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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12화 (312/445)

312화 귀국은 멀었다 (3)

“저녁이요?”

“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아이가 밖에 나가기를 싫어해서요.”

“아…… 그럼 제가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바라보던 세바스띠엥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거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약간의 희망일 뿐이건만, 그걸 위해 다른 이의 일상을 방해하다니.

돌려서 거절한 거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오늘 조엘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는데, 정기적으로 아들을 돌봐주던 선생님도 두손 두발 들고 떠나간 마당이라, 케어할 사람이라곤 자신뿐이었다.

세바스띠엥은 여전히 악을 써대는 아이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아들, 우린 할 수 있어. 이겨 내자꾸나.”

한편, 산하는 식당에 모인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에 위치한 세바스띠엥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 근처로 다가서자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 못 한 산하는 초인종부터 눌렀다. 그러자 초췌해진 세바스띠엥이 인터폰을 받았다.

“누구십니까?”

“아까 전화 주셔서 왔습니다.”

“아…… 이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부에서 약간의 소음이 일더니 현관문이 열렸고, 그는 약간의 희망을 담아 산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파티 중이셨을 텐데.”

“괜찮습니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네? 네. 들어오세요.”

세바스띠엥은 입구에서 비켜섰고, 산하는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악을 쓰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뒤를 따라온 세바스띠엥이 산하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왜 연락드렸는지 궁금하시죠?”

“네, 무슨 일인가요? 아드님은 왜 저러고요?”

망설이던 세바스띠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우리 아들 조엘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어릴 적 사고 이후부터인데, 여러 병원에 다녀 봤지만 호전도 안 되고,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는 중이었습니다. 한데, 당신이 여기 온 날, 우리 아이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어요.”

“변화라면, 어떤 건가요?”

“아, 그 전에…… 뭐라고 호칭하면 될까요? 성함이…….”

“그냥 산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산하 씨. 그날 처음, 우리 아이가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오전에는 산하 씨 모습을 여러 장 그렸어요. 거기에서 뭔가 희망을 느꼈습니다. 한데, 오늘 오전부터 아이 상태가 전과 달리 더 안 좋아지더군요. 그래서 문득 산하 씨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염치없이 연락을 드린 겁니다. 무언가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요.”

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 때문이라고 확신한 산하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러시면 제가 일단 말을 한번 걸어볼까요?”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바스띠엥은 그리 큰 기대까지는 없었다.

아동병원 전문 치료사도 손을 놓은 마당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낯선 이에게 제대로 된 무언가를 기대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연락한 건, 그저 조엘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의 힌트를 얻기 위함이었다.

한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산하가 아들 조엘에게 다가가자 바닥에서 몸부림치던 아이의 동작이 서서히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산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제 일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직감한 세바스띠엥은 두 사람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사이, 산하는 눈앞에 뜬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19세 이하 인간은, 당신의 말에 순순히 따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걸 잠시 바라본 산하는 조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 조엘?”

그러자 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조엘이 손을 내밀어 산하의 손을 잡았다.

이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세바스띠엥이 조금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을 때였다.

산하는 조엘을 번쩍 들어서 소파에 앉혔다.

“조엘, 밥은 먹었어?”

아이는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요 몇 년간 아들을 지켜봐 온 세바스띠엥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삼촌이랑 밥 먹으러 갈까?”

조엘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걸 잊지 않았다. 조금 전만 해도 일그러져 있던 조엘의 표정은 제법 편안해 보였다.

산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조카를 통해 알아냈던 사실을 떠올렸다.

어릴 적 자지러지게 울던 조카 박유진도 자신이 안아 주기만 하면 울음을 뚝 그치곤 했다. 그리고 현재는 완전히 삼촌바라기가 되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자란 후에,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삼촌이 그렇게 좋냐고.

그때 돌아온 말은 아이답게 굉장히 단순했다.

삼촌이랑 있으면 포근하다.

재미있다.

마음이 따뜻하다.

같이 있고 싶다.

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는 일견 그리 대단치 않은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상당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울던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드는 유미옥의 재능을 떠올린 산하가 조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세바스띠엥이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대…… 대체.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글쎄요. 제 조카도 그렇고, 아이들이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내뱉으려던 세바스띠엥은 조엘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딘가 불안정하고, 일그러져 있기 일쑤였던 아들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 보였다.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남자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제발, 이 아이 곁에 있어 달라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무릎을 꿇었다.

“산하 씨, 부탁입니다. 제 아이 곁에 며칠만이라도 머물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왜 이러십니까? 일어나세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게 희망은 산하 씨뿐입니다.”

산하는 무릎 꿇은 채 애원하는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이러지 마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세바스띠엥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심경을 산하에게 말해 주었다.

“그렇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알겠습니다.”

“그 말씀은?”

“원하신다면 며칠 정도는 같이 지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혹시 빈방이 있나요?”

“물론이죠. 있습니다. 있고 말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식사는 하셨나요?”

“식사요? 별로 생각이 없어서…….”

“그럼 조엘이랑 같이 가시죠.”

“괜찮을까요?”

“아마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조엘?”

조엘은 언제 소리 지르고 난리를 피웠냐는 듯 얌전히 앉아 있기만 했다.

잠시 후, 조엘을 식당으로 데려온 산하는 지인들에게 일행을 간단히 소개했고, 이내 의자에 아이를 앉혔다.

“조엘, 삼촌이 맛있는 거 가져다줄게. 기다리고 있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산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세바스띠엥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엘이 영어를 알아듣나요?”

“네. 그리 유창하지는 않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가르쳤거든요.”

“아, 그렇군요. 아, 앉아서 기다리세요. 금방 요깃거리 좀 가져올게요.”

그때, 갑자기 등장한 외국인을 아까부터 바라보던 산하의 지인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봉만두는 주방으로 향하는 산하의 뒤를 따라왔다.

“형님, 저분이랑 아이는 누굽니까?”

“말했잖아, 여기 식당 주인분하고, 아드님.”

“아…… 그런데 왜 여기를……?”

“어쩌다 보니?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해.”

“궁금해서요. 이 봉만두 또 궁금하면 잠을 못 잡니다.”

“퍽이나, 머리만 대면 자는 놈이.”

“…….”

한편, 식당에 가득 찬 된장찌개 냄새는 세바스띠엥의 후각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냄새지.

음…….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지.

조엘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한데, 그 일이 버젓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고.

희망이 샘솟으면서도,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세바스띠엥은 아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조엘은 평소와 달리 얌전하기만 했다. 아니, 집 밖으로 이리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때, 산하가 된장찌개를 비롯해 몇 가지 요리를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자, 별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이거 폐만 끼치는 건 아닌지…….”

“아닙니다. 어차피 많이 만들었거든요. 종일 고생하셨죠? 조엘 밥은 제가 먹일 테니, 편하게 드세요.”

“아니, 그게…….”

조엘의 곁에 앉은 산하는 아이에게 밥까지 먹이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떠 먹이는게 아니라 보조해 주는 정도였다.

세바스띠엥은 설마 아들이 밥까지 잘 먹을까 싶었다. 자신이 주는 것 이외에는 입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조엘은 밥을 매우 잘 먹었다.

심지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더 달라는 시늉까지 했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세바스띠엥이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무척 아팠다.

“안 드세요?”

산하의 질문을 받자, 세바스띠엥도 종일 굶었기에 허기를 느꼈다.

“아니요. 아닙니다. 잘 먹을게요.”

그 후 세바스띠엥은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불어터진 스파게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맛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빨간 토마토가 톡톡 터져 입안을 적시는 느낌이 휘몰아쳤다.

끝내주게 맛있는 그 요리에 깜짝 놀란 세바스띠엥은 다른 요리도 먹어 보았다. 하나같이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그……그렇다면.

이것도?

된장찌개가 담긴 그릇을 노려보던 세바스띠엥이 눈을 딱 감고 한 스푼 떠먹었다.

이……이건!

이건 미쳤어.

미친 음식이야.

이게 대체 뭐지?

“이, 이건 누가 만든 겁니까?”

“제가 만든 거예요. 입맛에 맞으세요?”

“최, 최고입니다! 너무 맛있어요!”

이 사람, 알고 보니 대단한 요리사였잖아.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할 수 있다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요리를 바라보던 세바스띠엥은 이내 된장찌개를 들이마시듯 퍼먹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실내의 모두는 그럴 줄 알았다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한국, 도일그룹 회장실.

“회장님, 상식 도련님 비서에 관해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비서? 뭔데 그러나?”

“이 비서를, 도련님과 함께 한동안 면밀히 감시 중이었습니다만, 요즘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습니다.”

계속 보고하라는 그의 고갯짓에, 사내가 보고를 이어 갔다.

“이 비서가 요 며칠 신변을 정리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를 뵈러 가거나, 자신의 주거지 짐을 정리하기도 하고, 요즘은 경찰서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두 차례나 목격됐습니다.”

“경찰서?”

“네, 회장님.”

“경찰서…… 경찰서라. 무슨 일인 것 같나?”

“뒷조사를 더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 이 비서라는 놈, 범죄 경력은 어떤가?”

“깨끗합니다.”

“조작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없다…… 예감이 그리 좋진 않군. 우리 그룹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 위주로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오게. 하나도 빠짐없이, 알겠나?”

“네, 회장님. 한데 어느 선까지 해야 할까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허 웃던 고 회장이 물었다.

“자네 여기서 일한 지 몇 년이나 됐지?”

회장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고, 사내는 흠칫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알아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알았으면 나가 보게.”

그가 빠져나간 후, 고 회장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안 좋아…….

느낌이 안 좋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야.

고 회장은 무언가 찝찝하고 안 좋은 일이 연결돼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손자로부터 느꼈던 찝찝한 그 느낌이 이것과 관련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던 그는 클클대며 웃었다.

그 어떤 놈이라도, 왕국을 망치려 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것이 비록 손자놈일지라도.

* * *

세바스띠엥은 아들과 나란히 엎드려 그림 그리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조엘은 여전히 말을 못 했지만, 괴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아니 표정이 조금 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인지 아직도 믿기지 않았던 세바스띠엥은 자신의 뺨을 거세게 때렸다.

무척 아팠다.

현실인 게 분명했다.

제발 저 사내가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세바스띠엥은 테이블에 간식을 내려놓았다.

“산하 씨, 이것 좀 드세요. 조엘, 간식 먹으렴.”

“감사합니다.”

산하는 인사를 하며 눈앞을 흘깃 바라보았다.

[유미옥의 아이 돌보는 솜씨가 조엘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조엘의 내면이 희미하게 안정을 되찾습니다.]

메시지를 유심히 바라보던 산하는 간식 바구니에서 빵을 떼어내 조엘의 입에 넣어 주었다.

조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잘도 받아먹었다.

이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던 세바스띠엥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을 종일 바라보았다.

이날 밤.

산하는 자신이 한동안 머무를 방으로 향하려 했으나 제지당했다. 그를 제지한 이는 조엘이었다.

아이는 그의 다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안고 놔주지 않았고, 산하는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조엘, 혼자 있기 싫어?”

아이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산하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 열흘을 함께 지낸다는 것으로 무언가 해결이 되는 걸까? 정말 미션이 원하는 방향일까?

그렇다기엔 조엘이 아직 말을 전혀 못 하고 있는데.

대체 왜 말을 못하는 거지?

실어증이나 자폐증도 아니라고 하고…….

과거도 안 보이고.

그러고 보니, 얘가 천재라고 했었지? 그림 그리는 거 보니까 천재는 맞는 거 같던데. 내일 대체 어떤 사고를 당한 건지 조금 더 자세하게 물어봐야겠어.

한편.

프랑스를 찾은 산하의 지인들은 강상익의 아버지 강영신 덕분에 작은 호텔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그들은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관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종일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온 그들은 어딘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 느낌을 직접적으로 토해낸 건 봉만두였다.

“아…… 재미있었지만, 뭔가 허전합니다. 허전해요.”

그의 말에 나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너도 그래? 나도 이상하게 그렇던데…….”

린다도 그 말에 동조했다.

그러자 자신도 그렇다는 말이 호텔 로비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그때, 강본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윤소가 산하 삼촌 자꾸 찾는 것도 그렇고, 대표님 때문이 아닐까요? 저도 조금 허전했어요.”

“그런 걸까요?”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이번 연말 모임 주인공이 없으니.”

그러자 분위기가 조금 처졌고, 장도산이 손뼉을 쳤다.

“자자, 다들 너무 그리워하는 거 아닙니까? 어제도 봤는데, 우리 푹 쉬고 내일 또 신나게 달려 봅시다.”

“그래요.”

“아자! 간만의 유럽 여행인데, 기분 좋게 해요.”

그 무리에 섞여 있던 새봄은 그 허전함을 더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으로 남자친구를 떠나보낼 때는 이 정도 느낌이 아니었지만, 현지에 같이 있는데도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그런지 많이 허전했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사정을 들은 후였기에 섭섭하지는 않았다.

산하 씨, 빨리 오면 좋겠다.

* * *

산하는 다른 일정을 미뤄두고 조엘과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늘이 이틀째였다.

세바스띠엥이 말하기로는, 조엘은 한때 천재였지만,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난 후로 저리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 아이의 엄마는 현장에서 사망했다는데, 그렇다면 정신적 충격 때문이 아닐까?

천재라서 뭔가 더 과한 결과가 나타난 걸 수도 있고.

그럼 함묵증인가?

그렇다면 노래나 연주에 반응할지도 모르겠는데?

미션은 단순했지만, 그것만 믿고 가만히 아이 곁에 있기에는 산하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물론 어른 노래이면서 한국 노래이기도 하고, 이런 증상의 아이에게는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증세가 나아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울역 노숙자 사례도 있는 데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그는 세바스띠엥에게 다가갔다.

세바스띠엥은 실로 몇 년 만에 거실에서 뉴스를 시청 중이었다. 그는 산하가 다가오자 벌떡 일어섰다.

“아, 혹시 필요한 게 있나요? 불편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아니요. 불편한 건 없는데, 혹시 집에 기타도 있나요?”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세바스띠엥은 자신이 젊은 날 가지고 놀았던 낡은 기타를 떠올렸다.

“기타요? 있긴 있습니다만.”

“잘됐네요. 잠깐만 빌려주시겠어요?”

“네, 뭐 어렵진 않습니다. 그런데 뭘 하시려고요?”

“조엘한테 노래 한 곡 불러주려고요.”

“네?”

“어쩌면 많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세바스띠엥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더 묻지 않고 기타를 가져다주었다.

고작 노래 듣는 것으로 치료가 될 리는 없겠지만, 아들이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상태가 괜찮다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이었다.

그 후,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산하가 기타 현을 튕기며 음 조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이의 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조엘이 산하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무척 대단한 현상이었지만, 세바스띠엥은 더는 놀라지 않았다.

아이가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커져서, 그 모든 걸 뒤덮고 있어서였다.

시끄러울 테니, TV 소리 좀 줄여야겠군.

이즈음 계속해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한때 에펠탑 피리 부는 사나이로 알려졌던 신비한 남자는, 한국의 연예인 하산해로 밝혀진 가운데, 현장에 있었던 많은 시민이 자신의 우울증 등의 정신적 고통이 호전되었고 합니다. 가수 하산해가 다시 한번 공연해 주기를 원하고…….”

세바스띠엥은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별명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놀랐다.

아직 자신에게 웃을 힘이 남아 있었나 싶어서였다.

그러다가 다시 TV 화면에 주목했다.

저건 대체 무슨 소리야.

별 해괴한 뉴스 다 보겠네.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그는 내보낼 기삿거리가 없으니 별 이상한 뉴스도 다 나온다며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때였다.

TV 화면에 하산해의 가을 콘서트 당시 자료 화면이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산하의 모습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 31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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