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더 주고 싶어 (4)
미슐랭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단어에 산하는 일순간 생각에 잠겼다.
세 번째 말아먹었을 때 생각나네.
동식이가 서울에 3스타 미슐랭 한식집 탄생했다고 말했을 때, 그날 식당 문 닫아걸었지?
돈 탈탈 털어서 그 집 요리 한번 먹어 보려고.
대체 얼마나 잘났길래 난 매번 망해 나가고 그런 집은 다들 난리를 떠는지 궁금해서.
그런데 엄청 비싸서 한참 생각하다가 그냥 되돌아왔지.
한 끼에 25만 원이었던가?
빈털터리에 장사마저 말아먹었는데, 엄청난 거금이어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었네.
그랬다.
산하는 오래전 미슐랭 별을 받은 요리사와 그 식당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망해 버린 집안, 계속 망해 나가는 식당, 포기하라는 주변의 권유.
그래서 더 성공하고 싶었고, 더 발악했던 그는 그 당시 결심한 게 있었다.
훗날 성공하게 된다면, 너무나 저렴해 누구나 다가올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최대한 많은 이에게 맛보여 주겠다고.
그 누구도 돈에 휘둘려 맛있는 요리를 포기하지 않게 하겠다고.
이는 산하가 지금까지 식당 메뉴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산하도 사람인지라 가끔 가격을 조금 올려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때면 그 당시 일을 떠올리며 결심하곤 했다.
초심을 잃지 말자.
올챙이 시절 잊지 말자고.
과거의 생각에 빠진 산하가 잠시 아무 말이 없자, 미슐랭 가이드에서 나온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미슐랭 가이드 편집자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지금까지 미슐랭에서 나왔다고 하면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데 이곳 사장은 말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체 왜 이러지?
미슐랭이 싫은가?
그럴 리가 없는데.
요식업 종사자 중에 이런 영예로운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있어?
그녀는 그 의문을 담아 산하를 바라봤고, 통역사는 그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기, 사장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산하가 사과의 말을 던졌다.
“아! 네, 죄송합니다. 뭔가 갑자기 떠오른 게 있어서요.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대체 식당 영업하는 사람이 미슐랭에서 나왔다는 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일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보던 통역사는 속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맞아.
이 사람 대단한 사람이었지?
독일 헤어 페스티벌 대중상에 가수이기도 하고.
뛰어든 분야가 많아서, 그중에 뭔가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모양인데?
에이, 그래도 미슐랭이 왔는데 딴생각을 하다니.
찰나에 생각을 끝낸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여기 앉으시죠. 차는 뭐로 드릴까요?”
“아, 차는 괜찮습니다. 일단 대화부터 나누실까요?”
“그럼 그러시죠.”
이내 자리에 마주 앉은 세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그중 통역사가 프랑스 출신 편집자의 말을 전달했다.
“……그래서 미슐랭 가이드에 싣기 위한 최종 평가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아예 말씀드리지도 않고 일반 고객처럼 찾아와 진행했겠지만, 이번에 사장님의 요리가 남다른 평가를 받게 되면서 방식을 살짝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슐랭은 타 음식점에 적용하는 인원 그 이상을 산하네 요리 전문점에 보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평가의 시간은 끝났어야 했다.
하나 이렇게 원칙을 살짝 수정하며 스타 세션을 가지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줄 서는 데 쏟아붓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평가관들의 스케줄을 맞추기도 어렵고, 줄 서는 시간도 절약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다녀온 직원들이 극찬만을 이어 가자,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아예 한 자리에서 현장 평가를 진행하기로 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것을 살짝 포장한 통역사의 발언에 산하가 왠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따로 시간을 할애해 드려야 한다는 건가요?”
“네, 물론 바쁘신 건 알고 있지만, 저희가 이런 제안을 드린다는 건 사장님의 요리를 제대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많은 손님에게 인정받았으면 그뿐, 이제 와서는 미슐랭 가이드라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산하가 막 입을 열려던 참이었다.
[미션 -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올챙이]
[미슐랭 가이드에서 나온 직원에게 국내 요리잡지사와 동등한 대우를 하자.]
[보상 - 양옥자의 식자재 고르는 솜씨가 90%로 상향됩니다.]
이야, 봉씨. 이번엔 나랑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데?
어쩐 일이야?
저번에 이름 지어 줘서 기분 좋은 거야?
이번 미션은 기분 좋게 날로 먹겠다고 생각하던 산하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
“네?”
이 사람 뭐야?
그럴 수 없다고?
미슐랭이 싫다는 거야. 시간을 내기 싫다는 거야.
왜 이러는 거야?
이런 명예로운 자리를 마다하다니, 나 같으면 덥석 물었겠다.
시작부터 이상하더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그에게 미슐랭 가이드 편집자가 물었다.
“뭐라고 하신 거죠?”
“그럴 수 없다고 하시네요.”
“네? 대체 왜요?”
“그건 지금 여쭤보겠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를 끝낸 통역사가 호기심과 의아함을 담아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그러시는지……?”
“특별 대우를 해 드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국내 잡지사 에디터님도 이곳을 방문하신 적이 있었죠. 그분은 추운 겨울 밤새 줄을 서서 취재하고 가셨습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 미슐랭인데, 국내 잡지사와 비교하는 건 아니잖아요.
끝내 속내를 내뱉지는 못한 통역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산하가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재차 입을 열었다.
“저에게는 미슐랭 가이드건 국내 잡지사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손님들이 제 요리를 맛보고 행복해하시면 그뿐입니다.”
대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오만하게 저런 식이야?
어이가 없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통역사가 그를 설득했다.
“사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혹시 잘 모르시나 싶어 말씀드리지만,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단다는 건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표정을 바라보던 산하는 자기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 주기로 했다.
“전 별을 몇 개 달고, 이 집이 더 훌륭하다는 식으로 줄 세우기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정 하고 싶으시면 다른 손님과 동등하게 줄을 서 주세요. 그때는 아주 약간의 시간 정도는 할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혜택을 드리면서 따로 많은 시간을 내는 건 제 원칙과 어긋나기도 하고, 늘 밤새워 줄 서시는 손님에게도 굉장히 미안한 일입니다.”
통역사는 그의 깐깐해 보이는 대답에 당장이라도 일어서고 싶었지만, 곁에 앉은 편집자가 실세이기에 일단 말부터 전달했다.
그러자 편집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관심이 없다고요?”
“네, 그리고 재차 말씀드렸지만, 따로 시간은 할애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 취재하고 싶으면 줄을 서라는군요.”
“이런 적은 처음이군요. 역시 다들 극찬하는 이유의 근원인지도 모르겠어요. 원칙을 지키는 요리사라…… 이런 분은 또 오랜만이군요.”
아니, 이놈의 편집자는 또 뭐라는 거야.
눈은 왜 반짝반짝 빛내는데?
설마, 에이 아니지?
세계 최고의 맛집 안내서로 평가받는 미슐랭에 대한 푸대접에 발끈하고 있던 그는 편집자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좋아요. 우리도 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고 전해 주세요. 줄 서죠. 대신 요리에 관한 철저한 비평은 각오하라고 전해 주세요.”
“진심이세요?”
“물론이에요. 그 정도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원칙 그대로 돌려줘야 마땅하겠죠? 오히려 마음에 들어요. 이건 사실 우리가 불편해서 내민 꼼수였으니까요.”
아하, 철저한 비평으로 오히려 미슐랭 가이드에 실리느니만 못하게 하려는 건가.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그의 원칙과 고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통역사가 산하에게 그녀의 말을 전해 주고 작별 인사를 던졌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그들이 빠져나가자, 휴게실 문을 살짝 열어 엿듣고 있던 봉만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들이 너무 작게 말하다 보니 제대로 못 들어서 그의 눈동자에는 궁금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우와 형님, 저분들 미슐랭에서 나왔죠? 뭐래요?”
그의 기대 어린 시선에 산하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몰라, 밥 달라고 해서 줄 서라고 했어.”
“???”
같은 시각.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어슬렁거리며 건수를 찾고 있던 취재기자 중 한 명인 임동연이 유리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 뭐라는 거야.
잘 안 들리네.
그는 이슈&이슈의 연예부 기자로 산하와도 안면을 튼 바 있었는데, 오늘도 단골처럼 찾아와 뭔가 좋은 뉴스거리가 없나 싶어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었다.
그때, 방금 들어간 외국인 손님이 바깥으로 나오는 기색이자, 임동연은 얼른 딴청을 피우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미슐랭 가이드의 편집자와 통역사가 빠져나왔다. 임동연은 다른 취재기자가 몰려들기 전에 급히 그들을 불러세웠다.
“저기요. 잠깐만요.”
“무슨 일이신지?”
“저는 이슈&이슈의 기자 임동연이라고 합니다. 지금 하산해 씨를 방문하셨는데요. 실례지만, 어떤 이유로 방문하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이, 양반아. 카메라 들고 있을 때부터 기자인 거 알아봤어요.
거부하고 그냥 가려던 통역사는 멈칫했다.
곁에 있던 편집자가 저 사람 뭐라는 거냐고 물어봐서였다.
“아, 기자인데요. 취재를 하고 싶은가 봅니다.”
“그래요? 간단하게 하죠. 우리 미슐랭 가이드 이름도 더 알릴 겸. 너무 내부적인 사실은 공개하지 마세요.”
“……정말이세요?”
“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그럼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호기심을 뿜어내던 임동연은 큰 기대 없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화색을 띠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방문하신 걸까요? 혹시 헤어 대중상 때문에 오신 걸까요?”
“아니요. 우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나왔습니다.”
“미, 미슐랭이요?”
“네.”
“설마, 별을 부여하려고 오신 건가요?”
“글쎄요. 별을 받을지, 빕 구르망이 될지는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아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평가는 언제쯤 하시나요? 제가 동석하면 안 될까요?”
“그건 죄송합니다만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평가는 이곳 사장님이 우리 제안 일부를 거부하셔서 시일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네? 거부라면..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더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고,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았던 임동연은 떠나가는 그들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식당 유리문을 빼꼼 열었다.
마침 산하는 내부를 정리 중이었다.
“산하 씨?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안 됩니다.”
“…….”
* * *
<하산해가 운영하는 산하네 요리 전문점, 미슐랭 가이드 오르나>
<……전 세계 레스토랑을 다 합쳐도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3천 개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받기도 힘들지만 대중에게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슐랭 가이드가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찍었다.
단순히 맛집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그가 과연 별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미슐랭 측에서 평가를 위한 어떤 제안을 하자 하산해가 원칙을 내세우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산하가 인터뷰를 안 해 주자 봉만두를 졸졸 따라다닌 기자가 얻어낸 아주 작은 정보는 ‘원칙’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 와우, 하산해 식당이 이 정도였어요? 팬심 아니고?
- 오, 짱인데? 미슐랭에 올라갈 정도?
- 뭘 거부한 거야? 다들 서로 들고 싶어서 난리인데.
- 그러게요. 대체 무슨 원칙?
- 내 인기에 그딴 건 필요 없다는 원칙일지도.
- 별 몇 개나 받을까요?
- 에이, 별은 무슨 별이에요. 저번에 엄청 맛있는 단골 레스토랑도 별 한 개 받았는데. 끽해 봐야 빕 구르망이죠.
- 그러고 보니 하산해 식당 엄청 저렴하다면서요?
- 다들 무슨 소리예요? 산하네 요리 전문점 된장찌개 얼마나 미치게 맛있는데, 별 세 개짜리죠. 아, 맞다. 경쟁자 줄여야 하는데. 사실은 맛없어요.
- 또또, 하산해 극성팬 나왔네. 들어가요. 들어가. 그렇게 작업해도 안 먹어.
이즈음 산하네 요리 전문점 단골들은 인터넷상에서 심각한 토론을 이어 가는 중이었다.
- 큰일이네요. 이기적이지만 미슐랭 가이드에 안 나오시면 좋겠어요.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도 식당 터져 나가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 이미 엎질러진 물이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별 세 개 받으셔야죠.
- 아니죠. 우리 사장님 요리는 자리 따로 마련해야죠. 별 다섯 개 어떻습니까?
- 전 열 개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각.
박윤정의 고등학교 동창 차연지는 연신 자기 오빠 요리 솜씨를 자랑하는 박윤정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끽해 봐야 동네 식당이지.
고작 된장찌개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팬 모아서 장사해 먹는 주제에.
다른 건 깔 게 별로 없어서 식당을 비난하던 차연지는 순간 이상한 말을 들었다.
“아, 그리고 이거 봐봐. 우리 오빠 식당 미슐랭에 올라갈지도 몰라.”
박윤정이 내민 스마트폰의 뉴스 기사를 읽던 고등학교 동창들이 꺅 소리 질렀다.
“어머, 장난 아니다.”
“진짜네.”
그러자 구석에 앉아 있던 차연지가 속으로 그를 비난했다.
흥, 돈 주면서 뉴스 받아쓰기라도 시켰나 보네. 하여간에 장삿속하고는…….
미슐랭이 어떤 곳인데 연예인 따위가 하는 곳에 별을 달아 줘.
셰프로 오래 경력 쌓고 이름 좀 날린 사람들이나 가능성 있지.
겉으로 드러나게 피식 웃던 그녀는 곧 실체가 드러나면 잔뜩 놀려 주겠다며 박윤정을 째려보았다.
* * *
합작법인 풍류가 세워졌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 당사자나 다름없는 곽기훈은 명예회장 할아버지가 이놈 할까 봐 마음이 급해지자 산하를 찾아가 설득 중이었다.
“우리나라 인구가 수천만 명이야. 어떻게 다 마음에 들어. 그 정도면 상업적으로 아무 문제 없어. 수정 그만하고 슬슬 시작하자. 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
“형,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슬슬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게 언젠데? 지금 우리 영감님이 날 잡아드시려고 벼르시는 중이야.”
“그럼 잡아먹힌 후에 다시 이야기하죠?”
“뭐? 박산하, 너무한 거 아니냐?”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모자란 작품 내보일 순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신생 플랫폼에 연재해서 그렇지, 대형 플랫폼에 했으면 이미 인기 만발이야. 모자란 거 아니라고. 네 그림 실력이 다 커버한다니까.”
“아니에요. 나중에는 문제가 될 겁니다.”
“하여간에 고집하고는. 알았다. 된장찌개나 한 그릇 줘라.”
“와, 기훈 형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드시려고.”
“치사하게 안 먹어 먹어. 먹어.”
“어째 드신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요?”
“내가 언제? 아 참, 너 미슐랭 거부 잘했다. 안 그래도 먹기 힘든데, 미슐랭이 웬 말이냐?”
“거부한 거 아닌데요?”
“뭐? 아냐? 원칙 내세우면서 평가 거부했다면서?”
“평가 방식을 거부한 거지, 평가를 거부한 건 아니에요. 그냥 다른 손님이랑 똑같이 줄 서서 먹고 평가하라고 했어요.”
그제야 진실을 알게 된 곽기훈이 입을 쩍 벌렸다.
“……산하야.”
“네?”
“나이를 떠나서 너 정말 존경스럽다. 대단하다.”
“제가 왜요?”
“그렇잖아. 미슐랭씩이나 되는 곳에서 방문했는데, 전 원칙이 있어요. 거부. 줄 서세요.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냐? 장인 정신 쩐다 쩔어.”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기는, 그 원칙 변치 마라. 원칙이 곧 신념이고, 신념이 죽으면 사람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이야, 오랜만에 기훈 형이 고상한 조언을 다 하시네요?”
“됐어. 된장찌개나 줘.”
“줄 서세요.”
“아, 진짜…… 이럴래?”
“신념이 죽으면 사람도 죽은 거라면서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런데 이상하다. 미슐랭 비밀리에 평가하는 거로 아는데. 줄 서기 힘들었나?”
“글쎄요.”
며칠 후.
미슐랭 가이드에서 찾아온 평가관 여럿이 산하네 요리 전문점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섰다.
그들은 한국인 한 명 외에 죄다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는 한식 특유의 맛과 문화를 존중함과 동시에 일관성 있는 평가를 진행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산하의 요리를 맛본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더 철저히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나선 참이었다.
그중에서 한국인 평가관은 마농 르쉐르가 된장찌개를 극찬하던 일을 떠올렸다.
정말 환상적인 된장찌개라고 했던가.
별 세 개가 모자랄 지경이라고?
대체 어떤 맛이길래 그러지?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한다니. 스케줄도 빡빡한데. 어이가 없어.
그때, 그 옆에 서 있던 미국인이 전유상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헤이, 유상. 과연 어떨 것 같아?”
“뭐가요?”
“여기 요리 말이야.”
“뭐, 다들 맛있다니까 맛있겠죠.”
“재미없기는…….”
그로부터 한참을 더 기다려서야 산하네 요리 전문점에 들어선 그들은 앉자마자 빵을 서빙해 주는 것에 당황했다.
지난번 어떤 한 손님이 식후에 이벤트 빵을 받지 못한 일이 있어서 바뀐 조치였지만, 그들은 알지 못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중에서 전유상이 대표로 직원에게 질문했다.
“이건 뭐죠?”
그 뜻은 된장찌개 파는 집에서 빵이 왜 나오냐는 것이었지만, 봉만두는 다르게 알아듣고 대답해 줬다.
“아, 혹시 처음 오셨나요?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맛있습니다.”
다시 질문하기는 그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요? 잘 먹겠습니다.”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떠나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유상이 모두에게 말했다.
“이건 식전 빵의 일종인가 봐요.”
“된장찌개와 빵의 조합이라. 재미있군요.”
“저도 신선하네요. 된장찌개에 빵이라니. 어디 맛이나 볼까요?”
사실은 이벤트로 나눠 주는 거였지만, 그들은 오해 중이었다.
산하가 빵을 구워 서비스한 것이 최근인 데다 몇 차례 안 되다 보니 빵을 먹어 본 손님도 얼마 안 되었고, 게릴라성으로 진행하는 탓에 이 빵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곳 사장이 빵을 구웠다는 건 생각조차 못 한 그들은 각자 받은 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평가관이 가장 먼저 빵 포장지를 뜯으며 생각했다.
식전 빵이 왜 이래?
접시도 아니고 웬 포장지람.
집에 가져가라는 건가?
못생겼지만 맛은 있어 보이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빵을 살짝 때서 입으로 가져갔다.
- 24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