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70화 (270/445)

270화 원작이 너무해 (2)

산하가 자신을 소개하자마자 민채은이 물었다.

“지금 시청자분들 상당히 놀라실 것 같은데요. 정말 하산해 씨 본인이 봄봄봄 작가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봄봄봄이라는 필명은 애독자분들 대부분이 팀 이름인 줄로 알고 계시는데요, 정말 아니었습니까?”

“네, 팀이 아니라 저 혼자입니다.”

“보조하는 사람도 없나요?”

“네, 따로 없습니다.”

“이 사실을 왜 지금껏 숨기셨나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터뷰는 계속 진행되었고, 박윤정은 얼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부모인 박상태와 장순희도 마찬가지였다.

그 바쁜 와중에 혼자 웹툰까지 그렸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장순희가 물었다.

“제동 아빠, 보고 있어요?”

“응? 응…….”

“세상에…… 우리 아들이 원작자래요.”

“…….”

그 순간, 박윤정의 뇌리에는 온갖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다.

봄봄봄 작가에게 사인 좀 받아 달라는 둥, 작가 혹사시키지 말라는 둥, 운빨로 작가 로또 터졌다는 둥 말했던 과거의 자신이 생각났다.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얻어걸린 게 분명하다고 말했던 그녀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얻어걸린 게 아니라 자기 혼자 다 한 거였다.

그래서 윤정은 한숨을 한 번 더 내쉬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왜 그러냐고 묻는 이가 없었다.

놀란 부모님을 뒤로한 채, 윤정은 자신의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여태 소파 밑에 숨어 있던 고양이 엘리자베스가 그녀보다 먼저 방으로 진입했다.

그녀는 반려묘를 천천히 들어 올리곤 쓰다듬으며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

“엘리자베스, 박산하가 나 놀린 거지? 그치?”

엘리자베스는 지루하다는 듯 입을 쩍 벌려 하품했다.

“날 얼마나 비웃었을 거야? 용서 못 해. 박산하!”

마치 막장 드라마 복수극에 빙의하기라도 한 듯, 윤정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왜! 왜 날 속여? 왜 날 속이냐고. 미친 거 아니야? 나한테는 말해 줘도 되잖아. 박산하! 박산하!! 가만 안 둘 거야!”

연신 자신의 오빠를 비난하던 윤정은 너무 쪽팔렸던 나머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하나 과거의 기억은 쉽사리 떠나가지를 않았고, 이불킥을 여러 번 했다.

그러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잠깐! 가만 있어 봐. 베스트셀러 작가 박산하도 이 인간 아니야? 분명 얼굴 공개된 적 없는 작가란 말이지.”

골똘히 생각해 보던 윤정이 무릎을 탁 치며 중얼거렸다.

오, 그래. 박산하, 이번엔 딱 걸렸어. 베스트셀러 작품을 냈단 말이지? 예전에 그걸로 돈도 많이 벌었으면서 그지인 척하고, 좋아. 이 수치심을 그대로 갚아 줄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는 곧장 산하에게 톡을 보냈다.

[박산하, 난 다 알고 있어.]

[뭘 알아? 나 웹툰 작가인 거? 그거야 조금 전 드라마에서 말했잖아. 놀랐냐?]

[그거 말고. 다른 거. 내가 뭘 아나 싶어서 두렵지?]

산하는 여동생이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의아했지만, 잠시 장난이나 쳐 보기로 했다.

[설마…… 어떻게 알았어?]

강렬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윤정이 푸하하 웃으며 답장을 날렸다.

[그럼 그렇지. 박산하 그럴 줄 알았어.]

[언제부터 알았어?]

[오래전부터, 이 질문 받으면 소름 끼칠 거야.]

[무슨 질문?]

[베스트 셀러는 얼마나 벌어?]

[뭐?]

[이제 와서 모른 척하시겠다? 이미 들킨 주제에. 이제 사실대로 말해 봐. 그럼 기자한테 흘리지는 않을게. 언제부터 썼어?]

[너 오늘도 약 안 먹었냐? 잘 좀 챙겨 먹으라니까.]

[그래 봐야 소용없어. 완벽하게 눈치챘거든. 왜 정말 두렵냐?]

[박윤땡 이거 제정신 아니네. 수신 종료.]

[야! 야야 박산하. 박산하?]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반응 보니까, 베스트셀러 작가도 박산하 맞네.

이 인간 정말 미친 거 아냐?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 된 것도 숨기고 있어? 아니 그전에,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까지 하냐고.

지가 무슨 천재야?

어…… 진짜 천재인가?

난 왜 그 유전자 못 받았지? 몰빵인가?

아무튼 딱 걸렸어. 박산하.

헛다리를 짚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윤정이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기록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박산하는, 박산하라는 걸 알아냈다. 얼굴을 숨긴 걸 보면 분명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보여 주는 극명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다음 날.

자신의 오빠가 단독 본가에 들르자, 윤정은 미리 사놓은 책 몇 권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건 뭐야? 선물?”

“선물은 개뿔, 모른 척하지 말고 얼른 사인이나 해 줘. 친구들한테 돌리게.”

“???”

“그러게 왜 필명을 실명이랑 똑같이 써? 등잔 밑이 진짜 어두울 것 같아?”

산하는 귓가에 검지를 대고 빙빙 돌렸다.

“너 오늘 뭐 잘못 먹었어? 상한 거 먹었지?”

“어제 다 들켰어. 실토해 봐. 이것도 직접 쓴 거잖아. 나 다 알아. 30대 베스트셀러 작가 박산하. 바로 당신!”

그녀가 내민 책자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산하가 풉 웃었다.

“……아닌데?”

“뭐?”

“아니라고. 설마 이거 내가 쓴 건 줄 알고 사 왔냐? 어젠 장난이었는데.”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챈 그녀가 소리쳤다.

“맞다고 해! 맞잖아!”

“아니라니까. 장 여사님, 윤정이 이상한 거 먹었어요? 이상해요. 막 남의 책 사 와서 사인해 달래요.”

그의 발언에 부들부들 떨던 그녀가 책을 탕 소리가 나게 거실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박산하, 두고 봐. 이 분노, 이 원한, 다 갚아 주고 말겠어.”

여동생이 자신을 노려보자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산하가 헤드록을 걸었다.

“이게 어디 오빠한테, 받아라! 응징의 메아리!”

“아! 놔, 놓으라고. 박산하. 나이가 몇 살인데 이따위 짓이야? 유치하게. 놔, 안 놔?”

“잘못했어요. 해 봐.”

“엄마! 오빠가 나 괴롭혀!”

“합의해.”

익숙하게 들려온 어머니의 제안에 윤정이 얼굴을 찌푸리며 산하에게 반항했다.

“이 그지 같은 인간, 기자한테 다 까발린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 씨, 놓으라고! 아! 아파!”

그렇게 거실에서 친남매임을 한참이나 증명하던 두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서로를 노려봤다.

“아우, 아파라. 멍들겠네. 박윤땡. 내가 손톱으로 꼬집지 말랬지?”

“박산하, 내가 목 조르지 말랬지?”

“이게 오빠한테 한마디를 안 져?”

“왜? 때리게? 때려 봐. 나 녹음 중이야.”

“……정말 박윤땡, 가지가지 한다. 넌 오늘 된장찌개 압수.”

“!?”

“뭘 봐?”

“오라버니…….”

“닥쳐.”

“그런데, 진짜 아니야?”

“아니라고.”

* * *

<충격! 봄봄봄 작가는 하산해였다!>

<술왕부 쿠키 영상, 웹툰 애독자 뒤집어져>

<홀로 웹툰 발언, 네티즌 ‘믿을 수 없다’>

<하산해 팬, 충격의 도가니>

<종합예술인 박산하, 웹툰계에서 또 일 저질러>

술왕부 드라마는 굉장히 흥행했지만, 뉴스 기사에서는 그 내용에 관한 평가 기사가 단 한 줄도 없었다.

모조리 하산해와 웹툰에 관한 기사였다. 심지어 이제는 산하를 종합예술인이라 칭하는 기사도 있었다.

- 이런 미친, 아주 그냥 지가 다 해 먹어라.

- 대표인데, 봄봄봄 작가라고? 저게 인간인가?

- 하산해 뭐 또 숨기는 거 있지 않을까요?

- 설마요. 지금 드러난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데요.

- 아, 맞다. 베스트셀러 작가 박산하, 이거 파 봅시다. 하산해일지도 몰라요.

- 오, 그것도 가능성 있네요.

- 에이 설마요. 설마 그것까지.

- 겁나 천재 그 자체네.

- 부럽다. 그 재능 하나만 나 주라.

네티즌들이 갑론을박을 이어 가던 그때, 술왕부 웹툰 카페의 한 게시글에는 이상한 댓글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산해가, 봄봄봄 작가라니…… 실화입니까?>

- ….

- …….

- ………….

모두 할 말을 잃었다는 뜻으로 점만 찍고 있는 상황에, 누군가가 드디어 댓글을 달았다.

- 우리 이벤트 당첨자 없네요?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 아니, 진짜 팀이 아닌 걸까요? 말도 안 돼요.

그들이 어이없어하던 그때였다. 이 카페 운영자가 댓글을 달았다.

- 회원님들, 하산해 팬카페에서 연락 왔어요. 연합 합류하라고.

- 헐…….

- 미쳤다.

- 왠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야릇하네요.

- 저도 그래요.

- 무슨 연합군도 아니고.

- 그런데 무슨 든든한 오빠들 생긴 것 같지 않아요?

- 저도 그러네요. 마치 형 열댓 명 생긴 느낌?

그 시각,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하산해 팬카페는 드라마 쿠키 영상 이후로 난리가 나 있었다.

- 구아아아악! 사랑해요. 하산해.

- 자자, 다들 몰려가서 웹툰 구독, 구입, 아시죠?

- 우리 파워를 보여 주자고요.

- 물 들어올 때 노 젓게 해 드려요.

- 하산해님은 한 번도 물 빠진 적이 없는데요?

- 아, 맞다.

- 미친, 하산해님 미쳤네 진짜.

- 누가 저 뺨 한 번만 때려 줄래요?

- 요즘 봄봄봄 작가 웹툰에 빠져서 카페 활동 조금 소홀했는데, 소홀한 게 아니었네요?

- 저도 그런데, 아주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네요. 저도 모르게.

- 저도요.

- 하산해님을 기네스북에 등재합시다.

- 옳소!

- 내가 이래서 하산해님 못 잃어.

모두가 즐거워하거나 당황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이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윤새봄.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웹툰이 드라마로 방영되자 그 기분이 남달랐던 탓이었다.

오늘도 감동을 가라앉히지 못한 그녀는 양 볼을 감싸고 소리 내 중얼거렸다.

“어떡해, 너무 좋아.”

그때였다. 윤주상이 방문을 똑똑 두들겼다.

“네, 들어오세요.”

이내 새봄의 방으로 들어선 윤주상이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딸, 아빠가 생각해 봤는데.”

“네?”

“도망치기 전에 얼른 잡아. 아니다. 식장부터 잡는 게 어떠냐?”

“???”

* * *

<드라마 술왕부, 원작 인기 힘입어 가속 페달>

<첫날부터 치솟은 시청률, 드라마 술왕부 이대로 대박?>

<웹툰 애독자도 우려했던 제작진, 여봐란듯이 드라마화 성공!>

여전히 술왕부에 관한 뉴스 기사가 오르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본래 곽기훈은 그룹의 힘을 빌려 전 세계에 드라마 술왕부를 배포할 계획을 세웠었고, 산하에게도 말했었다.

하나 그것은 수포가 되었고, 결국 산하와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네 생각은 어때?”

“제 생각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 플랫폼 성장할 때까지는, 다국적 플랫폼이랑 잠시 계약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요?”

“미안하다. 될 줄 알았는데.”

“에이, 형이 왜 미안해요. 마침 엔플릭스랑 데스티니에서 연락 왔거든요. 거기 하고는 제가 얘기해 볼게요.”

“그래? 그나마 잘됐네. 오케이, 아무튼 드라마화 성공한 거 축하한다. 네가 작가인 게 알려지니까 아주 다들 난리다.”

“그래서 피곤해요. 이놈의 인터뷰 요청은 언제까지 올지 모르겠네요.”

“당분간 행동거지 조심해. 괜히 구설수 오를라.”

“그래야죠. 잘 숨어다녀야겠어요.”

식당에서 기훈과 잠시 대화를 나눈 산하는 풍류 사무실로 향했다. 마침 부사장 장단석이 복도로 걸어 나오다 산하와 마주쳤다.

“아, 부사장님. 엔플릭스 사람은요?”

“벌써 와 계세요.”

“벌써요?”

“네, 한참 됐어요.”

“뭘 그렇게 빨리 오셨대요?”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지금 엔플릭스랑 데스티니 점유율로 박 터지게 싸우는 거, 이참에 인기몰이 시작한 우리 드라마 선점해 보겠다는 거죠.”

“이건 부사장님 선에서 해결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 큰 건은 대표님이 하셔야죠.”

“그거 꼭 책임지기 싫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그의 장난기 어린 미소에 풍류 부사장 장단석이 하하 웃었다.

“그럴 리가요. 얼른 들어가시죠. 부가적인 건 제가 처리할 테니, 대표님은 들어보시고 결정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아직 저 대표 아닌데요?”

“지분만 보자면 그냥 대표님이죠. 실질적으로 대표님이시기도 하고요. 취임은 대체 언제 하실 거죠?”

“글쎄요. 조만간 해야 하지 않을까요?”

SL홈쇼핑에서 상무로 재직 중일 때만 해도 얼굴을 찌푸리고 살았던 그는, 요즘 정말 살맛이 났다.

대표로 취임할 사람은 능력도 있지만, 아랫사람의 의견을 적절히 수용할 줄도 알았고, 또한 그 재능까지 출중했다.

앞으로 이 풍류라는 회사가 얼마나 더 커나갈지 상상조차 안 갔던 그는, 늘 부푼 마음으로 풍류 사무실에 출근하곤 했다.

다국적 업체들이 서로 콘텐츠 달라고 찾아오는 회사라니.

뭘 해도 보람차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응접실에 도착한 산하는 엔플릭스 관계자와 마주했다. 그 사내는 하산해라는 연예인이 들어서자 당황한 눈치였다.

“원작자님은 왜…… 아! 하긴, 원작자님 의견도 들어 봐야겠죠.”

그는 이런 인기 돌풍을 만들어 낸 배경에 원작자가 있음을 당연히 알았고, 풍류 대표가 그를 중요시해서 이 대화에 함께하는 줄 착각했다.

이참에 얼굴 알아놓으면 나중에 스카우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에게 장단석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이분이 대표님입니다.”

“네? 뭐라고요?”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아 참, 아직 취임은 안 하셨으니까 이 얘기는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엔플릭스 관계자는 멍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런 미친, 원작자인데 여기 대표라고?

……진짜 돌았네.

엔플릭스에 몸담고 있지만, 영혼부터 육신까지 한국인이었던 그는 하산해가 자랑스러웠다.

그런 그에게 산하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박산하입니다. 앉으시죠.”

통성명을 한 두 사람은 마주 앉았고, 엔플릭스 관계자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이미 전화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계약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독소 조항이 몇 개 있더군요.”

“아…… 그건.”

“특히 이번에 술왕부를 공개한 플랫폼 이외에는 엔플릭스에 5년간 콘텐츠 독점 공급, 이건 절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대표님, 그게 꼭 나쁜 조항은 아닙니다. 풍류 쪽에서 손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콘텐츠가 생산되더라도 우리 엔플릭스는 기꺼이 수용하게 됩니다. 프로모션을 포함해서요.”

“글쎄요. 전 우리 풍류에서 그런 질 나쁜 콘텐츠를 생산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어딘가 강경해 보이는 그의 태도에 엔플릭스 관계자는 이상한 위압감을 느꼈다.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정부 고위인사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달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산하가 여러 존재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많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치가 축적되다 보니 마치 인생을 오랜 기간 살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레 노련함이 배어 나온 것이었다.

그로 인해 엔플릭스 관계자는 괜스레 움츠러드는 자신의 어깨를 억지로 펴며 말했다.

“……그럼 대표님 생각을 속 시원하게 한번 말씀해 주시죠?”

“독소 조항,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데스티니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그쪽이랑 협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데스티니요……?”

“네, 데스티니요.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산하가 그대로 일어서려 하자, 엔플릭스 관계자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대표님.”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제가 빠른 시간 내에 윗선에 보고하고, 더 좋은 계약 조건으로 들고 오겠습니다. 그전까지는 데스티니와의 계약은 미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럴게요. 하지만 많이는 못 기다립니다.”

“네, 그럼 전 바로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단석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인식을 또 한 번 바꾸게 되었다.

대표님은 이런 쪽에도 천재적 자질이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한편, 응접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던 엔플릭스 관계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젊은 사람에게서 저런 노련함과 위압감은 처음 느껴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크게 될 인물은 다르다 이건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곧장 윗선에 보고하기 위해 엔플릭스 건물로 향했다.

* * *

<다국적 OTT 업체, 풍류와 긴밀한 접촉 포착>

<세계적인 문화기업 선언했던 풍류, 현실화 가능성은?>

<도일전자, SL전자와 특허 분쟁 심화…… 그룹 싸움으로 번지나>

여러 뉴스가 나갈 무렵, 산하는 엔플릭스 측과 풍류에 유리한 계약을 완료했다.

우선 미국부터 시작해 타국에 동시다발적으로 풀릴 예정이었는데, 엔플릭스 관계자는 풍류 부사장이 말한 바를 듣고 당황했다.

“네?”

“대표님이 제작한 영어 자막입니다.”

엔플릭스 관계자는 풍류 측에서 이미 완성한 영어 자막이 있다길래, 벌써 세계로 진출할 준비가 다 되어 있구나 생각했었다.

한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게 하산해가 직접 제작한 거란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풍류 대표님이 직접 했다고요?”

“네, 아마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저도 보고 놀랐는데, 아무래도 원작자이신 만큼 여러 표현을 적절하게 집어넣으셨더군요. 대표님이 번역하느라 고생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산하는 그저 드라마 대본 첫 편을 옆에 두고, 마치 채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키보드를 두들겨 단시간에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동시 통역사 천병수의 재능을 얻은 그에게 있어 그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엔플릭스 관계자는, 잠시 후 자막을 엔플릭스 한국 지사에 보내고 평가를 전달받았다.

평가 결과는 ‘전문가 수준으로 완벽하다’였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얼마 후.

엔플릭스는 아주 빠르게 미국 쪽에 드라마 술왕부 1편을 배포했고, 미국인 그레이스 베이커는 그곳에 새로 뜬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달랑 한 편뿐이었지만, 평소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던 그녀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드라마를 눌렀다가 환호했다.

와우, 독특하고 재밌는데?

그런데…… 아쉽게 한 편뿐이네.

가만, 원작이 있다고?

<본 드라마는 한국의 웹툰 원작,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을 드라마화한 것으로……>

소개 글을 가만히 살펴보던 그녀는 원작이 보고 싶어졌다.

원작은 어디서 볼 수 있지?

- 27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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