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13화 (213/445)

213화 다 팔렸어요 (5)

그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합작법인 결사반대, 무효라는 심정으로 비판의 말부터 내뱉었다.

“에이…… 이거 뭡니까? 채색도 안 하고…….”

“이야, 곽재호 대표님 채색이라는 단어도 알고, 유식해졌다?”

화면에서 눈을 뗀 그가 항의하듯 말했다.

“……이러실 겁니까?”

“그러게 왜 수박 겉핥기로 보고 비판부터 해? 끝까지 보고 나서 말해. 네가 자꾸 이러니까 명예회장님이 저 녀석은 본질은 못 보고 빙빙 돌다 끝난다고 하시지.”

자신의 약점을 찔린 재호가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것처럼 기훈을 노려봤다.

“형!”

“아, 알았어. 쏘리! 됐지?”

나 아직 화 안 풀렸다는 듯 콧방귀를 흥 하고 뀐 그가 다시금 웹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기훈의 충고를 들어서인지 제법 진지한 태도였다.

본질은 무슨, 내가 치사해서 제대로 봐준다. 어디 보자…… 헉!? 이거 그림체 뭐야? 죽이네?

오! 선 하나하나가 예술인데, 이걸 하산해라는 가수가 그렸다 이 말이지?

스토리도 재미있네…… 오 좋다.

조금 전만 해도 합작법인에 거부를 표명하던 재호는 어느새 웹툰에 푹 빠져 버렸고, 내리 여섯 편을 다 보고 난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와, 형 이거 뭐예요? 이 사람 가수 맞아요? 본업 웹툰 작가 아니고?”

“그냥 둘 다 본업이라고 해 두자. 어때? 합작할 만하지?”

그의 질문에 반항심이 생긴 재호는 내심과 다르게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형. 여기 담긴 느낌을 제대로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없기는, 하다 보면 어떻게든 방법 나온다. 지금까지 쪽박 찼으니까 이걸로 대박 한번 내보자. 오케이?”

“그 쪽박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잘해. 나 간다.”

“어디 가는데요?”

“회사 들러서 일 좀 미리 해 놔야 내일 된장찌개 먹으러 갈 시간 생기지.”

“아직도 거길 가요? 형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나이 들면 입맛도 바뀐다더니, 유학파인데 된장찌개가 웬 말입니까? 전에는 질색하더니.”

“그러게나 말이다. 너도 갈래?”

“아니요. 전 된장찌개 별로예요.”

“그래, 그냥 예의상 말이나 한번 해 본 거야.”

“형!”

“어허, 너 아까부터 호칭이 불량하다?”

흠칫한 재하가 항의하듯 말했다.

“대표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예의상이라니.”

“어차피 안 갈 거면서 뭔 말이 많아? 나 진짜 간다.”

옷걸이에 걸쳐놓았던 양복 상의를 입은 기훈이 대표실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재호는 웹툰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죽이긴 죽이네…….”

* * *

엘리펀츠 구단주 곽태성은 구단장 송인호와 마주 앉아 야구 경기에 관해 대화 중이었다.

“시범 경기를 보아하니 조금 삐걱거리는 것 같던데, 이래서야 정규 시즌이 잘 되겠습니까?”

“이번에 이적한 선수들과 아직 융합이 잘 안 돼서 그런 것으로 파악 중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나저나 송 단장은 우리 경기 시구자를 누구로 했으면 좋겠어요?”

“역시 박산하 씨 아니겠습니까? 팬이랑 선수들도 그때 산하 씨가 시구한 뒤에 경기 잘됐다면서 원하는 눈치고요. 역시 징크스라는 게 무섭습니다.”

그의 대답에 곽태성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염두에 두신 분이라도? 혹시 임민기 씨?”

“그건 아니에요. 저도 박산하로 생각 중이었어요. 단지 그 사람 강속구가 생각나서 그러죠.”

그러자 송인호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 대단하긴 합니다. 구질이나 구속만 봐도 프로 그 자체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못내 아쉬워하던 곽태성은 괜히 영입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뭐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안 한다고 하니. 그리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 없어요. 이제 슬슬 구속도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타고난 어깨를 가졌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이죠. 어쨌거나, 그렇게 진행합시다.”

“네, 그럼. 산하 씨한테 조만간 연락 넣겠습니다.”

“그러세요.”

그 후 구단장 송인호가 뒤돌아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곽태성이 중얼거렸다.

‘아깝다…….’

프로야구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간다고는 생각도 못 하던 산하는 식당에서 이태화 MD와 다음 홈쇼핑 방송에 관해 논의 중이었다.

“천상주는 한번 풀었으니까, 다른 것도 생각해 봐야겠네요.”

이 사람이 지금 천상주 때문에 문의 게시판이 난리도 아닌데 다른 걸 풀긴 뭘 푸냐고 생각하던 이태화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냥 천상주로 한 번 더 진행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 모든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천상주는 술 좋아하시는 분에 한정된 사은품이 아닌가 해서요. 천상주에 더해서 추가로 더 드릴 만한 게 없을까 하는 의미였습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오해하시게 말을 한 것 같네요. 어쨌거나 괜찮은 사은품으로 생각해 두신 거 없으세요?”

“글쎄요. 김치냉장고 한번 걸어볼까요?”

“그거 꼭 상대 팀 따라 하는 것 같은데요? 추가 사은품으로 이건 어떠세요?”

천상주에 이어 또 어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올까 궁금해하던 이태화 MD가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물었다.

“어떤……?”

“10분 안에 완판 시, 하산해 자선 콘서트 개최.”

사상 유례없는 자선 콘서트 사은품 선언에 이태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코……콘서트요?”

“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이태화는 산하의 상품이 잘 팔리게 되면서 그에 관해 조금 더 알아본 바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는 방송가에도 잘 나타나지 않지만, 콘서트는 거의 멸종 수준이라는 걸.

효과는 제법 있겠지만, 콘서트는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아니야, 어쩌면 소비자 이목을 확 끌어당길 수도 있겠는데?

이 정도면 화제성도 불러일으키겠고,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어.

“태화 씨?”

“아, 네. 엄청 파격적이고 신선한 사은품이네요. 그런데 10분은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하하 웃던 산하가 답했다.

“저도 딱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진행하는 건 아니라서요. 제가 콘서트 할 만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10분 안에 완판되지 않더라도 판매 유발 효과는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다 10분 안에 다 팔리면요?”

“해야죠.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하긴, 제 생각에도 그 안에 다 팔릴 수량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만약에 콘서트 하게 되시면 모든 경비는 우리 사측에서 제공하는 거로 건의해 보겠습니다.”

판매자와 플랫폼제공자 둘 중에는 판매자가 을일 경우가 더 많지만, 어느새 입장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던 산하가 미소 지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감사하죠.”

하하 웃던 이태화 MD는 10분보다는 더 걸리겠지만 훨씬 빠르게 완판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그 후 회사에 돌아온 그는 기획안을 작성하고 사장에게 결재를 맡으러 갔다.

보통은 사장과 직접 대면할 일이 없지만, 이번 팀 경쟁으로 인해 큰 관심을 두게 된 SL 홈쇼핑 사장이 직접 보고를 올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이태화 MD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세요.”

어색한 걸음걸이로 사장실 내부에 들어선 이태화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 어려워 말고 여기 앉아요. 그래, 경쟁은 할 만합니까?”

“네, 사장님.”

“역시 젊은 패기가 좋아요. 다음 판매 전략은 어떤 건가요? 아아, 걱정 말아요. 이 얘기는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그게…… 사은품을 하나 더 내걸 예정입니다.”

“추가 사은품? 그런데 왜 그렇게 이상한 표정이에요? 해외여행 티켓이라도 걸기로 했어요?”

“아닙니다. 콘서트 개최를…….”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듯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사장이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콘서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추가 사은품으로 콘서트를 열어요? 내가 똑바로 들은 겁니까?”

“네, 맞습니다. 일단 여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홈쇼핑 사장은 그가 내민 결재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허허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10분 안에 완판 시 자선 콘서트를 한다는 거군요.”

“네, 사장님.”

“그리고 그 비용은 우리가 댄다?”

“네, 그렇습니다.”

그의 대답에 옆집 아저씨처럼 사람 좋게 웃던 홈쇼핑 사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거 이태화 MD가 기획했어요?”

“……아니요. 박산하 씨가 기획하셨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제외하겠습니다.”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던 홈쇼핑 사장이 다시 한번 허허 웃었다.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그 친구, 대단한 친구네요. 아주 신선한 발상이에요. 이대로 진행하세요.”

이태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사장님, 콘서트 경비까지 수락해 주신 겁니까?”

“수락하고 말고가 뭐 있어요? 딱 보아하니 그럴 일도 없겠네요. 20분으로 했으면 거절했겠지만, 10분은 어림도 없는 시간이죠.”

그는 펜을 들어 사인을 휘갈기더니 결재서류를 이태화에게 돌려주었다.

“그럼 이번 달 경쟁, 지켜보겠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감사합니다.”

사장실을 되돌아 나온 이태화는 ‘이러다가 10분 안에 다 팔리면 사장님이 화내시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다가 ‘에이 그럴 리 없겠지’ 하며 고개를 젓고 사무실로 향했다.

* * *

드디어 산하의 세 번째 홈쇼핑 방송이 시작되었다. 쇼호스트 한영미는 상대에게 어딘가 반한 듯 눈을 반짝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자 오늘 사은품 여러분들의 요청에 힘입어 또 준비했는데요. 하산해 씨?”

“네. 오늘 사은품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천상주 스무 병인데, 또 한 가지.”

“또 한 가지요? 사은품이 추가로 더 있나요?”

“네, 십 분 안에 완판 달성 시 하산해의 자선 콘서트 개최하겠습니다.”

민채은 팬카페 부운영자이자 산하의 팬카페에도 일반회원으로 한발 걸치고 있는 옥수연은 방송을 지켜보다 말고 심장 어림을 부여잡았다.

쿵!

방금, 방금 자선 콘서트라고 했지? 그렇지?

세상에, 마상에 그럴 수가.

아니, 이 하산해님아. 갑자기 그런 공약을 내걸면 어쩌냐고요.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흥! 실패할까 봐 그런 거죠?

두고 봐요.

올림픽에 참가한 백 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책상 위에 놓아 둔 스마트폰을 향해 뛰어간 그녀는 곧바로 카페에 접속해 게시글을 남겼다.

<비상! 비상비상! SL홈쇼핑 ㅇㅊㅎ 된장찌개 완판 시 하산해 자선 콘서트 개최!!!>

- 어머, 진짜요!? 저번에 한 세트 샀는데, 추가 구매하러 갑니다!

- 미친! 돌격 앞으로!

- 여러분 8분 남았어요. 빨리 빨리요. 우리 힘을 보여 줘요.

- 저 두 세트 구매요.

- 휴, 샀다. 우리 어머니 하산해 씨 국악 팬인데, 등짝 스매싱 당했어요. 빨리 안 산다고.

- 더 빨리요.

- 기다려 보세요. 비상 연락망 가동했어요.

그 시각, 하산해 팬카페에 가입하고 정모까지 참가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던 이유순은 콘서트는 고사하고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는 하산해에 대해 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아니, 왜 안 하고 안 나오시냐고요.

그나저나 오늘 홈쇼핑에 또 그거 파신다고 하던데.

아쉽지만 그거라도 볼까.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은 그가 이제 막 홈쇼핑을 보려던 시점이었다.

톡 하나가 날아왔다.

<긴급! SL 홈쇼핑 사은품, 10분 안에 완판 시 하산해 자선 콘서트 개최>

미친, 뭐라고? 사은품으로 자선 콘서트를 한다고?

와, 십 분은 너무 한 거 아냐?

그래도 이건 사야지. 빨리 사야지. 이렇게라도 콘서트 하면 좋겠다.

이유순은 손가락을 놀려 홈쇼핑에 접속하자마자 화면을 살폈다. 진짜 사은품으로 자선 콘서트를 한다는 문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를 누르려 했다.

그렇게 딱 1세트를 구매하려던 그는 에라 모르겠다며 0을 하나 더 붙였다.

같은 시각, 곽기훈은 야근을 자청하고 서류에 사인하던 도중 문이 쾅 하고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 팀장, 불만 있으면 말로 해요.”

그곳에는 숨을 헐레벌떡 내쉬는 이서찬이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이 ㅇㅊㅎ 된장찌개 열 세트 구매하라고 하셔서…….”

기훈은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뒤늦게 산하가 홈쇼핑에 출연해서 상품 판매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 팀장에게 말해 두었었다.

방송 시작하면 열 세트 구매하라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문을 다 부술 것처럼 밀고 들어오다니.

“그거랑 지금 이 행동이랑 무슨 관련이 있죠?”

“그게, 관련이 있습니다. 대표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뭔데요?”

왠지 모르게 언짢아하는 곽기훈의 표정을 바라보던 이서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산하 씨가 10분 안에 완판 시 자선 콘서트 개최 공약 거셨습니다만…….”

눈을 동그랗게 뜬 기훈이 귀를 후볐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다시 말해 봐요.”

“10분 안에 완판 시 자선 콘서트를 한다고…….”

“자선 콘서트?”

“네, 대표님.”

콘서트 좀 하자고 했더니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흘러갔는데, 사은품으로 콘서트라고?

그래, 산하 네가 날 잊은 모양인데.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완판? 그거 내가 만들어 주지.

한 3초 정도 말이 없던 기훈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몇 분 남았습니까? 남은 거 전량 구매해요.”

“네!? 전량이요?”

“전량 구매해서 직원들도 나눠 주고 기부도 하고 그럽시다. 뭐 해요? 십 분이라면서요?”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그가 전량 구매 명령을 내리던 그 시점, 천상주와의 사랑에 푹 빠진 김배욱은 와이프와 나란히 앉아 홈쇼핑 방송을 잠시 지켜보다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홈쇼핑 앱에 접속했다.

“여보, 몇 세트 사?”

“그거 맛 괜찮다니까 두 세트 사요.”

“진짜지?”

“그럼요. 천상주 사은품으로 준다잖아요. 혹시 알아요? 우리가 당첨될지.”

“꼴랑 스무 병인데?”

“그래도 한번 해봐야죠.”

“알았어. 어!?”

자신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와이프는 아랑곳없이 TV 화면을 가리키는 김배욱.

“망했다.”

“뭐가 망…… 어머. 벌써 다 팔렸어요? 말도 안 돼.”

울상을 짓는 와이프를 바라보던 김배욱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만 깜빡거렸다.

* * *

“사내 방송입니다. 자, 오늘은 우리가 조금 늦었죠. 우리 두 사람도 일하다 왔거든요. 양해 부탁드리고요. 아 참, 희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홈쇼핑 영상 채널 구독자 수가 이천을 돌파했습니다. 대연 씨, 이제 우리 사내 방송 인기가 좋아지는 것 같죠?”

“그렇습니다. 우리 입담에 푹 빠진 전 사원들이 아주 그냥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거죠.”

“네, 우리 회사 임직원 2천 명 안 되니까 자화자찬 거기까지 하시고요. 경기 지켜보겠습니다. 임동희 MD, 이태화 MD 오늘도 열띤 경쟁을 벌…… 완판! 이태화 팀 완판 떴어요! 잠깐만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금 판매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죠?”

“시……십 분 됐습니다.”

“세상에, 이건 미쳤어요. 십 분! 십 분 완판! 우리 SL 홈쇼핑 창립 이래 이런 기록이 있었던가요?”

“당연히 없었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체 이 구매력이 어디서 오는 거죠?”

“잠시만요. 사은품으로 10분 안에 완판 시 자선 콘서트 개최! 하산해 씨 파급 효과가 이 정도였습니까? 무려 1만 세트를 10분 만에 완판시키다니요!”

“제가 볼 때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다방면에 팬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고…….”

“침착한 적하지 마세요. 저 지금 심장이 벌렁벌렁 합니다. 이러다가 임동희 MD 진짜 지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보셨죠? 박산하! 이분이 큰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비슷한 시각 완판 소식을 접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차 확인하던 쇼호스트 박세진이 입을 열었다.

“……네, 저도 착각인 줄 알았습니다만, 다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완판! 완판입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산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되네?’

이 사은품을 기획한 장본인은 ‘별수 없지 뭐, 콘서트 해야지’ 이러고 있었지만, 이태화와 경쟁 중인 임동희는 오늘은 기필코 이겨 보겠다며 방송 현장을 지켜보다가 이 소식을 접했다.

“네!? 뭐라구요?”

“완판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이제 고작 10분이에요. 10분!”

“쉿! 소리 죽여주세요. 일단은 랭킹이 실적 위주니까 너무 열 내지 마시고요.”

“하…… 지금…… 아닙니다.”

이번에는 이길 거라고 희망찬 생각을 이어 가며 열심히 상품을 기획했던 임동희 MD의 표정이 무참히 구겨졌다.

* * *

SL 홈쇼핑 사장은 산하의 ㅇㅊㅎ 된장찌개가 판매되던 날 휴가를 즐기며 골프를 치고 다음 날 오전 출근했다.

뒷짐을 진 채 느긋한 표정으로 다음 골프는 누구랑 칠까 생각하며 사장실로 향하는 문을 연 그는 비서실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했다.

그는 바로 이태화 MD였다.

“아, 이 MD 이렇게 일찍 무슨 일입니까?”

이태화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울듯 말듯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외쳤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 214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