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25화 (325/445)

325화 탐이 난다 (2)

송문석이 그의 곁에서 응원의 말을 던졌다.

“자,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아까 그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때, 출입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곳으로 들어선 자는 송문석과 같이 선수 생활을 한 사내였다.

현재는 같은 양궁클럽에 소속되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송문석의 와이프가 남편에게 손님의 방문을 알렸고, 그는 산하에게 실례한다는 말을 던지자마자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여어, 송 대표.”

송문석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그 손을 잡는 둥 마는 둥 하던 이부광이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화살 한 발을 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산해가 보였다.

“어? 진짜네.”

“뭐?”

“하산해 말이야.”

“하산해 온 건 어떻게 알았어?”

“우리 와이프한테 들었어.”

송문석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부광의 와이프와 자신의 와이프는 친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미모는 여전하시네요?”

옆에 조용히 서 있던 송문석의 와이프가 살포시 웃었다.

“빈말이라도 감사해요.”

“어어? 빈말이라뇨. 진짜 송 대표가 매일 절하고 살아야 될 정도인데요. 안 그래? 송 대표.”

“흰소리 그만하고. 하산해 보려고 이 시간에 여길 왔다고?”

“당연하지, 요즘 대세잖아. 말 좀 걸어봐도 돼?”

“손님이야.”

“아, 또 깐깐하게 구네. 알았어. 그냥 조용히 구경만 하고 갈게.”

그 순간, 산하는 각궁의 균형이 미묘하게 맞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살짝 빗나간 활은 8점 자리에 안착해 있었다.

조준점을 살짝 틀기로 한 산하가 활을 시위에 걸었다.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려 신궁이라 불렸던, 이석헌의 활 솜씨 80%가 그 소소한 동작 하나에서도 묻어났다.

그 모습에 이부광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자세도 그렇고, 집중하는 모습도 그렇고. 너무 좋아 보이는데?

그 사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산하는 지체 없이 화살을 날렸다. 물 마시듯 너무 자연스러웠다.

약 15m에 달하는 거리를 격하고 날아간 화살이 과녁에 콱하고 꽂혔다.

10점이었다.

“와, 잘 쏜다. 송 대표, 저 사람 여기 자주 와?”

그의 놀라는 모습에 송문석이 의문을 피워올렸다.

“무슨 소리야?”

“저 사람 쏘는 모습 못 봤어?”

뒤돌아 서 있던 송문석이 의문을 담은 채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하산해는 발치에 자리한 화살통에서 화살 한 대를 꺼내 들고 있었다.

흐릿한 눈동자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송문석이 고개를 되돌렸다.

“뭐가 어쨌길래?”

“뭐야? 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야? 하산해, 자세도 그렇고 장난 아닌 것 같은데. 저기 봐봐. 10점에 하나 꽂혀 있잖아. 가까이서 봐야겠다.”

이부광은 송문석이 말릴 틈도 없이 산하의 뒤편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때, 산하의 활이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또 10점이었다.

어느새 이부광의 곁에 선 송문석도 그 모습을 보았다.

뭐야, 구경해 본 게 전부라고 했는데.

저거 완전 프로 솜씨잖아.

처음 쏘는 거 맞아?

파지 자세도 그렇고, 나보다 더 잘 쏘는데?

그들이 놀라워하며 감탄하던 그때였다. 화살을 한 발씩 쏘던 산하는 감질나는 걸 느꼈다.

오래전 이석헌이 사냥할 때 쓰던 방식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오케이.

발치의 화살통에는 화살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이걸 연사하기로 했다.

숨을 크게 들이켜며 심호흡하던 산하가 화살 한 대를 들어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준비 동작도 없이 바로 날렸다.

8점에 꽂힌 그 활을 보며 송문석은 생각했다.

대체 뭐지?

뭐가 저렇게 빨라?

너무 잘 쏘는데?

그 사이, 산하는 재빠르게 다음 화살을 집어 시위에 걸었고, 또 한 대의 화살을 날렸다.

그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집어서 걸고 콱!

또 콱!

화살을 집자마자 날리는 그 솜씨는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번개 같은 연사였다. 화살통에 들어 있던 화살이 순식간에 소모되었고, 과녁은 고슴도치로 변했다.

화살은 모두 과녁 중앙에 몰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놀라던 송문석의 와이프가 속삭이듯 물었다.

“어머, 멋지다. 당신도 저렇게 할 수 있어요?”

그 엄청난 연사 속도에 놀란 송문석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못 해. 어떻게 저렇게 해. 대체 저 사람 뭐야? 나 가르쳐 주신 분도 저 정도는 안 될 텐데…….”

그 순간, 마지막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부광이 허탈한 감탄사를 쏟아냈다.

와, 이런 것도 잘해?

대체 저 천재는 못 하는 게 뭐야?

그때, 그의 뇌리에 퍼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송 대표, 우리 하산해 영입하자.”

아직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송문석이 눈길을 돌렸다.

“뭐?”

“양궁 한번 해 보라고 하자고. 이번 가을에 클럽 대항전 있는 거 알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이 꽉 막힌 송 대표야. 하산해가 우리 클럽 가입하고, 대표로 나가서 우승까지 해 봐. 아니, 우승 못 해도 참가라도 해 봐. 클럽 이름 기똥차게 알려지는 거야. 회원도 많이 받고.”

“의도가 너무 불순하잖아?”

“뭐 어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회장도 꽉 막혀서 규정만 읊어대고. 이건 기회야. 나 말리지 마.”

어느새 산하에게로 다가선 이부광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과녁을 살펴보던 산하가 고개를 돌렸다.

“아, 안녕하세요?”

“뒤에서 잠깐 봤는데, 훈련 많이 하셨나 봐요. 아니지, 이게 훈련으로 되는 건 아닌데 말이죠. 진짜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혹시 양궁 한번 해 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양궁이요?”

“네. 제가 양궁 클럽 임원인데, 가입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우리 클럽이…….”

이부광은 입에서 침을 튀기며 설명했고, 산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스케줄이 많아서요. 생각은 해 볼게요.”

실망하던 이부광의 눈동자에 희망이 살짝 자리 잡았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부탁합니다.”

그때, 산하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션 - 가을 양궁 클럽 대항전에서 우승하자.]

[보상 - 이석헌의 활 솜씨 87%로 상향]

뭐야 이 엉뚱한 미션은.

아직 가입도 안 했는데.

산하가 미션을 바라보던 사이, 이부광을 밀어낸 송문석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정말 처음 쏴 보신 거 맞으세요? 아니죠?”

“처음 맞습니다.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이런 게 되긴 되네요.”

송문석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고, 이부광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에게 물었다.

“뭐? 송 대표,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

* * *

고상식의 사주를 받아 산하에게 해를 끼치려 했던 정병모.

그는 산하의 된장찌개를 맛본 후로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미쳐 버리게 맛있는 요리를 도저히 끊을 수 없어서였다.

그렇게 계속 다니다 보니, 이곳 단골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

이토록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요리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기에, 이 식당이 오래오래 성업했으면 하는 염원이랄까.

그 후로 죄책감을 느낀 정병모는 흥신소를 접어 버렸고, 산하네 요리 전문점의 완벽한 단골이 되었다.

오늘도 된장찌개를 먹으러 온 단골 정병모는 텐트 안에서 생각했다.

다 늙어서 돈만 많으면 뭐 해, 이 식당이 사라지면 된장찌개도 더는 못 먹잖아.

요즘은 조용하지만, 그 인간들 집요한 것 같더란 말이지.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도 몰라.

안 되겠어.

녹취록도 확 풀어야지.

그러면 산하 씨도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하겠지?

그렇다고 충격받아서 식당 문 닫으면 안 되는데.

조금 더 고민해 볼까?

아냐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알리는 게 낫겠어. 위험한 놈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알리지?

익명으로 산하 씨에게 전해 줄까?

아니면 인터넷에 풀어 버릴까?

인터넷에 풀면 내가 위험할 것 같긴 한데…….

상준이야 믿을 만한 놈이니 나에 대해 안 떠벌릴 테고. 그 자식은…….

아, 머리 복잡해.

뭐 좋은 수 없나.

그 시각.

고상식의 비서 이상인은 대기발령을 받고 얼굴이 폈다. 무슨 짓을 해도 못 벗어날 것 같았던 그에게서 해방된 탓이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들은 바가 없었지만, 미친 사이코의 곁에서 벗어난다는 게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려던 마음도 슬그머니 들어가 버렸다.

그래, 우리 할아버지 충격받으시면 안 되니까. 잘 결정한 거야.

결국 그는 고상식과의 대화 내용이 담긴 USB, 그 물건마저도 영원히 숨겨두기로 했다.

혹시 언제라도 쓸 일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다만, 그런 일이 안 생기기를 빌었다.

그나저나 지난번 범인 아직 못 잡았나.

도일그룹의 지시를 받은 자들은 이번 일을 좀도둑 사건 정도로 꾸몄다. 그래서 방을 탐색한 후 이상인의 돈과 전자제품을 털어간 바 있었다.

이를 모르는 이상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도둑이 들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 * *

“뭐라고요? 다시 말씀해 보세요.”

이부광이 말했다.

“하산해요. 우리 클럽으로 영입하면 좋겠습니다.”

양궁 클럽 회장이 반발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클럽 규칙 모르는 겁니까? 선수 출신 아니면 실업팀 정도는 돼야 받기로 한 거?”

“선수 출신보다 더 잘 쏠 거라고 확신합니다. 재능이 미쳤거든요.”

“근거는요?”

“송 대표 영업장 아시죠?”

“알죠.”

“거기서 하산해가 활 쏘는 거 봤습니다. 실력 장난 아닙니다.”

그의 설명에 양궁 클럽 회장이 픽 웃었다.

“고작 십여 미터 정도에서 재미로 활 쏘는 거 보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것도 국궁이잖아요.”

“재미 수준이 아니에요. 일단 한번 보시면 이해 가실 겁니다.”

그의 강력한 주장에 클럽 회장은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다른 의도인 줄 알았더니, 정말 실력을 보고 저러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음…… 알겠습니다. 이렇게 극찬하시니까 궁금해지네요. 우리 자주 가는 양궁장에서 한번 보자고 해 보세요. 테스트해 보게요.”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하산해 씨한테 클럽 가입 제의하긴 했는데, 아직 확답은 못 받았거든요. 회장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라…….”

그 말에 조금 기분이 나빠진 클럽 회장이 물었다.

“벌써 가입을 제의했어요?”

“네. 워낙 실력이 출중해 보여서…….”

“하산해고 뭐고, 무턱대고 가입은 안 됩니다. 실력을 검증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이부광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보고 놀라지나 마세요.

한편, 송문석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며 연신 감탄했다. 흔들림 없는 자세로 연사를 날리는 하산해는 밥 먹고 활만 쏘던 사람 같았다.

절대 처음 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벌써 짧은 영상을 스무 번 이상 돌려본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영상을 자신이 운영하는 국궁 관련 영상 채널에 올리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한번 물어보기나 할까?

그나저나 눈이 왜 이리 침침해. 이놈의 노안.

그때, 출입구 문이 열리며 하산해가 등장했다.

“어서 오…… 어? 오셨네요?”

“네, 안녕하세요?”

그 후 산하는 잠시 활을 쏘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송문석은 그런 산하에게 인사하며 넌지시 물었다.

“저기, 잠깐만요.”

“네, 하실 말씀 있으세요?”

“네, 저번에 하산해 씨 활 쏘시던 모습 말입니다. CCTV 영상 녹화된 게 있는데, 혹시 제 영상 채널에 올려도 될까요? 아! 오해는 마세요. 활 솜씨가 너무 멋져서 국궁을 알리는 용으로 쓰려는 거니까요.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영상이요? 저도 한번 보고 판단해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이윽고 송문석은 연사 장면을 잘라놓은 영상을 보여 주었고, 산하는 자신의 뒷모습만 나오자 흔쾌히 허락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산하가 사라지자마자 예스를 외친 송문석은 영상을 한 번 더 돌려보았다. 와, 또 봐도 죽인단 말이야.

편집 잘해 달라고 해야지.

그는 곧바로 영상편집자에게 연락했다.

같은 시각.

영상편집자로 일하는 사내는 통화를 종료했다.

감시카메라 영상이라고?

송문석으로부터 잘 좀 편집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는 해당 영상을 살펴보았다. 한 사내가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가만히 살펴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뒤돌아 서 있는 사내가 어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속도로 화살을 날리고 있어서였다.

심지어 멋으로 날리는 게 아니라, 과녁에 백발백중했다.

와, 미쳤다.

저 사람 뭐야?

장난 아닌데?

그가 처음 송문석의 영상을 편집할 때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한데 편집을 하면 할수록 국궁에 관심이 생겨서 배워 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참에 이 영상을 보자 침을 꿀꺽 삼켰다.

멋지다.

국궁이 저 정도가 된단 말이지?

나도 한번 배워 봐?

아, 몰라. 일단 편집부터 하고.

* * *

송문석의 국궁 정보 채널<활송송>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조상님도 울고 갔다, 연사의 달인!>

이 채널은 대중이 국궁에 흥미를 느끼도록 나름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했다. 하지만 다들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방문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데 일부 단골 방문자들의 반응이 평소와 달리 소란스러웠다.

- 와, 제목 어그로 아니었네?

- 저게 손님이라고? 말이 되나.

- 미쳤다. 활을 어떻게 저렇게 쏴?

- 속도며, 정확도며. 사람 맞나.

- 영화 보는 줄 알았네.

- 영화보다 더 리얼한데요?

- 활 기계네. 활 기계야.

- 저 사람 밑에서 배우고 싶다.

한편, 오늘도 짬을 내서 영상 채널에 입성한 국궁협회장은 이 영상 제목을 보고 픽 웃었다.

하여간에 궁금하게 말이야.

제목 하나는 잘 뽑아요.

어디 한번 볼까?

그는 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하며 제목을 클릭했다. 이윽고 재생된 영상에 그는 누구보다 화들짝 놀라 버렸다.

이런 연사는 허구적인 영상에서나 봤지, 실제로 저렇게 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라서였다.

누가 가르쳐 줘도 못할 것 같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잔뜩 궁금해진 국궁협회장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송문석의 국궁 실내 활터 대표번호로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에 깜짝 놀란 송문석이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영광입니다. 저는 송문석이라고 합니다.”

허허 웃던 국궁협회장은 그와 잠깐의 담소를 나눴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한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는지……?”

“아, 정작 중요한 걸 깜빡했네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올리신 영상 말입니다. 손님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손님 맞습니까?”

- 326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