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51화 (351/445)

351화 자꾸 올라가 (8)

짧은 공지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장하주를 설레게 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을 약간 벌려 공지를 재탐색했다.

꿈이 아니었다.

세상에 답장을 이런 식으로 하다니.

하산해 너무 좋아.

로맨틱해.

신이 난 그녀는 두 팔을 번쩍 치켜올렸다.

“하산해 만세!”

그렇게 한참이나 무척 기뻐하던 그녀는 다시금 팬카페 채팅방으로 돌진했다.

- 세상에 콘서트 주제 너무 가슴 뛰는 거 있죠?

- 그니까요. 하산해님 짱이에요. 답장으로 콘서트 하는 가수 처음 봐요.

- 어허! 가수 아니고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해 주세요.

- 맞다! 우리 만능 하산해님!

- 옳지 그렇죠.

- 이번 콘서트 규모가 얼마나 될까요?

- 초대형이라니까, 이따만큼?

- 이것저것 많이 해 주시겠죠?

- 뭐, 저는 노래만 해 주셔도 좋은데. 악기 연주도 해 주시면 좋겠어요.

- 그렇죠. 연주 진짜 예술이죠. 특히 그 해금 연주 뿅 간다니까요.

- 으아아, 좋으다. 반드시 예매 성공하고 말겠어요.

- 우리 잘해 봐요.

- 이제부터 우리는 처절한 경쟁 관계라구욧!

- 맞음 맞음. 친한 척하지 마세요.

- 승부가 시작되는 거군요. 과연 누가 탈락하고 누가 예매할 것인가.

- 흥미진진.

- 우리 팬카페 회원만큼은 다들 가셨으면 좋겠어요.

- 그러기엔 카페 인원이 너무 많은데요? 진짜 경쟁자다!

- 그래도 이틀은 공연해 주시지 않을까요?

- 글쎄요. 다들 알잖아요. 워낙 바쁜 분인 거.

- 아, 뭐가 어쨌건, 전 너무 좋아요. 밤을 새워서라도 예매 성공합니다.

- 저도요!

이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나가, 하산해의 모든 팬카페에 가닿았다. 좋아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한 사람을 향한 마음만은 비슷했다.

- 오오! ND제약 사건 때문에 올해는 안 하실 줄 알았는데.

- 가실 겁니까?

- 당연히 가야죠.

- 저 한 번도 못 가 봤는데, 좋은가요?

- 천상주만큼 좋았어요.

- 진짜요? 그렇게나 대단해요?

- 네, 현장에서 들으면 기절하실걸요?

* * *

<법인 풍류, 내달 하산해 초대형 콘서트 예고>

<하산해 팬카페, 콘서트 소식에 밤새 열기 식을 줄 몰라>

- 멘탈 갑이네. 바로 콘서트라니.

- 바로라고 하기엔 다음 달인데요?

- 콘서트 준비 기간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바로나 마찬가지죠.

- 이게 다 돈 벌려고 하는 겁니다. 놀랄 필요 있나요?

- 그러고 보니 돈 쓸어 담겠네요.

- 아, 하산해 부럽다.

이 소식은 프랑스 팬들에게도 전해졌다.

그중 한 명인 베로니카 파를리는, 좋아하다 말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하산해의 진정한 팬이 되어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꼬이다니.

왜, 왜 내가 다녀온 다음에 하는 거냐고.

그녀는 돌연 배가 아팠다. 배가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다.

나도, 나도 가고 싶어.

가고 싶다고!

콘서트가 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수습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번에 치즈 순위를 갱신하며, 문의나 항의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치즈가 생치즈보다 못하다고?

왜 우리가 뒤로 밀린 건데?

4위에 올라간 치즈는 어떻게 해야 맛볼 수 있는 건데?

다양한 댓글은 물론이고 이메일까지 폭주해 버려서 정신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일일이 답장해 줬겠지만, 이번엔 손을 놓아 버렸다.

심지어 공개된 업무용 전화번호 역시 선을 뽑아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 조금 조용하겠지?

망설이던 그녀는 조심스레 전화선을 연결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깜짝이야.

아, 정말, 꼽자마자.

누구지?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게 다 내 업보지.

순위 같은 건 왜 만들어서…….

눈을 꽉 감은 그녀가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안녕 못합니다.”

늙수그레한 음성에 베로니카는 당황했다.

롤랜드 할아버지?

만날 때마다 허허 웃으시던 분인데.

“어, 왜…… 왜요? 어디 편찮으세요?”

“그 순위 말이오. 그게 말이나 되는 거요? 그토록 정성 들여 숙성하는 걸 봤으면서, 우리 치즈가 갓 만든 생치즈보다 못하다니.”

잔뜩 화가 난 그의 목소리에, 베로니카는 다른 면에서 당황했다.

그쪽 지역에서 허허 할아버지로 소문났다더니, 순 헛소리잖아.

이렇게 화만 잘 내시는데.

자신에게 정보를 알려 줬던 사람을 욕하던 그녀가 우물쭈물 변명했다.

“그게요. 할아버지. 어떻게 된 거냐면요.”

“듣기 싫습니다. 내가 직접 맛보지 않고는 인정 못 하겠으니, 어딜 가야 먹을 수 있는지 알려 주시오.”

“네?”

“못 들었어요?”

“어…… 물론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가셔야 드실 수 있긴 한데, 드시기 힘들 것 같아서요.”

“거 무슨 말입니까? 먹을 수 있다는 거요? 못 먹는다는 거요?”

“아직 시판 중인 치즈가 아니거든요.”

“됐소이다. 위치나 알려 주시오. 알아서 하리다.”

“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버지, 왜 이렇게 화를 내세요? 진정하세요. 제가 대신 통화할게요. 여보세요? 파를리 씨?”

“네? 네,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많이 당황하셨죠?”

그는 자신들의 치즈 순위가 5위로 밀린 것과 그 상대가 생치즈였다는 것, 전화 연결이 안 돼서 아버지가 더 화난 것 등등에 관해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저도 우리 아버지 이렇게 화내시는 모습은 처음 봐요.”

“아, 네.”

“어디서 맛볼 수 있는지만 알려 주시면, 우리 농장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우리 아버지 화가 안 가라앉으실 것 같아서요.”

결국 하산해를 언급해야겠구나 생각하던 베로니카가 입을 열었다.

“한국의 하산해를 찾아가시면 돼요.”

“하산해? 그게 누굽니까?”

“어? 모르세요?”

“유명한 사람이에요? 농장일이 바쁘다 보니 TV는 잘 안 봐서.”

“유명하긴 한데…… 아무튼, 드시려면 한국의 산하네 요리 전문점으로 찾아가서 부탁해 보세요.”

“산하네 요리 전문점이요?”

“네, 맞아요.”

“알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로니카는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떡해, 하산해 씨한테 곧장 달려갈 기세야.

가서 막막 화내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이러다 나 욕먹는 거 아니야?

* * *

고상식의 비서 이상인은 슬픈 기색으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졌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했는데,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부모나 마찬가지였던 할아버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눈을 감기 전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상인아, 이 할애비가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뭔 줄 아느냐?”

“뭔데요?”

“우리 손주 결혼 못 시킨 거.”

“할아버지도 참, 지금 당장이라도 신붓감 구해 올까요?”

허허 웃던 그의 할아버지는 상인의 손등을 툭툭 두들겼다.

“이 할애비 가고 나면, 상인이 네가 외로울까 걱정이다.”

“에이, 또 그러신다. 지금보다 더 오래오래 사셔야죠.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 그래야지. 우리 손주 봐서라도 오래오래 살아야지.”

그러던 할아버지는 며칠 만에 하늘나라로 가 버렸고, 이상인은 피붙이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종일 멍하고 막막했다.

삶의 지표가 되어 주었던 할아버지가 없으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그는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을 옷소매로 닦았다.

시간을 보니 출근할 시간이었다.

한참 후, 그가 회사로 출근해 자신의 자리에 앉을 때였다.

부장이 잠시 자기 자리로 오라고 했다.

그는 일 처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었다.

“부르셨습니까?”

“위에서 통보받은 일이 있어서 전달하고자 합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을 받은 그가 되묻는다.

“통보요?”

“이상인 씨, 다음 달부터 비서로 복귀하게 될 겁니다. 그간 고생 많았어요.”

“네!?”

* * *

아직 하산해의 콘서트에 관해 구체적인 내용은 나온 게 없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새로운 공지가 떴다.

<하산해의 초대형 콘서트에 참가하실 팬 여러분께 안내드립니다. 내달 중 열리는 본 콘서트 참가 인원을 측정하여 행사에 반영하기 위해 설문 조사를 진행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조사에 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날 무렵, 참가하겠다는 인원이 만 명을 넘겼다.

장단석은 당황해서 산하에게 말했다.

“대표님, 벌써 만 명이 넘었어요. 이대로 가면 사흘로는 턱도 없겠는데요?”

그러나 산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뭐, 크게 예상 못 한 건 아니지 않나요?”

“아니, 그래도 그렇죠. 시간이 제법 흘렀으면 모르겠는데, 고작 몇 시간 지났는데 이러니까요. 정말 예매 결과 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진행하실 겁니까?”

“그래야죠. 이번 콘서트가 답장이니까요. 답장은 다 해 드려야죠.”

“알겠습니다. 이러다가 수십만 명씩 오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산하가 피식 웃는다.

“에이, 그건 말도 안 되죠. 다들 취향도 다르고, 직장도 다니셔야 하고, 개인적으로 바쁘실 텐데.”

“그렇겠죠?”

“네.”

한편, 하산해 팬카페는 설문 조사의 열기로 또 한 번 달아올랐다.

- 무조건 참가 꾹 눌렀어요.

- 저도요.

- 어떡해. 저 실수로 잘 모르겠다 눌렀어요.

- 뭐, 어때요. 설문 조사잖아요.

- 오, 우리 카페 화력 죽인다. 쭉쭉 잘도 올라가네.

- 이러다가 하산해님 부담스러워서 콘서트 연기하겠어요.

- 설마요. 꼭! 반드시 하셔야 해요.

- 맞아요. 안 하신 지 너무 오래됐어요.

- 취소하면 쳐들어갈래요.

- 저도저도.

* * *

롤랜드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 혼자라도 다녀오마.”

“아버지 혼자요?”

“그래, 너도 가면 농장일은 누가 해?”

“그야 그렇지만. 아버지 조금 천천히 가시면 안 될까요? 다음 달이면 조금 한가해지잖아요. 여권 문제도 그렇고, 여러모로 다음 달에 가는 게 좋아 보여요. 그때 저랑 같이 가요.”

그는 연신 아버지를 설득했고, 한참 고집부리던 롤랜드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각, 산하는 설문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

무조건 참가하겠다는 인원이 6만 명에 달했고, 시간 나면 참가하겠다는 팬만 해도 3만 명이 넘었다.

“거기 신축 돔구장이라고 하셨죠?”

“네.”

“수용 인원이 얼마나 되나요?”

“꽉 채우면 오만 명 정도입니다.”

“우리 홈페이지에서만 한 거니까 더 오겠네요. 퐁당퐁당으로, 대충 6일 가까이 잡아야겠는데요?”

“괜찮으시겠어요? 힘드실 것 같은데.”

“전국 투어도 해 보니까 할 만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우리 팬들 드릴 선물도 좀 준비해야겠어요.”

“선물이요?”

“네. 뭐가 좋을까 생각해 봤는데, 다 나눠 드릴 만한 건 봉막걸리뿐이더라고요. 콘서트 끝나고 봉막걸리 한 병씩 선물로 증정하면 좋겠죠?”

장단석이 휘파람을 분다.

“대표님, 그 정도 양을 한꺼버네 준비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해 봐야죠. 물량 부족하면 우선 교환권이라도 드릴까 합니다. 이것만 드리면 재미없으니까, 천상주랑 샴페인, 빵 같은 것도 추첨 형식으로 추가 증정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잠깐만요! 천상주에 샴페인에, 빵까지요?”

“네, 왜 그러세요?”

장단석이 침을 꿀꺽 삼킨다.

“아니, 너무 어마어마해서요.”

“절 이렇게나 좋아해 주시는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산하네 요리 전문점 이용권도 추가할까요? 무슨 일 있어도 먹을 수 있는, 무적 이용권 정도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

“대표님.”

“네?”

“저도 콘서트 참가합니다.”

“???”

* * *

은성식품 공장.

“다음 달 콘서트 소식 들었지?”

동식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당연히 들었지. 그건 왜?”

“콘서트 관람객한테 봉막걸리 선물하려고, 미리 준비해 놔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한다.”

“아, 그래? 몇 병이나?”

그는 대충 추첨 형식으로 막걸리 일천 병, 많아 봐야 오천 병 정도로 짐작했다. 현재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걸 고려하면 빠듯하지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설비를 증설하고 생산량을 확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산하가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병 정도.”

제대로 듣지 못한 동식이 차를 마시려다 말고 되물었다.

“어? 몇 병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