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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01화 (301/445)

301화 우리 책임입니다 (2)

이게 뭔가 싶어서 살펴본 산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제 책인데요? 이게 대작이라고요?”

그의 충격적인 발언에 사고 회로가 정지한 장단석이 말을 더듬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이번에 자작곡 만들면서, 필요해서 쓴 거예요. 이건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그게, 지금 온라인 서점 1위에…… 아니, 잠깐!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해 보세요. 직접 쓰신 거라고요? 정말입니까?”

그의 표정에는 온갖 복잡함이 뒤섞여 있었고, 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출판사 한 곳에 맡겨 놨었는데, 언제 그렇게 됐죠?”

말없이 산하와 책을 번갈아 보던 장단석이 작가 면벽의 작품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이게 대표님이 쓰신 거란 말씀이시죠?”

“그렇다니까요.”

그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장단석이 하하하 크게 웃었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산하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그제야 웃음을 겨우 그친 장단석이 말한다.

“당연히 이 훌륭한 작품이 대표님 거라서 웃는 거죠. 그럼 그쪽 출판사에선 대표님 정체를 전혀 모르는 겁니까?”

“……아마도 그럴걸요? 소장만 하고 딱히 출간할 생각은 없었는데, 거기서 정식 출간하자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었어요. 아참! 혹시 연락 온 거 있나 봐야겠네요.”

“연락이요?”

“네, 매니저한테 이쪽 업체는 깜빡하고 안 알려 줬거든요.”

이윽고 산하는 전원이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켰다. 그러자 온갖 스팸 문자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 바람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몇 년 전만 해도 청정구역이었던 자신의 전화번호가 이제는 스팸 전화와 문자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였다.

그중엔 팬이라면서 장난전화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디에서 번호가 유출된 모양이었다.

조만간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던 산하는 문자를 확인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부재중 전화 알림 문자를 살펴보던 산하가 터치를 멈췄다.

“아, 전화 자주 줬었네요. 전화 한번 해 봐야겠어요.”

그러자 가만히 있던 부사장 장단석이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요. 대표님.”

“네? 왜요?”

“제 소원인데, 그거 나중에 하시면 안 될까요?”

“???”

“우리 직원이 미팅 가서 까이고 돌아왔거든요. 괘씸해서 안 되겠습니다. 아직 밝히지 말아 주세요. 거기서 현실을 알면 어떻게 나오나 보고 싶습니다.”

그의 애원에 산하가 하하 웃었다.

“부사장님, 마음의 상처가 크셨나 보네요?”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매번 진짜 안타깝고 억울했습니다. 우리 탐색팀도 짠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도 까였지 뭡니까. 그나저나 우리 탐색팀, 이 사실 알면 난리 나겠네요. 이게 설마 대표님 작품일 줄 누가 알겠습니까?”

“제 소설은 누가 주워 왔나요?”

“탐색팀 장 대리라고, 서점 갔다가 들고 왔답니다. 이거 참,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잘된 일이기도 하고요. 그건 그렇고, 대표님 이번 작품 곧바로 영상화 준비 들어갑니다. 동의하시죠?”

“네,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 진짜 비밀입니다. 제가 그쪽 단단히 골려줄 겁니다.”

“……무섭네요. 조금만 하세요. 다들 몰라서 그런건데.”

“네. 아니, 그런데 출판하실 거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왜 숨기신 건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작곡용으로 쓴 거예요.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에요.”

“음…… 역시 웹툰 스토리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군요. 이 정도 실력이셨다니. 그나저나 아깝습니다. 제가 당장 출판 부서 만들겠습니다.”

“……제 책이 다음에 언제 나올 줄 알고 만드신다는 거예요? 사람 여럿 고용해서 월급만 따박따박 주시게요?”

“하긴, 그럼 그냥 지원하는 정도로 할까요?”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보죠. 아무튼 전 다음 콘서트 준비하러 가 볼게요. 출판사랑 마무리 잘해 주시고요.”

“네, 염려 놓으세요. 영상화 작업까지 깔끔하게 처리해 놓겠습니다.”

잠시 후.

팀장 김무진은 부사장의 호출을 받았고, 무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앞에 죄인처럼 서 있었다.

“김 팀장.”

“네, 부사장님.”

“일이 잘 안 풀리죠?”

“……죄송합니다. 믿고 불러주셨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 대작도 놓쳤고…….”

이젠 이렇게 대놓고 말씀하시는구나 생각하던 김무진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건 아직 연락 기다리는 중이라서, 혹시 모릅니다.”

“내가 알아봤는데, 연락 기다릴 필요 없겠어요.”

“네?”

이게 무슨 소리지.

날 자르려는 건가.

그의 불안한 표정을 잠시 바라보던 장단석이 책 <단풍을 닮았더라>를 들어 올렸다.

“이 책 말이에요.”

“네, 말씀하세요.”

“알고 보니까, 이 책 쓴 사람이랑 나랑 아는 사이더라고요.”

“네!?”

“이 책 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

“바로 우리 대표님입니다.”

김무진의 눈이 동그래지다 못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네에!?”

“놀랐죠? 나도 놀랐습니다. 앞으로 그쪽 출판사에 저자세로 나갈 필요 없어요. 당당하게 하세요.”

“…….”

“왜 말이 없어요?”

도저히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던 김무진이 다시 물었다.

“농담이시죠?”

“……내가 지금 농담하겠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 참, 당분간 어디 발설하지는 말고요.”

“세상에…… 그런데 발설하지 말라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그쪽에서 연락 오면 한 방 먹일까 해요. 우리 대표님이 저작권자다! 하고 말이에요. 물론 한 방 먹일 주인공은 김 팀장이나 장 대리가 하면 되겠네요.”

그 시각.

인터넷 언론사 중 한 곳에서 특종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가 풍긴 곳은 바로 최근에 개설된, 인원 몇백 명에 불과한 작가 면벽의 팬 카페였다.

- 다들 보셨죠? 이건 진짜 교묘해요.

- 와, 하산해. 그렇게 안 봤는데.

- 줄이기도 잘 줄였네요. 노래만 들으면 자기 창작으로 만든 노래인 줄 알겠어요.

- 그러니까 말이에요.

- 아니 차라리 이럴 거면 면벽 작가랑 합의…… 어? 이거 설마 사전에 합의된 거 아니에요? 그 정도 대스타가 뭐가 아쉬워서?

- 대스타도 욕심은 있는 법이죠.

-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거랑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일 한 번 있긴 했잖아요. 그 사람은 돈으로 무마했지만.

- 맞다. 그러네요. 그 인간 매장해야 하는데, 뻔뻔하게 잘 사는듯요.

- 그래도 조금 두고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출판사에 전화해 봤었는데, 하산해랑 면벽 작가랑 얘기된 거 없는 것 같더라고요.

- 그래요? 진짜 어이없다.

- 우리가 면벽 작가님 지켜드리자고요. 전 기자한테 제보하러 갈게요.

- 저도요.

요즘 뜨는 작가 면벽의 작품과 하산해의 신곡, 그것도 두 곡이 전체적으로 유사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었다.

이거 대박 뉴스감인데?

그 기자는 곧장 가사와 책 내용을 비교했고, 실제로 유사함 그 자체라는 걸 알아냈다.

이 뉴스는 내거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인터넷에 올라간 뉴스 기사가 있었으니.

<하산해, 소설가 작품 슬쩍, 노래로 만들어…… 의혹 일파만파!>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난 오후.

다른 신문사도 이와 관련된 뉴스를 띄웠고, 면벽 팬 카페와 그의 애독자 및 문학인들이 풍류, 은성, 브리즈툰의 홈페이지를 찾아와 항의 글을 올렸다.

심지어는 하산해와 관련된 팬카페를 찾아가 이 뉴스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자 하산해 팬들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혼란스러워졌다.

- 설마요. 우리 하산해님이 그럴 리가 없어요.

- 그러니까요. 이거 조작 뉴스 아니에요?

- 맞아요. 우리 하산해님 음해하려고.

- 절대 그럴 리 없음. 하산해님이 얼마나 친절하신 분인데.

그러자 게시글을 올린 신규 가입자가 댓글을 달았다.

- 겉으로 친절하다고 도덕적인가요? 양의 탈을 쓱 늑대일 수도 있죠.

- 당신이 뭘 알아요? 하산해님 그럴 분 아니에요.

- 하여간에 하산해 팬 카페 아니랄까 봐, 사실을 직시하세요. 두 작품 비교해 보면 될 거 아닙니까?

- 좋아요. 비교해 보자고요.

- 다들 진정하세요. 아직 뭐 확실하게 밝혀진 거 없잖아요.

그러자 인터넷 신문사중에 친 하산해 신문사에서는, 풍류의 하산해 전담 부서로 확인 전화를 하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하산해 지원부서에서는 장단석 부사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 보고를 받은 장단석 부사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작품 슬쩍? 안 되겠네. 당장 기자 불러요.”

“부사장님,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진짜면 큰일인데, 대표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그의 질문에 장단석 부사장이 돌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당황하고 있는 직원에게 말했다.

“잠시 숨기려고 했는데.”

“네?”

“잠깐 전화부터 하고 마저 얘기합시다.”

심각한 사안이다 보니,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곳으로 달려온 직원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대표님…… 지금 상황이…….”

하나 그는 대꾸없이 산하의 매니저 강상익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내 통화 상대가 바뀌자 지금 논란에 관해 이야기했다.

“홍보 효과는 괜찮아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보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쌓일 것 같네요. 그냥 곧바로 해명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대표님, 지금 잘 내려가고 계시죠?”

“네, 지금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네, 그럼 안전 유의하시고요. 세 번째 콘서트에는 저도 방문하겠습니다.”

그 후로도 산하와 통화를 조금 더 나눈 장단석 부사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하산해 지원 부서 직원에게 말했다.

“사실, 그 면벽 작가도 우리 대표님입니다.”

하산해 지원 부서 직원은 부사장이 왜 저러나 답답해하다가 뜻밖의 이야기에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동그래진 눈동자로 질문을 던진다.

“네!? 정말이십니까? 면벽 작가가 우리 대표님이요? 그걸 왜 숨기고 계셨어요? 세상에…….”

“이유는 나중에 말해 줄게요. 기자부터 불러요. 이런 건 논란으로 홍보는 될지 몰라도, 오래 놔두면 대표님 이미지에 안 좋으니까. 아, 그리고 우리 홍보 채널 라이브도 준비하세요.”

“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직원이 부사장실을 헐레벌떡 빠져나가자, 장단석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참 후, 연예부 기자와 문화 뉴스 관련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느라 바빴다.

“곧바로 반응하는 거 보니 급했나 보네요.”

“그러게요. 정말 하산해가 베낀 걸까요?”

“글쎄요. 여태 하산해 행보 봐서는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여태 연예인 중에, 앞에서는 성인군자인 척하고 뒤에서는 호박씨나 까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전 중립.”

“중립이 아니라, 단단히 따져서 이런 짓 다시는 못 하게 만들어야죠.”

“인터뷰 요청해도, 거절하고 바쁘다 뭐다 하더니 이런 짓 하느라고 그랬나 보네요.”

그때였다.

장단석 부사장이 인터뷰실로 천천히 들어섰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고, 그들은 서로 첫 인터뷰를 따고 싶어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

“QBS 양태문 기자입니다. 하산해 씨는 이 상황에도 콘서트를 이어 가실 생각인가요?”

“세한일보 이춘석입니다. 이번 의혹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구 질문을 쏟아내는 그들을 잠시 둘러보던 장단석 부사장이 마이크를 톡톡 두들겼다. 그러자 기자들이 잠시 조용해졌고, 그는 입을 열었다.

“이번 논란은 우리 책임입니다.”

풍류 홍보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하산해 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믿었던 하산해가 남의 소설 작품을 베껴서 노래로 만들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그들은 채팅 글을 쏟아내지도 못했고, 마치 세상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모두가 조용했다.

그때, 누군가가 채팅 글을 올렸다.

- 거봐요. 하산해도 깨끗한 척하는 더러운 놈인 거 확인했죠?

그러자 평소 하산해 안티였던 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채팅 글을 쏟아냈다.

- 실망이다 정말.

- 역시 이럴 줄 알았음.

- 뻔뻔하다. 이러고도 콘서트 계속할 생각은 아니겠지?

- 당장 음원부터 내리라고. 이걸 돈 받고 팔아?

- 다들 환불합시다.

- 사기꾼이네. 어쩐지 인상이 별로더라 했어.

- 이거 면벽 작가가 소송하면 이길까요?

- 여론 형성되면 이길지도 모르죠. 근데 분야도 다르고, 뭘 복사하듯이 베낀 건 아니라서 모르겠네요.

그 채팅 글 반응과 유사하게, 기자들도 흥분하여 달려들었다.

“하산해 씨가 면벽 작가의 작품을 베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논란이 되고 나서 면벽 작가와 합의하신겁니까?”

그들의 질문에 장단석이 빙긋 웃었다.

그러자 기자들은 저 미친놈이 이런 상황에 왜 웃나 생각했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장단석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제가 뭔가 오해하시도록 말씀드린 것 같네요. 제가 말하는 우리 책임이라는 건 하산해 씨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책임을 회피하시는 겁니까?”

“책임 회피가 아니라, 사실 발표를 늦게 해서 논란을 만들었고, 그래서 우리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자들이 앞다투어 질문했다.

“대체 그게 무슨 궤변입니까?”

“제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기자들을 둘러보던 장단석이 입을 열었다.

“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작가 면벽은…….”

“???”

“??”

“하산해입니다.”

- 30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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