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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78화 (378/445)

378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4)

어? 이게 뭐야?

윤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옛날처럼 미안해라거나, 화 풀어 따위의 단순한 글귀를 생각했건만, 웬 영어가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쓰여 있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아!

무언가를 떠올린 윤정이 스마트폰으로 맥도웰 감독의 사인을 찾아보았다. 누군가가 인터넷상에 자랑하려고 올린 사인 이미지 몇 개가 보였다.

사인의 모양새는 정확히 일치했다.

단지 그것들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 들고 있는 사인지에는 뒤쪽으로 뭔가 길게 쓰여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낑낑거리며 필기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작게 중얼거렸다.

“팬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

눈을 휘둥그레 뜬 윤정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소리 내 읽었다.

그러기도 잠시.

“대박! 이거 뭐야?”

방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고, 윤정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박산하, 박산하 박산하 박산하!”

다과를 먹고 있던 산하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한 번만 부르라고 했지?”

“지금 그게 중요해? 이거 진짜 세계적인 거장, 영화의 황제, 영화계의 전설, 조지 맥도웰 감독 사인이야?”

“그럼 짝퉁이겠냐?”

“우와, 이걸 어디서 났는데?”

“아, 같이 일하게 돼서, 부탁했더니 해 주시더라.”

“진짜? 진짜진짜? 그래서 내 이름 넣어 달라고 한 거야?”

두 남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순희가 궁금증을 표출했다.

“조지 맥도웰? 그게 누구야?”

“어? 엄마 조지 맥도웰 몰라? 엄청 재미나고 예술적인 영화 만드는 사람이야. 엄마도 예전에 몇 번 봤을 건데.”

“엄마는 모르겠으니까, 과일이나 먹어. 우리 딸은 삐졌다가 풀기도 잘 푸네.”

“아, 왜. 내가 언제 삐졌다고 그래? 잠깐 화가 난 거지. 그치 박산하?”

“아니 박윤땡?”

“뭐래, 잠깐! 잠깐잠깐!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넘어갈 뻔했네. 조지 맥도웰 감독이랑 일을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또 삐질까 봐 얘기해 주는 거니까,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라. 나 피곤해진다.”

윤정의 고개가 아래위로 여러 번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묘한 광기가 감돌았다.

“야, 너 눈빛이 왜 그래?”

“내 눈빛이 뭐?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 봐. 무슨 일 하는데?”

“배경 음악 담당하기로 했어.”

“대애박! 대박 사건! 박산하박산하박산하!”

“제발 한 번만 불러 주면 안 되겠냐?”

“안 돼 안 돼, 지금 한 번만 불러서는 흥이 안 나. 그러니까, 맥도웰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끝과 어둠>에 박산하가 배경 음악을 깐다는 거잖아.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뭐야? 와 박윤땡, 나를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아니야?”

“아니이, 그냥 너무 신기해서 그러지. 거기 영화음악 감독이 나름 잘나가는 사람이거든. 그 사람 제치고 들어간다는 거잖아. 진짜 대박이다!”

“호들갑 그만 떨고, 입이나 잘 다물어. 이번엔 미리 알려 줬다?”

“응응응, 진짜 알려 줬어. 알려 준 김에 뭐 더 있으면 불어 봐.”

“불긴 뭘 불어? 하여간에 호기심 천국이야.”

“아 왜애애, 박산하 더더더, 더 얘기해 봐. 맥도웰 감독이 그래서 내한한 거야? 직접 만나러 온 거야? 그런 거야? 배경 음악 깔아 달라고? 그치? 그런 거지?”

그녀의 따발총과도 같은 재잘거림에, 산하가 귀를 막았다.

“난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윤정은 산하에게 들러붙어 그의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왜왜, 뭔데뭔데? 얼른 얘기해 봐. 빨리 얘기해 봐. 궁금하잖아.”

그녀는 눈밭을 구르는 강아지처럼 신나서 질문을 던져 댔고, 산하는 시간을 확인했다.

“저 슬슬 가 봐야겠어요.”

그러자, 장순희가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 가게?”

“네, 할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 저 갑니다.”

“그래, 밤길 조심하고.”

“네.”

벌떡 일어선 산하는 현관으로 도망쳤다.

“어디 가? 치사하게, 말해 주고 가!”

“따라오지 마, 박윤땡.”

하나, 그녀는 오빠 뒤를 졸졸 따라가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댔다.

“야, 박윤땡.”

“왜왜? 뭐 할 말 있어? 이제 말해 줄 거야?”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시사회 기회 있어도 안 데려간다?”

“시사회!?”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갑자기 애교를 피웠다.

“오빠앙!”

“이런 미친, 저리 안 가?”

후다닥 도망친 산하가 차량에 올라탔다. 이내 승용차가 희미한 소음을 내며 점점 멀어졌다.

윤정은 신나서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박산하, 조심히 가!”

* * *

백억 기부 천사에 관심을 보였던 네티즌들은, 익명 기부자의 정체가 하산해로 밝혀지자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바로 돈쭐내 주기였다.

- 와, 돈쭐 내주려고 했는데, 제품이 없다니.

- 그러니까요. 이렇게 된 이상, 음반을 사는 수밖에 없겠네요.

- 저는 팬카페부터 가입했어요. 다들 오세요. 하산해 팬카페 세상으로.

- 오오, 일단 가입.

- 다들 혼쭐내 줄 방법 새로운 거 있으면 말해 보세요.

- 그거 지금 하산해 팬카페에서 연구 중이에요.

- 그래요? 지금 가입하러 갑니다.

한편, 하산해 팬카페는 연일 늘어나는 회원 수로 시끌벅적했다. 그 가운데, 채팅창마저 팬카페 임원들의 열띤 토론으로 몸살을 앓았다.

- 으으, 난 이래서 하산해 님이 좋다니까요. 그나저나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바늘 가는 데 실 가야죠.

- 그럼 하산해 님이 바늘이고, 우리가 실이에요?

- 당연하죠. 모금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문젠데…….

- 얼마나 모일까요?

- 아주 많이?

하산해의 행적에 힘입어, 팬카페에서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계획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음원 순위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시간이 흐르며 순위가 내려앉았던 산하의 음원이 줄 세우기를 시작했다.

TOP 100을 비롯해 급상승 순위, 일간 순위, 주간 순위 등등, 1위부터 10위까지는 모조리 하산해와 관련된 음원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가 예전에 완결지었던 웹툰 <술만 만드는데 왕실에서도 부름>이 올해의 인기작을 모조리 뚫고 1위를 달성했다.

이걸 찾아보던 동식이 감탄사를 흘렸다.

“와, 죽인다? 너 이거 봤냐? 매출 얼마나 나오려나. 네가 기부한 거보다 더 많이 벌겠다.”

“하. 부사장님, 스마트폰 그만 보시고, 봉막걸리 판매 상황 보고 바랍니다.”

동식이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박 대표님.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봉막걸리는 대략 난감입니다.”

“뭐, 인마?”

“농담이다. 농담.”

동식은 지금 시중에 푸는 물량과 콘서트용 물량을 분리해서 출고 중이었다.

콘서트용 물량만 맞추다가는, 시중에 봉막걸리 유통이 한동안 멈춰 버릴 테고, 그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에 관해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 애증의 봉막걸리, 시중에 풀면 그래도 하루는 갔는데, 이젠 반나절도 안 간다. 다들 납품 좀 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반나절? 장난 아닌데?”

“그래, 장난 아니지. 너 기부 소식 알려진 뒤로, 뭐든 생산만 하면 다 팔리고 없어. 전보다 생산 물량도 엄청 늘었는데, 팔리는 건 더 빨라지다니. 이게 웬일이냐? 빨리 공장 증축 완료해야 하는데.”

“그래서 콘서트용 봉막걸리 얼마나 교환해 줬는데?”

“지금까지 30만 병 교환해 줬어. 다들 신나서 받아 가더라. 나머지는 언제 다 생산해서 줄지 모르겠다.”

“왜 또 앓는 소리야. 우리 동식이 잘하고 있구만, 신제품은?”

“증축하면 바로 생산 시작하려고. 아무래도 은성라면으로 스타트 끊을 거 같다.”

“연구원들 고생했겠네. 생각보다 빨리 나온 거 같은데?”

“그렇지? 연구원들도 네 팬이잖아. 우리 하산해 님 돈 많이 벌게 해 드려야 한다고 신나서 연구했다나 뭐라나.”

“그거 네 뇌피셜 아니야? 무슨 연구원들이 내 팬이래?”

“아니야. 진짜야. 내가 누구냐?”

“노총각으로 늙어 갈 하동식?”

“뭐!? 아주 저주를 해라. 저주를 해.”

“그래서 뭐? 직원들 이야기하는 거 엿듣고 다니냐?”

“아니, 연구원들이 자처해서 야근하길래 빨리 퇴근하라고 내쫓았는데, 갑자기 성과를 팍팍 가져오더라고. 그래서 뭔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집에서도 연구했다더라. 맨날 다크서클 달고 헤헤 웃는데, 아주 그냥 광팬 납셨다.”

“와, 성과금 좀 뿌려.”

“네네, 박 대표님이 그러실 줄 알고 벌써 뿌렸습니다.”

“잘했다. 신제품 맛 한번 보자.”

“안 그래도 준비해 놨다. 잠깐만.”

동식은 부사장실 책상 한편에 놔둔 박스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아직 디자인을 확정한 게 아니라서 그저 유색 비닐에 담겨 있었다.

“받아. 집에 가서 맛보고 평가해서 알려 줘.”

“그냥 여기 탕비실에서 끓여 먹자. 라면 세 봉지 콜?”

“오, 끓여 주게? 당연히 콜이지.”

산하는 부사장실에 딸린 탕비실로 이동해 라면을 끓였다. 이젠 라면조차도 어떻게 끓여야 최대한 맛있을지 감이 왔다.

은성표 신제품 라면을 보글보글 끓인 산하가, 탕비실 내부의 작은 테이블 위에 냄비를 올렸다.

라면은 불그스름하니, 침이 꼴깍 넘어갈 만큼 맛있어 보였다.

“동식아, 다 됐다. 얼른 와.”

업무를 보던 동식이 후다닥 달려왔다.

“오, 아까부터 침이 고여서 일에 집중이 안 되지 뭐냐. 내가 끓일 땐 이런 냄새 안 나던데? 역시 미슐랭 요리사라서 라면도 다른가?”

“배고파서 그런 거 아니고? 먹자.”

동식은 얼른 라면 한 젓가락을 집어 후루룩 삼켰다. 약간 얼큰하면서도 감칠맛이 감도는 라면 특유의 풍미와 쫄깃한 면발이 그의 혀를 자극했다.

산하의 여러 요리 재능이 깃들다 보니, 라면조차도 예술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식의 반응도 단연 폭발적이었다.

“와, 미친. 원래 이 맛이 아닌데. 왜 이렇게 맛있냐? 야, 너 이거 몇 분이나 끓였어? 스프는 다 넣은 거야? 레시피 좀 적어 주고 가라.”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 후 동식은 라면을 들이마시듯 퍼먹느라 말이 없었고, 산하는 새롭게 떠오른 미션을 바라보았다.

[미션 - 일반인이 끓여도 맛있는 라면으로 개선하자.]

[보상 - 현재 보유한 재능 중, 한 가지 무작위 상향.]

* * *

산하네 요리 전문점은 언제나처럼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요리를 만들어 제공한 산하는 쉬는 시간을 맞이했다.

“형님, 나세랑 간식 사러 다녀오겠습니다.”

“또 삼천포로 새지 말고 얼른 와.”

“옛썰!”

봉만두가 나세와 사라진 그때였다. 산하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네, 원장님.”

“어떻게, 여전히 바쁘시죠?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마침 쉬는 시간입니다.”

“잘됐네요. 저번에 그 제안 말이에요.”

“이사장님 하시려고요? 환영합니다.”

“그 전에, 제가 정말 잘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부족하나마 맡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안 하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결정을 하셨네요? 저야 좋지만요.”

“그게…… 이번에 산하 씨가 기부하시고 나서, 너무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다시 한번 발로 뛰어보려고 합니다.”

“역시 원장님입니다. 그럼 당장은 안 되고, 시간 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네, 늘 몸조심 하시고요. 그때 봅시다.”

“네, 원장님. 들어가세요.”

통화를 종료한 산하는 흐뭇하게 웃었다.

드디어 콘서트 수익금 처리하겠네.

이날 오후, 식당 근처 한옥.

산하는 미뤄 두었던 연주를 해 보기로 했다. 바로 희소병 환우 어린이의 선물로부터 비롯된 보상이었다.

[그림 및 연주 완성 시, 특수 효과, 평온한 하루가 부여됩니다.]

정확히 어떤 효과인지 알고자 했던 산하는, 새봄을 바로 앞에 앉혀 놓았다.

“신난다. 산하 씨 독점하니까 연주도 혼자 들을 수 있네요?”

“나도 신난다.”

“산하 씨는 왜요?”

“윤새봄을 독점할 수 있잖아.”

그녀가 풉 웃었다.

“바보, 빨리 연주해 줘요.”

“알았어. 잘 듣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해 줘.”

“알았어요. 이 윤새봄, 산하 씨 연주를 신랄하게 평가하겠어요.”

“무서워서 연주 못 하겠네.”

“왜요? 얼른 해요.”

“알았어.”

이내 산하는 대금을 들고 취구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대금 특유의 깊게 우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곡명은 <늘 그렇답니다>.

작자 미상의 이 곡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노래였다.

맛있는 요리 하나에도 기뻐하고, 작은 선물에도 감동하여 눈물짓는 그런 일상.

안으로 감아 도는 깊은 울음이 새봄의 마음을 잔잔하게 적셨다.

아, 좋다.

우리 산하 씨 연주는 정말 최고야.

그때였다. 그녀는 돌연 몸도 마음도 서서히 나른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세상 시름을 다 내려놓은 것 같달까.

그 느낌은 산하의 연주가 완성되자 극에 달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의 표정을 짓던 새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하 씨, 나 이상해요.”

“이상해?”

“네. 연주 듣고 있었더니, 마음도 몸도 너무너무 편하다고 해야 하나. 이대로 푹 자고 싶어요. 신기해라.”

그녀의 감상평을 듣게 된 산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이걸 어디에 써먹지?

* * *

산하가 미국으로 떠나는 당일이 되었다. 풍류에서 그를 전담하는 직원들 여럿이 그를 경호하듯 감싸고 걸었다.

그러자 하산해의 행보를 유심히 관찰하던 기자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아직도 산하가 맥도웰 감독과 만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귀찮아질 것을 우려했던 산하가 미리 알리지 말도록 지시 내렸기 때문이었다.

“산하 씨, 미국은 무슨 일로 가십니까?”

“미국 콘서트를 계획하고 계십니까?”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어디로 가십니까?”

그들의 쉴 새 없는 질문에, 산하가 답했다.

“저는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캘리포니아요? 무슨 일인가요?”

“조지 맥도웰 감독님과 작업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풍류에서 공식적으로 알려 드릴 겁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기자들이 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하산해 씨! 하산해 씨! 잠깐만요.”

“잠시만요!”

기자들이 애타게 불렀지만, 산하는 이미 출국 심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이날 이와 관련된 뉴스 기사가 떴다.

<세계적인 거장 조지 맥도웰, 하산해 만나러 왔었다>

<하산해, 맥도웰 감독과 작업하기 위해 출국>

- 오오, 미친! 하산해 만나러 온 거였다고?

- 와, 그러니까 하산해 한 명 때문에, 감독이 직접 여기까지 날아왔다가 간 거잖아요.

- 대박!

- 캬, 우리 하산해 님이 이 정도입니다.

- 그런데 무슨 작업일까요?

- 글쎄요. 잘하는 게 너무 많아서, 혹시 요리?

- 맥도웰 감독이 배경 음악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거 같이 하는 거 아닐까요?

- 미술은 어때요?

- 아니, 생각해 보니까 뭐 이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죠? 그것도 실력이 다 넘사벽.

- 하산해가 하산해 했다!

* * *

조지 맥도웰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끝과 어둠>.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은 사내 알렉스 슈나이더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도 열성적으로 작업에 매진했건만, 맥도웰 감독이 한국까지 직접 날아가 다른 음악가를 모셔 왔기 때문이었다.

배경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길, 맥도웰, 뭐 하자는 거야?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아?

영화 음악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점점 더 까다로워지기만 하지, 맥도웰 감독도 이제 한물간 게 분명해.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고.

팔짱을 낀 그는 파이프 오르간 쪽을 바라보았다. 산하는 맥도웰 감독과 대화 중이었다.

“일단, 일반적인 클래식 연주로 한번 갈게요.”

“좋습니다.”

현재 맥도웰 감독과 영화제작팀은 샌디에이고의 한 공원에 나와 있었다.

이곳의 한 건물은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었는데, 맥도웰 감독은 하산해의 연주를 직접 듣고 조율하기 위해, 낮 시간을 통째로 대여했다.

이번 작업의 핵심이 된 산하는 눈앞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쟈끄의 특성, 파이프 오르간의 지배자 특성이 적용됩니다.]

[파이프 오르간을 한 몸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문화와 관련된 행위입니다.]

[쟈끄의 파이프 오르간 솜씨가 11% 상향됩니다.]

[남은 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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