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더 주고 싶어 (5)
그녀는 빵이 입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눈 녹듯이 분해되어 목구멍으로 사라졌다고 여겼다.
하나 이 ‘녹았다’라는 표현은 그녀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었고, 너무 맛있어서 빠르게 씹어 삼킨 것이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빵이 맛있었던 그녀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빵을 한 조각 더 뜯어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편세환의 제빵 솜씨 90%에 도달한 빵은 전보다 더 맛있어졌고, 평가관인 그녀의 혀를 연신 놀라게 했다.
세상에 무척이나 고소한 빵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이 맛은 우리나라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어.
아니, 미슐랭에 등재된 베이커리에서도 쉽게 맛보지 못할 정도의 맛이야.
대체, 어떻게 이런 빵이 한식당에서 나온 거지?
못생기고 그을린 빵을 멀거니 내려다보던 오스트리아 출신 평가관은 이제 빵을 두 손으로 잡고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그러자 입안이 더욱 풍성해지고, 더 맛있었다.
마치 노랗게 익어 가는 밀밭이 생각 날 정도로 대단한 맛을 느낀 그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음을 흘렸다.
그 이상한 비음은 모든 평가관의 고막을 자극했다.
“왜 그래요?”
“맛이 이상해요?”
그녀는 좌우로 고개를 저으면서도 입안에 남은 빵 맛을 마저 음미했다. 그 모습에 답답해진 미국인 평가관이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우물우물 빵을 씹어대던 턱관절을 갑자기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움직인 끝에 꿀꺽 음식물을 삼키고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감탄사를 내질렀다.
“……오 마이 갓!”
두 명의 평가관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남은 평가관도 재빨리 빵맛을 보았다. 그리고 그 태도는 앞서 빵맛을 보았던 평가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식전빵이…… 이런 식이라니.”
“설마 이게 숨겨진 메인 요리인 건 아니겠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맛이 흔하진 않잖아요.”
그러자 한국인 전유상이 그들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여긴 된장찌개가 메인이고, 가게 어디에도 빵을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말이 없어요. 제가 보기엔 타 업체에서 구매한 것 같네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이 빵이 어떤 숨겨진 맛집 베이커리에서 사 온 것으로 결론 낸 그들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빵집을 안 찾아갈 수가 없겠네요. 이따가 물어봐야겠어요.”
“대체 이 베이커리가 어딜까요?”
“확실히 숨겨진 맛집이 많군요. 그래도 그렇지, 확인하기 위해 온 곳에서 이런 훌륭한 빵을 발견할 줄이야. 이런 걸 한국말로…… 아 그래, 횡재라고 하죠?”
“맞아요. 이거 정말 먹을수록 고소하고 입맛이 당겨요.”
“보통 한국 빵은 부드럽고 달고 푹신한데, 그 맛과는 전혀 다르네요.”
“동감합니다. 이 정도면 별 다는 건 문제 없다고 봐요.”
미슐랭에서 찾아온 평가관들은 이곳에 온 목적도 잊은 채, 또한 이 빵이 누가 만든 것인지도 모른 채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이왕 모인 것, 오늘 평가가 끝나자마자 빵집을 찾아가기로.
“모두 이의 없죠?”
“전 없어요.”
“이런 빵집이라면 반드시 찾아가야죠.”
“정말 끝내주네요.”
“오늘 제 혀가 춤을 춰요. 이 춤을 멈추게 할 순 없죠. 가서 빵을 잔뜩 구매해야겠어요.”
“설마 된장찌개가 이 맛의 감동을 없애 버리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그래도 두 분이 맛있다고 극찬하셨으니까 수준급 이상일 거라고 봐요.”
누군가에게 들릴세라 속삭이듯 토론하던 그들에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가 서빙되었다.
유나세는 밀차에서 된장찌개 뚝배기를 비롯해 밑반찬과 공깃밥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잠깐만요.”
“네?”
전유상이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자, 빵집이 어디인지를 물어보려고 한다는 걸 눈치챈 다른 평가관들이 그를 말렸다.
“헤이, 그거 어쩌면 실례일지도 몰라요. 우린 지금 된장찌개 먹으러 온 거예요. 나가기 전에 조용히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식사 끝내고 조용히 물어보죠.”
그들이 유창한 영어로 너무나 빠르게 떠들어대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유나세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최근에 영어 공부를 해서 대충은 알아듣는다고 자부했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였다.
“저기, 손님.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전유상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베이커리가 어디인지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아까 살짝 궁금했던 사항을 질문했다.
“불편한 건 아니고요. 저기 메뉴판에 다른 요리도 시켜 드시는 분이 있으신지 궁금해서요.”
“아! 손님들이 주로 된장찌개만 찾으시긴해도, 생각보다는 많이 찾으세요.”
“아, 그렇군요.”
“네, 그럼 더 궁금하신 것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가 정중한 응대 후에 떠나가자, 된장찌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전유상만을 주시하던 평가관 중의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뭘 물어본 거죠?”
“저기 저 메뉴판에 다른 메뉴들이요. 주문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주문 비율이 얼마나 되나 궁금해서요.”
“그냥 봐도 다른 메뉴는 별로인 것 같아요. 저것 봐요. 다들 된장찌개만 먹고 있잖아요.”
“그런가 보네요. 자, 이제 시작하죠.”
드디어 평가의 시간을 가지게 된 그들 중 미국 남성이 가장 먼저 된장찌개를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평가관 활동을 하게 되면서 각국의 다양한 요리뿐만 아니라 된장찌개도 여러 번 먹어 봤던 그는 과연 이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하다가 깜짝 놀랐다.
따끈한 국물이 혀를 적시자 뇌가 감전이라도 된 듯 카타르시스마저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맛이 너무 대단하다 보니, 내면에서 이상한 소리마저 들려오는 것 같다고 여겼다.
감히 날 평가하겠다고?
수천 년의 발효음식을 평가하려 하다니.
닥치고 먹지 못해?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미국 남성은 퍼뜩 정신을 차리자마자 숟가락을 바삐 놀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후후 불기가 무섭게 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된장찌개를 하나둘 맛보기 시작한 다른 평가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늘 요리 맛을 보면서 식자재의 수준이나 창의성, 가격대비 적합한 요리 등등 미슐랭이 지켜온 원칙을 적용하고 토론하며 평가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천천히 맛을 봐야 했지만, 그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용하기만 했다.
다들 미친 듯이 퍼먹느라 바빠서였다.
그들이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다 먹고도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특히 미국인 남성은 충격적인 표정으로 생각 중이었다.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면서 뭔가 새로운 맛이 계속 터져 나와.
이건 정말 축제야.
도저히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어.
이건 절대 된장찌개가 아니야.
예술이야.
세상에, 이런 요리가 있었다니.
예전에 먹어 본 된장찌개 맛과 비교하던 그의 귓가에 다른 평가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요?”
“별 세 개 모자란다는 말 인정합니다.”
“이건 정말 사기적인 맛이군요.”
“제가 태어나서 맛본 것 중 최고의 요리입니다.”
“동의합니다.”
“이 정도면 만장일치군요. 과연 편집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네요.”
“정말 놀라운 맛이었어요.”
“이 정도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늘 새롭게 눈을 뜹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우리 얼른 자리부터 비워 줘야겠어요. 다들 일어나죠?”
“그래요.”
드디어 평가를 마친 그들은 감동한 표정으로 우르르 일어섰고, 전유상이 계산대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동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헤이, 유상 베이커리 잊지 말아요.”
“오케이. 알고 있어요.”
전유상이 계산대로 다가가자 봉만두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셨습니까?”
“네, 물론이죠. 아주 맛있었습니다.”
아직도 혀가 간지러울 정도로 된장찌개 맛을 잊지 못한 전유상이 미소지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삼만 원 나왔습니다.”
결제를 끝낸 봉만두가 전유상에게 카드를 돌려주었을 때, 그가 물었다.
“그런데 저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아까 식전에 제공된 빵 말입니다. 실례지만, 어느 베이커리에서 구입하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봉만두는 뭔가 모호한 표정을 지었고, 그걸 오해한 전유상이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 빵집을 찾아가서 납품을 받겠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사 먹고 싶어서 그럽니다.”
“저기, 그게 아니라 그 빵 우리 사장님이 만드셨는데요.”
마치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망해 버렸다는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짓던 전유상이 재차 물었다.
“뭐라고 하셨죠?”
이런 곳에서 일하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봉만두가 자세한 설명을 이어 갔다.
“저기 주방에 계시는 우리 사장님이 오늘 아침에 구우신 거예요. 손님들이 자꾸 요청하셔서요.”
“정말이세요?”
“네. 납품받거나 하는 게 아니라 손수 구우시는 겁니다.”
할 말을 잃어버린 그는 주방에서 손을 바삐 놀리는 이곳의 대표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손님?”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눈빛으로 산하를 계속 바라보던 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질문했다.
“아,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럼 그 빵을 구매할 수는 없는 건가요?”
“네, 그저 이곳에 오시는 손님께 서비스로 제공되는 거라서요.”
“따로 판매하실 계획도 없으신가요?”
“아직 그런 계획은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쉬운 표정을 짓던 전유상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당연히 다음에 또 오겠지.
이 맛을 보고 다음에 또 안 오면 사람 아니잖아.
속으로 흐흐 웃던 봉만두가 손님을 배웅했고, 식당을 빠져나온 그에게 된장찌개을 주제로 토론 중이던 평가관들이 앞다투어 물었다.
“어디래요?”
“오늘 빵 좀 사 가려면 얼른 가야죠.”
“맞아요. 내일 아침은 그 빵으로 먹어야겠어요.”
“설마 다 팔린 건 아니겠죠?”
“왜 말을 안 해요?”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전유상은 아직도 당황스러움을 떨쳐내지 못한 표정으로 식당을 가리켰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말을 해요.”
“식당이 왜요?”
그제야 전유상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빵, 파는 거 아니고 저 식당 사장님이 만드신 빵이랍니다.”
그가 전해준 소식을 듣자마자 여성 평가관 한 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Oh là là!”
그녀는 세상에, 어쩌면, 저럴 수가를 뜻하는 모국의 감탄사를 자신도 모르게 터뜨렸고, 다른 평가관 또한 표정이 가관이었다.
“왓!?”
“그게 무슨?”
“잘못 들은 거 아닌가요?”
“그게 말이 되나요?”
그들이 이렇게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조금 전 맛본 된장찌개 급의 요리를 꾸준히 선보이려면, 그것도 여러 외국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려면 다른 요리에 신경 쓸 새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 말은 일반적으로 정답이었다.
보통 다른 맛집도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에 그치지 않고 매일 신경 쓰면서 한 가지에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이 전유상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한 사람이 다 만들었다고?
이 정도 수준의 요리를?
그것도 같은 분야의 요리도 아닌 한식과 베이커리라는 것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그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각, 산하는 드디어 미션 완료 메시지를 받아 보았다.
[미션 -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올챙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 양옥자의 식자재 고르는 솜씨가 90%로 상향됩니다.]
[양옥자의 특수 재능이 개화합니다.]
[가공된 식자재 감별 능력이 급격히 향상됩니다.]
요리하느라 못 봤지만, 방금 미슐랭 가이드에서 다녀간 모양이라고 생각한 산하가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옥희 할머니랑 이름이 비슷해서 괜히 친근감이 든단 말이야.
그나저나, 가공 식자재 감별 능력?
정확히 뭘 뜻하는 거지?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보상을 바라보던 산하는 나중에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요리에 집중했다.
* * *
마농 르쉐르는 빈 천상주 술병을 소지하고 한 카페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서 얼굴도 볼 겸, 이 술이 어떤 술인지 물어보기 위해 약속을 잡은 참이었다.
“여기야!”
얼른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녀에게 한국 남성이 반갑게 말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네가 에펠탑 앞에서 큰 쥐 보고 놀라서 넘어진 후로 6개월밖에 안 됐어.”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른 그가 항의했다.
“……그 얘기는 또 왜 꺼내는 거야? 정말 컸다고, 고양이만 했다니까.”
“알았어. 겁쟁이.”
“이럴 거야?”
“농담이야. 잘 지냈지?”
그녀에게 겁쟁이로 보이기 싫었던 그가 대화 주제를 변경하기 위해 얼른 말을 받았다.
“나야 뭐 늘 그렇지. 그런데 웬일로 날 보자고 했어? 한국엔 언제 들어온 거야?”
“들어온 지는 며칠 안 됐어. 아참, 나 잊어먹기 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일단 앉아.”
그의 말대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종이 가방에 싸 들고 온 천상주 병을 꺼냈다.
그러자 사내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웬 도자기? 아니다. 술병인가?”
“이거 알아?”
“이 술병이 궁금한 거야? 아니면 술이 궁금한 거야?”
“둘 다.”
“왜? 취미가 바뀌기라도 한 거야? 원래 차 좋아했잖아.”
“그건 아니고, 그냥 이게 뭔지 궁금해서.”
“그래? 이리 줘 봐.”
빈 술병에 쓰인 천상주라는 글자를 한번 바라본 사내가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만에 꺼낸 한마디.
“와, 이거 굉장한 술인데?”
“그래? 어떤 면에서?”
“미 대통령 방한 당시 만찬주로 선정된 술이야.”
그 정도 술인 줄은 몰랐던 그녀가 동그래진 눈으로 묻는다.
“그래? 그럼 엄청 유명한 술 아니야? 난 왜 들어 본 적이 없지?”
그녀의 질문에 여러 커뮤니티의 댓글을 열심히 읽어보던 그가 말한다.
“이 술 구입하기 힘들대. 그래서 마셔 본 사람도 드물다나 봐. 너무 소량 생산이라서. 수출된 적도 없고, 그래서 제대로 안 알려졌나. 아! 여기 새로운 정보 있네. 이름 문제도 있을 거 같은데. 혹시 코리아 헤븐은 들어 본 적 있어?”
“잠깐만, 코리아 헤븐?”
“응, 왜?”
“그 이름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아. 잠깐만.”
기억을 가만히 떠올려보던 그녀는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맞아, 작년에 한국 들어왔을 때 사교모임 갔다가 어떤 미국인한테 들어 본 것 같아. 세상에 다시 없을 술이라면서, 너만 알고 있으라더라고.”
“그래서?”
“대놓고 말해 줬지.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 나한테 작업 들어온 게 분명해 보였거든.”
“공주병은 여전하구나?”
“죽고 싶어?”
“미안, 살려 줘. 그런데 이건 어떻게 구한 거야?”
그에게서 천상주 병을 가져온 그녀가 표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하다가, 운이 좋았어.”
“???”
* * *
미슐랭 가이드 편집자는 옛일을 떠올렸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유명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였는데, 늘 원칙을 중요시해서 어머니와 다투곤 했다.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건 실로 어렵고 힘든 일이어서였다.
하나 식자재 선정부터 요리의 조리 시간과 손님 응대까지 철저하게 지켜진 그의 원칙은 얼마 가지 않아 빛을 발했다.
어느 샌가부터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하는, 너무나 훌륭한 레스토랑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는 손님을 훔쳐보면서 늘 미소짓던 아버지를 떠올린 편집자는 과연 평가관들의 현장 단체 평가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했다.
그런 그녀에게 미리 약속을 잡았던 평가관들이 찾아왔다.
그것도 맛을 보고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들이 이제서야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이 정도 되는 식당에 고작 별 세 개만 줄 수 없어서 더 나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모두 평가가 끝나셨나요? 어떤 결론이 나왔죠? 역시 맛이 훌륭한가요?”
평가관 한 명이 대표로 대답했다.
“별을 더 줄 수만 있다면 더 많이 주고 싶을 정도의 맛입니다.”
“또 그런 결론이군요. 대체 어떤 맛인지 궁금해질 정도예요.”
“한번 가셔서 드셔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절대 잊지 못할 맛을 보게 될 겁니다.”
“별을 더 주진 못하지만, 내용상으로 추가 별을 줘야겠더군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셨던 레스토랑도 받아 보지 못한 극찬에 편집자는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지만 그곳의 맛을 보려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줄을 서야 했다.
귀찮으면서도 두근대는 건 뭐지?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 편집자는 된장찌개 맛을 보고 뒤집어졌다.
어떻게 이런 미친 맛이…….
역시 원칙을 지키는 곳은 달라.
이래서 다들 그랬구나.
그 길로 평가관을 모아 만장일치로 스타 세션을 마무리한 그녀는 보고서를 상부에 전달했고, 내용을 확인한 미슐랭 가이드 총책임자는 어이없어했다.
“균형이 엉망진창이군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죠? 평가관분들과 저는 만장일치로 별 세 개를 주기로 했습니다.”
“별 세 개를 문제 삼는 게 아니에요. 이 내용이 문제죠. 제정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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