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더 주고 싶어 (1)
“그럼 과장님 맛있게 드세요. 전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또 혼자 된장찌개 먹었다며 구박받을까 봐 얼른 가방을 챙겨 탕비실을 벗어나려던 김 대리는 멈칫했다.
잠깐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괜히 드렸나.
아냐, 잘한 거야.
빵이 맛있어 봤자 빵이지.
이것도 안 드리면 과장님이 날 얼마나 구박하실 거야.
평소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김 대리는 천추의 한이 될 이 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있었다.
하나, 지옥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
이 과장은 빵을 한입 베어 물고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김 대리가 그를 향해 말했다.
“과장님, 저 나갑니다?”
“…….”
왠지 모를 불길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애써 감춘 김 대리는 이 과장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과장님? 왜 아무 말씀을……?”
빵 맛을 음미하던 이 과장이 사나운 맹수의 눈빛으로 그에게 외쳤다.
“스톱, 다가오지 마!”
“네?”
“이건 이미 내 소유야.”
한쪽 손바닥을 김 대리에게 펼쳐 보이며 경계 어린 표정을 짓던 이 과장은 다시 한번 빵을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포슬포슬 부드러운 가운데 고소함이 가득하구나.
입안에 가득한 이 풍미를 무엇이라 말할까.
아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에게 이 빵을 주었다면 아귀다툼과도 같은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으려나.
밀가루가 이 세상에 존재한 이래, 가장 완벽한 음식이라면 바로 이 빵이 아니겠는가.
완벽하다. 완벽해. 이 빵은 실로 완벽하니.
나의 오늘은 축복이며, 크나큰 행복의 시작이구나.
태어나길 잘했어.
맛에 감격하여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듯한 표정으로 맛을 음미하던 이 과장은 아직도 탕비실을 떠나지 않고 있는 김 대리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김 대리, 가서 일 봐. 난 부장님 오시기 전에 점심마저 먹어야 하니까.”
“……네”
하지만 조금 전 이 과장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황홀함을 목격한 김 대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야, 과장님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저거 맛있나.
아니면 평소처럼 장난치시는 건가.
잔뜩 궁금해진 김 대리는 이제 눈조차 감고 맛을 음미하는 그에게 슬그머니 다가갔으나, 빵 맛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중인 이 과장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속으로 옳거니를 외치던 김 대리는 그가 들고 있는 빵의 귀퉁이를 새끼손톱만큼 몰래 뜯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눈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뭐, 뭐야. 이게 뭐야?
빵 맛이 왜 이래?
세상에…… 무슨 이런 빵이 다 있어?
너무 맛있어. 너무 맛있어서 돌아 버릴 것 같아.
이 미친놈아, 이걸 왜 과장님한테 드렸어?
살짝 맛이라도 보고 결정해야지.
뒤늦게 피눈물 흘릴 만큼 후회를 시작한 김 대리는 이 과장이 눈을 번쩍 뜨는 순간 또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함께 이 과장의 손에 들린 빵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눈을 뜬 이 과장이 몸을 반쯤 돌려 빵을 사수하며 근엄하게 말했다.
“어허, 김 대리 왜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어?”
얼른 나가란 말이야. 나 혼자 다 먹을 테니.
하지만 김 대리는 하하 웃으며 이 과장에게 말했다.
“과장님. 제가 생각해 봤는데, 식당 사장님 성의가 있지. 맛도 안 봤단 말이죠. 아주 조금만 주실 수 없을까요?”
“낙장불입, 자네는 이런 말 못 들어 봤나?”
“…….”
“자고로 가장 추한 것이 남 먹는 거 보면서 침 흘리는 것이라 했네.”
“과장님…….”
“이 대단한 빵을 몰라본 자네의 우매한 눈을 탓해야지, 어찌하겠나?”
마치 조선 시대 어른들이 아랫사람을 훈계하듯 말하던 이 과장이 김 대리를 쫓아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탕비실 문이 벌컥 열리며 사원 한 명이 들어섰다.
“과장님, 부장님이 찾으세요.”
화들짝 놀란 이 과장은 얼른 먹다 남은 빵을 포장지 안에 도로 집어넣고 양복바지 주머니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막 사무실로 향하려던 찰나 정 부장이 내부로 들어섰다.
“이 과장, 여기서 뭐 하나? 김 대리도 있었군.”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김 대리가 간단하게 인사하자, 이 과장은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아부를 섞어 말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제가 오늘 점심을 걸러서 잠시 간식 먹고 있었습니다. 이야, 그런데 오늘은 더 젊어 보이십니다.”
젊다는 아부가 마음에 든 정 부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나저나 이 과장, 그 나이부터는 식사 잘 챙겨야지. 오늘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내 나이 돼 보게. 몸이 제대로 축이나. 끼니는 잘 챙겨 먹게.”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런데 왜 벌써……?”
그의 질문에 뒷짐을 지고 점잔을 빼던 정 부장이 숟가락질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 다름이 아니고. 자네들 다음 주에 된장찌개 어떤가?”
“아! 된장찌개 좋지요. 김 대리 안 그런가?”
그의 눈빛에 김 대리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이번에 시간 때울 만한 놀이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허허 웃던 정 부장이 말했다.
“이 친구들 정말, 좋았어. 다음 주에 잊지 말자고.”
“그럼요. 부장님.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무려 산하네 요리 전문점인데요.”
“그렇지, 그렇고말고. 자, 그럼 모여 보게.”
세 사람은 서로의 오른손을 포갠 후 구호를 외쳤다.
“산하산하, 된장찌개, 아자아자!”
이 유치하고 이상한 구호를 만든 장본인인 정 부장은 흐뭇하게 웃다 말고 이 과장의 입가를 주시했다.
“이 과장, 그리도 배가 고팠나? 체면이 있지 입가에 그게 뭔가?”
그의 지적에 얼른 입가를 훔쳐낸 이 과장이 부스러기를 하나라도 흘릴까 싶어 주먹을 쥐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주의하겠습니다.”
“아니야, 자네가 그러면 내가 꼭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지 않나? 그저 조심하란 말이지. 그나저나 이 얘기는 그만하고, 이번 프로젝트 말일세. 부사장님이…….”
말을 이어 가려던 정 부장은 이 과장의 바지 한쪽이 볼록 튀어나온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과장, 거기 그건 또 뭔가?”
먹다 남은 빵을 들키게 생긴 이 과장이 흠칫했다.
“어…… 이게 말입니다. 아까 먹다 남은 간식을…….”
정 부장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 사람이, 간식을 왜 거기다 집어넣고 그러나? 보기 싫으니 얼른 꺼내게.”
“네?”
“뭐 하나? 얼른 꺼내지 않고.”
“네, 부장님.”
설마 먹던 빵을 가져갈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이던 이 과장이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냈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나? 내가 어디 탕비실에서 간식 먹으면 구박이라도 했나?”
“아닙니다. 부장님.”
“그런데 왜 그러나?”
혀를 차던 정 부장은 베어 문 자국이 역력한 데다 주머니에 쑤셔 넣어 찌그러지고 더 못생겨진 빵을 보며 혀를 찼다.
“그 이상한 빵은 뭔가? 차라리 1층 카페에 가서 먹으면 될 것을. 케이크도 있고 빵도 있고 많지 않나? 그거 이리 주게.”
“네?”
“구질구질해 보여서 도저히 못 봐주겠어.”
이 과장의 손에서 빵을 낚아챈 정 부장이 그것을 쓰레기통에 툭 던져넣고 말했다.
“이 과장, 우리 기업이 어떤 기업인가? 품위가 있지. 앞으로는 이러지 말게.”
빵이 버려진 쓰레기통을 흘끔거리던 이 과장이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대답했다.
“네, 부장님…… 조심하겠습니다.”
정 부장이 한참 잔소리만 하고 사라지자, 이 과장이 후다닥 쓰레기통으로 뛰어가 빵을 건져냈다.
“이런, 젠장…….”
조금 전만 해도 아부를 떨던 그의 표정이 무참히 구겨지던 그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김 대리가 조심스레 요구했다.
“과장님, 저도 한 입만…….”
“지금 부장님한테 당한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얼른 나가서 일이나 봐.”
“……네, 과장님.”
철천지원수를 만나고도 그냥 돌아서야만 하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김 대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왜, 왜 줬어.
이 멍청아.
이 바보야.
왜 그랬냐고.
그 순간, 가 버린 줄 알았던 정 부장이 다시 나타났다.
“이 과장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깜빡했지 않나. 아까 부사장님이…… 자네 지금 뭐 하나?”
이제 막 그 문제의 빵을 베어 물고자 하던 이 과장은 만년설에 갇힌 매머드처럼 속으로 슬피 울며 얼어붙었다.
“…….”
정 부장은 바보가 아니었고, 쓰레기통에 버린 빵을 주워 먹는 이 과장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몇 년 전 이 과장이 된장찌개 맛있다며 포장마차에 데려갈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도 난 더러운 포장마차라고 생각했었지.
그럼 저 빵은…… 설마.
생각을 끝낸 정 부장이 손을 내밀었다.
“그 빵, 이리 줘 보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은 이 과장이 빵과 정 부장을 번갈아 봤다.
“네? 하지만…….”
“어허, 오늘 왜 이리 말이 많나?”
“네, 부장님.”
포장지에 담긴 빵을 건네받은 정 부장은 그걸 꺼내서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 과장이 베어 물지 않은 반대편을 살짝 뜯어내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의 내면이 말했다.
이 빵이 평범해 보여?
불향이 느껴지지 않아?
맛은 더 죽이지?
그냥 게 눈 감추듯 다 먹어 치워.
이런 걸 누구랑 나눠 먹어? 그건 이 빵에 대한 모독이야.
빵을 든 채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정 부장은 곧장 그걸 입안에 마구 쑤셔 넣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이 과장과 김 대리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부, 부장님!”
“안 됩니다!”
그 시각 산하네 요리 전문점 블로그는 개판 오 분 전이었다.
- 디저트가 돌아 버렸어요.
- 에이, 엄청 맛있긴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 아니라니까요. 진짜 환장할 맛이었어요. 된장찌개만큼 맛있었다니까요.
- 이분들 혀가 이상하시네. 된장찌개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 빵 미쳤는데, 왜 의견들이 다들 이래요?
- 그런데 이 빵 어디서 사 오신 걸까요?
공지에서 시작된 의견 충돌 댓글은 수백 개로 늘어났으며, 이를 보다 못한 산하가 공지 하나를 더 올렸다.
<손님들, 진정하세요. 아직 제가 제빵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맛에 편차가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균일해진 맛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왓? 저 지금 제대로 읽은 거 맞나요?
- 네?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거라고요?
- 말도 안 돼…….
- 제빵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셨는데, 맛이 이렇다고요? 그럼 제대로 만드시면 맛이…….
- 에이, 사장님 장난이죠?
- 와, 사장님 손맛 무엇? 빵도 이런 식이라니…….
- 사장님이 장난하시는 거 봤어요? 그럼 이 빵 이제 파시는 거예요?
- 2층을 빵 가게로 합시다.
- 안 돼요. 건물 터져요. 지금처럼 단골 서비스로 주세요.
겨우 디저트 빵 하나가 손님에게 주어졌을 뿐이건만, 블로그는 폭탄이라도 던져놓은 것처럼 점점 더 난장판이 돼 가고 있었다.
심지어 빵 하나를 오만 원에 팔아서 경쟁을 줄이자는 의견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이 모든 댓글을 바라보던 산하는 볼을 긁적거렸다.
“난리 났네…….”
[미션 - ‘빵을 구워서 식당 손님에게 서비스로 제공하자’가 완료되었습니다.]
[편세환의 제빵 솜씨가 90%로 상향되었습니다.]
* * *
웹툰을 열심히 수정해 나가던 산하는 빠르게 놀리던 손을 멈칫했다.
가만있어 봐.
연재 중단 선언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걸 쓱 가져가면 편집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냐.
조금 더 뜸을 들이는 게 좋겠지?
그래, 아무리 그래도 두 달 정도는 있다가 가져가자.
고개를 끄덕이던 산하는 그동안 웹툰도 마저 수정하고, 연재 분량도 늘리기로 하며 다시금 손을 바삐 움직였다.
그 시각.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미슐랭 조사원 이브 몽탕은 서울의 어느 한식당에서 요리 맛을 보고 있었다.
과거 프랑스를 여행하는 운전자들에게 무료로 배포되던 정보지에서 변모하여 이제는 세계의 사람들이 이름은 들어봤다는 미슐랭 가이드.
그곳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이브 몽탕은 파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맛을 음미하더니 고개를 미미하게 저었다.
떠도는 정보와 달리 맛이 그리 엄청나지는 않아서였다.
이 정도면 별을 받을 정도는 아니고, 합리적인 가격대비 좋은 요리에 해당하는 ‘빕 그루망’ 정도라고 생각한 이브 몽탕이 스마트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했다.
앞으로도 다른 조사원이 더 방문한 후 최종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여긴 자신의 감으로 볼 때 더 높은 점수는 받기 힘들겠다고 생각하던 이브 몽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기록해 둔 다음 장소를 살펴보았다.
그중 저 맨 아래에는 산하네 요리 전문점도 기재되어 있었다.
* * *
산하가 디저트로 빵을 제공한 지도 며칠이 더 지났다.
아직도 단골손님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산하네 요리 전문점 블로그에 질문 글을 올리곤 했다.
언제 또 디저트가 나오냐, 따로 팔 생각은 없느냐, 자꾸 생각나서 미치겠다 등등이었다.
하지만 딱히 팔 생각까지는 없었던 산하는 언제 기회를 봐서 이벤트성으로 제공하기로 마음먹으며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잘 안 보이던 외국인이 몇 명 보였다.
소수의 외국인이 감탄을 자아내며 연신 된장찌개를 떠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산하는 오늘 영업 종료를 선언했다.
재료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한편, 제법 무더워진 날씨에 이곳을 찾은 이브 몽탕은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이 식당의 아주 간단한 정보만 들고 있었다.
한데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한 긴 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맛있나?
여기가 아마 메인 메뉴가 된장찌개였지?
한식 된장찌개는 외국인에게 호평받기 힘든데 말이야.
한국인에게는 참 맛있나 봐.
이번에 또 맛보려면 이래저래 고생 좀 하겠군.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슬쩍 바라보던 이브 몽탕은 내일 다시 찾아오기로 하며 저편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이브 몽탕은 식당 주변으로 새벽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낮보다는 덜하지만 바글거리는 손님의 행렬에 소름이 돋아서였다.
이 시간에 이 정도라고?
된장찌개 말고 뭔가 숨겨진 요리가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요리 하나를 먹기 위해 이렇게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리 없지.
일단 줄부터…….
하지만 이브 몽탕은 이날 맛을 보는 데 실패했다.
또 다음 날.
이브 몽탕은 오기가 생겨서 전날 일찍 줄을 섰고, 드디어 환한 대낮이 되었다.
산하네 요리 전문점에서는 손님들의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오전 중에 오후 영업 시간 번호표까지 모조리 나눠 주곤 했다.
계속 줄 서서 기다리지 말고 어디 가서 편하게 볼일 보다가 오라는 뜻이었다.
이브 몽탕 또한 그 번호표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줄은 줄어들지 않았고,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한국말만 들려오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주변 손님에게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실례합니다. 저 앞에서 뭐라는 거죠?”
외국인의 질문에 주변 사람들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기만 했고, 이를 보다 못한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재료가 떨어져서 오후 영업 시간에 뵙겠다고 하네요.”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나 오래 기다렸는데도 못 먹어?
그런데 다들 왜 안 가는 거야?
이따가 오면 되잖아.
여긴 대체 뭐지?
궁금증이 치밀어 오른 그는 조금 전 친절히 대답해 준 한국인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번호표 받고도 왜 안 가는 거죠?”
“혹시 이벤트 할까 봐요. 가끔 사장님이 직접 제조하신 전통주 구매 기회 주시거든요. 그리고 번호표 못 받은 사람은 혹시라도 자리가 날까 싶어서 겸사겸사?”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전통주?
그것 때문에 이렇게나 줄을 서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던 그는 이곳 식당 메뉴의 전반적인 가격을 물어봤고, 그 사내는 된장찌개를 비롯한 메뉴 가격을 말해 주었다.
그제야 이해한 이브 몽탕이 손가락을 튕겼다.
다른 이벤트도 하고, 맛도 괜찮은데 엄청 저렴해서 이렇게 인기였구나.
난 또 뭔가 특별히 숨겨진 게 있나 싶어서 놀랐잖아.
그래도 호기심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이브 몽탕은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몇 시간 후.
드디어 식당 안으로 입성한 이브 몽탕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식당 내부에 가득 찬 된장찌개 냄새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왔으니 먹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미슐랭 조사원 이브 몽탕은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린다가 그에게 된장찌개를 서빙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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