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280화 (280/445)

280화 변신은 무죄 (1)

그의 발언에 혀를 차던 산하가 답했다.

“어허, 하변. 너 이래서 어떻게 변호사 됐냐?”

“또 뭔 소리 하려고?”

“그래도 땅 시세가 있는데, 그것보다 더 내려갔다며? 그럼 더 사는 게 진리 아니야?”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냐? 빚내서 샀으니까 불안하다고 하는 거잖아. 어쩌려고 그래? 진짜 더 살 건 아니지?”

안전제일주의를 표방하는 하동식의 염려에 산하가 하하 웃었다.

“하여간에 동식이는 걱정이 너무 많아요. 땅 같은 거야 그냥 저렴할 때 더 사 놓으면 좋지. 역시 식품 회사는 커야 제맛이거든.”

“……에라이 인간아. 누가 널 말리냐. 그래서 얼마나 더 사게?”

“나중에 계산 좀 해 보고 알려 줄게.”

“알았다. 살 거면 빨리 사야 할 거야. 단기 폭락 같으니까.”

“오케이, 그래야지. 그건 됐고, 일은 어때?”

“늘 똑같지 뭐.”

“그래? 고생하네. 조만간 소주나 한잔하자.”

조금 전만 해도 걱정하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동식은 환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천상주는 안 되냐?”

“아, 이 자식이 입이 고급이 돼서. 알았어, 인마.”

“진짜지? 당일에 뭐가 없네 어쩌네 하고 핑계대면 알지?”

“나한테 술 맡겨 놨냐?”

“그래, 내가 저번에 맡겨 놨잖아.”

“맞다. 너 왜 그때 술값 안 내고 갔어?”

말싸움으로는 산하를 이겨 본 적 없는 동식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한마디를 안 져요. 끊는다.”

“내가 먼저 끊는다.”

먼저 화면을 터치해 통화를 종료한 산하가 하하 웃었고,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상익이 물었다.

“형, 뭐 좋은 일 있어요?”

“있지.”

“뭔데요?”

“안 알려 주지.”

“……아, 궁금하게.”

“궁금할 것도 많다. 그냥 간만에 친구랑 이야기하니까 기분 좋아서 그런다.”

“아, 그런 거였구나.”

“가자, 시간 늦겠다.”

“네, 꽉 잡으세요. 베스트 드라이버 나갑니다.”

운전대를 잡고 입으로 부릉부릉 소리를 내는 상익에게, 산하가 단호하게 말했다.

“뻥 치지 말라니까.”

“…….”

얼마 후.

광상익의 법적 부모는 언론에 대고 모함이다, 억울하다며 눈물을 쥐어짜기까지 했다. 하나 강영신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자본으로 사람을 움직였고, 증언하는 사람이 속속 나타났다.

그들은 상익의 학교 선생님이거나, 아니면 그가 어릴 적 살던 동네 이웃 주민이었다.

한결같이 상익이 학대를 당한 정황이 있었다고 폭로했고, 광만수는 궁지에 몰렸다.

국민들도 앞다투어 제대로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기에, 재판부에서는 그의 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했다.

주민등록법 위반, 사문서위조,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명의 도용 등등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죄명은 죄다 가져다 붙인 덕분에 그의 형량은 점점 높아졌다.

그는 권력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유능한 변호사를 쓴 것도 아니었기에 이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하나 그는 자신이 상익을 키워 준 부모인데, 돈 조금 가져다 쓸 수도 있지, 억울하다며 항의했고.

재판부에서는 여론을 의식하여, 법에는 없지만, 그에게 괘씸죄를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도중 그가 대부업체에 접근해 광상익의 명의로 대출을 받으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고, 광만수는 죄목마다 최대형량을 선고받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광만수는 재판정에서 난동을 부렸다.

“억울해, 억울하다고 이 새끼들아! 이게 법이야? 니들이 판사면 다야? 이런 말도 안 되는 형량이 어디 있어?”

“여긴 신성한 법정입니다. 조용히 하세요!”

하나 판사의 호통에 아랑곳하지 않은 광만수가 상익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야! 인마. 광상익. 배은망덕한 새끼, 내가 널 입히고 먹이고 키워 줬는데, 나한테 이래도 돼?”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광상익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광만수가 길길이 날뛰었다.

“지금 네가 날 무시해?”

“어허, 거 조용히 하세요. 경위, 진정시키세요.”

“놔! 이거 안 놔!?”

법정에서 소란을 피운 광만수는 판사에게도 밉보이게 됐고, 그의 죄는 더 무거워졌다.

* * *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한국은 떠들썩해졌다.

신소재와 자율주행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업의 오너가 한국행을 결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강영신, 친아들 위해서 한국으로 온다>

<하산해 나비효과, 강영신 불러들였다>

<생산기지 한국에 추가 예정, 아시아 주요 거점 예상, 강영신이 택한 장소는 어디?>

<상당한 고용 유발 효과, 지자체 앞다투어 유치 작전 벌여>

<하산해, 관람객 요청으로 웹툰 원화 전시회 또 연장>

<웹툰 원화 전시회, 외국인 관광객 사이 입소문>

- 와, 강영신 온다. 대환영.

- 오오 이참에 사업체 다 옮겨 오면 좋겠다.

- 그건 안 될걸요? 미국 눈치 보이잖아요.

- 경기도로 가지 않을까요?

- 그거야 영신 아재 맘이죠.

- 크, 찐 부모다. 아들 위해서 한국으로 오다니.

세상은 산하로 인해 조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변치 않고 식당을 운영했다.

그리고 지금은 브레이크타임이었다.

무릇 봄이라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걸 상상하기 마련이건만, 때아닌 눈이 펑펑 내리는 중이었다.

날씨가 제대로 미쳤다고 생각하던 봉만두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형님, 눈 와요.”

“나도 보고 있어. 지구가 많이 아픈가 보다.”

“캬, 이런 날은 창가에 앉아서 술 한잔 기울이면 진짜 낭만적이겠습니다. 안주는 된장찌개로.”

만두는 손으로 잔 꺾는 시늉까지 해 보였고, 산하는 그를 타박하는 척했다.

“그거 지금 나더러 해 달라는 거냐?”

헤헤 웃던 봉만두가 입을 열었다.

“눈치채셨습니까?”

“응징의 메아리부터 한번 맛볼래?”

그러자 봉만두가 정색하더니 항의했다.

“형님, 된장찌개부터 주고 괴롭히시면 대만족입니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산하가 묻는다.

“그건 어느 나라 말이냐?”

“물론 한국어죠. 그래도 바닥은 따뜻해서 그런지 눈은 안 쌓이네요.”

“그러네, 그나저나 왜 안 오시냐?”

“누구요? 선약 있으세요?”

“심 피디님 오신다고 했잖아.”

“아, 맞다. 그랬지. 그나저나…… 형님은 왜 변화가 없어요?”

“무슨 변화?”

“아니, 그렇잖아요. 매니저 아버님 찾아드리고, 그쪽 아버님 유명도 하고, 뉴스도 나오고 어깨도 으쓱해질 법한데, 형은 태연하게 식당만 하니까요.”

“만두 만두 봉만두.”

“전 형님이 그렇게 부를 때마다 무섭던데.”

“무섭기는, 자고로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사람은 항상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해. 뭐 조금 잘났다고 으쓱대다가 골로 가는 거야. 알간? 모르간?”

만두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크, 역시. 그래서 제가 형님을 무척이나 존경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존경 같은 소리 하네. 양파나 까.”

“안 돼!!”

“돼!”

그때, 딸랑 소리가 들리며 유리문이 열렸다.

“산하 씨, 좋은 날입니다.”

바깥을 슬쩍 쳐다본 산하가 답했다.

“딱히 좋은 날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에헤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산하 씨와 함께할 제 프로그램을 축복해 주려고 하늘에서도 기뻐하며 눈을 내려 주지 않습니까?”

“심 피디님.”

“네?”

“그거 너무 자해석이 심한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만두 씨, 제 해석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너무 하십니다. 아무튼 산하 씨, 기획안 한번 보십시오. 기가 맥힙니다.”

“기가 막힐지 코가 막힐지는 봐야 알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진짜 기가 막힌다니까요.”

잠시 후, 심 피디와 마주 앉은 산하는 프로그램 기획서를 들여다보았다.

<가제 - 이게 누구야?>

<기획 의도 - 최근 도시생활에 염증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볼라치면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이 가득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교통체증과 아스팔트가 우리를 기다린다.

우린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힘들어도 출근해야 하고, 아파도 일을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한줄기 휴식이 다가온다면, 도시인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기획한 프로그램, ‘이게 누구야?’는……>

심 피디가 기획한 이번 예능 프로그램은, 하산해가 정체를 숨기고, 푸드 트럭이나 임시로 대여한 장소에서 빵, 된장찌개, 스파게티 등의 요리를 파는 것이었다.

정체를 알고 깜짝 놀라거나 기뻐하는 시민과, 그 요리를 맛본 감상을 주로 담을 예정이었다.

이 기획서를 들여다보던 산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출연자가 저밖에 없어요?”

“모르시는 말씀! 이 시대의 아이콘, 이 시대의 참 예능인인 산하 씨만 있으면 모든 게 완성입니다. 산하 씨가 곧 콘텐츠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장님이 산하 씨 데려왔다고 방방 뛰시는데…… 아, 이건 못 들은 거로 해 주세요.”

“이미 다 들었는데요?”

“그럼 잊어주세요. 레드 썬.”

“……아무튼, 심 피디님은 심 피디님이네요.”

“그렇죠? 제 기획력이 이렇게나 탁월합니다.”

“아니요. 그거 말고요.”

“그럼요?”

“아닙니다. 그런데 이거 언제부터 촬영이죠?”

“그건 이제 산하 씨랑 상의할 겁니다. 전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 * *

산하의 웹툰 원화 전시회, 그중에서도 제2 전시회장 입구 근처는 관람객으로 몸살을 앓았고, 국내 전문가들이 극찬을 이어 가던 어느 날이었다.

봉만두의 동생 봉순영은 며칠 전 서울로 상경했고, TV를 켜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바로 드라마 ‘술왕부’를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야, 봉순영.”

순영은 오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왜?”

“너 이거 버리라고 했어? 안 했어?”

“뭐가?”

“쓰레기.”

“아, 맞다. 잠깐만 오빠. 오늘 궁금한 거 나온단 말이야. 이거 보고 버릴게.”

“주먹이 운다. 봉순영. 너 도로 내려가면 안 되냐?”

“아 왜애. 아빠 답답하단 말이야. 이것도 하지 말라 그러고, 저것도 하지 말라 그러고.”

“그러면 나를 도와라, 봉순영. 어명이다.”

그의 말투에 봉순영이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유치빤스야. 아직도 그러고 다녀?”

“뭐? 죽을래? 내려갈래? 치울래?”

뜨끔한 순영이 TV에서 슬그머니 시선을 떼고 오빠에게 다가갔다.

“하면 될 거 아냐. 근데근데 오빠, 하산해 님은 언제 만나게 해 줄 거야?”

“그럴 생각 없어.”

“미쳤어? 얼른 보여 줘야지. 나처럼 어여쁜 여성이 팬이라고 말해 줘야 될 거 아니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똑바로?”

“그래. 봉순영은 평범하고, 아니지, 평범 이하고, 먼지처럼 많은 팬 중의 한 명이다.”

그의 말에 분노하여 씩씩거리던 봉순영이 오빠의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러자 봉만두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의 배를 탕탕 두들기며 외쳤다.

“들어와라 봉순영, 무적이 뭔지 보여 주마.”

“아, 유치하다고!”

“유치하면 이거나 버리고 와.”

그는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여동생의 손에 들려주었고, 순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잠시 후.

나란히 앉아 드라마 술왕부를 시청하던 순영이 물었다.

“오빠.”

“왜.”

“하산해 님은 어쩌다가 만났어?”

“동생아.”

“어?”

“인연이란 말이다. 이렇게나 무서운 법이다.”

“무슨 개소리야?”

“이 몸이 불철주야 미래를 위해 애쓰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형님은 포장마차를 시작하셨지…….”

아련한 눈망울의 오빠를 바라보던 봉순영이 자신의 귓가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린다.

“오빠, 내가 늘 말했지만, 오빠는 제정신이 아니야. 어디 무슨 연극에서 대사 외워? 아니, 그냥 평범하게 일자리 찾고 있었는데, 하산해 님은 포장마차 시작했다고 하면 되지. 그놈의 형님도 좀 빼. 유치하게 정말. 어, 잠깐만. 그런데 포장마차? 하산해 님이 포장마차를 하셨었어?”

여동생의 타박에도, 봉만두는 이상한 말투를 이어 나갔다.

“그래, 동생아. 우리 형님은 열정의 소유자였다. 강한 투지와 불굴의 의지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지. 그 의지가 어찌나 대단했는지 보고 있는 대도 계속 놀라울 정도였다. 그 강렬한 의지에 한 힘 보태기 위해, 이 봉만두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그가 말을 이어 가려던 그때, 봉순영이 꺅 소리 지르며 말을 끊었다.

“어머, 너무 멋있다. 저 스승님 연기 대박이야. 요즘 최애캐야. 최애캐. 그림도 잘 그리네. 저거 혹시 하산해 님 아니야? 목소리는 아니지만, 눈 조금 닮은 거 같은데.”

말이 끊겨 심술이 난 봉만두가 여동생을 타박하려다가 화면을 보게 되었다. 어딘가 날카로운 느낌이 들지만,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난 한 폭이 그려지고 있었다.

“오, 죽인다. 그런데 우리 형님은 절대 아니야.”

“진짜?”

“그래, 넌 뉴스도 안 보냐? 우리 형님 웹툰 원화 전시회 난리다, 난리.”

“그거야 나도 알지. 그거랑 하산해 님 아닌 거랑 뭔 상관이야?”

TV 화면의 수묵화와 전시회장의 웹툰 재해석 수묵화를 비교해 보던 봉만두가 흐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형님 실력에 비하면 저건 완전 못 그리는 거야.”

그는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말했고, 봉순영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와, 그렇구나. 그래서 나 언제 만나게 해 줄 건데?”

“그럴 일 없다니까. 이 봉만두 맹세컨대, 절대 못 만나게 할 거야.”

“이쒸, 내가 찾아갈 거야.”

“집도 잘 못 찾아가는 게.”

“…….”

* * *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랗게 솟은 빌딩 아래로,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다른 거 먹을까?”

“그냥 먹어. 다 거기서 거기지. 안 그래도 시간 없는데.”

“하긴, 업무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쪼아대면 뭐 더 잘 나오나.”

“그러게, 자유롭게 풀어놔야 창의력이 샘솟지. 맨날 갈구기나 하고.”

“맞아. 특히 손 부장, 콱 기냥.”

“야야, 양 대리. 입조심해. 그러다 부장님 듣는다.”

“듣긴 뭘 들어. 길바닥인데.”

“하여간에 양 대리 넌 조심성이 없어.”

“너도 우리 부서에서 지내 봐. 욕 안 나오나.”

“난 거기 갈 일 없으니까, 염려 놓으셔.”

“과연 없을까? 어? 저거 뭐냐?”

“뭐가?”

두 직장인의 시선에, 작은 공원 근처에 위치한 푸드트럭 한 대가 잡혔다. 그 트럭 앞에는 모자와 마스크로 정체를 숨긴 산하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을 보자, 산하는 몇 년 전 포장마차를 하던 때를 떠올리며 즐겁게 외쳤다.

“자자, 둘이 먹다 다 죽어도 그리워요. 밥에 말아 먹으면 더 맛있어요. 미슐랭 요리보다 더 맛있는 된장찌개. 한 그릇에 오천 원.”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다.

“참 먹고 살기 힘들다.”

“그러게. 그나마 우리가 낫지 않냐? 월급이라도 따박따박 나오지.”

“그러게, 그냥 오늘은 저거로 때울까?”

“됐어. 길거리에서 된장찌개가 웬 말이냐? 가던 길이나 가자고.”

“그런가? 그런데 무슨 미슐랭 요리보다 맛있다고 하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내 말이. 하여간에 하나라도 팔아먹으려고, 애쓴다 애써. 저 봐, 너무 오버하니까 손님 하나도 없잖아.”

그때였다.

푸드트럭 근처를 지나치던 양 대리가 코를 킁킁거렸다.

“어, 냄새 좋은데?”

“가던 길 가자며?”

“아니, 잠깐만. 아, 냄새 진짜 좋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드트럭 근처로 다가선 그가 물었다.

“사장님, 이거 오천 원이에요?”

산하가 아주 능숙하게 답한다.

“네, 오천 원입니다. 어떻게, 드릴까요?”

산하네 요리 전문점 단골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눈을 휘둥그레 떴겠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양 대리는 어느새 다가온 입사 동기이자 동갑내기에게 말했다.

“그냥 이거 먹자.”

“거참, 양 대리.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뭘?”

“그렇잖아.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랬다가.”

“원래 삶이란 게 그런 거잖아. 앉아 앉아. 빨리 먹고 가자고.”

“못 말린다. 양 대리.”

그들은 푸드트럭 근처에 설치된 테이블에 자리했고, 이내 산하는 후각 자극용으로 끓이던 된장찌개와 밥을 종이 용기에 덜어서 그들에게 서빙했다.

“맛있게 드세요.”

그 단출한 모양새를 바라보던 양 대리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실수였나? 좀 썰렁하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그에게 직장동료가 말했다.

“뭐래, 그냥 먹어. 또 맘 바뀌지 말고.”

“누가 뭐랬냐. 어? 근데 저거 뭐야?”

“뭐가?”

사내는 양 대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입식 현수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님 열 명 달성 시, 사장님이 노래 불러드립니다.>

- 28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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