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그걸 왜 마셔요? (3)
에밀리아노가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욕실 문을 열고 나온 그의 와이프가 말을 걸었다.
“그건 뭐예요?”
“아, 이거? 이번 대회에 출품된 건데…….”
“그럼 술이에요?”
“맞아.”
“그걸 왜 들고 왔어요? 집에서 마시려고요?”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 딸 주려고.”
그의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어느새 무관심해져 고개를 돌린 딸을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미쳤어요? 당신 제정신이에요?”
“아니, 내 말 좀 들어 봐. 이 술이 독하지는 않은데, 신맛이 굉장해. 그래서…….”
“그러니까. 고작 신맛 때문에 그걸 우리 딸에게 먹이려고 했다는 거예요?”
“맞아.”
그의 애타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식초를 먹어도 제대로 못 느낀다는 거 잊었어요?”
“알지.”
“그런데 술을 먹인다고요? 에밀리아노, 제발 당신까지 날 힘들게 하지 말아요.”
“……미안해, 혹시나 해서. 우리 딸이 좋아할까 봐.”
그의 우울한 표정에,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해요. 당신한테 화낸 건 아니에요. 그저 상황이 그래서 그런 거죠. 미안해요.”
“알았어. 내가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아. 아, 그렇지. 다른 병원은 알아봤어?”
“병원 말고, 추천받은 민간요법 치료사가 있어요. 당신도 시간 되면 같이 가요.”
이젠 하다못해 민간요법에까지 손을 대다니.
침울한 표정을 짓던 에밀리아노가 한탄했다.
“이게 다 내 탓이야.”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 탓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에밀리아노는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딸 아이가 열 살이 조금 넘어가던 무렵이었다.
자신은 운전하는 중이었고, 딸은 보조석에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재잘거렸다.
그 순간, 다른 승용차 한 대가 보조석을 덮쳤다. 그 당시 에밀리아노는 경상이었지만, 딸은 제법 크게 다쳤었다.
이대로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은 잘 되었다.
그 후로는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미각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학교에 직접 데려다주겠다고만 안 했어도…….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욕하던 에밀리아노는 봉막걸리가 담긴 상자를 냉장고로 가져갔다.
넣어 놨다가 자신이 먹든가, 아니면 버릴 셈이었다.
이날 밤.
에밀리아노의 딸 이사벨라는 계단을 조용히 내려왔다. 목이 말라서 물이라도 마시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냉장고를 열었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봉막걸리.
아, 저건…….
낮에 아버지가 들고 온 술이었다.
그 술을 보자 몇 시간 전 일이 떠올랐다.
그녀도 귀가 있고 눈치가 있기에, 부모님이 무슨 대화를 했을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자신에 관한 얘기였을 것이다.
사고를 당한 후로 늘 그랬으니까.
밥을 조금 먹어도, 다른 이유로 인상을 찌푸려도, 부모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눈치를 보곤 했다.
그녀는 그 분위기가 싫었다.
특히, 늘 죄책감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싫었다.
분명 그날 사고는 우연일 뿐이었다.
밥을 잘 못 먹는 거야 원래도 그랬던 거고, 미각을 잃은 건 불운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그 내심을 슬쩍 비친 적도 있었다.
하나 아버지의 눈빛에는 늘 미안함과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힘들긴 했다.
미각이 살아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사라지고 난 후에야 알았다. 맛을 느낀다는 건 축복이라는 것을.
미각을 잃은 후로는 뭘 먹어도 덤덤했고, 딱히 어떤 음식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배가 무척이나 고파오면, 또는 식사 시간에 형식적으로 먹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일부러 식초를 먹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던가. 몇 년이나 변함없던 미각에 아주 미세한 신맛이 느껴졌다.
하나 그것도 잠시.
딱히 맛이 느껴진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자주 맛보던 식초도 끊은 지 오래였다.
그 후 부모님 몰래 술을 마셔 보기도 했다.
한데 취하기만 할 뿐, 술맛도 전혀 못 느꼈었다.
그 후로 절망했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몇 년을 살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신맛, 단맛, 쓴맛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간절한 요소였다.
원래 가지지 못했던 것이라면 모르되, 가지고 있던 것이 결핍되자 더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나아질 수 있을까?
언제면 내 미각이 돌아올까?
될 리가 없지…….
이젠 절망하다 못해 많은 것을 내려놓은 이사벨라.
그녀는 오늘 취하고 싶었다.
술을 마시고 현실을 잊은 채 푹 자기로 했다.
해서, 오늘 아버지가 가져온 술을 꺼냈다.
플라스틱병을 눈앞으로 들어 올려 이리저리 돌려보던 이사벨라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딸, 거기서 뭐 해?”
화들짝 놀란 그녀가 술병을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졸린 눈으로 서 있었다.
“저 때문에 깨셨어요? 물 좀 마시려고요.”
“아냐, 그냥 눈이 떠졌어. 얼른 마시고 가서 자렴.”
“네.”
그녀가 사라진 후, 이사벨라는 봉막걸리를 살며시 들고 2층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 한편에 가만히 앉아 술병을 노려보던 그녀는 뚜껑을 땄다. 미세한 소음과 함께 냄새가 퍼져 나갔다.
어머!
그녀는 훅 끼쳐오는 시큼한 냄새에 깜짝 놀랐다.
미각을 잃으며 후각도 희미해졌었는데, 이토록 강렬한 냄새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사벨라는 뜻밖의 기쁨에 춤이라도 출뻔했다.
남들에게는 별로인 냄새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가슴이 설렐 만큼 좋은 냄새였다.
설마, 나 후각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야?
그럼 미각도?
저번 병원 치료가 효과 있었나?
흥분한 그녀는 술병을 내려놓고 또 1층으로 내려갔다. 이내 그녀가 가져온 것은 강한 냄새를 자랑하는 것들이었다.
마늘, 후추, 커피 등등.
우선 마늘을 쪼개서 코에 대본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흐릿할 뿐인 마늘 냄새였다.
후추도,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돼.
그럼 뭐지?
그녀는 잔뜩 실망한 가운데,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봉막걸리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그 술의 냄새를 맡았다.
시큼한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착각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대체 왜 이것만 느껴지는 거지?
의문을 가지던 그녀는 술을 유리잔에 조심스레 따랐다. 하얀 우윳빛 액체가 찰랑거렸다.
잔을 들어 냄새를 맡고 관찰하던 그녀는 선 채로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아!
이사벨라는 놀라다 못해 얼어붙었고, 잔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강하디 강한 신맛이 그녀의 혀를 지배했다.
뒤이어 아이스크림과도 같은 진한 질감에 이어 고소함과 상큼함마저 느껴졌다.
누군가에겐 그저 신맛일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잠시나마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사벨라의 표정에 환희가 차올랐다.
맛이, 맛이 느껴져. 맛이!
그녀의 눈가에 습기가 차올랐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다양한 맛에 감동한 것이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험악한 표정을 한 채 골프채를 든 에밀리아노가 외쳤다.
“이사벨라, 괜찮니? 누구야!? 어떤 놈…… 응? 딸. 대체 무슨 일이야?”
눈가를 훔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빠, 나, 나 맛이 느껴져.”
“뭐!?”
“맛이, 맛이 느껴진다구.”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그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그게 진짜야? 그게 정말이야?”
“응, 느껴져.”
“언제부터.”
“저기 저거 마신 다음부터…….”
에밀리아노는 그녀가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이 낮에 들고 온 봉막걸리였다.
“술을 마셨어?”
찔끔한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그의 와이프가 뒤편에 나타났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딸, 괜찮니?”
다급히 묻던 그녀는 이사벨라의 방 내부를 훑어보았다. 바닥에 깨진 유리조각과 흩어진 우윳빛 액체, 눈물 흘리는 딸.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이사벨라,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말해 봐.”
대답은 그에게서 튀어나왔다.
“여보, 우리 딸이 맛을 느낀대.”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정말이에요? 진짜예요? 말해 봐, 이사벨라. 정말이니?”
“응, 엄마. 진짜야. 나 맛이 느껴져.”
잠시 후.
세 사람은 1층 식탁에 모여 앉았다. 다들 진지한 표정인 가운데, 에밀리아노가 서두를 열었다.
“그러니까, 이것만 맛이 느껴진다 이거지?”
“응, 아빠. 그것도 아주 진하게. 잘 느껴져요.”
“그럼 어떤 맛인지 말해 봐.”
“음, 처음에는 굉장히 시큼하고 독한 맛이다가, 나중에는 고소하기도 하고 상큼한 맛이에요.”
정답이었다.
에밀리아노는 흥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이구나.”
“네, 정말이에요. 대체 이 술은 뭐예요?”
덩달아 놀란 그의 와이프도 묻는다.
“이건 무슨 술이에요?”
“글세…… 대회 참가자가 남았다며 준다길래 받아 오긴 했는데…….”
말을 흐리던 에밀리아노는 딸의 기쁜 표정을 보며 산하를 떠올렸다.
어쩌면 이 술이 미각 회복의 단서일지도 몰라.
이 술, 대체 뭐가 들어간 걸까?
더 얻을 수 있을까?
* * *
대회 본부 사무실.
마르코는 정부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회 소식 잘 전해 듣고 있습니다. 다행으로 우리 이탈리아 와인이 1위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아직 세계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와인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대회 마무리까지 잘 준비해야 할 거예요.”
그의 이상한 뉘앙스에, 마르코가 묻는다.
“뭔가 다른 뜻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아마 그쪽도 잘 알 거예요. 앤더슨 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인 거.”
“알긴 압니다만.”
“그 앤더슨이 조만간 우리 이탈리아에 옵니다. 세계 술 대회 참관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이십니까?”
“그래요. 외교적으로는 마르코가 알 건 없지만, 세계적으로 우리 축제를 알릴 기회라는 건 알겠죠? 더불어 이탈리아 와인 홍보 효과도 지대할 겁니다. 그러니 잘 준비하세요.”
“물론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죠.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방문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요. 대회 종료를 이틀 정도 미루도록 하세요. 가능하겠죠?”
“물론입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참가자들에게 숙식비 등의 금전적 혜택을 주면 별말 없으리라.
그리 생각한 마르코는 잠시 후 통화를 종료했다.
좋았어.
미 대통령이 온다고?
이 기회는 제대로 잡아야겠군.
한편, 이번 대회 심사위원이자 소믈리에 페데리코 알론소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천상주라는 술이 1위가 아니라면, 내 혀가 잘못되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어.
그때, 그와 이번에 말을 트게 된 심사위원 몇 명이 카페에 나타났다.
“여깁니다.”
이내 마주 앉은 네 사람이 토론을 시작했다.
“전 이번 대회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쪽도 그렇습니까?”
“그쪽도?”
“저도 그렇습니다.”
의견이 일치한 네 사람은 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살폈다.
그때, 페데리코가 입을 열었다.
“혹시 천상주 때문인가요?”
“맞아요.”
“저도.”
“저도요.”
“역시 그렇군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모두가 동조하자, 페데리코는 힘이 나는 걸 느꼈다.
“그 독보적인 술이, 2위일 리가 없죠. 전 제 혀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 평가 점수를 어떻게 줬는지 슬쩍 얘기해 볼까요?”
그 후 한참이나 얘기를 주고받던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 운영에 수상한 냄새가 가득 풍겼다.
“느낌이지만, 대회에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페데리코의 발언에 다른 심사위원이 한탄하듯 말했다.
“그런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명확한 증거도 없고, 심증뿐인데.”
“뭐라도 해 봐야죠.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다른 심사위원도 끌어들이는 건 어떨까요? 각자 자기가 준 점수를 합해 보는 거죠. 그럼 조직위에서 공개한 점수와 비교하자마자 가짜인 게 들통날 겁니다.”
페데리코가 답했다.
“그거 쉽지 않을 겁니다. 여러 심사위원에게 말해 봤는데, 동조한 건 여기 오신 세 분뿐이니까요.”
“저런, 음…….”
“항의 방문이라도 해 볼까요?”
“그건 제가 해 봤는데, 씨알도 안 먹혔습니다. 오히려 면박만 당하고 쫓겨났어요. 조직위원장 그 사람, 보통이 아닙니다.”
“그럼 항의 서한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우리가 기고하는 잡지에 칼럼을 싣는 겁니다.”
“항의 서한도 본체만체할 것 같은데요. 증거도 없이 잡지에서 실어 줄지도 의문이고.”
“기자와 인터뷰하는 건 어떤가요?”
“그것도 잡지와 마찬가지군요.”
그들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토론했지만, 좋은 방법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 * *
에밀리아노는 생각이 병적으로 많고 유약한 사람이었다. 하나의 걱정이 꼬리를 물면 밤새도록 뒤척이곤 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다.
그의 이번 걱정은 봉막걸리였다.
딸을 고칠 힌트를 찾기 위해선 봉막걸리가 더 필요했다. 해서 박산하라는 참가자에게 부탁해보려 했지만, 선뜻 그러지를 못했다.
대회 비리 때문이었다.
돈이 급해서 마르코의 제안을 수락하긴 했었지만,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결론일까.
설마 점수 조작이 밝혀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주려다가도 못 주겠다고 하면…….
아냐, 대회는 조용히 종료될 가능성이 높아.
그냥 부탁해 봐야겠어.
특별한 재료로 뭘 넣었는지도 물어보고.
그런데 그 참가자에게 난 뭘 줘야 하지?
돈이면 될까?
일단 만나 보는 게 좋겠지?
한쪽 손에 머리를 기댄 채 고민하던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대회 마무리를 위해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다.
한참 후.
대회장에 출근한 그는 외부 심사위원 몇 명이 모여 대화하는 곁을 지나쳤다.
“정말 수상하긴 하네요.”
“기자들이 매수당했는지, 믿어주지를 않아요.”
“실어 주지도 않으려는 눈치더군요.”
“더 좋은 방법 없을까요? 이건 심사위원 이전에, 우리 소믈리에의 자존심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흠칫한 그는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다들, 의심하고 있잖아.
이런, 어쩌면 좋지?
이날 오후, 산하가 머무는 호텔.
에밀리아노는 산하와 약속을 잡았고, 1층 카페에서 그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대회 참가자이자 봉막걸리를 선물해 준 동양인 사내가 나타났다.
“여깁니다.”
산하는 손을 든 사내에게로 다가가 영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서 앉으세요. 뜬금없으시죠?”
“뭐, 그 정도는 아닌데, 궁금하긴 하네요.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어요?”
산하는 미션과 관련된 사내가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여기서 연계 미션이라도 더 나오는 건 아닐까 기대하며.
그때, 에밀리아노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 말해도 되는 걸까?
아냐, 벌써부터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
미리 말해 두는 게 좋아.
대회 비리가 밝혀지고 나면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나도 그 비리의 일원인 걸 알게 되면, 이 사람이 봉막걸리를 줄 리가 없지.
주다가도 끊어 버릴 게 분명해.
만약 재료가 특정 성분이라면, 저 사람 고유의 것이라면, 더 힘들어지겠지.
그래, 미친놈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진심으로 말해 보자.
양심고백을 하는 거야. 그럼 봐줄지도 몰라.
에밀리아노는 단지 딸을 치료하기 위해 사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깊숙한 그 내면의 진실은 달랐다.
양심에 찔려 항상 괴로우니, 피해자 중 하나인 참가자에게 사죄하고 싶어 했다고나 할까.
그는 자신조차도 고백의 이유를 명확히 모른 채, 더 깊이 고민했다.
뭐부터 말해야 할까?
나의 사정에 대해서?
아니면 대회의 진실?
그래, 꼭 동정표를 사려는 것 같으니, 진실부터 말하는 게 좋겠어.
입술을 깨물던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뜸을 들이던 에밀리아노가 진실을 토해냈다.
“사실, 이번 대회에는 비리가 있습니다.”
술을 더 달라거나 할 줄 알았던 산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심사위원들이 매수됐고, 점수는 조작됐다는 얘깁니다. 현재 이탈리아 와인이 1위지만, 아마 산하 씨가 1위일 겁니다. 저도 시키는 대로 했던 것뿐이라 자세한 건 모르지만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오던 산하는 딱히 놀라거나 흥분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분이 조금 안 좋을 뿐이었다.
“놀라지 않으십니까?”
“놀랍다기보다, 뜻밖이네요. 그 얘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숨기시면 될 텐데요. 아니면 기자에게 제보하시거나.”
“사실, 이기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이기적이라면……?”
에밀리아노는 자신의 현재 사정을 비롯해 딸의 상태를 한참이나 털어놓았고, 산하는 이래서 미션이 떴나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한테 미리 용서를 구하고, 봉막걸리를 더 원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조작에 가담한 1인으로,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 막걸리를…….”
산하는 그의 모든 고백보다도, 막걸리의 효능에 무척이나 놀랐다.
첫맛은 독한 데다, 밥맛이 좋아진다길래 황당하기만 했었다.
한데, 잃어버린 미각에 맛을 불어넣어 주다니.
그가 생각하는 모습을 오해한 에밀리아노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기자들 앞에 서겠습니다.”
생각에서 벗어난 산하가 에밀리아노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글쎄요. 그건 심사위원님 양심에 맡기겠습니다.”
어딘가 부정적인 그의 대답에 에밀리아노가 울듯 말듯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럼, 그 술은……?”
“남은 술은 그게 전부였어요. 필요하다면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하지만, 주실 수는 있는 건가요?”
“그건 심사위원님 행동하시는 거 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씀은?”
“드릴 수도 있다는 얘기죠.”
알아서 행동으로 보이라 이건가?
음…….
정말 기자 앞에 서야 하는 건가?
에밀리아노는 이 사실을 가족이 알게 되면 어찌 생각할까 걱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제일 궁금한 사항을 떠올렸다.
“실례지만, 혹시, 그 술에 특별한 성분이라도 들어가는 겁니까?”
“아니요. 그저 평범한 재료입니다.”
“아…….”
그의 실망한 모습을 바라보던 산하는 대회에 관해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화나네.
일부러 시간 내서 참가했더니만.
대회가 점수 조작으로 뒤덮여 있다니.
어이가 없어서 정말.
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미션 - 대회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라.]
[보상 - 박산하의 솜씨 80%가 적용된 봉막걸리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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