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33화 (333/445)

333화 변수 (1)

산하는 미션을 대충 훑어보고 생각에 잠겼다. 이번 대회 결과는 자신뿐만 아니라 재능을 전해 준 분들의 자존심 문제였다.

안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던 참에 잘되었다 싶었다.

미션이 말한 진실을 밝히는 걸 뛰어넘어, 이 대회의 권위를 박살 내버리기로 했다.

다시는 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밝히지?

“저기,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떠나는 그를 가볍게 배웅한 산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창 너머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에밀리아노가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백을 하면 기분 나빠서라도 술 같은 건 안 줄 텐데.

무슨 생각으로 말한 걸까?

차라리 모른 척 부탁했으면 한두 번이라도 더 줬을지도 모르는데.

어딘가 순진한 사람 같기도 하고.

일단은 저 사람이 행동하는 걸 지켜보고 난 다음에 움직여도 안 늦겠어.

대체 언제 움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해 질 무렵.

에밀리아노는 기자를 찾아갈까 하다가 관두었다. 누가 깨끗한 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라는 걸 자각한 그는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이탈리아 술 대회 포럼 하나가 생성되어 있었다.

글쓰기를 눌렀다가 취소하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한숨을 내쉰 그는 자신을 욕했다.

힘을 내, 힘을 내라고.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날 때부터 겁이 많았던 그는 다 자라 결혼까지 한 지금도 나약한 자신이 한심했다.

아무리 돈이 급했어도 그렇지. 마르코의 제안을 덥석 수락하고, 또 이 지경까지 왔다는 게 괴로웠다.

할 수 있어.

떨리는 손으로 다시 글쓰기를 누른 그는 이를 악물고 대회의 진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는 에밀리아노 그로소라고 합니다. 제가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부터 먼저 밝히겠습니다. 이번 이탈리아 술 대회는 부정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모두 무슨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저는 그곳의 심사위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전 매수당했습니다. 반성하는 의미로 이곳에 정확한 진실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 대회의 조직위원회……>

에밀리아노는 심경이 복잡하다 보니 조금은 두서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자신이 매수당한 경위부터 대회의 점수가 어떤 식으로 조작되었는지에 관해.

대회 조직위 관계자이자 마르코의 오른팔이 이 글에 관한 소식을 접했고, 사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그의 다급한 외침에도 마르코는 느긋하기만 했다.

“아직 퇴근 안 했어요? 난 막 하려던 참인데.”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닙니다.”

“이거 불안하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겁쟁이, 에밀리아노 그로소 아시죠?”

“알죠. 그 사람이 왜요?”

“그 사람이 사고를 쳤습니다.”

“사고? 그 사람이?”

마르코는 거하게 튀어나온 배를 들썩거리며 마구 웃어댔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정보였다.

에밀리아노는 사고 칠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보세요. 뭐라고요?”

“에밀리아노 그로소가 사고를 쳤습니다.”

“대체 무슨 사고인가요? 지나가던 개를 발로 걷어차기라도 했나요?”

“지금 그렇게 농담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제야 의자를 당겨 앉은 마르코가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인터넷상에서, 이번 대회 순위가 조작되었다는 걸 밝혔습니다.”

“뭐, 뭐라고요?”

이 사실에는 마르코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폭로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밝힐 때 밝히더라도, 요즘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외부 심사위원 패거리에서 뭔가 할 줄 알았는데.

“현재 인터넷 게시판이 떠들썩합니다. 더 늦기 전에 수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르코는 화가 난 나머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게 말이 됩니까? 겁쟁이 에밀리아노가 사고를 쳐요? 그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일 위인이?”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만, 분명 자신을 에밀리아노 그로소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디 그 게시글 좀 봅시다. 직접 봐야겠어요.”

이윽고 그는 에밀리아노가 써 내려간 장문의 글을 살펴보았고, 허탈하리만치 허허 웃었다.

“역시 사람이란 예측 불가로군요. 이 사람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돌발 변수가 돼 버리다니. 약점이라도 하나쯤 잡을 걸 그랬네요.”

“뭔가 방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이리저리 소문을 내고 다니는 페데리코 알론소 패거리 몇 명, 그들의 이야기는 마르코의 귀에도 들어간 참이었다.

해서, 그는 대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웃기군.

갑자기 튀어나온 에밀리아노에게 써먹게 생기다니.

뭐, 나쁘지 않아.

스토리만 조금 바꾸면 되겠어.

다시금 느긋해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나는 억울하다고 말할 겁니다. 이 대회를 위해 밤잠도 안 자가며 뛰어다녔다고 할 거예요. 그래도 다들 의심할 가능성은 있겠죠? 그때, 에밀리아노의 동료나 마찬가지인 심사위원이 앞다투어 입을 엽니다. 뭐라고 할까요?”

“설마…….”

“맞습니다. 에밀리아노는 대회 심사위원으로서 낙제점이다. 업무에 태만했으며, 심지어 술을 마시고 심사를 본 적도 있다. 그에 화가 난 마르코가 뭐라고 하자 앙심을 품었고, 오늘의 결과에 이르렀다. 동시다발적인 동료들의 폭로, 어때요? 시나리오가 꽤 괜찮지 않아요?”

“믿어 줄까요?”

“그 의심하는 버릇부터 고치도록 해요. 자신부터 속여야 남도 속일 수 있는 겁니다. 이게 진실이라고 믿고 기자회견 준비하세요. 내일 이른 오전 정도가 좋겠어요. 그래야 고민한 느낌이 날 거 아닙니까?”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가 빠져나간 후, 마르코는 느긋한 태도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서랍에서 고급 시가 하나를 꺼내고, 커팅 후 불을 붙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시가 끄트머리의 불이 잠잠해지던 그때, 마르코가 연기를 뿜어내며 피식 웃었다.

에밀리아노 그로소, 뜻밖이군.

실수한 거야.

아니지, 바보짓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사건을 스쳐 지나갈 헤프닝 정도로 여긴 그는 맛있게 시가를 피웠다.

그 시각.

외부 심사위원 페데리코 알론소도 폭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힘을 보탤까 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뛰어들기보다, 대회 조직위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고 움직이는 게 나을 성싶었다.

겪어 보니, 마르코라는 자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 * *

마르코의 인터뷰 기사가 오전 뉴스를 장식하던 무렵이었다.

에밀리아노는 자택 마당으로 들이닥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밤새도록 뒤척였던 그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했다.

무서워서 뉴스는 감히 볼 생각도 못 했다.

그저 당황하는 가족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간단하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세상에, 당신이 그런 짓을 했다고요?”

“아빠…… 대체 왜?”

“미안해. 일단 나가 봐야겠어. 이미 시작된 일이니까, 끝을 봐야 할 것 같아.”

그때, 이사벨라가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것이다.

“아빠, 난 아빠 믿어요.”

대체 뭘 믿는다는 건지. 에밀리아노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어 주고 자택 앞으로 나아갔다.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에밀리아노 씨, 대회 조직위 수장 마르코 씨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현재 심사위 동료들의 주장이 하나같이 일치하는데요. 뭐라고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거짓을 공개된 장소에 올리신 이유가 정확히 뭡니까? 그게 사실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했나요?”

개떼같이 몰려든 그들은 에밀리아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퍼부었다.

그에 놀란 겁쟁이 에밀리아노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을 더듬었다.

“뭐,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한편, 산하는 이와 관련된 뉴스를 가이드를 통해 전해 들었다. 정말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 내용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회 조직위원장 마르코 산체스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밤 심사위원 에밀리아노 그로소씨의 폭로 사실을 전해 듣고 굉장히 놀랐으며 슬펐습니다.

이 대회의 취지는 단순한 술이 아닌, 자신의 영혼을 담아 만드는 주조 실력을 겨루는 장입니다.

많은 장인이 세계에서 몰려들었고, 뛰어난 소믈리에분들도 심사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에 부응하기 위해 잠까지 줄였습니다.

저도 술을 만드는 한 사람이기에, 그 마음을 깊이 공감해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한데, 이런 오해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단지 저의 죄라면, 에밀리아노 그로소 씨에게 심사위원 역할을 똑바로 하라고 한 죄밖에 없습니다.

에밀리아노 그로소 씨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제발 그 분란 행위를 멈춰 주세요. 모두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 대회를 망치지 말아 주세요.>

언론플레이가 정말 저질이군.

에밀리아노의 과거를 살짝 들여다보았던 산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거짓말은 마르코라는 인간이 하고 있었다.

이 뉴스 기사를 함께 들여다보던 상익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좋다 말았네요.”

그에 새봄도 동조했다.

“저도요.”

“좋다 말긴, 에밀리아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거야?”

상익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지만, 이대로 묻힐 분위기잖아요. 천상주는 2위로 끝이고요.”

“글쎄, 과연 그럴까?”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거라 이거지.”

“하긴, 시간 좀 더 지나면 그럴 거 같아요. 워낙 대단한 술이잖아요. 다시 생각해도 천상주가 2위인 건 정말 황당하네요. 샴페인 로베르도 그렇고. 봉막걸리는 제외.”

산하는 곧장 상익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강상익. 뭐가 어쩌고 저째? 봉막걸리는 제외?”

“아아, 형. 아파요.”

“봉막걸리 장인을 농락한 죄, 달게 받아라.”

산하는 팔에 힘을 주었다.

“아아! 아파요. 형, 왜 이렇게 힘이 세요.”

“어떠냐? 이게 바로 분노한 자의 힘이다.”

남자친구를 바라보던 새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

산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저 거짓말쟁이를 어떻게 요리하지?

일단 논란에 불을 더 붙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마르코라는 인간이 대응하다가 뭔가 실수를 할지도 모르고.

그나저나, 폐막일에 미 대통령도 온다고 했지?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내 인지도가 이탈리아에서는 영 꽝이란 말이야. 꼭 필요할 때는 없네. 옆 나라를 조금 들쑤셔 봐야 하나.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산하는 상익에게 물었다.

“가이드님 언제 오신데?”

“곧 오실 거예요. 어디 가시려고요?”

“가긴 어딜 가? 글 써야지.”

“네?”

“뭘 그리 놀라? 글 하나 쓴다는데, 아무래도 에밀리아노 씨가 올린 커뮤니티가 좋겠지?”

산하 뭘 말하는지 깨달은 상익이 기겁했다.

“형, 그러다가 욕만 먹어요.”

“그럼 좋지. 여기 인지도도 꽝인데, 조금이라도 시선 집중해 줄 거 아니야?”

“무슨 생각인데요?”

“간 좀 보려고.”

“???”

잠시 후, 산하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 글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이번 대회에 참가한, 참가번호 1,027번 박산하라고 합니다.

이번 대회는 꽤 기대를 해 왔습니다. 제가 정성 들여 만든 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순간이었죠.

한데, 실망했습니다. 뭔가 대회 운영에 문제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 와중에 한 분의 심사위원이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섰습니다.

저는 심사위원 에밀리아노 그로소 씨를 믿습니다. 여러분 과연 대회 조직위 말이 진실일까요?>

그가 불러주는 말을 이탈리아어로 대신 써 내려가던 가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이거 조금 위험한 발언 아닙니까? 정말 올리실 겁니까?”

“그럼요. 올려야죠.”

“그래도 조금 더 고민을…….”

산하는 마우스 왼편을 검지로 꾹 눌렀고, 글 작성은 완료되었다. 가이드에게서 헉하는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그는 씩 웃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날 비난할까요? 아니면 의구심을 품을까요? 아무래도 전자겠죠?”

그가 말하던 사이, 이탈리아 네티즌이 산하의 게시글에 와글와글 달려들기 시작했다.

- 이건 또 뭐 하는 놈이야?

- 이상한 놈이 진실이니 아니니 설쳐, 네가 뭔데?

- 이젠 별의별 인간이 다 여기로 오네.

- 외국인이 여기까지 납셨네.

- 거짓말쟁이 투톱이네.

- 마르코가 그 많은 심사위원을 다 매수했다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마르코가 신신당부했을 텐데, 제발 이 대회 망치려는 행위를 멈춰 달라고. 자꾸 이러면 가만 안 있겠다고.

- 이제야 우리 지역 축제가 활성화되려고 하는데. 별의별 바퀴벌레들이 다 끼어드네.

네티즌은 대체로 마르코를 믿는 분위기였다. 인종 차별성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의구심을 가지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를 지켜본 산하는 피식 웃었다.

“형, 보세요. 아무 효과 없잖아요. 괜히 형 욕만 얻어먹고. 어쩌려고 그래요?”

“어쩌긴 낱낱이 밝혀야지. 이런 대회는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나아.”

“지금 상황으로는, 그건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그 순간, 산하는 과거 참가했던 요리 대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불가능해 보여도 끝까지 해 봐야지. 난 이런 거 정말 싫거든.”

* * *

시간은 더 흘렀고, 대회 폐막일이 되었다.

미 대통령이 이번 이탈리아 축제를 방문하는 날이 되었고, 대회 조직위에 속한 직원들은 바삐 뛰어다니느라 정신없었다.

그 가운데 에밀리아노의 대회 조작 선언과 산하의 발언은 네티즌 사이에서 욕만 먹었다. 모든 게 이번 대회에 스크래치 내려는 거짓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산하는 마지막 날의 행사에 참석했다. 바로 언론과 대중에게 수상한 술을 공개하는 순서였다.

그는 참가번호까지 공개해가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바 있었고, 대회 조직위에서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자리 배치를 저 끄트머리에 해 두었다.

조직위에서는 이에 관해 변명했다.

대회 마무리만이라도 순위를 매기지 않고 화합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무작위로 배치했다나.

하나, 순서 자체가 어이없었다.

이탈리아 와인을 출품하고 1위를 차지했다는 참가자가 맨 앞에 있었고, 그다음도 이탈리아인이거나, 이 대회에 조용히 참가했던 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식적으로 최고 2위를 달성했지만, 제일 끄트머리 구석에 처박힌 산하는 하하 웃었다.

“형, 웃음이 나와요? 이런 취급 받는데.”

“웃어, 인마. 무슨 세상 다 끝난 사람처럼 굴어? 나 박산하. 아직 안 죽었어.”

“네, 저도 형이 박산하인 건 알고요. 결과는 말짱 꽝이잖아요. 신중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이제 형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게 분명하네요.”

“너 지금 잔소리하냐?”

“아뇨. 잔소리가 아니라, 형이 괜히 욕먹으니까 제 기분이 별로여서요.”

“캬, 우리 상익이 매니저 다 됐네. 짜식이, 걱정 마. 방법 찾아보고 있으니까. 여차하면 독일이랑 프랑스 언론에도 제보할 거야.”

상익이 눈을 반짝였다.

“오, 형 그건 도움 좀 되겠는데요?”

“그래?”

“네, 형 거기서는 인지도가 미쳤잖아요.”

“미치긴 뭘 미쳐, 어? 시작한다. 와, 앤더슨 대통령을 코앞에서 보겠네.”

“형은 못 볼 거 같은데요?”

“이 자식이,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부정적이 아니라 현실적이요. 우리 위치가, 그냥 구석 꿔다놓은 보릿자루잖아요. 보통 저런 고위 관계자들은 앞에만 슬쩍 둘러보고 가니까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뭐야. 내가 오게 만들 거야. 미 대통령이랑 같이 얼굴 좀 팔려야, 뭐라도 더 해 보지.”

산하는 자신 있게 말하더니, 도자기 병뚜껑을 열었다. 천상주 특유의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병 입구에 대고 손부채질까지 했다.

“형, 이 술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런다고 올까요?”

“안 오면 말고. 그땐 다른 방법 찾으면 되지. 뭐든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한 거니까.”

“……전 다른 건 모르겠고, 형 자신감 하나는 높이 삽니다.”

그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산하가 상익을 노려보았다.

“어쭈?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

그때, 행사장 저편이 시끌시끌해지며 앤더슨 미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수행원을 뒤로한 채, 이곳 대회 조직위원장 마르코를 비롯해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와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이번 대회 1위를 차지한 참가자입니다.”

“오, 반가워요.”

술 애호가이자, 천상주에 푹 빠진 앤더슨은 눈을 반짝였다. 1위를 차지했다는 참가자와 악수를 나누면서도 와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걸 눈치챈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가 마르코에게 눈치를 주었다. 마르코가 얼른 앤더슨에게 제안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

앤더슨, 맛있게 마시라고.

근사하게 찍혀서 홍보대사 좀 해 줘야지.

이번 대회 끝나고 나면 수출이 얼마나 늘어나려나.

매출을 상상하던 마르코가 속으로 웃음 지을 때였다. 앤더슨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거 좋죠. 1위라니, 얼마나 대단한 술일지 가늠이 안 되는군요?”

이윽고 앤더슨 대통령은 와인을 마시고자 잔을 들어 올렸다.

이번 취재에 참여한 기자들 중에는 해외 특파원도 있었는데, 그들은 앤더슨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엔더슨 대통령이 코를 벌름거렸다.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그립고, 매일 마시고 싶으며, 요즘 제대로 못 마셔서 화가 나는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눈을 번쩍 뜬 앤더슨 대통령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 이건 코리아 헤븐?

- 33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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