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제자리로 돌아가요 (2)
이런 미션이 떴다는 건, 상익이 눈앞의 부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소리였다.
헛짚은 건 아니구나 생각하던 산하는 상익을 처음 만났던 초기의 미션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도 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가 보상으로 주어졌었다.
이건 정체불명의 메시지, 봉씨라고 이름 붙인 존재가 만남을 주관한 걸까?
아니면 괴로운 삶을 살았던 광상익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걸까? 그래서 일부러 그와 나를 연결해 준 걸까?
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강영신은 허둥대며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혼외자식이라니?”
“그게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닮아요? 저기 좀 봐요. 목에 작은 점 위치까지 닮았잖아요.”
“아니라니까, 당신 아직도 날 몰라? 난 절대 다른 여자랑 만난 적 없어.”
“그럼 저 사람은 뭔데요? 내가 환상이라도 보고 있다는 거예요?”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작가님, 뭐라고 말 좀 해 보세요.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 상황에 당황한 것은 광상익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퇴근 후에 절대 부르지 않던 산하가 오라고 해서 식당을 방문했지만,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내부에 있는 것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때였다.
산하가 입을 열었다.
“두 분, 잠시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단호한 어투에 두 사람이 조용해졌고, 이내 산하가 이야기를 꺼냈다.
“두 분께서 보시기에도 저기 젊은 사람이 너무 낯익을 겁니다. 그래서 저도 놀랐고, 한참 고민하다가…… 옛날 뉴스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뜻밖의 날벼락을 맞은 강영신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히 물었다.
“무슨 뉴스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시 병원에서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뉴스,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의 발언에 두 부부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특히 김혜윤의 머릿속은 대혼란을 맞이했고, 잠시 후에야 겨우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뒤바뀌었다고?
우리 민준이가 내 친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나마 이성적이었던 강영신이 광상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난 딴짓을 한 적이 없어. 그렇다면 작가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건데.
이럴 수가, 정말 뒤바뀌었단 말이야?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혼란함을 잠재우기 위해, 산하가 한 가지 확실한 제안을 했다.
“두 분, 유전자 검사라도 한번 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강영신과 김혜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과연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광상익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 앉아 봐. 얘기해 줄게.”
이윽고 상익도 테이블에 앉았고, 산하는 그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털어놓았다.
“네!? 에이…… 말도 안 돼요. 그냥 우연이겠죠.”
“여기 이분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자신과 똑 닮은 사내를 어색하게 바라보던 상익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단순히 닮은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유전자 검사해 보면 답 나오는 거지. 두 분 어떠세요?”
정부 측 인사를 만나리라고 예상하며 찾아왔던 강영신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체격부터 얼굴까지 닮은 사람을 만나다니.
이걸 해결할 방법은 유전자 검사밖에 없다고 여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합시다. 제가 아는 곳이 있어요.”
* * *
한편, 상익을 어릴 적부터 학대하고 미워했던 광만수는 자신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거 완전 빚더미구만. 당신 돈 더 빌릴 곳 없어?”
“알면서 그래요. 이미 손 벌릴 곳은 다 벌렸잖아요.”
“젠장, 되는 일이 없어.”
“그러게 좀 더 알아보고 했어야죠. 이러다가 우리 길바닥에 나앉는 거 아니에요?”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하고 돈 구할 방법이나…… 아!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뭐요? 뭔데요?”
“상익이 말이야.”
“아들은 왜요? 연락도 안 되는데.”
“지금쯤이면 돈 벌어서 차곡차곡 모아 놓지 않았을까?”
“그거야 모르죠. 그게 왜요?”
광만수가 구형 폰 하나를 들어 보였다.
“짠, 이게 있지.”
그 휴대폰은 광만수가 몇 년전 신불자로 전락하며, 아들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이었다.
“그걸로 뭐가 돼요?”
“되지. 여기 사진첩에 상익이 민증도 있거든.”
“그게 왜 거기 있어요?”
“혹시나 쓸 일 있을까 싶어서 찍어 놨었지.”
“어쩜, 그걸 왜 이제야 알았어요?”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 돈 구하면 고기라도 한번 구워 먹자고.”
“그런데 찾아와서 난리 치는 거 아니에요?”
“제깟 놈이 난리 쳐 봐야 자식새끼지. 길러 줬으면 은혜를 갚아야 할 거 아니야?”
“하긴, 정말 불효막심한 아들이네요. 우리는 이렇게 빚도 못 갚고 고생하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부모인데, 이 정도는 해도 괜찮아.”
무엇이건 쉽고 편하게만 살려고 하던 두 사람은, 끝끝내 상익에게 그 피해를 전가하려 하고 있었다.
* * *
며칠 후.
세 사람의 모근을 토대로 한 친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상익은 강영신과 김혜윤의 친자가 확실했다.
그 검사결과지를 보고 또 보던 강영신은 도무지 말문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건 김혜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떠나보낸 아들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친자식은 다른 곳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고회로가 정지해 버렸다.
그렇게 한참이 흘러갔고, 겨우 정신을 차린 강영신이 연구원에게 물었다.
“이게, 확실합니까? 오류 가능성은 없어요?”
“부탁하신 대로 검증 확실히 했습니다. 두 분의 아드님이 맞습니다.”
외모부터 시작해 검사 결과까지, 이제는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영신이 상익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고 있던 상익은 너무 어색한 나머지 시선을 회피했다.
말도 안 돼.
내가 정말 저분들 친자식이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원래 한 핏줄이었던 세 사람은 이 비현실적인 사건에 정신을 못 차렸고, 결국 산하는 그들을 이끌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한옥으로 데려갔다.
그가 주차를 끝냈지만, 그때까지도 세 사람은 말도 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 중에 제일 처음 말을 꺼낸 건 뒷좌석에 앉아 있던 강영신이었다.
“여보, 일단 정신 좀 차려 봐요. 우리 들어가서 얘기해 봅시다.”
“…….”
그녀를 부축한 강영신이 산하의 안내에 따라 한옥 마당으로 들어섰고, 조수석에 멍하니 앉아 있던 상익은 그의 토닥임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상익아,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일단 들어가자.”
“네…….”
이윽고 한옥 내부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여전히 말없이 어색해했고, 산하는 분주하게 움직여 마실 차를 마련했다.
“자, 저는 이만 빠져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대화 나눠 보세요.”
찻잔을 내려놓은 산하가 자리를 뜨려 하자, 상익이 그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왜?”
이 자리가 너무 어색했던 상익이 애처로운 눈길로 부탁했다.
“형, 그냥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도로 자리에 주저앉은 산하가 세 사람의 표정 변화를 살필 무렵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한참이나 고민하던 영신이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 아들이라니까 말 놓을게요. 괜찮죠?”
“네? 네…….”
“이름이 상익이라고 했지?”
“네.”
“살아온 이야기 좀 들어 볼 수 있을까?”
학대받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늘 괴롭기만 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린 상익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야기하기 힘들어?”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과거의 일을 회상하던 상익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광상익. 아빠가 뭐라고 했어?”
뺨을 여러 번 얻어맞고 울던 어린 상익이 콧물을 훌쩍이며 답했다.
“설거지랑…… 청소랑…… 밥이랑 해 놓으라고…….”
“그런데 왜 밥이 없어?”
“그게요. 밥을 잘못해서 죽이 되는 바람에…….”
차마 혼날까 봐 버렸다는 말을 못 하던 상익이 우물쭈물하자, 광만수는 버릇처럼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위협에 잔뜩 놀란 상익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얼른 말 안 해?”
빨리 말 안 하면 더 얻어맞을 것 같았던 그가 답했다.
“버렸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광만수의 눈동자에 광기가 깃들었다.
“이 새끼는 누굴 닮아서 이 모양이야? 하…… 내가 참아야지. 마당에 나가서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무릎 꿇고 있어.”
내복 바람이었던 상익은 익숙한 듯 네 대답하고 외투를 걸쳐 입으려 했다.
“그건 왜 입어? 벌 받는 놈이. 그대로 나가.”
“…….네.”
아직 겨울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마당으로 쫓겨난 상익은 벌벌 떨며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추워…….
우리 엄마 아빠는 이상해.
반 친구들은 안 그렇다던데.
그로부터 한참이 흐르고, 그의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상익을 바라보았다.
“아들, 오늘 또 뭐 잘못했어?”
“밥을…….”
“밥? 너 밥도 할 줄 알아?”
“엊그제 아빠가 가르쳐 줬어요.”
“그래? 가르쳐 준 걸 왜 못해? 얘는 누굴 닮아서…… 보기 싫으니까, 얼른 들어가.”
상익은 들어가라는 말에, 마치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인사하듯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후, 온몸이 꽁꽁 얼어 동태가 된 상익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학대부터, 말도 안 되는 괴롭힘까지 듣고 있던 강영신의 손이 분노로 인해 부르르 떨렸다.
친아들의 유년 시절 이야기는 차마 듣고 있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따스해야 할 가정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그 험난한 세월을 살아내다 좌절하고, 끝내 무감정 상태로 변하여 노숙자까지 되었던 상익의 삶에 행복이라곤 없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김혜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고, 끝내 상익을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 우리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무 미안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영신도 결국 눈물을 떨구었다.
검사 결과지를 받아들었을 당시의 어색함은 조금 사라졌고, 그의 표정에는 미안함만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한참이 흘렀다.
눈이 퉁퉁 부은 김혜윤이 친아들의 손을 토닥였다.
“이제 우리랑 미국 가서 살자. 알았지?”
“그럼, 그래야지. 마땅히 그래야지.”
하나 상익은 그녀의 발언에 손을 슬그머니 빼며 말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전 여기서 살까 해요.”
당황한 김혜윤이 물었다.
“어째서? 그런 일을 겪고도 여기가 좋아?”
“……사실, 전 여기 산하 형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그가 가리킨 사람은 당연하게도 산하였다.
상익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그가 입을 열었다.
“상익아, 왜 그래? 그런 말 하지 마. 이제부터라도 부모님이랑 살아야지.”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혜윤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전에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인가요?”
대답은 상익에게서 튀어나왔다.
“전 산하 형 매니저예요.”
“매니저?”
상익은 산하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그가 노숙자 생활할 때 위로해 주고, 고양이도 구해 주고, 운전면허도 따게 해 주고, 방도 구해 주고, 취직도 시켜 주고, 좋은 형 누나도 만들어 주는 등 정말 많은 걸 줬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말 태어나서 제일 행복했어요. 지금도 행복하고요. 형 없었으면 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그래서…… 여기 있고 싶어요.”
상익은 자신에게 정이란 걸 주었던 산하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했고, 친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혜윤의 눈동자에 감격이 차올랐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해 줄 수 있다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산하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우리 사이 연결해 준 것도 산하 씨네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아니, 열 배 백 배로 꼭 갚을게요. 우리 아들 보살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전 별다르게 한 것 없습니다. 두 분을 닮아서 그런지 상익이가 엄청 똑똑해서, 제가 오히려 편했죠.”
그의 겸손에 강영신은 감탄했다.
어떻게 저런 인성을 가진 자가 세상에 있을까 싶어서였다. 새삼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던 영신이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에게 해주신 것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로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네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살아갈 날에 관해 상의했다.
그때였다.
상익의 스마트폰 알림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화면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물들었다. 그의 계좌에 있던 돈이 모조리 출금돼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했던 산하가 묻는다.
“왜?”
그의 질문에 상익이 말을 더듬었다.
“제 통장에서 돈이…… 다 빠져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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