.
그런데 카페 입구에서 마스크 벗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낯익은 사내였다.
“어!? 잠깐만…… 하산해?”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지금 약속 장소에 사과하러 온 것조차도 잊고 부리나케 하산해에게 달려갔다.
방송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하산해를 언제 또 만나 보겠나 싶어서였다.
근처에 도착해서 막 사인을 부탁하려던 그는 멈칫했다. 내가 미쳤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사인을 받아.
속으로 자신을 구박하던 송혜성은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사인받기를 관두고 한적해 보이는 개인 카페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고 손님이라고는 하산해와 수다를 떠는 여성 두 명뿐인 실내에서 약속 시각까지 기다렸다.
‘왜…… 안 오시지.’
혹시 먼저 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던 그는 연예인은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 남녀 두 명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연인인 듯 알콩달콩 수다를 열심히 떨고 있는 그들 중에 작가가 있을 리는 없었다. 미팅을 하러 오면서 저러지는 않을 테니까.
‘어쩌지…….’
지금 전화하면 안 그래도 미안한데 괜히 빨리 오라고 독촉하는 것으로 들릴까 봐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그는 십 분을 더 기다렸다.
무슨 사고라도 난건 아닐까 생각해 보던 송혜성이 막 전화를 하려던 그때였다.
봄봄봄이라는 작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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