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외압 (1)
송청세는 보고받은 이름을 듣고 되새김질했다.
“고상식이라…….”
“어떡할까요? 이대로 수사가 진행되면 파급효과 역시 무시 못 할 것 같습니다만.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랬다.
도일그룹은 규모도 크고 국내 기업 여기저기에 얽혀 있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간 불매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고,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자신의 임기 동안, 그런 상황만은 사양이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자가 범인이라니.
허허, 이를 어쩐다?
송청세는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러다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그렇지.
그리하면 되겠군.
* * *
도일그룹 회장실.
“회장님. 상식 도련님의 개인 자금 흐름이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이상한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고, 그냥 보기에는 별 이상이 없습니다만…… 어딘가 전체적으로 안 맞는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감이 이상하다 이건가?”
“죄송합니다. 무엇이든 보고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래도 그렇지. 감으로 때려잡아서 손자놈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주의하겠습니다.”
고 회장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괜찮네. 그놈이 뭘 한다고 해 봐야 비자금이나 조금 만들었겠지. 그거야 미리 경험해 보면 좋은 일이야. 그건 됐고, 이번 해외…….”
그때, 회장실 내선 전화가 울렸다.
“자네가 받아 보게.”
이내 비서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비서진 중 한 명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눈이 동그래진 비서가 한참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고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인가?”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답니다.”
고 회장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묻는다.
“무슨 일로?”
“이번 오찬 회동에 반드시 참석하시라고 합니다.”
그 말에, 재벌 기업 총수 여럿이 청와대에 모이기로 한 비공식 일정을 기억해 냈다.
이 양반이 또 국내에 추가 투자하라고 성화겠구먼.
투자 환경이 안 맞는데 난들 어쩌라는 거야.
지겹구만, 지겨워.
“그게 다인가?”
“추가 전언도 있습니다.”
“추가 전언?”
“네, 회장님. 대통령께서 긴히 단둘이 할 말이 있으니, 반드시 참석하라고 하셨답니다.”
그의 말에, 고 회장은 짜증 난 기색으로 생각했다.
긴히 단둘이 할 말이라고 해 봐야, 으름장이나 놓겠다는 거지.
설마 옛일을 들출 리는 없고.
조용히 놀다가 임기나 채우고 떠날 것이지.
임기가 많이도 남았구만 그래.
“귀찮게 하는구만. 아니 그런가?”
“맞습니다. 회장님. 스케줄은 어떻게 할까요?”
“난들 힘이 있나. 가긴 가야지.”
“네, 회장님.”
한편, 고상식은 핏발선 눈으로 서재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번이 마지막 배팅이라 생각했고, 가진 비자금을 탈탈 털 각오로 의뢰를 넣었다.
박산하가 불구가 되어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자 함이었다.
하나, 제대로 실패해 버렸다.
이젠 승계 구도에 신경 써야 하니, 더는 건드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일도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벌인 것이었다.
비자금이라는 게 만들기 쉽기나 하던가.
이리저리 돈을 야금야금 빼돌리고 분산시켜서 겨우 만든 돈이었다. 그중 일부를 착수금으로 보냈건만, 멍청한 놈들이 일을 망쳐 버리고 말았다.
늘 비서에게 맡기다 보니, 심부름꾼을 잘못 고른 탓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이 비서는 대체 언제 연락되는 거야?
그는 승계 작업만 끝나면, 이번 일을 등신같이 처리한 놈을 아작내 주겠다고 다짐했다.
* * *
그룹 총수가 다 함께 모인 오찬 회동이 끝났다.
다른 회장이 모두 돌아간 후, 지팡이를 짚은 고 회장만이 조용한 내실로 안내되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대통령께서 이 늙은이를 이리도 귀히 여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별말씀을요. 앉으시죠.”
이내 단둘이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고 회장은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이 능구렁이가 무슨 요구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생각했다.
그가 차를 마시면서 송청세의 심중을 헤아려보던 그때, 대통령이 운을 뗐다.
“오늘 제가 제시한 투자, 두 배로 집행하셨으면 합니다. 아니, 확약하시고 언론에 발표하셔야겠습니다.”
고 회장은 하도 어이가 없었고, 화를 참느라 이마 주름이 꿈틀거렸다.
“지금 이 늙은이를 협박하시는 겝니까? 이렇게 대놓고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협박이 아니라, 그나마 좋은 제안이라고 보셔야 할 겁니다.”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씀하시지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겝니까?”
“손자분 중에 고상식이라고 있지요?”
고 회장은 뜬금없이 손자 이름이 나오자, 등줄기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 송청세를 보건대, 무언가 약점이라도 잡은 듯한 눈빛과 태도였다.
이런, 상식이 고놈이 영 찝찝하더라니.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나 그는 한 그룹을 이끌어온 총수였다. 약하거나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고 회장은 태연하게 물었다.
“대통령께서 한가하신가 봅니다. 우리 손자놈에게 관심을 다 가져 주시고.”
“관심은 없었습니다만, 일이 터져서 관심이 많이 생겼지요.”
송청세는 자신 앞에 놓여 있던 서류철을 고 회장에게 밀었다.
“한번 보시지요.”
이게 뭔가 싶었던 고 회장은 품에서 돋보기안경을 꺼냈다. 곧 서류철을 펼쳐 읽어 나가기 시작하던 고 회장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곳에는 고상식이 이번 하산해 피습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사실이 담겨 있었다.
마약도 아니고, 음주운전도 아니고, 살인교사라니.
끄응- 신음을 흘리던 고 회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생각보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나이를 먹다 보니, 많은 일을 겪어 와서 그런가 봅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지요.”
“저도 시간을 많이 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골든 타임이 지나가 버리면 저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고 회장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잘 알았고, 꼬리를 살짝 말았다.
“알고 있습니다. 나흘만 말미를 주시면, 바로 연락드리지요.”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이내 고 회장은 내실을 빠져나갔고, 그를 배웅하던 송청세는 뒤돌아서며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밀실거래를 결정한 그는, 작은 사건 하나 덮고 큰 걸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 * *
고 회장은 곧장 최고급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터지기라도 할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회장님, 다음 스케줄은…….”
그는 비서의 말을 끊었다.
“다 취소하고, 상식이한테 가세.”
비서가 놀란 낯빛으로 되묻는다.
“네? 회장님, 오늘 남은 스케줄은 제법 중요한…….”
“내 말 안 들리나!?”
그의 카랑카랑한 외침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고, 전담 비서는 찔끔하여 말했다.
“네, 회장님. 도련님댁으로 가지.”
한참 후.
고상식의 자택 정원으로 들어선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때, 상식이 얼른 밖으로 뛰쳐나와 고 회장을 맞이했다.
“할아버지, 오셨습니까?”
“…….”
그러나 고 회장은 몸만 부들부들 떨며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
“네놈이 어떤 짓을 했는지 말해 보아라.”
상식은 섬찟했다.
예상되는 거라곤 하산해 피습 사건뿐이었다.
하나, 모든 일에 대포폰을 사용했고, 자금마저도 많은 신경을 썼다. 고 회장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내심 안심한 그는 대체 무슨 일로 저러는가 싶어 고민했다.
아! 대리 업무 마무리 제대로 안 했다고 저러시는 건가.
젠장, 쪼잔하게.
그 정도를 가지고.
그는 아무것도 모른 척 되물었다.
“어떤 짓이라니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 회장의 지팡이가 날아들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식의 머리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다.
“하……할아버지? 회장님? 왜 이러십니까?”
고 회장은 거대하게 일궈 놓은 자신의 왕국에 흠집이 가는 걸 무척 싫어했다. 한데 이번 일로 그룹에 쌓인 자산을 잔뜩 뺏기는 것도 모자라 약점까지 잡히게 되었다.
앞으로 청와대에서 얼마나 더 많은 걸 요구할지 알 수 없었다.
고 회장은 차라리 이번 사건을 터뜨리고, 손자놈의 일탈로 처리할지까지 고민했다.
하나, 거대 그룹이 좋은 이미지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번 훼손되면 돌이키기가 어려우므로 신중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사건이 외부로 터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엘리트 놈들 머리를 쥐어짜 대책을 마련하면 될 성싶었다.
결국 투자를 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손해를 줄여야 할 게 아닌가.
마치 공갈빵처럼 투자 액수만 크고, 실속은 없게.
고 회장은 잠시 떠오른 생각에 말이 없었고, 고상식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러자 비서가 티슈를 가져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주려 했다.
“놔두게.”
비서는 얼어붙었고, 고상식은 어딘가 두려워진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를 아직도 모르겠다? 진정 모르느냐?”
“…….”
허허 웃던 고 회장은 한발 한발 손자에게로 다가가더니, 이내 지팡이를 힘껏 휘둘렀다.
또 한 번 상식의 머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고상식은 욕설이 절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인내했다. 다 되어 가는 밥에 재를 뿌릴 수는 없었다.
일단 이유를 알고 변명을 해야 했다.
“정말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이러려고 절 데려오셨습니까?”
“오냐, 이놈 말 한번 잘했다. 널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왜 데려와서 이따위 더러운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오냐오냐해 줬더니. 이놈! 하산해 살인교사, 네놈이 한 짓이렷다?”
고상식의 입이 헤 벌어졌다.
고 회장은 그 표정에서 사실임을 알아챘다.
“진정 네놈이로구나. 차라리 마약이나 음주운전이면 좋았을 게다. 한데 살인교사? 그것도 이리 떠들썩하게? 죽어라, 이놈아!”
고 회장의 분노한 지팡이가 그에게 쏟아져 내렸다.
상식은 얼이 빠져서 그걸 그대로 얻어맞았다.
아팠다.
볼과 귓가로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뇌리에 어린 시절 거지 같이 살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자 분노가 그의 전신을 채웠다.
모든 것에 인내하며 복수하고자 했지만, 도저히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고상식이 빽 소리 질렀다.
“시발,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때려!?”
고 회장은 멈칫했다.
여태 반항 한번 없던 손자놈이 저리도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내뱉다니.
지팡이를 우뚝 멈춰 세운 그가 당황하며 물었다.
“지, 지금 무어라 했느냐?”
“나한테 뭘 해 줬다고 때리냐고? 돈만 주면 다야? 시발 안 해! 다 가져가! 개 같은 재벌 집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재벌가 자존심 지키라며? 그래서 자존심 지키려고 벌인 일이야. 어쩌라고?”
고상식은 눈이 회까닥 뒤집혀서 반말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종래에는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정말 미친놈 그 자체였다.
고 회장은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비서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처음 보는 고상식의 모습에 놀라던 비서가 정신을 차렸다.
“네? 네, 회장님.”
“병원 예약해 놓게.”
“네!?”
“저 꼴을 보고도 못 알아듣나?”
그는 고 회장의 뉘앙스에서 뜻을 캐치했다. 정신과 치료를 예약해 놓으라는 의미였다.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 * *
“도일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투자는 약속한 대로 시행하되, 상세한 내용은 다음에 만나서 얘기하잡니다.”
“그 손자놈은 어찌한답니까?”
“그건 알아서 할 테니 관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알아서?”
“제 생각에는, 어디 먼 곳으로 보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용해지면 다시 들어오겠죠. 늘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알았네.”
한편, 일선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수사하던 경찰들은 얼이 빠졌다. 이제 그만 수사하고, 잡힌 범인까지만 발표한 후 잘 마무리하라는 지시였다.
“서장님, 범인 거의 다 잡았는데요? 조금만 더 추적하면 됩니다.”
“김 반장, 말귀 못 알아들어? 덮으라면 덮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빨리 안 잡는다고 뭐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요?”
“너 경찰 짬밥 몇 년이야?”
“그건 왜요?”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내가 힘이 있어? 뭐가 있어? 위에서 내려온 지시잖아.”
“그거야 알죠.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덮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우리 애들은 뭐가 됩니까?”
“알아, 아니까 당분간 휴가나 가.”
“서장님!”
“어디서 소리를 질러? 내가 만만해?”
“그게 아니잖아요. 그놈의 위쪽, 대체 위쪽이 어딘데요?”
“넌 알 거 없고, 가서 마무리나 해. 언론에 이번에 잡힌 세 놈이 작당 모의해서 그런 거로 잘 꾸며서 인터뷰하는 거 잊지 말고.”
“못합니다.”
“못해? 이제 막 나간다는 거야?”
“범인 다 잡고도 이런 짓 하는 거, 이제 신물이 다 납니다. 이번엔 대체 어느 고위층인데요? 권력이랑 돈이면 답니까? 매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나 하고.”
“김 반장, 네 맘 다 알아.”
“알긴 뭘 압니까?”
김 반장은 오래전 권력의 희생양이 된 아버지를 떠올리며, 분기를 참지 못했다.
“참아.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까라면 까야지. 애들 생각해야지?”
“…….”
“안 할 거야? 다른 애 시켜?”
“알았어요. 갑니다.”
김 반장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꾹 눌러 삼켰다.
이날 늦은 오후.
최종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하산해 피습 사건, 주동자 세 명으로 밝혀져>
<하산해 피습 이유, 사회 불만, 잘 나가는 꼴 보기 싫어서 그랬다>
-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다.
- 와, 이유가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 그러게요. 뭐 더 있는 것처럼 굴더니, 이게 끝이라고?
- 이상하게 찜찜하네.
- 믿을 수가 있어야지.
- 아, 당신들이 수사하세요. 뭐만 나오면 못 믿는대.
그 시각, 산하는 뉴스 기사를 보며 의문을 피워올렸다.
감방 동기 세 명?
사회 불만?
결론이 뭔가 이상한데?
남들은 그가 무척이나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 산하는 재능을 가져오며 상당히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실제로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소와 같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트라우마가 생겼을 테고, 관련된 뉴스 기사를 보는 것도 어려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하는 뉴스 기사를 보면서도 이성이 충만했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단 말이야.
뭐지?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가, 급히 종결하는 느낌인데.
뭔가 있어.
* * *
이상인은 굳은 표정으로 숨겨 두었던 USB를 꺼냈다.
산하 씨한테 더 큰 일 생기기 전에,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는 재벌그룹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았고, 경찰서에 제보해도 큰 소용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모든 게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해서, 인터넷에 모든 녹취록과 영상 자료를 올리고자 했다.
이제 피붙이도 없는 상황, 거리낄 것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
그리하면 후회도 없을 거라고.
입술을 강하게 깨문 그의 잇새로 피가 흘러내렸다. 이상인은 USB를 컴퓨터에 밀어 넣다가 중단했다.
젠장, 막상 하려니 너무 두려워.
나, 감방에서 몇 년이나 살아야 할까?
며칠 후.
이상인은 오랜만에 문을 연 산하네 요리 전문점을 찾았다. 그는 밥을 먹으며 산하를 흘깃거렸다.
어쩌면 좋을까?
그 눈길을 느낀 산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왜 저렇게 보는 거야?
음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는 이상인의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7분 전, 이상인은 고상식의 악행이 담긴 자료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