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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65화 (265/445)

265화 난 빨라 (3)

멋진 양복을 빼입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 그가 마이크 앞에 서자, 무대 위를 노려보고 있던 세한일보 김상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여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하산해였다.

하산해?

하산해가 왜 여기서 나와?

설마 하산해가 브리즈 툰 대표라고?

혼란함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취재에 열중하던 기자들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만 했다.

조금 전 카메라 플래시를 마구 터뜨리며 사진 찍어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로부터 몇 초가 지나자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만이 들려오던 그때, 산하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브리즈 툰 대표 박산하입니다. 드라마 제작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산하가 간단한 인사말을 던지고 뒤쪽으로 빠지자, 기자들은 다급한 표정이 되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우당탕 소리까지 내며 너 나 할 것 없이 일어섰다.

평소 인터뷰하기 힘든 유명 연예인이자 예술인이다 보니 오늘이 기회다 싶어서였다.

“잠깐! 잠깐만요! 하산해 씨, 브리즈 툰 대표는 어떻게 맡게 되셨습니까?”

“요즘 가수 활동이 거의 없으셨는데요. 이제 웹툰 사업 쪽으로 뛰어드시는 겁니까?”

“브리즈 툰을 인수하신 건가요?”

“혹시 술왕부 작가를 브리즈 툰에 영입하신 분이 본인이신가요?”

“미슐랭 가이드 극찬이 참 놀라웠는데요. 여기에 관해 한 말씀 해 주세요.”

“다음 헤어 페스티벌에 참가하십니까?”

“김두섭 할아버님과 연락하고 지내십니까?”

“천상주 다음 버전은 언제 나옵니까?”

“황수호 피디의 차기 작품에도 참가하시나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던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기자님들, 오늘은 드라마 술왕부 제작 발표회 현장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제작 발표회에 주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하산해에게 시선을 쏟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제작 발표회 현장은 하산해 인터뷰 현장처럼 변해 버렸다.

이 소식은 라이브 방송으로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네티즌에게도 불을 붙였다.

- 미친, 하산해다.

- 하산해가 브리즈 툰 대표라니…….

- 아니 뭔 난리만 났다 하면 하산해가 껴 있음?

- 와, 하산해 돈 많이 벌겠다.

- 이미 많이 벌고 있을걸요? 미슐랭 식당에, 가수에, 만찬주도 있고, 다큐 투자자에…….

- 와…… 깊게 생각 안 해 봤는데, 듣고 보니까 저 사람 미쳤네. 천재다 천재.

- 그런 거 하느라고 바빠서 방송 출연도 거의 안 하잖아요.

- 콘서트 한 번 해 주지.

- 식당은 여전히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요? 사람들 줄 장난 아님.

- 미슐랭 별 세 개라길래, 저번에 한번 먹어 보려다가 포기했어요.

- 봄봄봄 작가랑 아는 사이일까요? 그래서 하산해가 대표로 있는 플랫폼에 연재?

- 혹시 하산해가 봄봄봄 작가일 가능성은요?

- 웹툰 그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데요? 절대 아님.

- 맞아요. 요즘 그 퀄리티로 주 3회 연재 중인데, 말도 안 되죠.

- 제가 볼 때는 하산해 애인 같은데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대박 작가가 작은 플랫폼에 붙어 있었을 리가 없잖아요.

- 그거 말 되네요? 봄봄봄 작가는 하산해 애인이다?

- 오! 신빙성 있어요!

- 아니라니까요. 연재 속도 좀 보세요. 한 사람이 아니에요.

- 그럼 메인 작가가 하산해 애인?

- 크 역시 우리 네티즌 수사대, 추리력 쩔어.

- 하산해도 놀랐을 거다. 봄봄봄 작가는 하산해 애인이다.

- 안 돼요. 하산해 결혼하지 마요. 허락할 수 없어요.

- 못 보내 하산해!!

- 그 추리 무효!

채팅창이 초 단위로 휙휙 바뀌던 그때, 대표와 제작진, 출연자 소개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하나 질문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기자들은 너도나도 브리즈 툰 대표에게만 질문을 던졌다.

결국 산하가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받고, 일이 있다는 핑계로 퇴장한 이후에야 제작 발표회가 순조롭게 돌아갔다.

* * *

<가수 하산해, 웹툰 플랫폼 사업가로 변신했다>

<술왕부 제작 발표회, 하산해 등장으로 혼란의 도가니>

<민채은, 술왕부 여주인공역 맡는다>

<가수 하산해, 작품 보는 눈 탁월?>

<하산해, 다큐에 이어 웹툰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어를 낚은 주인공은 하산해>

<술왕부 작가는 하산해 연인? 네티즌 설왕설래>

본래대로라면 드라마 술왕부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야 했다.

하나 그보다 더 화제의 인물인 하산해가 등장했고, 기사는 온통 산하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심지어 봄봄봄 작가가 하산해 애인이라는 추측까지 기사로 작성되었다.

쉬는 날을 맞아 하산해라는 단어로 검색해 본 새봄은 입을 삐죽거렸다.

누가 애인이야. 흥!

바보들.

내가 애인인데.

그건 그렇고 산하 씨, 이런 중요한 걸 하면서 말도 안 해 주고.

삐짐이야. 삐짐!

안 볼 거야. 안 봐!

하지만 어느새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브리즈 툰 플랫폼 사이트 주소를 알아냈다.

작가가 봄봄봄이라고?

특이하네.

우리 산하 씨가 나 불러주는 애칭인데.

잠깐만, 이상해.

산하 씨가 운영하는 웹툰 사이트에 내 애칭을 단 작가가 만화를 그려?

우연이야?

잔뜩 궁금해진 그녀는 산하에게 전화부터 하려다가 웹툰 1화를 눌러보았다. 그곳에는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다운 만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 뭐야 이거?

보통 만화 수준이 아니잖아?

어느새 만화에 푹 빠져들어 1편을 다 보고 난 새봄은 자연스럽게 2편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현재 마지막 연재 분량까지 다 보게 된 새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와 재밌다.

그런데 이거 꼭 산하 씨랑 내 이야기가 살짝 섞인 것 같은데.

수상해.

산하 씨 수상해.

많이 수상해.

다음 날.

보는 눈이 많아져서 공원 구석에 차를 주차한 산하가 기사를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봄봄봄이 내 여자친구가 맞긴 하지.

기사를 그만 보고 스마트폰을 차량 한쪽에 내려놓은 산하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우리 봄이가 알 때가 됐는데.

매일 책만 보느라 모르나. 내 예명으로 검색 정도는 해 볼 것 같은데…….

그때였다.

언제나 상큼발랄한 미소로 인사하는 그녀가 차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어?”

“왜요? 나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너무 이뻐서 놀랐잖아.”

그의 말에 입을 움찔거리던 새봄은 대답을 멈췄다. 분명히 바보라고 하면 또 자기만 사랑하는 바보라고 할 게 뻔했다.

그래서 그냥 헛기침을 한 그녀가 우아하게 보조석에 올라타며 말했다.

“박 기사, 얼른 가요.”

“어? 오늘 조금 이상한데?”

“뭐가요?”

“왜 바보라고 안 해?”

“바보를 바보라고 하면 나쁜 사람이에요.”

“???”

그가 괴상한 표정을 짓자 새봄이 혀를 날름 내밀었다.

“당했죠?”

“우리 봄이, 점점 고단수가 돼 간단 말이야.”

“내가 이 정도예요.”

“그때 해물 죽이 등장한다면?”

산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온 도시락을 들어 올렸고, 새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해물 죽이요?”

얼마나 좋았는지 손뼉까지 치는 그녀에게 산하가 말했다.

“자, 다시 말해 보세요. 윤새봄 사원. 바보를 바보라고 하면 뭐가 어째요?”

그녀가 두 손을 포개서 공손하게 내밀었다.

“취소, 취소취소. 얼른 주세요. 배고파요.”

귀여운 그녀의 표정과 행동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낀 산하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어째서 아직도 이렇게 설레는 거야.

사귄 지도 꽤 됐는데.

하여간에 마성의 윤새봄이라니까.

“산하 씨?”

“아, 여기.”

“맛있겠다. 잘 먹을게요. 아! 참,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할 말?”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그가 뉴스 기사를 떠올렸다.

오케이, 드디어 봤나 본데?

“할 말 있지.”

그의 대답에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묻는다.

“있어요? 정말요? 뭔데요?”

“내가 우리 봄이 몰래 웹툰 플랫폼을 하나 운영하게 됐는데…….”

“됐는데?”

“우리 봄이가 눈치를 못 채더라고. 거기 우리 이야기도 슬쩍 담아 놨는데 말이야.”

이야기를 담아 놨다는 말에 귀를 쫑긋하던 그녀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물었다.

“이제 해명해 보세요.”

“응?”

“우리 이야기를 왜 작가한테 줬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야기를 작가한테 줬다고? 그러니까, 아직도 내가 작가인 건 모르는 거야?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잠시 바라보던 산하가 하하 웃었다.

“왜 웃어요? 전 진지해요. 흥흥, 연애 쪽으로는 잘 안 떠오른대요? 그래서 대표한테 스토리 얻어간 거예요? 그래도 그렇지 우리 이야기를 왜 들려줬어요?”

“봄아, 그게 아니라…… 그 작가가 나야.”

“???”

그의 폭탄 발언에 눈을 또르륵 굴리며 잠시 생각하던 새봄이 태연한 척 말을 받았다.

“역시 그랬구나. 의심 정도는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한번 실험해 본 거예요. 정말 봄봄봄 작가가 산하 씨였어요?”

여자친구의 반응을 재미있게 바라보던 산하는 그녀의 태연함을 받아 주기로 했다.

“맞아.”

“말도 안 돼, 언제 그걸 다 그렸어요? 만화를 어떻게 그렇게 잘 그려요? 아무리 그래도 수묵화랑은 다른데…… 어쩐지 의심스럽더라.”

그녀는 조금 전까지 참았다는 듯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산하는 하하 웃었다.

“당연히 의심스러워야죠, 윤새봄 사원. 어때 재미있었어?”

그녀가 말도 없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던 산하가 새봄의 손을 꼭 잡았다.

“필명도 우리 봄이 보라고 지은 건데. 영 눈치를 못 채서 섭섭했어.”

웹툰 속의 남주와 여주 스토리를 떠올린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그게, 만화는 잘 안 봐서. 말해 주지 그랬어요?”

“그럼 재미없잖아. 아무튼 우리 봄이가 지금이라도 눈치채서 다행이다. 선물이니까 잘 넣어 둬.”

“고마워요. 머릿속에 콕 박아 둘게요. 그런데 언제부터 만화 그렸어요?”

“아마 조금 됐지?”

“피…… 난 것도 모르고.”

“모르라고 작정했는데, 알면 이상하지. 안 그래요? 윤새봄 사원?”

“됐어요. 생각해 보니까 심술 나요.”

“이래도?”

그가 그녀를 간지럽히자 새봄은 꺅 소리를 지르며 웃고 말았다.

“그만 해요. 알았어요. 심술 안 나요. 간지러워. 간지러워요!”

“이겼다. 윤새봄 사원, 늦었으니까 얼른 죽 드세요.”

“네!”

새봄은 죽을 떠먹으면서 심장이 콩닥거림을 느꼈다. 자신을 위해 필명을 짓고 웹툰을 그리는 남자라니.

진짜 너무 멋있어.

* * *

한옥 온실 곳곳이 녹색으로 넘실거렸다.

결실을 보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신이 난 산하는 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산하 씨, 어디예요?”

“그러는 봄이는 어딜까요?”

“음, 맞춰 볼래요?”

“내 자취방으로 가는 중?”

“어? 아닌데.”

“그럼 어디야?”

“식당 가고 있어요. 거기 없어요?”

“나 지금 한옥인데?”

“우와, 나 거기로 갈래요.”

“얼른 오세요. 환영합니다. 윤새봄 사원. 안 그래도 시킬 일 있었는데.”

“뭐라고요? 그런데 뭐 시킬 건데요?”

“빵 맛있게 먹기?”

“음…… 그건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에요. 이따가 봐요.”

그녀와 통화를 종료하기 무섭게 또 전화가 걸려왔다.

“네, 편집장님.”

“대표님, 저한테만 진실을 말씀해 보세요.”

“무슨 진실요?”

“얼마나 더 그려 놓으셨어요? 그리고 감질나게 왜 한 편씩만 주세요? 그냥 다 주세요.”

“편집장님이 왜 감질나요?”

“다음 편 이야기가 궁금하잖아요. 미리 작업도 해야 하고.”

“아니, 웹툰 내용에 잘못된 건 없는지 잘 보셔야 할 분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고 달라고 하면 어떡해요?”

“그게 어때서요?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거 아니에요? 전 당당해요.”

“……칭찬인 거죠?”

“그럴걸요? 딱 한 편만 더 주시면 안 돼요? 그런데 진짜 우리 술왕부 100편에서 끝나요?”

“더 드릴 건 없고요. 100편에서 완결입니다.”

“안 되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더 길게 그리실 생각은 없으세요?”

“안 돼요. 술왕부 이야기는 100편으로 해야 깔끔해요.”

“뭐, 작가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아쉬워서 그렇지, 저도 동의하긴 해요. 그런데 이제 술왕부 작가님이 대표님이라고 언론에 말해도 돼요?”

“아직이요.”

“대체 왜요?”

“나중에 드라마 첫 편 방영될 때 불붙이려고요.”

“아, 그럼 홍보 효과를 노리시는 거예요?”

“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잘될 것 같은데요? 이번 제작 발표 현장만 봐도 그렇고요. 알았어요. 그런 깊은 뜻이 있으셨구나. 대표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절대 말 안 할게요.”

“고맙습니다. 편집장님.”

“별말씀을요.”

그가 통화를 종료하자 또 전화가 걸려왔다.

“네, 형.”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돼? 기자들이 네 개인번호라도 알아냈냐?”

“그건 아닌데, 무슨 일인데요?”

“어, 다른 게 아니고 27편에 스승 씬 있잖아. 그거 네가 하면 안 되냐?”

“제가요?”

“그래, 수묵화 그리는 장면 나오잖아. 카메오로 한 번 출연하자. 설 감독님도 동의했어. 어때?”

“뭐, 짧으니까 어렵진 않죠. 알았어요.”

“오케이! 좋고. 나중에 보자.”

그는 기훈과의 통화를 종료하고 피식 웃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전화가 한 번에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또 누구한테 전화 안 오나 싶어 스마트폰을 잠시 들여다보던 그는 도로 전화기를 바지춤에 집어넣고 온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느새 마당에는 향긋한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온 동네 개들이 나도 하나만 달라며 멍멍 짖어대던 그때, 화덕 불 조절을 마친 산하는 다시 온실 안으로 입성해 천상주용 재료를 수확했다.

그때, 새봄이 마당으로 들어서며 산하를 찾다가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온실 문을 열었다. 그녀는 가을이라는 날씨에 맞지 않게 초록 물결이 가득한 내부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이게 다 뭐예요? 여긴 봄이네.”

“이거 봐, 이거 봐. 윤새봄 사원, 요즘 나한테 관심이 없다니까.”

“내가요? 아닌데. 관심 많아요. 이거 언제 심었어요? 마지막으로 봤을 땐 이런 것도 없었던 거 같은데.”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했고, 산하는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큰소리쳤다.

“봐봐, 언제 심은 건지도 모른다니까. 우리만의 소중한 공간이라더니. 순 뻥이었어.”

민망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여전히 궁금한 표정으로 포도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닌데. 진짜 아닌데. 근데 이거 포도네요?”

“응, 포도야.”

“이거 나 주려고 심은 거예요?”

“아니.”

“아……니에요?”

“봄봄봄에겐 미안하지만, 시험 재배하는 거야. 실험할 게 있어서.”

호기심이 잔뜩 차오른 새봄이 궁금증을 토해냈다.

“뭔데요? 나한테만 살짝 알려 줘요.”

“그건…… 비밀!”

“흥!”

“대신 결과물 나오면 우리 봄이 가장 먼저 맛보여 주기로 약속.”

“진짜죠?”

“그러엄.”

“좋아요. 약속.”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단단히 약속했다.

* * *

경기도에 위치한 세트장에서 술왕부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었다.

설덕수 총감독을 필두로 많은 제작진이 분주하게 오가던 그때, 산하는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와 메인 드라마 작가와 감독에게 조언 중이었다.

이 모습을 보게 된 제작진 몇 명이 모여 쑥덕거렸다. 그들은 제작진 중에서도 술왕부 진성팬이었다.

한마디로 좋아하는 웹툰을 위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었다는 뜻이었다.

“아니, 지가 브리즈 툰 대표면 대표지, 웬 훈계질?”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설 감독님이 QBS피디 출신인데.”

“저번에 다큐 촬영도 직접 했다고 하고, 잘한다니까, 촬영 조언 아닐까요?”

“에이 아냐. 내가 아까도 들었는데, 스토리 관련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말하더라고.”

“그래요? 그거 선 넘었는데요?”

“봄봄봄 작가가 보면 통탄할 일이네.”

“정 작가님도 알고 보니까 시나리오 공모 당선도 되고, 제법 이력이 괜찮던데 웬 조언?”

“글쎄, 투자 좀 했다 이거지. 솔직히 말해서 조언할 깜냥이나 돼? 조언할 거면 원작 그린 작가가 직접 와서 해야 말이 맞지.”

“내 말이, 뭐 원작 작가한테 몇 마디 주워듣고 왔나 보죠.”

“이런 일 비일비재하죠. 투자자 입맛대로 흘러가는 막장 드라마 각이네.”

“이러다 술왕부 원작 다 망치겠어요. 나도 팬이라서 여기 제작팀 모집할 때 뛰어들었는데.”

“나도 그래요. 후회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건데.”

이 이야기를 지나가다 듣게 된 곽기훈이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들 하세요?”

“별거 아닙니다.”

“오셨어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안녕하세요?”

딴청을 피우며 저쪽으로 사라져가는 제작진을 잠시 바라보던 기훈이 산하에게로 다가갔다.

“산하야.”

“네?”

“다 끝났어?”

“아니요. 아직이요. 왜요?”

“제작진 몇 명이 너 씹더라?”

“저를요? 왜요?”

“아무것도 아닌데 훈계질한다고. 원작자가 슬퍼서 울 거래.”

산하가 하하 웃었다.

“재밌네요.”

“다들 네 웹툰 팬인 거 같긴 한데, 당장은 드라마 제작에 나쁜 영향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얘기하면 되죠.”

“얘기하라고? 드라마 첫방 때 알려서 홍보하기로 했잖아?”

“아니요, 언론에는 말고 제작진한테만 살짝, 비밀은 엄수하라고 하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덕수가 끼어들었다.

“그거 찬성입니다. 안 그래도 제작진 사이에서 산하 씨가 찾아와서 왜 계속 훈수 두느냐는 둥 은근 말이 많아서요.”

그의 말에 산하가 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죠. 총대는 설 감독님이 메 주시고요. 아,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드라마 작가 정승희가 그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본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 이 부분이요.”

잠시 후.

드라마 총감독 설덕수가 제작진을 불러모았다.

“다들 수고가 많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하산해 씨가 제작에 깊이 관여하는 것에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들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술 감독을 맡은 사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마침 잘됐습니다. 감독님, 촬영은 감독님의 권한입니다. 아무리 하산해 씨가 투자자이자 웹툰 플랫폼 대표라곤 해도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자 다른 제작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단 제작진이 결정됐으면 그 안에서 해결을 봐야죠. 촬영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산으로 간 드라마가 한둘입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감독님, 압력이 들어와도 꿋꿋하게 이겨내세요. 이러다가 PPL도 잔뜩 넣을 기세예요.”

그들의 불만 어린 표정을 훑어보던 설덕수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제로 조언받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부탁드리고 있다는 건 아십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작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 감독이 지금 무슨 개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속내는 이랬다.

뭐야, 지가 조언해 달라고 했다는 거야?

촬영에 자신이 없는 건가?

아니 조언을 들어도 전문가에게 들어야지.

이 드라마 망하는 거야?

그들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설덕수가 말을 이어 갔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제가 하산해 씨에게 부탁드렸고, 아주 훌륭한 조언을 듣고 있습니다.”

“아니, 대체 왜요? 저 사람이 웹툰 플랫폼 대표지, 무슨 원작자라도 된답니까?”

- 26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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