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밥맛이 좋아져요 (4)
응?
이게 맛이 가 버렸나?
그는 흐릿한 눈으로 막걸리 생산 일자를 살펴봤다. 그러나, 숫자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곧장 방으로 들어간 그는 돋보기안경을 가져왔다.
어디 보자.
에잉?
생산 일자는 최근이었다.
한데, 왜 이럴꼬?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생산이나 유통에 문제가 있었던 거라고 여겼다.
이런, 간만에 막걸리 맛이나 조금 보려고 했더니…….
조태훈은 찡그린 표정으로 봉막걸리를 내려놓고 뚜껑을 도로 닫았다.
그때, 조태훈의 딸이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서 가져왔다.
“아버지, 웬일이세요?”
“뭐가 말이냐?”
“제가 뭐라고 해도 먼저 드실 줄 알았더니, 이제 말 잘 들으시네요?”
“어허, 애비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오늘따라 제 말 잘 들어주시니까 그러죠.”
“그게 아니라. 막걸리가 가 버렸어.”
“네? 가요?”
“그려, 막걸리 냄새 좀 맡아 봐.”
그녀는 곧장 막걸리 냄새부터 맡아 보았다. 시큼한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머, 이거 왜 이래요? 뭐 이런 걸 팔아. 아버지 당장 바꿔 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됐다. 둬라.”
“왜요?”
“마침 나무도 시들시들하니, 거름으로 쓰면 되겠구나.”
“그래도 돈 주고 사 온 건데, 바꿔야죠. 어차피 또 드실 거잖아요.”
“됐다니까, 막걸리도 됐으니까, 가서 정서방이나 도와줘.”
“왜요? 막걸리 노래를 부르시더니. 제가 잘못 사 와서 그러세요?”
“아니다. 졸려서 그런게야. 한숨 자야겠다.”
“아…… 진작 말씀하시지. 얼른 이부자리 봐 드릴게요.”
“그려.”
기운 없이 앉아 있던 조태훈은 돋보기안경을 벗었다. 침침한 시야에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마누라, 우리 같이 심었던 소나무가 벌써 저리 자랐구려.
세월 참 빠르기도 하지.
한데, 왜 저리 상태가 좋지 않을꼬.
내 갈 날이 머지않은 모양인가 보오.
소나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조태훈은 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아빠, 뭘 그렇게 보세요?”
“아니다. 어여 가 봐.”
“네, 아빠. 이따가 저녁 때 올게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전화하시고요. 몸도 편찮으신데 어디 멀리 나가지 마시고. 그리고…….”
“아이고, 잔소리 그만하고 어여 가.”
“알겠어요. 주무시는 것만 보고 갈게요.”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려던 조태훈은, 딸의 걱정스러운 눈초리에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일어 잠시 주춤했다.
병 때문인지, 한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인지, 아니면 병상에 오래 누워 있었던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 괜찮아요? 병원 도로 갈까요?”
“호들갑은, 별일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부축했고, 조태훈은 못 이기는 척 딸의 배려를 받아 주었다.
잠시 후.
그녀는 고된 표정으로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빠 건강하셔야 하는데.
평생 고생만 하시고.
요즘 들어 눈물이 많아진 그녀는 촉촉해진 눈가를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빠, 저녁에 올게요.
그로부터 몇 시간이 더 흘렀다.
조태훈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기운 없는 눈동자로 방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끙 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킨 조태훈이 화장실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오냐, 애비다.”
“아빠, 죄송해요. 금방 갈게요. 갑자기 손님이 밀어닥쳐서요. 배 많이 고프시죠?”
“일 없다.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신경 쓰지 마라.”
“일 없기는요. 금방 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아파 드러누우니 자식 신세만 지누나.
신세 한탄하던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한 번의 현기증이 찾아들었다.
허기진 걸 보니 밥을 자주 굶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입맛은 영 없었다. 딱히 뭔가를 먹고 싶지 않았다.
그저 시원한 막걸리나 한 사발 했으면 싶었다.
요 앞 슈퍼라도 가 볼까.
고민하던 그는 방문을 열고 나섰다.
거실 불을 켜자, 그의 시야에 봉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딸이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 두고, 개봉한 막걸리는 거실 구석에 놓아 두고 간 것이다.
그려, 저게 있었지. 설마 다른 것도 상했으려고.
이내 조태훈은 냉장고를 열어 막걸리를 꺼냈다. 하나, 뚜껑을 딴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도 상한 게야?
어디.
그는 다른 것도 뚜껑을 열어 보았다. 하나같이 똑같은 냄새가 피어올랐다.
에잉.
가만…….
저건 뭐야.
돋보기안경을 가져온 그는 막걸리 라벨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낮에는 미처 못 보았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봉막걸리 고유의 특성으로, 신맛과 냄새가 강합니다.>
그 아래로는 상한 것과 구분되는 점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잉?
신맛?
원래 이런 상품인겨?
허…… 이런 놈은 또 처음 보는구만.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드나 그래.
이런 게 팔리기나 하겄어?
고민하던 조태훈은 막걸리를 살짝 맛보았다. 강렬한 신맛이 그의 혀를 마비시켰다.
이, 이이…… 고얀. 이걸 사람 먹으라고…… 에잉?
조태훈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신맛도 잠깐이었고, 깊고 진한 막걸리 맛이 입에 착착 감겼다.
허?
몇 모금을 더 마신 조태훈이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로구나.
기뻐하던 조태훈은 그릇 하나를 들고 왔고, 신나게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리고 한 병을 더 마시려던 참이었다.
현관문이 열렸고, 딸의 비명과도 같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그걸 왜 드시고 계세요? 어머! 냄새야. 어떡해.”
“거참, 왜 이리 호들갑이야. 먹을 만해서 먹었다.”
“네?”
“여기 보아라. 원래 냄새가 이렇다는구나.”
그녀의 놀랐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래요? 그런 막걸리도 있어요?”
그제야 아버지에게 다가온 그녀도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제품이네요.”
“맛은 좋구나.”
“그래도 그렇지. 저녁부터 술 드시면 어떡해요? 오늘 끼니도 거르셨으면서. 얼른 진지 차려 드릴게요.”
그 후 조태훈은 딸이 차려 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오전.
조태훈은 남은 봉막걸리를 또 마시기 시작했다. 알딸딸하게 취한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좋구나.
이게 사는 맛이지.
병원에 누워 하루 이틀 죽을 날만 기다리느니, 이리 살련다.
그때, 조태훈은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가 먹고 싶었다.
응?
입맛이 돌아오려나?
그때였다.
하루 두 끼를 걸러도 허기짐 정도였던 내장이 마구 요동쳤다. 방금 막걸리를 거하게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허이구야…… 이놈이 미쳤나.”
당황한 조태훈이 배를 문질렀다. 하나 여전히 꼬르륵 소리가 요란했고, 뭔가를 먹고 싶었다.
마치 십 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돌아서기만 하면 배고팠던 그때.
허기짐이 마구 밀려들었다.
그는 다급히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그곳에는 간단한 밑반찬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
그걸 우르르 꺼낸 그는 밥솥을 살펴보았다.
밥 따위는 없었다.
에이, 하필 이럴 때.
아, 그렇지.
병원 입원 전에 딸과 사위가 진지 거르지 마시라며 사다 준 즉석밥이 생각났다. 주방으로 이동한 그는 찬장을 열었다.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옳거니.
그는 전자레인지에 밥이 데워지자마자 따끈한 밥을 한술 떠먹었다.
늘 모래 씹는 것만 같았던 입맛이 돌아온 걸 느꼈다. 침이 절로 고였다.
어허, 이런 일이…….
역시 이놈의 몸뚱이도 집이 그리웠던 게야.
암, 그렇고말고.
신기해하던 조태훈이 거실로 돌아왔다.
반찬을 모두 개봉했고, 식탁 의자에 주저앉은 그는 며칠 내내 굶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그때, 그의 딸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에게 점심을 차려 드리러 온 것이다.
“아빠!?”
입가에 밥풀을 묻힌 조태훈이 고개를 들었다.
“응? 왔어?”
“지금 뭐 드시는 거예요?”
“보면 모르냐. 거봐라. 집에 오니 밥맛도 좋은걸.”
혀를 차던 그는 다시 밥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어느새 다 비워진 즉석밥을 옆으로 치운 그는 또 하나를 뜯었다.
놀라고 있던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또 드세요?”
“오냐.”
그녀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 * *
고상식은 대리 자리에 있다 보니 뭔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화가 났다. 편하게 지시 내리던 때에 비하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망할 대리 따위.
대체 언제 복귀시켜 주는 거야.
젠장!
그때, 그의 직속 상사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고상식 대리님, 퇴근 안 하십니까?”
고상식이 똥 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관 말고 가세요.”
“네, 그럼.”
직속 상사는 돌아서며 속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후계자고 뭐고, 왜 여기로 보내서 사람 불편하게 만들어.
얼른 가 버리면 좋겠네.
이제 모두가 퇴근하고 홀로 남은 사무실, 고상식은 포털 사이트에 은성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은성에서 새로운 술을 출시했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술 이름이 무려 밥맛 좋아지는 봉막걸리였다.
이런 사기꾼 새끼.
무슨 밥맛이 좋아져?
속으로 욕설을 내뱉던 그는 돌연 눈을 또르르 굴렸다.
가만, 이거 과장 광고 아니야?
이걸로 건드려 볼까?
오케이.
상식은 곧장 퇴근했고, 봉막걸리를 사서 뚜껑을 열었다. 뭐든 맛을 봐야 트집을 잡을 게 아닌가.
아니, 무슨 냄새가 이따위야?
그는 곧장 봉막걸리를 개수대에 콸콸 부어 버렸다.
인상을 찌푸리던 고상식이 눈을 부라렸다.
딱 걸렸어.
어디 엿 먹어 봐라.
고상식은 오래전 정의니 뭐니 지껄이던 말 따위는 기억 저편에 던져 놓은 지 오래였다.
무슨 짓을 해도 승승장구하는 박산하 때문에 조급해진 탓이었다.
이 비서한테 연락.
아, 젠장. 맞다.
이 비서의 전화번호는 고 회장의 지시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직장 밑단을 경험해 보라는 뜻이었다.
어쩌지, 그래 일단 남은 거라도…….
고상식은 할아버지 때문에 자산이 일시적으로 동결되며 움직일 수 있는 현금이 얼마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고가의 물건을 저당 잡힌 후 돈을 박박 긁어모았다.
도일그룹의 자손으로 살면 이 정도는 푼돈이라 할 수 있기에, 고상식은 돈을 쓰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 후, 대포폰을 이용해 어딘가로 의뢰를 넣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법인 은성 홈페이지 소비자 게시판에 수많은 항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도 비슷한 댓글이 올라왔다.
<이보세요. 밥맛 좋아지는 봉막걸리, 이거 과장 광고 아닙니까?>
<어이가 없어서, 안 그래도 밥맛 없는데 밥맛 떨어지게.>
<이거 술 상한 줄 알았네요. 막걸리가 왜 이래요?>
이 분위기에 휩쓸린 일반 소비자도 여기저기서 비슷한 댓글을 달았다.
한편, 이런 내용을 확인한 하동식이 산하에게 연락했다.
“야, 너 인터넷 확인했냐?”
“왜?”
“다들 항의하고 난리야. 냄새랑 맛도 그렇고, 개선하고 내놓자니까. 거봐, 이거 과장 광고라고 그러잖아.”
“뭐래, 과장 광고 아니라니까.”
“아니면? 난 밥맛에 변화 없던데?”
동식은 막걸리를 맛보기만 했지, 많이 먹지는 않았었다. 이를 떠올린 산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넌 원래 아무거나 잘 먹잖아. 그래서 그래.”
“뭐 인마?”
* * *
비슷한 시각, 천상주 팬 카페.
- 이거 출시 초반부터 말이 많네요. 냄새가 뭐 이러냐고.
- 그거 맞는 말 같긴 해요. 냄새가 너무 시큼하던데요? 은성 신제품이라길래 신나서 많이 사 왔는데, 이거 다 어쩌죠?
- 와, 아직 사 먹어 보진 않았는데, 하산해 신상 실망이네요.
- 어? 다들 버리실 거면 저 주세요. 이거 냄새랑 첫맛이 그래서 그렇지, 맛있는데.
- 맞아요. 앞의 고난만 참으시면, 맛은 아주 좋습니다.
- 어? 그래요? 전 상한 건 줄 알고 두 통 다 버렸는데. 아깝다.
- 라벨 읽어 보세요. 원래 그런 냄새랑 맛 나는 거래요. 상한 거 아니에요.
- 오, 여러분들 댓글 보고 맛보는데, 진짜 뒷맛은 좋네요. 천상주 대신 이거로 위로라도 해야겠어요.
- 이거 되게 신기한 막걸리네요. 처음엔 못 먹을 놈인 줄 알았는데, 먹다 보니 중독돼요.
- 하산해 뭐 이런 걸 만들었나 의심했는데, 죄송합니다. 나름 매력 있는 술이네요.
- 그래도 많이 팔리진 않겠어요. 첫맛이랑 냄새 때문에 호불호 갈릴걸요?
- 그럼 다행이죠. 우리 카페 위로주로 삼아서 먹어요.
- 오호, 꿩 대신 닭이라고, 다음 정모 때 이 막걸리로 함께 할까요?
- 좋네요. 다음 정모 때는 은성 막걸리로 넉넉하게 가겠네요. 싫으신 분들은 다른 거 드시고.
- 굿굿!
- 그건 그렇고, 첫맛이 너무 셔서 진짜 밥맛 좋아지겠네요.
- 그러게요.
카페 회원들도 밥맛 좋아진다는 문구를 형식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년여성이 글을 올렸다.
그녀는 이곳에서 오래 활동했기에 인지도가 제법 있는 회원이었다.
<밥맛 좋아지는 봉막걸리, 이거 진짜 밥맛 좋아지는 거 맞나 봐요. 우리 아버지가 지금 편찮으신데, 벌써 반년째 밥을 제대로 못 드셨거든요. 체력도 약해지셔서 수술도 못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거 드시고 나서부터 밥을 두세 공기씩 드세요. 장난 아니에요. 여쭤 보니까, 막걸리 드신 후로 그런 것 같다고…….>
- 어? 우리 할머니도 그러세요. 전 봉막걸리 때문일 줄은 생각 못 해 봤는데.
- 잠깐! 저 오늘 계속 배고픈 게 봉막걸리 때문이었나요?
- 헉!? 이거 진짜 밥맛 좋아지나 본데요?
- 어메이징하네요.
- 이거 그냥 붙인 거 아니었어요?
- 쩐다. 밥맛 좋아지는 봉막걸리? 한번 사 먹어 봐야겠네요.
- 오오, 우리 어머니 밥맛 없어 하시던데, 도전!
- 저도 요즘 통 밥맛이 없는데, 지금 사러 갑니다.
봉막걸리에 대한 소문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살살살> 카페 회원들 귀에도 들어갔다.
이 카페의 이름은 길게 풀어 보자면 <살, 나도 살, 살이 갖고 싶다>의 줄임말이었다.
평생 마른 몸으로 살아온 그들은 자고 일어나서 비는 소원이 살찌는 거였다.
그 회원 중의 한 사람인 원중기도 이 소식을 들었다. 어릴 때부터 마르다 보니 그의 부모님은 안 해 본 게 없었다.
운동, 한약, 식이요법, 민간요법 등등등.
그 와중에 원중기는 막걸리 먹으면 밥맛 좋아진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진짜인가?
개뻥 아니야?
에이, 밑져야 술값이지.
다들 효과 있다고 하잖아.
얼른 나가서 봉막걸리를 사 온 그는 냄새에 기겁했다. 하나,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회원들의 게시글을 통해 맛과 냄새가 어떻다 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냄새를 꾹 참고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아우, 미친. 이걸 사람 먹으라고…… 어? 잠깐! 진짜 맛있는데?
뭐지?
신기해하던 그는 순식간에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퇴근했다.
“아들, 이게 무슨 냄새니?”
“어? 엄마. 이거 막걸리 냄새요.”
“뭐? 이 녀석이,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집에서 무슨 술이야? 널 그러라고 가르쳤니? 그리고 막걸리 냄새가 왜 이래?”
“엄마, 그게 아니고요. 이거 먹으면 밥맛 좋아진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가 혀를 찬다.
“잘도 좋아지겠다. 술 마시는 핑계도 가지가지다. 됐으니까, 내일 엄마랑 보약 지으러 가자.”
“……싫어요. 벌써 많이 먹어 봤잖아요. 돈만 쓰고 효과도 없던데.”
“그래도 계속해 봐야지. 유명한 데 알아 놨어, 내일 오전에 출발할 테니까 일찍 일어나.”
“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원중기는 눈을 번쩍 떴다. 배가 고프다 못해 고통스러웠다. 뱃속에서 천둥과도 같은 꼬르륵 소리가 요란했다.
뭐, 뭐지!?
평생 겪어 보지 못한 경험에 원중기는 신기했지만, 그러고 있을 틈은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참을 수 없었다.
얼른 방을 빠져나간 그는 냉장고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꺼냈다. 그중에서 빨리 먹기 좋은 바나나부터 까서 입안에 쑤셔 넣었다.
오! 맛있어.
죽인다.
밥맛 좋아진다는 거, 진짜네?
이윽고 다른 음식에도 눈을 돌린 그는 우유도 벌컥벌컥 마시고 장조림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뭐든 너무 맛있었다.
이 요란한 소리에 그의 부모님이 놀라서 거실로 나왔고, 주방에서 미친 듯이 뭔가를 먹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세상에, 아들 거기서 뭐 하니?”
“여보, 지금 쟤가 뭐 먹고 있는 거 맞지?”
* * *
<밥맛 좋아지는 봉막걸리, 진짜 밥맛 좋아진다>
<연일 이어지는 봉막걸리 경험담, 전문가도 깜짝 놀랐다>
<일부 네티즌, 봉막걸리 실험 들어가>
<봉막걸리 품절 사태, 법인 은성 구매 문의 전화로 몸살>
<3만 회원 살살살 카페, 법인 은성에 대량 구매 제안>
<봉막걸리 개발 및 생산자 하산해, 과량 복용 시 실제 입맛 좋아진다>
이 뉴스를 보던 고상식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미친, 말도 안 돼.
이게 말이 돼?
기자 놈들한테 돈을 얼마나 먹인 거야?
내 돈, 내 돈은?
고상식은 이제 가진 현금이 거의 없음을 떠올렸다. 팔것도 없었다. 게다가 다음 월급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젠장! 제기랄!”
그가 업무 시간에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자, 상부의 지시로 그를 관찰 중이던 한 사내가 지금 상황을 녹화했다.
뒤이어 메모까지 했다.
<직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함. 무언가에 분노한 듯 괴성을 지르며 화를 냄. 직위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함.>
한편, 산하는 인터넷상의 소비자 반응을 살피던 중이었다. 밥맛이 좋아지는 양이나 시간은 제각각이었다.
그때, 동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야야, 미쳤다. 미쳤어.”
“뭐가?”
“봉막걸리 때문에 지금 난리 났어. 그거 많이 먹으면 진짜 밥맛 좋아진다며?”
“내가 말할 땐 안 듣고 뭐 했냐?”
“야, 대체 여기 뭐 넣은 건데? 효과가 미쳤다던데?”
“성분 분석표 봤잖아. 별다른 거 안 넣었어. 그냥 발효의 힘이라고 해 두자.”
“미친, 그럼 다른 회사 막걸리는?”
“수준 차이?”
“그걸 누가 믿냐? 아, 믿어야 하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생산 설비 더 늘려야 해. 지금 제품 달라고 난리야.”
“처음부터 밥맛 좋아진다고 그렇게 말했더니만.”
“아니, 난 그냥 장난치는 줄 알았지.”
“됐고, 올백해라. 참기름이다.”
“!?”
* * *
그 시각, 프랑스.
<루카스, 신작 전시회 연다>
- 엥? 루카스? 뭐죠? 방구석에 처박힌 거 아니었나요?
- 웬 전시회?
- 미술 천재 부활하나요?
- 제가 볼 땐, 옛날 기량 회복 못 하고 그냥 먹고 살려고 하는 거 같군요.
- 그 말도 일리 있네요.
-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죠.
인터넷이 떠들썩하던 그때, 루카스는 기자와 인터뷰 중이었다.
“루카스 씨, 이번에 전시 계획을 발표하셨는데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네, 무척 오랜만이죠. 저도 그래서 설렙니다.”
“슬럼프에 빠져 계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사실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의 도움으로 슬럼프도 극복하고, 이렇게 전시회 준비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떤 분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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