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45화 (245/445)

245화 안 되면 되게 하라 (2)

“있어요? 뭔데요?”

“오늘도!”

“오늘도?”

“작가 한 분이 계약 해지 요구하셨어요.”

“저런…….”

“저런이라고만 말씀하실 때가 아니에요. 지금 회사 자금만 줄줄 새고 있는 거 아세요?”

“알죠. 그래도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큰 그림을 위한 투자니까요.”

“그래서, 그 큰 그림 나오려면 얼른 스토리 작가랑 협업하셔야 하는 것도 아시죠?”

“그렇죠. 그래서 제가 쓸 만한 스토리 작가 키우고 있습니다.”

“네? 키워요? 정말요?”

“바로 접니다.”

“대표님!”

얼른 귀에서 휴대폰을 멀리했다가 다시 가까이 한 산하가 말했다.

“저 아직 귀 안 먹었어요.”

“장난치시니까 그러죠. 저도 알아요. 대표님 미슐랭 가이드에도 등재되고 바쁘신 거. 그럴수록 분업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거 아시죠? 다 끌고 가고 싶으신 심정은 저도 이해하지만, 살짝만 내려놓으시면 안 될까요?”

“이봐, 이봐. 우리 편집장님 약속 다 하셔 놓고 또 이러신다. 조금 기다려 주시기로 해 놓고.”

“약속을 어긴 건 대표님이에요.”

“제가요?”

“네, 기억 안 나세요? 저 처음 영입하실 때 카페에서 약속하셨잖아요. 30편까지 신생 플랫폼에서 제대로 된 성과 없으면 제 말대로 하기로.”

“알아요. 그랬었죠. 그런데 아직 30편 연재 안 했잖아요.”

“30편 연재할 만큼 시간 많이 흘렀잖아요. 차라리 그때 개월 수로 못 박을 걸 그랬어요. 각서도 쓰고, 사인도 받고.”

“아, 무서워라. 우리 편집장님 사채업자 분위기.”

“다 받아 내고 말 거예요.”

“무서워서 못 살겠네요. 그래서 오늘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아니요. 한창 바쁘신데, 키우신다는 스토리 능력은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요.”

장난기가 살짝 발동한 산하가 말했다.

“제가 누굽니까?”

“망해가고, 매출도 없는 브리즈 툰 대표님이요.”

“너무 비관적이신 거 아니에요? 저 스토리 실력 쑥쑥 크고 있습니다. 아직 덜 자랐지만.”

“그걸 누가 믿어요. 섬으로 촬영 가시고, 식당 영업도 하시고, 술도 만드셔야 하고, 기자도 상대하고…… 대체 시간이 있으시긴 한 거예요?”

“그럼요. 없어도 만들면 되는 거죠.”

“답답해 정말, 괜히 전화했어요. 끊어요.”

“워워, 편집장님 화 가라앉히시고, 근처 카페 가서 시원한 음료랑 케이크라도 드세요. 제가 쏩니다.”

그녀는 전혀 반갑지 않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대표님 돈이나 야금야금 빼먹다가 집에 가야겠네요. 땡큐예요.”

“그래요? 아쉽다. 오늘은 편집장님 요리라도 하나 해 드리려고 했더니, 그럼 즐퇴하세요.”

전화를 끊으려던 강선희는 화들짝 놀랐다.

너무 바빠 보여서 부탁을 못 했을 뿐이지, 그의 환상적인 된장찌개 맛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진짜요? 진짜죠? 해 주시는 거죠?”

그녀의 애절한 질문에 산하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이미 거부하셨잖아요. 시원한 음료 드시고 열일해 주세요. 그럼 전 이만…….”

“스톱! 이러시기에요? 한 번만요. 저도 미슐랭 요리 먹고 싶어요. 그거 주시면 이번 달은 진짜, 진짜진짜 아무 말 안 할게요.”

“약속하셨어요?”

“그럼요. 진짜 약속했죠.”

“좋아요. 그럼 보자, 오늘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식당으로 오세요.”

“와, 정말이죠? 혜성 씨는요?”

“당연히 같이 와야죠.”

“네! 그럼 그때 뵐게요.”

그 순간, 그녀가 대표에게 전화하는 모습을 보며 밖으로 빠져나갔던 송혜성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두 손에 든 아이스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오늘 어디 아프세요?”

“하나도 안 아프거든요?”

“그럼 왜 먹구름이 꼈다가 맑아졌다 하고 그러세요?”

“드디어 된장찌개를 다시 한번 먹을 날이 도래했거든요.”

“아! 미슐랭 3스타, 대표님이 주신대요?”

“그럼요. 그러고 보니 혜성 씨는 한 번도 못 먹어 봤다고 했죠?”

“네, 딱히 좋아하는 메뉴는 아닌데. 그래도 미슐랭 등재된 거니까 먹어 봐야죠.”

“누가 들으면 억지로 먹이는 줄 알겠네. 혜성 씨는 그럼 빠져요. 나 혼자 갈게요.”

“잠깐만요. 왜 이러세요. 저도 가야죠. 한 식구 아닙니까. 한 식구.”

“한 식구는 무슨. 그나저나 내년에는 여기 조금 좋아지려나 모르겠어요.”

“편집장님, 잘될 겁니다. 우리 대표님이 어떤 분인데요.”

“고집쟁이요.”

“대표님한테 다 이를 겁니다.”

“일러요. 일러. 누가 겁낼 줄 알아요? 그나저나 요즘 죄책감 들어요. 월급 루팡이 둘이나 있으니.”

“전 아닌데요.”

“왜 아니에요?”

“일찍 출근해서 청소도 열심히 하고, 웹툰도 많이 보고, 메일도 많이 날리고 그러거든요.”

“잘나셨네요.”

“그걸 이제야 아시다니…….”

“말을 말아야지. 얼른 일이나 해요.”

“옛썰!”

송혜성과 말다툼을 끝낸 강선희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언제쯤이면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빨라도 1년 이상 걸리겠지?

시간만 자꾸 가네…….

아냐, 이럴 때가 아니지. 스토리 작가부터 찾아내자.

이내 눈을 빛내던 그녀는 괜찮은 스토리 작가를 구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러다가 멈칫하더니 중얼거렸다.

진짜 쑥쑥 크고 계신 건가?

에이, 말도 안 돼.

그 시각.

황수호는 펀딩으로 모인 금액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확인하며 연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해외 촬영을 하려면 자금이 상당히 많이 필요해서였다.

촬영 스태프들 왕복 이동비만 해도 어마어마한 데다, 현지에서 체류하며 쓰는 경비만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니 펀딩으로 모인 금액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 때문에, 황수호는 곤란한 표정으로 턱만 쓰다듬었다.

집이라도 팔아?

아니면 대출?

아냐, 이건 너무 무모한가.

그래도 다행이야.

따로 구인하려면 힘든데 많이들 참여해 줘서.

게다가 기존 스태프들도 다들 도와주겠다잖아.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은 있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황수호는 어디서 경비를 더 줄일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미슐랭 3스타 현판이 산하네 요리 전문점 건물 기둥에 보란 듯이 박혀 있었다.

그 위상에 걸맞게 줄은 더 길어졌고, 이젠 정말 과장이 아니라 시장통 그 자체였다.

줄이 이렇게나 긴 식당은 처음 본 손님들이 학을 떼고 돌아갈 정도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몸뚱이가 하나뿐인 산하는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요리할 뿐이었다.

그렇게 점심 영업이 끝나자마자 윤새봄이 산하에게 다가왔다.

“산하 씨, 우리 저기 앞에 편의점 차릴까요?”

“편의점? 갑자기 웬 편의점?”

“기다리는 손님들 이용하게요. 사람이 막막 바글바글하잖아요.”

“그럴까?”

“아니요.”

“봄이 바보.”

“산하 씨도 바보.”

“그건 내가 늘 말하지만, 우리 봄이만 사…….”

누가 들을세라 얼른 그의 옆구리를 콕 찌른 새봄이 속삭이듯 말했다.

“쉿! 누가 들어요. 그나저나, 정말 사할린 가는 거예요?”

“응, 가긴 가야 하는데 예산이 생각보다 많이 들더라고. 펀딩으로 해결 안 될 것 같아.”

“그럼요?”

“그냥 인터넷 방송국 차리고, 거기 황 피디님 앉힐까 싶어. 괜히 펀딩만 받아서 하다가 돈 모자라서 쩔쩔매는 것보단 이게 나을 것도 같고.”

“진짜요? 황 피디님 좋아하시겠다.”

“아직 결정한 건 아니야.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에 투자하려면 비용이 꽤 나가는데, 손실을 어디서 보전할지 고민돼서 말이야. 해외 로케이션 비용만 해도 장난 아니더라.”

산하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새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의외로 산하 씨도 현실적일 때가 다 있네요?”

“난 언제나 현실적이었어.”

“피, 아니거든요? 꿈 좇던 산하 씨는 어디 갔대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산하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윤새봄 사원, 이 박산하는 여전히 꿈을 향해 달리고 있고, 돈도 많이 모을 예정이에요.”

“돈 많이 모아서 뭐 하시게요?”

“우리 봄이 빵 만들어 주려고.”

“바보!”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은 듯 미소짓던 새봄이 한옥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식당을 빠져나갔고, 산하는 테이블에 주저앉아 간단한 콘티를 작성했다.

그때, 톡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 윤정이었다.

[박산하! 나나 할 말 있어]

[하지 마.]

[아, 왜왜. 나나나 며칠 있다가 친구 만나러 갈 건데]

[사인 노노, 요리 노노, 만남 노노.]

[아, 진짜 오빠라는 인간이 치사하게 나오네! 좋아, 그러면 나도 방법이 있어]

[뭐?]

[장독대가 무사한 꼴을 보고 싶으면 내 의견을 수락해라. 박산하!]

[싫다 박윤땡!]

[아, 왜애애. 나나 빵 몇 개만 구워 줘!]

[그래.]

[어?]

[그러자고.]

[미쳤네. 박산하 오늘 뭐 잘못 먹었어?]

[아니, 난 지극히 멀쩡하지. 나 같은 오빠가 어디 있냐? 그렇지 박윤땡?]

[아냐, 이건 뭔가 잘못됐어. 대체 무슨 일이야? 나한테 말 못 할 고민 있어?]

[해 준대도 난리네. 때려쳐!]

[어? 제정신 돌아왔네? 오빠앙. 빵은 땡큐 베리 감사]

[그건 물 건너갔어. 그럼 바바이. 바빠서 이만.]

[야! 박산하!]

이날 오후, 일곱 시가 넘어선 시각, 강선희와 송혜성이 식당으로 들이닥쳤다.

“밥 주세요!”

“대표님, 저도요.”

“두 분 아주 칼같이 오시네요. 지금 막 만들려던 참인데, 기다리는 동안 이 빵이라도 드세요.”

주방 내부 선반에서 빵 하나를 꺼낸 산하가 그걸 선희에게 건넸다.

“왜 하나뿐이에요?”

“어쩌다 보니 하나밖에 없네요. 두 분이서 나눠 드세요.”

“그래요? 난 된장찌개 많이 먹어야 하니까, 이건 혜성 씨 많이 드세요.”

“에이 같이 드시지.”

“난 우아하게 미슐랭 요리 맛봐야 해서요.”

“알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배가 고팠던 혜성은 아무 생각 없이 빵 봉지를 뜯어서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편세환의 제빵 솜씨 90%가 담긴 환상적인 빵 맛이 그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맛에 놀라 멍하니 서 있던 송혜성이 다시 한번 빵을 크게 베어 물었다.

뭐야, 이 빵 뭔데?

뭐가 이렇게 맛있어?

미쳤는데?

우와 우와, 죽인다.

빵을 받자마자 와구와구 먹어대는 송혜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강선희가 입을 열었다.

“혜성 씨, 천천히 먹어요. 체할라. 그렇게 배고팠어요?”

정신없이 빵을 씹어대던 송혜성이 살짝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어어우마이어오.”

“뭐라는 거예요? 더러워 정말. 다 먹고 말해요.”

그녀의 말대로 빵을 열심히 씹어 삼킨 송혜성이 황홀한 표정으로 산하에게 질문했다.

“너무 맛있어요. 대표님! 이 빵 어디서 사셨어요?”

“오늘 아침에 구웠어요.”

“네!?”

이 말을 듣고 멍하니 서 있는 송혜성과 다르게 화들짝 놀란 강선희가 외쳤다.

“구우셨다고요?”

“네, 왜요?”

그녀는 그의 질문에는 답하지도 않고 송혜성이 손에 들고 또 한입 크게 베어먹으려는 빵을 뺏었다.

“안 드신다고 했잖아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반은 내 거잖아요. 그래도 좀 더러우니까 여긴 뜯어내서 줄게요.”

“제가 왜 더러워요. 그럼 그거라도 얼른 주세요.”

“자, 여기.”

약 30% 정도 남은 빵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강선희가 빵을 베어 물었다.

바삭, 고소, 향긋.

세 박자가 제대로 맞아 들어가는 빵 맛이 그녀를 지배했다.

된장찌개를 제대로 맛보려고 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녀는 곧바로 후회하며 송혜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그거 내놔요.”

화들짝 놀란 송혜성이 너덜너덜하게 뜯긴 빵을 입안에 마구 쑤셔 넣으며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

이후 송혜성은 빵 맛에 푹 빠져서 산하가 막 끓여 내온 된장찌개를 대충 떠먹었다가 기절할 뻔했다.

“대, 대표님. 이게 대체 뭐예요?”

“보다시피 된장찌개죠.”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아는 된장찌개는 이런 맛이 아니라고요.”

“그럼 무슨 맛인데요?”

“그냥…… 내 돈 주고는 안 사 먹는 맛?”

하하 웃던 산하가 말했다.

“그럼 이건요?”

“이건 전 재산 팔아서라도 사 먹을 맛?”

“혜성 씨 표현 재미있네요. 그럼 많이들 드세요.”

“전 진심인데…….”

이후 된장찌개를 순식간에 퍼먹은 송혜성은 아직 살짝 남아 있는 강선희의 된장찌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그녀가 한 손으로 뚝배기를 사수했다.

“침 흘리지 마요.”

“한입만요.”

“이런 돼지!”

“돼지라도 좋아요.”

“시끄러워요. 저리 가요.”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이날 국물 한 방울 안 남겼고, 송혜성은 신을 부르짖으며 산하에게 외쳤다.

“대표님, 월급 대신 된장찌개 주세요!”

“…….”

* * *

심장원 피디는 손톱을 앞니로 마구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하는 중이었다.

“심 피디, 나까지 불안하게 왜 그래?”

누가 채가기 전에 산하를 먼저 섭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 게 있습니다.”

“뭔지 말해 봐. 내가 해결책을 딱 마련해 줄 테니까.”

“이건 심리전이라서 국장님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이상한 발언을 이어가는 심 피디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예능 국장이 그를 구박했다.

“으이구, 이놈의 심 피디. 누가 사차원 아니랄까 봐. 아니다. 그래서 기획을 잘하나.”

“제가 어째서 사차원입니까? 전 완전히 멀쩡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내 집들이에…….”

얼른 손을 내밀어 그의 입을 틀어막은 심장원 피디가 협박하듯 그의 귀에 속삭였다.

“국장님, 중대 기밀 발설은 유죄입니다.”

“읍……읍읍.”

“알아들으셨으면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주세요.”

“으읍, 읍!”

구두 신고 있는 발이 보이기는 하는 거냐? 이놈의 사차원 심 피디야.

이거 놓으라고.

이놈의 인간이 밥 먹고 운동만 했나.

무슨 힘이 이리 쎄.

그의 내면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심 피디가 손을 떼고 말했다.

“그런데 국장님.”

“에잇, 퉤퉤. 너 심 피디. 오냐오냐해 줬더니. 어딜 감히 국장 입을 틀어막아?”

흐흐흐 웃던 심 피디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게 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뛰어난 것도 죄긴 죄네요.”

“너 잘났다. 아주 잘나서 돌아 버리겠다.”

그의 발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심 피디가 묻는다.

“그보다는요. 산하 씨한테 뭘 선물하면 좋을까요?”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 귀가 솔깃해진 예능국장이 심 피디의 어깨를 감싸며 은근히 말한다.

“뭐야, 긍정적인 신호라도 왔어?”

“아니요.”

어깨를 두른 팔을 당장 떼어낸 그가 화를 냈다.

“에이…… 좋다 말았네. 선물이고 자시고, 설득이나 되겠어? 타 방송국에서도 박산하 씨 섭외하려고 난리던데. 그 뭐냐, 아침방송에서도 눈독 들인다잖아.”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심 피디가 탁상달력 메모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산하 씨 미슐랭 등재된 날’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게요. 저기 저 미슐랭이 문제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경쟁자가 너무 많아요. 제게 남은 카드라고는 친근함 뿐인데…….”

“친근함 같은 소리 하네. 그런 사람이 저번 해외 촬영 제안 거절당해?”

그의 타박에도 대꾸 없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심 피디가 벌떡 일어섰다.

“아우, 깜짝이야. 어디 가?”

“국장님, 조지 S. 패튼이라고 아십니까?”

“그게 누구야?”

“생각보다 교양이 부족하시군요.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도전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승리의 쾌감을 맛볼지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

황당한 표정을 짓는 그는 본체만체 서류 가방을 어깨에 척 걸쳐 멘 심 피디가 발걸음을 옮기며 외쳤다.

“오늘 저 찾지 마세요. 도전하러 갑니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예능국장은 컴퓨터로 패튼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에라이! 심장원 아니랄까 봐.”

이날 오후.

산하와 약속을 잡은 심 피디가 식당 내부로 들어섰다.

“미슐랭의 강자 박산하를 뵙습니다.”

오늘도 심상치 않은 그의 인사말에 산하가 답했다.

“……피디님 오늘 약 안 드셨구나.”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심 피디가 약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먹었습니다.”

“진짜요?”

“변비약…….”

허탈하게 웃던 산하가 테이블을 가리켰다.

“……정말 피디님은 변비처럼 변함이 없으시네요. 여기 앉으세요.”

이내 산하와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은 심 피디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맞은편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죠?”

“제 진심을 담은 편지입니다. 잘 보시고 결정해 주세요.”

이런 종이 편지지를 언제 받아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산하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편지요?”

“네, 편지요.”

이제 4차원을 넘어 5차원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은 심 피디를 보며 속으로 웃던 산하가 편지를 받아들고 펼쳐보았다.

- 24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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