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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77화 (277/445)

277화 제자리로 돌아가요 (1)

한편, 산하는 식당에 보관해 두었던 된장이 거의 다 떨어져서 본가 단독주택에 들른 참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강아지 따릉이를 쓰다듬어 주고 현관으로 들어선 산하가 소리쳤다.

“장 여사님, 아들 왔어요.”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가 반겨 주실 것으로 예상했지만, 산하의 눈앞에는 윤정이 나타났다.

“오냐, 아들 왔어? 손에 든 그건 뭣이다냐?”

“닥쳐.”

“아들,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내가 약 꼭꼭 챙겨 먹으라고 했잖아. 어쩌다 애가 이 지경이 됐나 몰라.”

“야! 박산하!”

“왜, 박윤땡!”

“왜 약국 안 오는데? 내가 오라고 했잖아.”

“내가 거길 왜 가는데?”

“말투 따라 하지 마!”

“말투 따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어? 야 박윤땡. 너 볼이 왜 이렇게 동그래졌냐? 살쪘어?”

“아니거든? 살찐 거 아니고 부은 거야.”

“또 치킨 한 마리 혼자 다 먹었지?”

“아니라고, 반 마리만 먹었어.”

“뻥치고 있네. 그런데 너 왜 집에 있냐? 잘렸냐?”

“미친, 내가 왜 잘려? 내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데. 오빠라는 게 동생한테 관심도 없어. 내가 저번에 톡으로 오늘 내부 공사한다고 말했잖아.”

그녀의 설명에 시큰둥한 표정을 짓던 산하가 손을 흔들었다.

“아…… 그래? 그렇구나. 그럼 잘 있어.”

“어디가? 나나나 된장찌개 먹을래.”

“누구 마음대로?”

“이쁜 동생 마음대로? 오빠앙!”

윤정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볼에 대고 귀여운 척했고, 산하는 기겁했다.

“미쳤네. 다가오지 마.”

“아잉, 왜 그래. 나 오늘 입맛이 없어.”

산하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에서 빵 하나를 꺼내 그녀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이거 먹고 떨어져. 나 간다.”

산하는 현관을 빠져나갔고, 항의하려던 윤정은 입안에 들어온 빵을 한입 베어 물고 오물거렸다.

“아쒸, 왜 이렇게 맛있어?”

감탄하며 빵을 뜯어 먹던 윤정이 눈을 부릅뜨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야! 박산하. 약국 들러야 해, 알았지?”

된장을 퍼 담아 나르던 산하가 답했다.

“알았어.”

“진짜?”

“병원 갈 일 있으면 한번 들를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아프면 간다고.”

“야!”

킥킥 웃던 산하가 된장을 트럭에 마저 싣고 사라졌다.

* * *

2년 전만 해도, 산하네 요리 전문점은 영업시간이 끝나면 몇 시간 만큼은 한산해지곤 했다.

하나 미슐랭 별 3개를 받고, 산하가 다방면으로 유명해지며, 새벽이고 낮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술왕부 웹툰 작가가 하산해 인 것이 알려지면서 그 인기는 도를 넘었다.

가게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가 하면,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 얼굴 한번 보겠다고 대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기자들까지 진을 치고 있다 보니, 그 북적북적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로 인해 산하네 요리 전문점 근처는 24시간 열기를 띠곤 했다.

겨울이면 붕어빵 상인들이 여럿 몰려오고, 군고구마도 팔고, 편의점도 브랜드별로 들어서 있었다.

예전의 삭막한 모습과 비교하자면 정말 천지개벽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사실에 관해 가만히 생각해 보던 산하는 전화가 걸려오자 누구인지 확인했다.

강영신이었다.

“네, 오고 계신가요?”

“지금 근처입니다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요?”

“조금 그렇죠? 안 그래도 다른 곳으로 모실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첫 만남이다 보니 오히려 조용한 장소는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차라리 이렇게 공개된 듯한 장소가 편하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다른 장소도 있습니다.”

강영신은 택시 뒷자리에서 잠시 말이 없었다.

정부 측 제의를 받고 만나자고 한 게 아닌가?

정부에서 이렇게나 공개된 장소에서 만남을 요구할 리 없는데.

의아해하던 그가 산하의 말에 답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곧 바깥이 시끌벅적해지자 산하는 눈을 돌렸다.

택시 한 대가 정차하더니 그곳에서 강영신 부부가 내렸고, 그들을 알아본 몇몇 기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플래시 세례를 터뜨리고 있었다.

“강영신 씨, 여긴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하산해 씨와 선약이 있으신 겁니까? 강영신 씨,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사업적인 일인가요? 혹시 콘텐츠 사업에 투자하시나요?”

하나 강영신과 김혜윤은 죄송하다는 말만 던진 채 묵묵히 식당 입구 근처로 다가갔다.

그곳 근처에는 미슐랭 별 세 개 현판이 콕 박혀 있었다.

“진짜, 미슐랭 식당이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그때였다.

산하가 밖으로 걸어 나와 두 사람을 환영했고,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어서 오세요.”

고요하기만 하던 두 부부는 그를 만나자마자 활기가 돌았다.

“작가님, 우리 정말 팬입니다.”

“작가님 만나서 반가워요.”

“네, 감사합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두 사람이 내부로 들어서자, 산하는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쳐버렸다.

“오느라 힘드셨죠?”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셋뿐인가요?”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의 미묘한 발언에 강영신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정부 측 사람이 올 거라는 얘기군.

그럼 그렇지.

하고 많은 팬 중에 우리를 콕 집어서 초대할 이유가 이것밖에 더 있어?

뭐, 상관없지.

이런 빌미로 작가님이랑 대화도 좀 하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야.

“두 분? 앉으세요. 제가 금방 요리해서 대령하겠습니다.”

김혜윤이 미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아니요. 괜찮습니다. 귀한 손님 오셨는데, 물 한 방울이라도 묻히면 안 되죠.”

그의 말에 김혜윤이 갑자기 호호 웃었고, 산하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오해를 풀어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방금 하신 말씀, 우리 남편이 옛날에 멋대가리없이 프러포즈할 때 했던 말이랑 비슷해서요.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러자 강영신이 땀을 삐질 흘릴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당신, 아직도 그걸 기억해?”

“그럼요. 아주 잘 기억하죠.”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농담을 주고받았고, 산하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래도 제가 두 분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건 아닌지 두려운데요? 아, 얼른 앉으세요.”

그의 말에 김혜윤이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덕분에 옛일 떠올려서 기분 좋았어요. 멋대가리없는 강영신 씨 어서 앉으세요.”

“거참…… 그만 좀 잊으라고.”

“싫어요. 앞으로 9,999번 정도는 더 말할 계획이랍니다.”

“…….”

강영신은 곤란해하면서도 눈동자에 정이 넘쳤고,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흐뭇하게 웃던 산하가 요리를 시작했다.

오픈 주방이다 보니 조리 장면이 훤히 보였고, 가만히 앉아 있기엔 좀이 쑤셨던 두 부부는 산하의 요리 실력을 구경했다.

탕탕 소리와 함께 각종 야채가 자로 잰 듯 썰려 나가고, 잠시 후엔 구수한 향이 실내를 감돌았다.

“어쩜, 작가님은 어떻게 요리도 잘하세요?”

“당신 그거 실례야.”

“왜요?”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슐랭 요리사시잖아.”

“아, 맞아요. 그걸 깜빡했네요.”

“두 분이 자꾸 비행기 태우셔서 요리 집중이 안 되는데요?”

“그렇다기엔 손놀림 여전하신데요?”

“그런가요? 자, 거의 다 됐습니다. 시장하시죠?”

이내 산하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뚝배기를 서빙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나, 두 부부는 잔뜩 쌓인 부로 다양하고 맛난 요리를 먹으며 살아왔고, 미슐랭 요리도 제법 맛보았기에, 요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 봐야 음식일 뿐이라고 여겼고, 단지 작가와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래서 두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그러게.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두 사람은 얼른 산하가 맞은편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때, 그가 그들의 바람대로 의자에 앉으며 묻는다.

“왜 안 드세요? 혹시 된장찌개 싫어하세요?”

“아니에요. 좋아해요. 작가님 앉으시면 시작하려고 했죠. 작가님도 얼른 드세요.”

“작가님, 잘 먹겠습니다.”

이윽고 두 부부는 된장찌개 국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중 가장 먼저 떠먹은 사람은 강영신이었다.

그래도 그의 성의가 있기에,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출하기로 한 강영신은 건더기와 국물을 듬뿍 떠서 후후 불고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영신의 눈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탓이었다.

평생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그야 말고 기가 막히다 못해 코가 막힌 맛이 혀를 훑고 지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서, 어서 더 빨리 넣어 달라고 침샘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황홀한 그 맛에 미쳐 버린 영신은 말도 없이 된장찌개를 마구 퍼먹었다.

그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혜윤도 마찬가지였다.

두 부부는 평생 잊지 못할, 아니 다시 못 먹으면 꿈에도 나올 것만 같은 맛에 완전히 취해 버렸다.

잠시 후.

뚝배기를 깨끗하게 비워낸 두 사람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맛있어요. 이런 맛 처음이에요.”

“이…… 이게 대체 뭐죠?”

“보시다시피 된장찌개죠. 우리 식당 메인 메뉴입니다.”

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린 혜윤이 텅 빈 뚝배기를 들여다보며 말을 흐렸다.

“……아니 이게, 그냥 된장찌개라기엔…….”

“……이거 미슐랭 등급을 개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과찬이십니다. 아 참, 이거 얼른 치우고 샴페인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 나누시죠.”

“저도 도울게요.”

“괜찮습니다. 손님이잖아요. 오늘만큼은 왕처럼 앉아 계세요.”

그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테이블을 치워냈고, 휴게실로 들어가더니 경매에 부치고 남아 있던 샴페인 열 병 중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

그 병은 아무런 라벨도 없이 그저 예쁜 병에 담겨 있었다.

“어…… 이게 샴페인인가요?”

“네, 생각보다 맛이 괜찮습니다.”

이내 와인잔에 샴페인을 따라 준 산하는 자신의 유리잔에도 한잔 따랐다.

“자, 궁금하실 텐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하나 산하는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피노누아의 농밀한 향이 그들의 후각을 자극했고, 뭔가에 홀린 듯 샴페인을 마신 두 사람이 탄성을 내질렀기 때문이었다.

그 먼 옛날, 수도사 동 페리뇽이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다고 했던 그 말처럼, 비슷한 느낌을 받은 강영신이 묻는다.

“놀랍군요. 이거 대체 어디서 생산한 거죠?”

“이거 정말 전통 샴페인이네요. 이런 건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들 텐데. 이 귀한 걸 우리 때문에 내놓으신 건가요?”

두 사람의 질문에 산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아니요. 제가 만든 거예요. 맛이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네!?”

“뭐라고요?”

한참 후에야 놀라움을 추스른 두 사람은 연신 샴페인 맛을 보며 산하에게 묻기 바빴다.

정말 이걸 직접 만든 거냐, 대체 이걸 어찌 만들었느냐, 맛과 향이 예술이다, 한 병 구입할 수 있느냐 등등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던 산하는, 아직도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한 질문을 이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익이 올 시간도 됐고, 이제 분위기가 제법 부드러워진 탓이었다.

“수량이 얼마 안 남아서요, 한 병 정도는 괜찮겠네요.”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뭘요.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제야 강영신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이렇게 좋은 자리에 정부가 끼어 있다고 원망하며.

하나, 산하가 내뱉은 말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었다.

“혹시,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두 분 사이에 아드님이 계십니까?”

강영신과 김혜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가슴속에 묻어 놓은 아들 생각이 떠오르자, 애써 감추려 했던 괴로움도 함께 떠오른 탓이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이성적이었던 강영신이 무거운 말투로 묻는다.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강영신 씨와 너무 닮은 사람이 제 주변에 있어서요.”

어리둥절해진 영신이 묻는다.

“닮은 사람이요?”

“네, 잠시만요.”

벽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산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올 때가 됐네요.”

“네?”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황당해하던 영신이 막 입을 열고자 하던 찰나였다.

입구 쪽에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누군가가 소리쳤다.

“형, 안에 계세요?”

“어, 잠깐만. 열어 줄게.”

이윽고 잠긴 문이 해제되었고, 광상익이 식당 홀로 들어섰다.

의문이 뒤섞인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보던 강영신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건 김혜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얼굴이나 체형이 너무나 쏙 빼닮아, 누가 봐도 그의 아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강민준이 장성했다면 저 정도 나이대가 아닐까.

그래서 김혜윤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대, 대체…… 대체 저 사람은 누구죠?”

그 말을 하던 김혜윤은 무언가를 떠올렸고, 돌연 강영신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당신, 설마…….”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아내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자 강영신은 말을 더듬었다.

“나? 왜?”

“똑바로 말해요. 다른 자식이 있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른 척 하지 말아요. 혼외 자식 아니에요?”

두 사람 사이에 오해의 눈길이 오가던 찰나였다.

산하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션 - 광상익의 뒤바뀐 삶을 찾아 주자.]

[보상 - 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가 100%로 상향됩니다.]

- 27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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