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저게 사람이야?
여태 안 떠서, 오늘도 안 뜨려나 싶었던 문화의 힘이 발동하자 산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 사이, 시타석에 자리하고 있던 전직 홈런왕 석동원은 익숙한 배트 표면을 쓰다듬은 후 오늘의 시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늘은 그저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시타자 역할일 뿐이었지만 현역 시절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팬도 많고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많은 활약을 했던 석동원.
그걸 증명해 주듯,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 과거의 팬이 근처 관중석에서 응원 중이었다.
“석동원, 한 방 날려!”
“시원하게 홈런 가자고!”
“은퇴한 지 얼마 안 됐잖아. 홈런왕이 뭔지 보여 줘.”
“석동원, 가자!”
그 응원을 듣고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떠올리던 그는 배트를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사실 시타자 제의를 받았어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사업에 힘을 불어넣기 좋다는 주변 의견을 듣고 이곳에 나온 참이었다.
그 주변인 중에는 친척과 가족도 있었다.
“형, 나가서 홈런 한 방 제대로 날려 줘. 그럼 은퇴했어도 석동원 이름 석 자 제대로 기억날 거야. 광고 효과 좀 보자고.”
“맞다. 석원아. 이거 공짜 광고 아니냐?”
“오빠, 인터뷰하면 기자가 은퇴 근황 같은 거 물어보지 않을가? 그럼 새로 시작한 사업 이야기도 살짝 흘려 봐.”
“여기서 홈런 크게 날리면 다른 TV 프로그램에서도 관심 많이 가질지 몰라.”
야구 경기는 몰라도 사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는 팔랑귀 그 자체였던 석동원은 그 부추김에 시타자로 나선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 상대가 나름 인기 가수이자 강속구 시구자였기 때문이었다. 예전 개막전 당시 시구 영상을 보고 감탄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좋은 먹잇감이었다.
상대가 강해야 홈런이 더 부각될 게 아닌가.
게다가 가족이나 친척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광고 한번 크게 해 보자.’
현역 시절처럼 손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은 석동원은 현역 시절의 징크스가 돼 버린 바지에 손바닥 문지르기를 시전하고 방망이를 고쳐잡았다.
같은 시각.
응원석에 앉아 있던 야구팬들은 내기 중이었다.
“야, 석동원이 홈런 친다 1번, 헛스윙한다 2번. 골라. 오늘 지는 사람이 1차, 2차 다 쏘는 거다?”
“오케이! 난 1번, 야! 석동원이 누구냐? 홈런왕, 홈런의 신, 야신으로 불렸던 사람 아니냐? 아쉽게 개인사로 메이저 못 가서 그렇지, 장난 아니잖아. 그런데 은퇴한 지 얼마나 됐다고 홈런을 못 쳐? 하산해가 150 이상으로 던져도 홈런 오케이야!”
“팬 중의 팬 납셨네. 왜? 석동원한테 결혼하자고 하지 그랬냐? 아, 맞다. 너 남자지?”
“헛소리하지 마. 난 팬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일 뿐이야.”
“에라이, 인간들아 가지가지 한다. 고르기나 골라. 나도 1번.”
“나도!”
“나도 홈런으로 간다.”
“야, 그래도 죄다 1번 고르면 내기가 성립되냐? 한 명이라도 다른 거 해야지?”
“쟤 아직 안 골랐어. 넌 다른 거 골라.”
“어, 맞다. 너 빨리 골라. 늦었으니까 다른 거로.”
“혼자 다 뒤집어쓸 일 있어? 이 내기 무효, 무효!”
“아 진짜, 재미없게. 다들 이럴래?”
목소리가 씩씩하다 못해 걸걸한 여성 한 명이 무효를 외치다 말고 다른 내기를 제안했다.
“야! 그럼 내기 두 개로 가자.”
“두 개? 뭐?”
“하산해 오늘 150 넘는다, 1번. 150 못 넘긴다, 2번. 이거랑 석동원이랑 혼합해서 두 개 다 맞히는 사람은 쏘는 거 빼주고 왕 대접받기. 나머지는 쏘기.”
“야야, 하나만 해. 복잡하게.”
“그래, 넌 옛날에도 수학도 아니고 산수 싫어했지? 어떻게 이런 간단한 것도 싫어하냐?”
“야! 언제적 얘기야?”
“사실은 사실이잖아. 잔말 말고 고르기나 해 봐. 맞다. 하나 더 추가. 만약에 한 개도 못 맞히는 사람 나오면 걔가 다 쏘기.”
“잠깐! 그거 콜인데? 콜!”
“나도 콜!”
그 후 고민하던 다섯 명의 친구 중 세 명은 석동원 홈런, 하산해 150km/h 이상을 골랐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 중에서 남성 한 명이 장고 끝에 석동원 홈런과 하산해 150km/h 이하를 골랐다.
‘못 먹어도 고’라고 외치면서.
그러자 이 혼합 내기를 제안한 여성은 석동원 헛스윙, 하산해 150km/h 이상을 골랐다. 조금 전 고른 한 친구와 완전히 반대되는 예상이었다.
“와, 너 그러다 독박 뒤집어쓴다. 아무리 그래도 석동원이야.”
“뭐래, 까봐야 알지.”
“냅둬. 쟤 하산해 팬이잖아.”
“내기가 걸려 있는데도 팬질이 먼저냐?”
그녀는 친구 말에는 아랑곳없이 두 손을 꼭 잡고 투수 위치에 서 있는 하산해를 바라보았다.
“난 확신해. 우리 하산해님은 반드시 날 도와주실 거야.”
“어우 느끼해. 너 눈빛 왜 그래? 하산해가 그렇게 좋냐?”
“시끄러. 우리 하산해님 모욕하면 죽는다?”
“야구 싫어하는 네가 여기 오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웃기시네. 석동원 나온다고 보러 가자던 인간이.”
그들이 아웅다웅하던 그때, 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산하가 야구공 실밥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 후, 실제 야구 경기 거리만큼 떨어진 포수미트를 노려보던 그의 눈이 독수리처럼 예리하게 빛나더니, 와인드업 자세를 취하고는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손가락과 실밥이 거칠게 마찰하며, 공이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포수미트에 빡 소리를 내며 꽂혔다.
그 소리는 참으로 경쾌하면서도 무게가 있었다. 그건 포수의 놀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날아올 공에 집중하던 석동원은 헛스윙은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뭐, 뭐야…….
방금 뭐야?
뭐가 이렇게 빨라?
나 벌써 녹슬었나?
이 정도 직구에 반응 못 할 정도야?
속으로 어이없어하던 그는 야구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모든 관객과 선수까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게 못내 이상했던 석동원은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떴다.
“……말도 안 돼.”
그가 황당함과 어이없음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무렵, 몇 초간 조용하게 유지되던 관중석에서 고함이 터졌다.
“와! 미쳤다!”
“사람이야?”
그 함성에 화들짝 놀란 중계석에서도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말까지 더듬으며 중계를 이어 갔다.
“하, 하산해! 164km/h, 지금 방금 164km/h라는 구속을 선보였습니다. 관중도 심판도 선수도 다들 놀라서 얼어붙었는데요! 예상조차 못 한 수치라서,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김상수 해설위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만요. 저도 지금 믿기지 않는데요. 예전 개막전 당시 159km/h도 장난 아니었지만, 이 구속 역시 절대 우연으로 나올 수 없는 구속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145km/h만 넘겨도 강속구라고 평가하는데요. 이게 정말 유소년 야구조차 거치지 않은 일반인 손에서 나온 구속인지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네요.”
“네, 김상수 해설위원 말씀대로 방금 하산해 씨가 던진 구속은, 아시아, 서양 현역 선수 중에서도 흔하지 않다 못해 희귀한 구속입니다. 164km/h! 말이 164km/h지, 현재 한국 프로야구 현역 투수 중에 이 정도 구속 던지는 선수가 전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다 못해 까무러칠 대사건입니다!”
그들이 산하의 구속에 관해 침을 마구 튀겨가며 멘트를 날리던 어느 순간 중계석에 새 소식이 들어왔다.
“맞습니다. 이건 정말 시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아, 지금 방금 새로운 소식 들어왔는데요. 각 구단 측도 놀라서 스피드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점검해 달라는 요청이 관계자 측에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경기가 조금 지연될 것 같습니다만. 일단 점검 결과 나온 후에 상세한 이야기 이어 가도록 하고요. 지금 하산해 씨 팬들로 추정되는 분들 열광의 도가니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죠. 야구팬이 아닌 분들도 하산해 씨 보려고 일부러 시간 내서 자리해 주셨을 텐데요. 이곳에 온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들 하실 것 같습니다.”
“네, 그만큼 오늘 하산해 씨가 선보인 공은 정말 상상도 못 한 놀라운 구속이었습니다. 아직 점검 결과 나오려면 멀었을까요? 딱히 점검하지 않더라도 150km/h 이상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맞습니다. 하산해! 야구계에 몸을 담았어도 대성했을 인물, 관계자들이 모두 혼란한 가운데 가수 하산해, 엘리펀츠 마스코트 안내를 받아 지금 막 손을 흔들며 퇴장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군요. 가수 하산해 그런 구속으로 공을 던져 놓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살짝 웃기만 하네요. 그러고 보니 석동원 선수, 왜 저렇게 가만히 서 있죠?”
“아무래도 과거 현역으로 뛰었던 선수이니만큼 더 놀랍지 않겠습니까? 예상치도 못한 구속이 튀어나왔으니까요.”
“하긴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하산해 씨의 선출 기록이 없습니까?”
“제가 아는 한 절대 없습니다.”
“그렇군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점검 결과 나왔습니다. 아무 이상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현장에 스피드건 몇 대를 추가 배치한다는군요.”
“사실 고장이라고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믿을 수가 없네요. 하산해 씨 공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지금 팬들도 ‘한 번 더’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예전 개막전처럼 한 번 더 갈 수 있을까요? 잠잠해지지 않는 열기에 관계자들이 모여서 회의 중인 것 같습니다.”
같은 시각, 아까 내기를 했던 여섯 명의 친구들은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진짜 미친 거 아냐?”
“164km/h? 실화냐?”
“아니 미친, 어떻게 구속이 더 올라가? 내려가는 게 정상 아니야?”
“그러니까, 석동원 쫄았나 봐. 어떻게 방망이도 안 휘두르냐.”
“쫄긴 누가 쫄아. 예상 못 해서 저러는 거지.”
“변호 그만하시고요. 오늘 나 혼자 이겼지? 여왕 대접해라. 쏘는 것도 잊지 말고.”
“개뿔, 석동원 방망이 안 휘둘렀잖아. 다들 틀렸으니까 더치로 간다.”
“웃기시네. 헛스윙이나 안 휘두른 거나 그게 그거지.”
“우기지 마.”
“야, 여기 다 틀린 사람 있잖아. 뭘 걱정해.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못 먹어도 고라며?”
결과를 알자마자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사내가 눈을 슬며시 떴다.
“아우 졸려. 무슨 일 있었냐?”
“너 도망칠 생각하지 마? 여기 증인이 몇 명인데.”
“아, 이 치사한 새끼들.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벼룩 간은 말 안 해도 빼먹을 거니까, 여왕님 해 봐.”
“……꺼져.”
“죽을래?”
그 순간 수많은 팬의 요청으로 산하의 시구가 다시 한번 시행되기에 이르렀고, 그는 무려 연속으로 세 번이나 던지게 되었다.
그 바람에 산하는 약간 초조한 마음으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6분 남았습니다.]
자자,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던집시다. 시간 가요. 시간 가.
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시구는 속개되었고, 경기를 시작해야 하니 조금 빠르게 끝내자는 관계자의 말에 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앙코르를 받고 진행된 투구는 시타자 없이 연속 세 개를 던지게 되었다.
“네, 하산해. 와인드업! 던졌습니다. 160km/h! 정말 믿을 수가 없는 구속입니다.”
“또 빠르게 공 던집니다. 이번에는 163km/h”
“자, 이번에는…… 165km/h! 보이십니까? 165!! 하산해, 오늘 165km/h의 어마어마한 구속 보여 주며 시구를 마무리하고 손을 흔듭니다. 지금 관중들은 난리도 아닙니다. 이렇게나 안정적인 강속구, 말이 되는 일입니까?”
“네, 정말 대사건입니다. 160 초중반의 스피드도 놀랍지만, 안정적인 폭투가 더 놀랍습니다.”
이즈음, VIP 관람석에서 이 시구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펀츠 구단주 곽태성은 조금 전만 해도 이게 현실인가 싶어 눈을 비비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일어서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떻게든 영입해야 했어.
얼마를 주건, 뭐가 됐건, 그랬어야 했어.
저게 미친, 정말 인간이야?
어떻게 구속이 더 빨라져?
165km/h?
완전 야구 천재였잖아.
진짜 돌겠네. 어떻게 영입하지?
기훈 형한테 말해 볼까?
폼이고 뭐고 다 완성된 것 같으니까, 바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산하가 탐나다 못해 엘리펀츠로 반드시 영입하고 싶었던 곽태성은 그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마찬가지의 심정인 엘리펀츠 야구팬들은 이날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각에도 인터넷상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 전 예전 개막전 때, 나이도 있어서 얼마 못 쓸 텐데 뭘 영입하냐고 했는데. 그 말 취소요.
- 엘리펀츠가 우승하려면 하산해 영입해야 함. 곽태성! 우리 백억 주고 데려오자.
- 곽태성 듣고 있나? 엘리펀츠에 필요한 인재라고.
- 하산해를 데려와서 새로운 역사를 쓸 시간이다.
- 보고 있나 하산해? 엘리펀츠가 널 기다리고 있다.
- 엘리펀츠, 지금 시구로 슬슬 간 보면서 밑밥 깐 거지? 그렇다고 해 줘요.
- 믿습니다. 곽태성. 하산해 영입 승인합니다.
- 엘리펀츠의 희망, 하산해!
같은 시각, 쓸쓸히 퇴장한 전직 홈런왕 석동원은 한없이 투덜거렸다.
진짜 저 인간 미친 거 아냐?
165km/h가 말이 돼?
그러고 보니, 내 사업 광고는?
차라리 나오지 말걸.
이미지만 구겨졌잖아.
누가 나가라고 했어!?
* * *
<하산해, 화들짝 시구가 벼락 시구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야구 천재 하산해, 시구에서 165km/h 기록>
<가수 하산해, 시구로 현역 뺨 때려>
<하산해 강속구 덕분인가, 엘리펀츠 간발의 차로 승리>
하루가 더 지났지만 하산해의 시구에 관한 이야기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몸살을 앓았다. 특히 하산해의 시구 구속이 150km/h를 넘느냐 안 넘느냐로 다투던 네티즌들은 가관이었다.
- 하산해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 줄도 모르고…….
-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렇죠? 하산해님?
- 그럼요. 165km/h 정도는 던져야 30대 아닙니까?
- 전 30대지만 165km는/h커녕 100도 못 던지는데요?
- 진짜 예명 값하네요. 더 배울 게 없어서 하산해 버린 거 맞네.
- 아, 현장에서 봐야 했는데.
- 선수로 나오면 좋겠다. 한 시즌이라도.
- 저도요. 불꽃 강속구 경기에서 보고 싶어요.
- 하산해님! 다 때려치우고 야구계에 투신합시다. 그런 강속구로 가수가 웬 말입니까?
- 옳소! 그거 재능 낭비!
이렇듯, 야구를 좀 안다는 이들이면 난리를 피울 정도로 산하가 뿌렸던 강속구는 대단했다.
현역 선수들도 재능이 받쳐 주고 피나는 노력을 해야 이룰 수 있는 경지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호들갑을 떨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기자들이었다.
그중에는 산하에게 사전 인터뷰를 요청해서 150km/h라는 대답을 얻어냈던 명인스포츠 기자 김세정도 있었다.
실제로도 150km/h 근처로 예상했던 그녀는 160을 넘겨 버린 산하의 시구에 아직도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식당에 들이닥친 참이었다.
“하산해 씨, 150이라고 하셨잖아요? 165는 대체 뭐예요?”
“그러게요.”
“너무해요.”
“하산해 씨, 정말 야구계로 데뷔하실 마음 없습니까? 지금 야구팬들, 특히나 엘리펀츠 야구팬들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 후로, 산하는 대답할 기회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질문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야구 재능을 감지한 건 언제부터였습니까?”
“메이저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데요. 혹시 그곳에서 부르면 가실 의향은 있으십니까?”
“하산해 씨! 식당은 계속 운영하시나요?”
“요즘 산하 씨 강속구를 보고 반한 청소년 야구선수가 많다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식당 정문 앞에서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식당 내부에서 영업을 준비 중이던 봉만두와 유나세, 린다는 유리 벽에 빼곡히 붙어서서 그걸 구경 중이었다.
그중에서 봉만두는 산하의 시구를 직접 보러 다녀왔기 때문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형님은 역시 야구계로 가셔야 해.”
린다가 그 말에 반대표를 던졌다.
“절대 안 돼요. 사장님은 미술계로 가셔야 해요. 아니다, 가수도 해야 하는데.”
유나세는 둘 다 틀렸다는 듯 검지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노노, 우리 사장님은 식당 위주로 계속하셔야지. 다들 된장찌개 먹기 싫어?”
“아, 맞다.”
“그건 그렇네…… 그런데 봄이는 언제 와?”
“조금 늦는다고 했어.”
그 후로도 한참이나 진행된 인터뷰는 새봄이 식당에 도착할 즈음에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시구 때문에 얼굴이 더 알려진 산하는 마스크를 더 확실하게 하고 물건을 찾아다녔다. 바로 스토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드라마 작가도 좋고, 소설 작가도 좋고, 시나리오 작가도 좋고, 다 좋다고 생각했다.
뭐라도 하나만 나와라.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될 리가 있나.
어제도 오늘도 중고 물품을 파는 시장에서 허탕을 친 산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봄아, 뭐 하고 있었어?”
“어? 안녕 시구왕?”
“뭐래, 봄봄봄 바보.”
“산하 씨도 바보, 나나 지금 집 정리해요. 바쁜 일은 끝났어요?”
“응, 끝났어. 그런데 어디 집이야?”
“우리 집이요.”
“그래? 나도 지금 거기로 갈게.”
“얼른 와요. 같이 저녁 먹어요.”
“응, 도망치면 안 돼.”
“바보, 내가 도망을 왜 쳐요.”
“당연히 농담이지. 지금 바로 갈게.”
한참 후 유리 온실이 설치된 한옥 마당으로 들어선 산하는 마루를 반짝반짝 빛나도록 닦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후다닥 달려간 산하는 새봄에게서 걸레를 빼앗았다.
“……왜요?”
“손 거칠어져.”
“난 괜찮아요. 이리 줘요.”
“내가 안 괜찮아. 나중에 내가 할 테니까, 우리 윤새봄 사원은 저녁 먹을 준비나 하세요. 뭐 먹고 싶어?”
평소처럼 산하가 챙겨 주자 기분이 무척 좋아진 새봄이 웃으며 말했다.
“된장찌개?”
“오케이. 마트 다녀올게”
“같이 가요.”
그 후, 함께 장을 보고 온 산하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서 방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밥상에 반찬을 차리던 새봄이 감탄사를 흘렸다.
“우와 맛있겠다.”
뚝배기를 좌식용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가 피식 웃었다.
“어제도 먹었으면서.”
“그래도 매일 맛있어요.”
그녀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던 산하는 덩달아 웃음 짓다가 멈칫했다.
어제만 해도 비어 있던 방 내부 책꽂이에 책이 가득 꽂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희미한 빛이 어린 채로 명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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