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넘볼 수 없다 (3)
그녀는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그토록 원했는데도 하산해의 정식 콘서트는 진행될 기미가 안 보였다. 한데 지금, 사은품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하겠다고?
아니, 그전에 매일 완판할 때마다 주는 사은품도 어마어마했다.
전시회를 시작한 지도 꽤 됐건만, 입소문과 언론의 홍보로 아직도 구하기 힘든 원화 전시회 입장권은 약과였다.
병당 십만 원이지만, 애주가들 사이에서 없어서 못 마신다는 귀한 술 천상주도 스무 병이나 있었다.
거기에 웹툰 술왕부로 유명한 하산해가 캐리커처를 그려 주고, 심지어 강남 바닥 미용사들도 울고 갈 헤어 손질에, 미슐랭 요리점 이용권까지.
물김치 증정이나 붓글씨는 큰 기대가 안 되었지만, 하산해를 만나 직접 수령할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있어서 이 사은품도 매력적이었다.
이건 사야 해! 다 사야 해!
이것도 좋고, 다 좋아.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짓던 김채연은 곧장 구매를 눌러 한 세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응모 안내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은성 공식메일로 ‘ㅇㅊㅎ 브랜드 사은품 이벤트에 응모합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성함과 구입하신 쇼핑몰 이름, 전화번호……>
<중복 당첨은 불가하며……>
<추첨은 완판 다음 날 밤 9시, 은성에서 운영하는 영상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뭐라고? 당첨자를 다음 날 바로 알려 준다고?
와, 대박. 미쳤네.
그날 구입하고 다음 날 결과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그녀는 환호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구입해야 확률 올라가겠지? 더 사?
나 이번 달 생활비 얼마 남았지?
아 몰라! 이런 기회가 흔하냐. 질러질러!
결국, 김채연은 첫날에만 3세트를 구매하고 말았다.
이 소식은 하산해 팬 카페와 그 외의 여러 연합 카페에도 알려졌다.
<은성 제품 구입하면, 대박 사은품 준대요.>
누군가 카페에 올린 게시글에 댓글이 달렸다.
- 오, 뭐 주는데요?
- 종류가 열댓 개 돼요. 그런데 제일 마지막 사은품이 뭔지 아세요?
- 어! 저 보고 왔어요. 전국투어 콘서트, 와 미친다. 여러분 돌격 앞으로!
- 앗, 제가 말하려고 했는데.
- 기회입니다. 하산해님 혼쭐 내주자고요. 우리가 못할 줄 아나 봐요.
- 고고씽.
- 와, 진짜 사은품 미쳤네요. 전 산하네 요리 전문점 이용권 받았으면 좋겠어요.
- 전 일단 오늘부터 계속 삽니다.
- 울 어머니 등짝 스매싱이 무섭지만, 어쩌겠어요. 일단 3세트 구매.
구입했다는 인증 게시글이 하산해 팬 카페를 뒤덮고 있을 무렵이었다.
연합 카페 중의 하나인 ‘술과 세월’ 카페와 ‘천상주 애호가 모임’ 역시 난리가 나버렸다.
- 대박 소식입니다. 천상주 스무 병 사은품으로 걸렸어요.
- 어디, 어디요?
- 오픈마켓 아무 곳이나 가서 ㅇㅊㅎ로 검색하시면 돼요. 천상주는 내일부터인데, 대기했다가 품절되기 전에 구매하세요. 하산해 팬 카페 회원님들이 그냥 마구 사들이고 계시거든요.
- 오오! 이건 사야죠.
- 한 달째 구입 실패했는데, 여기에 행운 걸어보겠습니다.
- 제발, 걸리기를…….
- 전 오늘 자정까지 안 잡니다. 눈 부릅뜨고 많이 사 버릴 거임.
같은 시각, 봄봄봄 작가의 술왕부 팬 카페, 헤어 미용 카페, 마운틴R과 고릴라 카페, 하산해의 수묵화 카페 등등 수많은 팬 카페들도 들썩거렸다.
하나 그중 가장 들썩거린 곳이 있었으니, 바로 ‘산하네 요리 전문점 사랑’ 카페였다.
하루를 쏟아부어야 겨우 먹을 수 있는, 환상의 맛을 자랑하는 미슐랭 요리를 행운만 따라 준다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회원들은 환호했다.
하나 그도 잠시, 다들 우려를 쏟아냈다.
- 잠깐만요. 그러면 투어 콘서트 하는 동안 식당 문 닫는다는 얘기죠?
- 어, 그러네요? 아. 안 되는데.
- 우리 사야 해요? 말아야 해요?
- 난제네요. 구매 안 하려니 팬심이 울고, 하려니까 미슐랭 요리가 울고.
- 아우, 골치 아파.
- 우리가 고민한다고 품절 안 날 것 같진 않아서, 전 살래요. 사은품 당첨 기회라도 얻어야죠.
- 저도저도.
- 지금 하산해 팬 카페 완전 전쟁터예요. 완판될 때까지 사겠답니다.
- 그럼 사야겠네요. 아, 된장찌개 한동안 못 보겠다.
- 투어 콘서트 조금만 하고 돌아오시면 좋을 텐데…….
- 쉿, 하산해 팬 카페에서 보면 욕해요.
회원들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하산해였다.
그들은 원하는 사은품이 내걸린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나, 많은 팬 카페 중에서 가장 화력이 센 곳은 뭐니 뭐니 해도 하산해 팬 카페였다.
그곳에서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판매 채널의 상품이 완판될 때까지 구매를 멈추지 않기로 결의 중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첫날 ㅇㅊㅎ 제품군은 전 채널 완판되었다.
첫날 사은품은 웹툰 원화 전시회 무료 입장권이었고, 산하는 이 사은품을 추첨하기 위해 다음 날 법인 은성의 영상 채널에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완판 감사드립니다. 저희 은성에서 ‘ㅇㅊㅎ 된장찌개’를 판매한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요. 새 제품군 출시 기념으로 이렇게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자, 첫날 사은품은 술왕부 웹툰 원화 전시회 무료 입장권이죠? 추첨 방식은 응모자분이 워낙 많으셔서 컴퓨터로 진행하겠습니다. 화면 똑똑히 봐주세요.”
이내 영상 화면에 추첨 소프트웨어를 작동하는 장면이 나타났고, 곧 살짝 가려진 이름과 전화번호 뒷자리가 나열된 스무 명의 당첨자가 표시되었다.
“당첨되신 분 축하드립니다. 사은품은 내일 중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발송할 예정입니다. 문의 사항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첫날 사은품 추첨 마치겠고요. 그냥 가기 뭐 하니까 노래나 한 곡 부르고 갈까요?”
사은품 당첨에 기대를 걸던 산하의 팬들이 뜻밖의 선물에 환호하며 채팅창에 글을 쏟아냈다.
- 오예!
- 좋아요. 역시 하산해.
- 하신 김에 한 곡 더요.
- 굿굿!
- 보러 오길 잘했다. 만세!
* * *
다음 날 오전, 도일그룹 본사 회장실.
“다음, 보고해 보게.”
“네. 고상식 도련님은 현재 중소기업 간편 식품 하나를 카피하고, 마케팅비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윗선과 제대로 된 상의도 없이 진행하는 통에, 불만이 조금씩 고조되는 상황입니다.”
“간편 식품?”
“네, 회장님.”
“카피한 회사 제품이 그렇게 뛰어난가?”
“뛰어나긴 합니다. 혹시 SL홈쇼핑 사건 기억나십니까? 가수 팬들이 홈쇼핑 본사 찾아가서 시위까지 했었습니다만.”
현재 SL전자와 분쟁 중인 것을 떠올린 도일그룹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SL홈쇼핑? 아…… 기억나는군. 그때, SL 회장 놈 면상을 못 본 게 아직도 아쉬워. 그 고마운 회사 제품을 카피했어? 그냥 크게 좀 놔두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음 이야기하게.”
“네. 그 제품 하나에 총력을 기울여서, 현재 된장찌개 간편식을 출시하는 다른 회사에서도 난리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가 돼 버렸다는 게지? 상식이 놈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뭐 다른 놈들 발등에 불 떨어지게 했으니 잘하고 있는 게지. 그다음이 중요한데…… 무슨 계획인지 알겠나?”
“그건……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짐작 가는 거 아무거라도 얘기해 보게.”
“간편 제품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일종의 테스트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상식은 그저 산하의 된장찌개 판매를 방해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그들은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옳거니…… 이놈이 거칠긴 해도 머리가 참 좋아. 중소기업 제품 베꼈다는 말 안 나오게 잘 처리하게.”
“안 그래도 그 부분을 알아봤는데, 크게 염려할 만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카피가 제대로 안 된 것 같습니다.”
“카피가 안 돼? 어째서?”
“중소기업 오너가 가수이면서 동시에 미슐랭 요리사인데, 뭔가 독특한 레시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맛을 완전히 흉내 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팔걸이를 검지로 톡톡 두들기던 고 회장이 묻는다.
“아무래도 상식이가 그 독특한 레시피도 같이 노리는 모양이로군. 지금 그 중소기업 쪽 제품 인기는 어떤가?”
“원래는 인기가 상당했습니다만, 생산량도 적은 데다 현재 도일식품의 고품질 저가 전략으로 매출이 점점 떨어지는 모양새였습니다. 다만 충성 고객이 많아서 대폭으로 떨어지진 않고 있는 데다, 최근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벤트?”
“네, 오너 본인의 장기를 살려서 사은품을 내걸었습니다. 신상품도 출시하고요. 인기가 꽤 좋습니다.”
“그래 봐야 중소기업이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경험 삼아 괜찮겠군. 잡음 안 나오게 뒤에서 잘 서포트하게.”
“네, 회장님.”
고상식이 식품 회사의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인다고 착각한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묻는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상식이가 이 자리에 어울릴 것 같나?”
“죄송합니다만, 저는 판단하기 힘듭니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 다음 보고하게.”
“네, 며칠 전 일입니다. 고상식 도련님이 지하 자료실에 다녀갔습니다.”
“자료실? 거긴 왜?”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기밀 자료실도 살펴봤다고 합니다.”
도일그룹의 기밀 자료실은 재벌가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그걸 떠올린 고 회장이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음…… 기밀 자료실이라. 직접 보고 얘기해 봐야겠군.”
“네, 회장님. 지금 연락을 넣을까요?”
“그리하게.”
한참 후, 고상식은 회장실에 들렀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아, 자네들은 나가 있게. 단둘이 얘기하고 싶군.”
비서진이 밖으로 나가 버리자, 고 회장이 자애롭게 웃으며 묻는다.
“그래, 식품 쪽은 어떻더냐?”
“배울 것도 많고, 만족스럽습니다.”
그 후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고 회장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밀 자료를 살펴봤다지?”
고상식은 뜨끔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이 영감, 역시 위험하다니까.
그는 표정에 변화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답했다.
“네, 그랬습니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고 회장은 이상함을 느꼈다. 손자놈은 태연하게 굴지만, 눈동자의 미미한 흔들림에서 수상함이 감지된다고 해야 할까.
하나 그걸 모른척하며, 입을 열었다.
“할애비가 감시하는 건 아니니 오해 말거라. 그쪽 출입 관리하는 직원이 반드시 내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 손자가 뭐가 알고 싶었나,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야.”
“전 그저 우리 도일그룹의 역사에서 배울 게 많지 않을까 해서 방문했을 뿐입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허허 웃던 회장이 그를 칭찬한다.
“죄송할 건 없다. 도일그룹 핏줄이라면 당연히 그리해야지. 자고로 역사에서 배울 게 많은 법이야. 잘했다. 앞으로도 잘 연구해 보거라.”
“네, 회장님.”
“단둘이 있을 때는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다.”
“네, 할아버지.”
그런 식으로 한참 대화를 나눈 고 회장은 고상식을 내보내고 난 후 다시 비서와 마주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싹 지워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굳어 있다고 해야 하나.
“느낌이 이상하더군…….”
“어떤 느낌 말씀이십니까?”
“말 잘 듣는 범 새끼를 데려온 줄 알았는데, 승냥이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한 건 알 거 없고, 지금부터 상식이 일거수일투족 더 면밀히 관찰해서 보고하게. 사소한 대화 하나까지 말이야. 그리고 기밀문서 중에 어떤 걸 건드리는지도 확인해서 보고하고.”
“네, 회장님.”
“이만 나가 보게.”
비서가 밖으로 빠져나간 후, 고 회장은 굳은 자세로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왜 그런지 모르겠군.
그래도 내 핏줄인데 말이야.
하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육감이 중요하다는 걸 고 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육감으로 도일그룹을 이렇게나 크게 성장시켰기 때문이었다.
그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그저 거친 느낌이었던 손자놈이,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고.
착각이었으면 좋겠군.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녀석인데 말이지.
* * *
<은성 제품에 내걸린 사은품, 하산해 팬 야단법석>
<이달 말까지 제품 완판 시, 전국 투어 콘서트 공약 내건 하산해>
<은성 신상품, 하산해 팬 카페에서 싹쓸이>
<넷째 날도 완판, 네티즌 하산해 팬덤에 놀랐다>
- 흐흐흐, 저 엊그제 캐리커처 서비스 당첨됨, 완전 신나요!
- 전 첫날부터 계속 꽝인데, 슬프다.
- 저는 헤어 손질 당첨됐지요.
- 아, 진짜. 자랑하지 마요. 부럽단 말이에요.
- 이 기세면 진짜 전국 투어 가겠는데요?
-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게 우리 카페 최종 목적인데요.
신상품 런칭 이벤트로 인해, 은성의 모든 제품이 완판 행진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이벤트 이전에 제품 생산을 충분히 해 놔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면 다섯째 날 판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산하네 요리 전문점 이용권이 걸린 날이었는데, 벌써 오픈마켓 판매 페이지가 버벅거리고 있었다.
이런 흥행에 힘입어 각 쇼핑몰 담당자들은 은성 이벤트 배너를 아예 홈페이지 첫 화면에 띄우기까지 했다.
그러자 더 많은 소비자가 은성 이벤트에 참여했고, 여섯째 날에는 디도스 공격이라도 받은 듯, 일부 판매 채널 페이지가 터져 버리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물김치 선물 당첨자를 뽑는 시간이 돌아왔다.
“와, 또 완판이네요. 여러분 성원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잔말 말고 사은품 당첨자나 뽑으라고요? 알겠습니다. 오늘 사은품은 제가 담근 물김치 선물로 드리는 거 알고 계시죠? 미리 안내해 드렸지만, 택배 수령도 가능하시고, 직접 제게 전달받으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후 추첨 소프트웨어가 작동되었고, 당첨자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당첨되신 분,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가며, 네티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노래해! 노래해!
- 노래 들으려고 일부러 찾아왔어요.
- 하산해, 노래해! 얼른 해! 빨리 해!
* * *
물김치 사은품에 당첨된 김채은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첨되라는 사은품은 당첨 안 되고, 엉뚱하게도 전혀 관심 없던 물김치가 당첨되어서였다.
아쒸, 정말. 진짜 열심히 샀는데.
그래도 신제품이 맛있어서 다행이야. 만나서 사인받을 기회도 얻었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산하네 요리 전문점 2층을 바라보았다.
물김치고 뭐고, 하산해를 볼 기회라고 여기며 이곳을 찾아온 그녀는 히히 웃으며 가방 속의 흰색 티셔츠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에 사인이라도 받아 갈 생각이었는데, 이참에 하산해 팬카페도 가입해서 자랑할 계획이었다.
이윽고 식당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선 그녀는 하산해를 발견했다.
“와, 안녕하세요?”
조금 전 전달받은 당첨자 이름을 떠올린 산하가 인사한다.
“네,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김채은 씨 맞으시죠?”
“네, 맞아요.”
“직접 수령하시기로 한 상품은 여기 있고요.”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사은품 당첨자에게 양해를 구한 산하는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전화를 건 이는 다름 아닌 강정열이었다.
“네, 아저씨.”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 언제가 괜찮겠나?”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진지한 그의 말투에, 산하는 곧바로 답했다.
“어…… 다음 주 월요일 오후 영업 끝나고 잠시 시간 있습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자세한 건 그때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지.”
통화 종료 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산하는, 이내 당첨자에게 사과의 말을 던졌다.
그러자 김채은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흰 티셔츠를 꺼냈다.
“저기 죄송하지만, 사인 좀…….”
그녀의 요구에 산하는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이리 주세요.”
한참 후, 사인도 받고 하산해와 기념촬영까지 해서 신이 난 그녀는 물김치가 담긴 아이스박스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
그녀는 출출한 배를 쓰다듬었다.
마침 저녁 시간인데, 물김치 맛이나 볼까?
이것도 식당 메뉴에는 있던데, 된장찌개보다는 별로인 모양이야. 다들 된장찌개만 찾는 거 보면.
나도 언제 한번 미슐랭 된장찌개 먹어 봐야 하는데.
그녀는 된장찌개 인기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한 홍혜영의 물김치를 띄엄띄엄 보는 중이었다. 그래서 막 대단한 기대까지는 없이 물김치를 떠먹었다.
- 288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