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79화 (279/445)

279화 제자리로 돌아가요 (3)

“뭐? 스미싱 같은 거 아냐? 너 뭐 이상한 거 깔았어?”

“아니요. 최근에 뭐 깐 건 없는데…….”

매니저로 취직하며 차곡차곡 모았던 돈이 사라지자, 상익의 표정에 좌절이 떠올랐다.

그러자 영신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익아, 이 아버지가 제법 부자야. 그러니 돈 걱정하지 마라.”

그의 말에 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익의 표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그의 통장에 담겨 있던 돈은 의미가 있는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늘 산하가 그에게 꿈을 심어 주었고, 매번 그걸 떠올린 상익이 차곡차곡 모았던 소중한 돈이었다.

그 의미를 가장 잘 이해했기에 산하가 물었다.

“혹시, 너 신분증 잃어버렸어?”

“신분증이요?”

지갑을 꺼내 민증과 운전면허를 확인한 상익이 고개를 젓는다.

“다 있는데요?”

“그래? 이상하네. 일단 상대방 계좌부터 잠그자. 시간 내에만 하면 돈 못 빼갈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상익이 돌연 얼굴을 찌푸렸다.

“잠깐만요.”

“왜?”

“그러고 보니까, 저 키워 주신 부모님이 제 명의 휴대폰 갖고 계세요. 설마…….”

그의 말에 흠칫 놀라던 산하가 설마 하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아무래도 느낌이 그래서요. 잠시만요.”

별로 연락하기도 싫고, 마주하기도 싫지만, 사실 확인을 하고 싶었던 상익이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오, 아들. 이게 몇 년 만이냐?”

“……혹시. 제 휴대폰으로 뭐 하셨어요?”

“뭐 말이냐?”

“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서요.”

그의 말에 광만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다.

“아, 그거. 너무 힘들어서 좀 썼다. 섭섭한 건 아니지?”

그의 대답에 상익은 고통의 세월이 떠올라, 한 맺힌 목소리로 외쳤다.

“왜요! 왜? 그걸 왜 빼가는데요? 무슨 이유로요? 그게 어떤 돈인지 아세요?”

그의 고함에 광만수가 으름장을 놓았다.

“이 자식이, 그동안 안 봤다고 막 나가네. 부모가 빚을 져서 힘들어하면 갚아 줄 줄도 알고 그래야지. 자식이라는 새끼가. 아무튼 바빠서 끊는다.”

“잠깐만요. 잠깐…….”

어느새 일방적으로 끊겨 버린 통화에, 상익은 분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한 그의 모습에, 산하가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그의 위로에 상익의 떨림이 점차 멎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영신은 화가 솟구쳤다. 아동학대도 모자라서, 이젠 돈까지 빼가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나 당장 친아들을 적극적으로 위로해 줄 순 없었다.

아무리 피가 이어진 사이라지만, 만난 지도 얼마 안 됐고, 친자인 것도 오늘 알았기에 아직도 어색함이 남아 있어서였다.

게다가 그는 산하라는 형을 더욱 의지하고 있는 모양새였기에,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다음 날.

강영신은 산하와 단둘이 만나 대화 중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상익이는 제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요.”

“그럴 리가요.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마음 먹기가 쉽지 않죠. 친아들이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 줄도 평생 모르고 살 뻔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더 민망한데요.”

“민망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좋은 일 하신 것뿐인데요.”

한 명은 칭찬과 감사를 던지고, 또 한 명은 쑥스러워하던 그때였다.

산하는 불현듯 어젯밤 상익의 무단 인출 사건이 떠올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상익이 길러 준 부모님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글쎄요. 고민 중입니다. 어떻게든 그 아픔을 갚아주고 싶은데, 확신이 안 서네요. 그래도 키워 준 부모인데, 그렇게 해도 되나 싶어서요. 어제도 그 생각하다가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어떤……?”

“상익이의 동의를 구해야겠지만, 언론에 이 사실을 공개하는 겁니다.”

“언론에요?”

“물론 밝히기 꺼리는 면도 있으시겠지만…….”

“아뇨. 전혀요. 제 아들이라는 걸 누구보다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언론에 알린 후에는요?”

“아마 그렇게 탐욕에 물든 사람들이라면 강 대표님께 돈을 노리고 접근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이름난 분이시니까요. 그걸 보고 마음을 결정하시는 거죠.”

진지하게 고민하던 강영신이 탁자를 가볍게 탁 쳤다.

“그러면 되겠네요. 일단 병원 소송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아예 다 같이 하면 되겠어요.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뭐 필요하신 것 없으십니까?”

“필요한 거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물질적인 것도 좋고,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돕겠습니다.”

산하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 생각 안 하셔도 돼요. 그저 상익이랑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그나저나 상익이가 한국을 안 떠난다고 해서 어쩌죠?”

그가 적극적으로 거부하자 조금 실망하던 강영신이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어제 그것 때문에 와이프랑 상의해 봤는데, 그냥 우리가 한국으로 거주지를 이전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사업체가 미국에 있으신데, 어렵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아들이 우선이니까요.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아봐야죠. 그런데 우리 상익이랑 친해지는 방법 좀 없습니까? 오늘도 만나자고 했더니 어색해하더라고요.”

“글쎄요. 시간이 해결해 줄 사안인 것 같긴 한데, 상익이가 좋아하는 것 정도는 알려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거면 됩니다. 그나저나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저한테 실제로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어제처럼 허탈한 표정을 짓던 강영신이 옛일을 떠올렸다.

그 당시 김혜윤은 만삭이었고, 고향에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가던 길, 아내에게 진통이 왔다.

출산 예정일보다 훨씬 앞당겨서 나오려는 모양새였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119에 도움을 요청했고, 근처 대형병원을 알아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고, 친자식인 줄 알고 데려왔던 아이가 강민준이었다.

하나, 그는 민준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음에도 미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죄가 없는 데다,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처지가 뒤바뀌어 고통받았던 상익에게는 말할 수 없이 미안했고, 그걸 어떻게든 보상해 주고 싶었다.

“강 대표님?”

산하의 부름에, 강영신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네? 아, 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상익이가 뭘 좋아하죠?”

산하는 상익이 뭘 좋아하는지 알려 주었고, 그 외에도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 * *

<뒤바뀐 자식, 수십 년 만에 되찾아>

<친자식 상봉! 영화 같은 일 벌어졌다!>

<강영신, 경기도 모 대형병원 향해 민사소송 예고>

<대형 로펌 고용한 강영신,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극적인 만남 주도한 하산해>

<강영신, ‘하산해의 크나큰 도움에 감사드린다’>

- 와, 전시회 관람하러 날아왔다가 친자식 만난 거 실화?

- 기사 읽어 보니까, 하산해 아니었으면 못 만났겠는데요?

- 그러네요. 하산해가 웹툰을 안 그렸다면? 아니, 전시회 열 생각을 안 했다면?

- 그것보다는 하산해 눈썰미가 좋은가 봐요. 어떻게 그걸 캐치해서 연결해 줬나 모르겠네요.

- 그러니까요. 보통 그런 생각 잘 안 할 텐데.

- 어, 그러고 보니까 그거 기억 안 나세요? 사할린 두섭 할아버지.

- 맞다. 두섭 할아버지. 아니 무슨 하산해는 오작교라도 돼요?

- 쩐다. 저 오늘부터 하산해 팬 합니다.

- 저도 저도.

- 그런데 강영신 씨 무슨 마음일까요?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들 하늘나라로 가서 마음고생 심했다던데.

- 그러게요. 마음 복잡할 것 같은데요?

그가 만든 콘텐츠가 인간과 인간을 잇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자, 산하에게 큰 관심 없었던 자들도 점점 팬이 돼 가고 있었다.

하나 이런 긍정적인 상황과 다르게, 다른 마음을 품은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광상익을 학대하며 키운 광만수와 그의 아내였다. 그들도 뉴스를 접하고 놀라긴 했지만, 생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여보, 어떻게 생각해요?”

“뭘 어째, 한몫 단단히 챙길 기회지. 요즘 애 하나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알아? 그거 받아내야지. 십 원 한 장까지. 어쩐지 정이 안 생기더라. 내 자식도 아니었구만.”

“주긴 할까요?”

“당연하지, 뒤바뀐 아들 달라고 하면 기겁할 거야. 상익이는 버젓이 살아 있는데, 우리 친자식은 이미 하늘나라 갔다잖아. 아마 돈으로 보상하려고 할걸? 그런 사람들한테 10억, 20억은 푼돈이니까.”

“그러다가 혹시 우리가 잘못되는 거 아니에요? 옛날 일도 있고…….”

“뭐? 훈육 조금 한 거? 그거야 뭐 별일도 아니었고, 누가 증명할 거야? 상익이가? 증거도 없으니까 어린아이 착각이고, 그런 적 없다고 박박 우기면 그만이야.”

“그래도…… 영 찝찝한데…….”

“이런 답답한 사람을 봤나.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해 먹어야지. 로또가 따로 있는 줄 알아? 이게 로또지. 유명인이라서 일 크게 되는 거 원치 않을 거야. 우리가 유리해. 한번 찔러는 봐야지.”

“알았어요. 그럼 당신만 믿어요.”

그 시각.

강영신은 변호사와 만나 명의도용과 무단 출금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들이 만약 돈을 노리고 접근해 온다면, 어떻게 감방에 처넣을 수 있을지 상의 중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단 여론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판관들도 영향 꽤 받거든요.”

“안 그래도 조만간 그 사람들 접근해 오는지 어쩌는지 살펴보고, 언론에 이것저것 한 번에 뿌릴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효과가 배가 되겠죠.”

“아무튼 그렇게 된다면 잘 부탁합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그 정도 인간들이라면 여죄도 많을 테니, 형량 높이는 데 큰 문제 없을 겁니다.”

한편, 이 사실은 유수의 해외 언론에도 공개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도 제법 이름 있는 강영신의 소식이었기에, 관심은 하산해의 웹툰 원화 전시회로도 쏠렸다.

뒤바뀐 자식을 되찾게 해 준 스토리와 관계된 전시회.

과연 얼마나 대단하길래 강영신이 두 번이나 보러 갔고, 그 과정에서 친자식과 조우했냐는 거였다.

그 바람에 전시회를 보러 오겠다는 외국인이 점점 많아졌고, 티켓 판매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 * *

광만수는 일부러 언론사에 제보했다. 자신들이 강영신의 친자식을 키워 냈으며, 뒤바뀐 자식을 만나고 싶다는 인터뷰였다.

그 뉴스 기사는 급물살을 타고 공중파에도 소개되었으며, 강영신은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오늘.

광만수와 호텔 카페에서 만난 강영신은 속으로 이를 빠득 갈면서도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람 좋게 웃었다.

“우리 아들을 사랑으로 키워 주셨다고요?”

그의 질문에 광만수는 있는 일, 없는 일 꾸며가며, 어린 시절 광상익이 얼마나 행복했는지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그걸 들으면서 기가 찼던 강영신은 상대를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광만수가 괴로운 척을 하며 물었다.

“네. 한데, 우리 친아들은 오래전에 사망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안타깝게도 희귀 질환으로.”

그 당시 슬픈 기억을 떠올린 강영신이 우울한 표정을 짓자, 광만수가 화를 냈다.

“이봐요. 우린 당신 친자식을 곱게 잘 키워 냈는데, 우리 진짜 아들을 대체 어떻게 대했길래 그 어린 나이에 사망합니까?”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최고의 의료진을 동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정말 미안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광만수는 자신의 친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것저것 묻더니, 끝내 실체를 드러냈다.

“그따위 변명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마음의 상처 어떻게 보상할 겁니까? 내 친자식 살려내란 말입니다.”

“…….”

그가 말이 없자, 일이 잘 풀리려나 보다 생각하던 광만수가 언성을 더 높였다.

“내 친자식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니 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광만수는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을 쾅쾅 쳤고, 강영신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돈 달라는 거군.

정말 이 정도 쓰레기였구나 싶었던 강영신은 이들을 절대 용서치 않기로 했다.

그 사이에도 광만수는 이리저리 말을 돌려가며 돈 내놓으라고 했고, 강영신은 허허 웃었다.

“지금 웃어요? 내가 지금 농담 따먹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까?”

“아, 미안합니다. 너무 웃겨서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뭐가 그렇게 웃겨요?”

“글쎄요. 그냥 웃기네요. 그런데 지금 저더러 돈을 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걸 돈으로 알아듣는 당신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돈만 알던 사업가라서 그런지 냉혈한이구만. 난 단지 우리 친아들을 그렇게 보낸 죄에 관해 예의를 보이라는 겁니다.”

“그게 돈 달라는 거 아닙니까?”

“아니, 이 사람이…….”

“광만수 씨.”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낮게 깔렸고, 광만수는 흠칫했지만, 티를 안 내려 노력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아요? 어디 해 보자는 겁니까?”

“글쎄요. 전 그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 아들을 사랑으로 보살폈다고요? 거짓말이 능수능란하시네요. 우리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줘 봤습니까? 아니면 공부를 제대로 시키길 했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당신들이 우리 아들을 학대해가며 키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안 했다고 부인하시는 겁니까?”

“누가 그래요? 상익이가? 허 거참, 어이가 없어서. 말 잘 안 듣고 떼쓰면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훈육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올바르게 자라죠. 그걸 학대로 받아들이다니.”

“어린애한테 집안일이란 집안일은 다 시키고, 밥도 종일 굶기고, 한겨울에 내보내고, 뺨이 부어오를 정도로 때리는 것도 훈육입니까? 나중에는 더 심한 폭력도 행사하신 데다, 최근에는 돈도 슬쩍하셨더군요?”

죄다 자신이 한 일이긴 했지만, 광만수는 애써 그걸 감추려 노력했다.

“……전 상익이한테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뭔가 왜곡된 기억 같군요. 그리고 돈은 제가 사정이 급해서 잠시 빌린 겁니다.”

“아, 빌리셨다? 정말 빌린 겁니까? 동의는 받았고요?”

리더십과 명석한 두뇌로 부를 일군 자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초반과 달리 자신의 요구가 씨도 안 먹히는 것에 광만수는 당황했다.

“너무 급해서 나중에 얘기하려고 했어요. 법적으로도 친자식이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그 정도 돈도 못 가져다 씁니까?”

“글쎄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궁지에 몰린 광만수는 아무래도 지금은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방 태도로 봐서, 돈 달라는 건 씨알도 안 먹힐 분위기였다.

“……정말 어이가 없군요. 일단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시겠어요? 멀리 안 나갑니다.”

광만수는 뒤를 힐끔 돌아보며 사라졌고,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강영신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리고 곧장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기자에게 물었다.

“됐습니까? 기사 내용 신중하게 해 주시고요.”

“네, 신경 쓰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는 올라갈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떠나가는 기자를 바라보던 강영신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친아들을 어릴 때부터 괴롭힌 인간들 처벌이야 처벌인데, 아직도 은혜를 못 갚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안 받는다고 하니 더 주고 싶었는데, 뭔가 방법이 없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무릎을 탁 쳤다.

가만, 경기도 쪽에 작은 식품 공장이 있다고 그랬지? 그래, 그러면 되겠어.

* * *

강영신의 친자와 관련된 소식이 알려진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뉴스에는 여전히 그것과 관련된 뉴스로 떠들썩했다.

친자가 뒤바뀐 것 자체도 빅 뉴스였지만, 그 당사자가 강영신이었고, 세 사람이 기적적으로 만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더더군다나 거기에 하산해 까지 끼어 있었으니, 이야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도 또 한 번의 폭탄이 터졌다.

<강영신 친자, 학대받았다>

<사랑으로 길렀다는 부모, 보자마자 돈 요구>

<알고 보니 사기횡령 전과 3범, 친아들 지옥의 시간에 강영신 분노했다>

<차곡차곡 모은 돈, 어떻게 빠져나갔나?>

<아이 뒤바꾼 경기도 모 병원, 그 당시 의료인력 퇴사했다며 발뺌>

- 와, 난 해피엔딩인 줄 알았더니. 숨겨진 내막이 으마으마하네.

- 저런 미친, 욕도 아깝다.

- 와, 뭐 저런 게 다 있냐?

- 겁나 멍청하네. 차라리 찌그러져 있었으면 조용히 넘어갔을지도 모르는데.

-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이면 저렇게 안 살죠.

- 아주 돈에 미쳤네.

- 불쌍하다. 얼마나 힘들었을 거야.

- 건드려도 강영신을 건드리냐. 겁나 부잔데.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 로펌으로 완전히 조져 놓을 듯.

그 시각, 정부에서는 여러 논의가 오갔다.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강영신의 사업체를 국내로 들여오거나, 아니면 기술 이전이라도 받자는 속셈이었다.

그런 논의가 지속되던 끝에, 토론 중이던 사내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사건 속 시원하게 밀어주면, 강영신 씨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먹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다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딱히 원한은 없지만, 광만수인지 뭔지, 이것저것 다 걸어서 푹 썩게 만들어야죠.”

“글쎄요. 이미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만, 더 좋은 방법 없습니까?”

“음…….”

한편, 산하는 상익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무슨 매니저를 계속해? 부모님이랑 수십 년이나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이라도 같이 살면서 행복해져야지.”

“형, 전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니까요.”

“이거 완전 고집불통이네. 그래서 미국에도 안 가겠다는 거야?”

“가긴 가야죠. 그래도 생물학적 부모님이니까요.”

“생물학적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부모님이 널 버린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실수한 건데. 당연히 가야지.”

“네, 일 년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럼 그렇지. 내가 너 법카 안 긁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런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이게 다 형한테 배운 건데.”

“뭐, 인마?”

능글맞게 하하 웃던 상익이 운전석에 올라타며 차창을 열었다.

“형, 다음 스케줄 가야죠?”

“……내가 널 왜 주워 온 거냐?”

“귀여워서?”

“닥쳐!”

상익은 늘 부모를 원망했으나, 알고 보니 친부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고, 현재는 남아 있던 마음의 앙금을 상당 부분 덜어낸 상태였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챈 산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광상익의 뒤바뀐 삶을 찾아주자’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가 100%로 상향되었습니다.]

[특수 능력이 추가되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는, 높은 확률로 올바른 삶을 살아갑니다.]

올바른 삶?

완료된 미션을 바라보던 산하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친구 동식이었다.

“어, 왜?”

“너 왜 화가 나 있냐? 기자들이 더 몰려왔어?”

“아냐, 말 안 듣는 놈이 있어서, 얼른 말해. 나 바빠.”

“네가 산 땅 말이다.”

“뭐? 왜? 드디어 황금알 부화하냐?”

“아니, 땅값이 조금 오르는 것 같더니 오히려 예전 시세보다 떨어졌다. 그냥 팔았어야 했는데.”

“뭐? 그게 왜 떨어져?”

“누가 신도시 개발한다고 헛소문 퍼뜨렸던 건가 봐. 싹 먹고 빠지니까, 다들 놀랐는지 서로 팔겠다고 난리야 난리.”

“그래? 그럼 이참에 더 사야겠다.”

“뭐? 너 미쳤어?”

- 28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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