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80화 (380/445)

380화 하산해는 말이 없다 (1)

“네, 아시다시피 마지막 장면이, 새카만 어둠과 함께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거기서 아주 오래전 제작된 파이프 오르간을 누군가가 연주하는 건 아시죠?”

“네, 압니다만…… 혹시 연주하는 부분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저를?”

“이건 제작팀 일부만 아는 사실인데, 이번 영화를 2부로 제작하기로 결론 냈거든요.”

“와, 2부요?”

“네, 어쨌든 이건 개봉 전까지 비밀이라 어디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그래서 엔딩도 살짝 바꾸는 겸, 아예 산하 씨가 직접 연주하는 모습으로 연출하는 게 좋아 보이더군요. 다른 출연자 넣어 봤는데, 영 그림이 안 살아요. 산하 씨 연주하시는 모습 자체가 다른 사람이 따라올 수 없는…… 뭐라고 해야 하지.”

잠시 뜸을 들이던 맥도웰 감독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그렇지. 장인? 예술혼? 뭐, 그런 느낌이 나거든요.”

당연하죠. 쟈끄 선생님이 인생을 바친 연주 실력이니까요.

속으로 흐뭇해하던 산하가 그의 칭찬에 답했다.

“그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까, 꼭 출연하고 싶어지는데요?”

“그럼 수락하시는 거죠? 아, 물론 이번 배경 음악 삽입 건과는 별도로 계약이 진행될 겁니다.”

“촬영이 오래 걸리진 않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언제쯤 촬영 들어가야 하나요?”

“늦어도 한 달 이내에는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죄송하지만, 스케줄 잠깐 살펴보고 다시 전화 드릴게요.”

“네, 그러시죠.”

산하는 사실 스케줄을 살펴보려는 게 아니었다. 묵언 수행을 언제, 어떻게 진행할지 구상해 보려는 것이었다.

맥도웰 감독의 제안을 포함한 여러 스케줄과 페널티 해결 기간이 겹치면 안 될 것 아닌가?

사실 지금의 인기에 묵언 수행이라는 것은 상당한 고난도였다. 매일 바쁘게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열흘간 입을 닫아야 한다니.

자칫 잘못하면 스케줄 소화는 고사하고, 언론의 억측과 오해가 난무하며, 팬은 걱정에 휩싸일 게 분명했다.

이게 완화된 거라면, 대체 정식 페널티는 어떤 것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어떤 방법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파서 당분간 말을 못 한다고 하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생길 테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어디 여행지에 가서 콕 박혀 있기는 더더욱 어려워 보였다.

제일 괜찮은 방법은, 적절한 핑계를 대고 집에서만 머물며 밖을 나가지 않는 거였다.

음…….

그래, 예술적 영감이 떠올랐다고 하자.

이거면 되겠어.

다들 수긍할 만한 핑계야.

궁리를 끝낸 산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감독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촬영은 막바지에 합류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한 달 안에만 합류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럼 미국으로 건너갈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산하 씨, 그럼 건강하시고요.”

“감독님도요.”

“아 참, 이 말을 못했네요.”

“어떤 말씀을요?”

“파이프 오르간 연주, 정말 최고 중의 최고였습니다. 제 평생 그런 연주는 처음이었어요.”

“칭찬을 너무 많이 해 주셔서, 우주 밖으로 날아가겠네요.”

그의 허허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주까지 날아가시진 마시고요. 자,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네, 감독님. 들어가세요.”

산하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다 말고 볼을 긁적였다.

묵언 수행이라…….

생각보다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잠시 후, 심장원 피디가 식당 내부로 모습을 드러냈다.

“산하 씨, 행복한 하루입니다.”

산하는 예능 촬영을 살짝 뒤로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페널티 먼저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페널티 해결에 기간 제한은 없어 보였지만,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해서, 하루빨리 해결하기로 했다.

그는 그 마음을 전했다.

“피디님, 제 말 들으시면 별로 안 행복하실 것 같은데요?”

심 피디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왜, 왜요? 왜죠? 어디 편찮으세요?”

“아픈 건 아닌데, 제가 예술적 영감이 찾아와서요.”

“영감이요?”

“네, 그래서 촬영을 조금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싶은데요. 혹시 괜찮을까요?”

심 피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심장 어림을 쓰다듬는다.

“전 또, 놀랐습니다. 그런 거라면, 이 심 피디 목숨을 걸고 해결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출연자분들 스케줄에 영향이 갈까 봐…….”

“아, 걱정 마세요. 산하 씨, 다른 출연자분들 발탁할 때 분위기 정확히 모르시죠?”

“갑자기 그건 왜요?”

“이번 예능에 산하 씨가 메인으로 출연한다니까, 연예인들이고 기획사고 난리가 났었어요. 얼굴 제대로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때, 무조건 산하 씨 출연 스케줄에 맞추기로 합의했습니다.”

“제 스케줄에 억지로요?”

심장원이 양손의 검지를 들어 올려 좌우로 까딱거린다.

“오우, 노노노. 무슨 걱정이신지 알겠습니다만, 저 심장원, 평생 갑질 따위는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저 산하 씨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촬영 변동이 있을 수도 있다고 미리 얘기했고, 고려할 사람만 도전하라고 딱 제시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너도 나도 서로 하겠다고 달려들어서, 뽑느라 진땀 좀 뺐습니다.”

“그렇다면야 뭐, 그럼 제 일 마무리 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오늘은 첫 촬영 관련 이야기도 생략하겠습니다. 산하 씨의 영감은 소중하니까요.”

“그건 말씀하셔도 되는데요?”

심 피디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변했다.

“아, 그래요? 그럼 살짝 얘기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 후 심 피디는 이번 첫 촬영의 구체적인 컨셉과 촬영할 분야에 관해 설명한 후 떠나갔다.

이날 늦은 오후.

상익이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내일 스케줄은요. 어디 보자. 미술협회…….”

“잠깐.”

“네?”

“앞으로 스케줄 잡지 마. 있는 것도 다 뒤로 미뤄.”

“!?”

상익이 산하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다 미뤄요?”

“그래.”

“형,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예술적 영감이 찾아왔다고나 할까? 개인 시간이 필요해.”

“아…….”

상익은 곧바로 이해했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취소해야죠. 형이 영감 잡았다고 하면 큰 사고 치잖아요. 그럼 며칠간 스케줄 다 취소하거나 뒤로 미뤄야겠네요. 그런데 얼마나 걸릴까요?”

“대충 열흘 정도 아무 활동도 못 할 것 같아.”

“그렇게나 오래요? 대체 무슨 영감이 오셨길래? 아니, 그 정도면 이러고 계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천재의 영감은 귀한 거니까요.”

“오버하지 말고, 당분간 집에만 있을 거니까 열흘 정도 나 찾지 마. 아마 통화는 못 할 거야. 다 해결되면 내가 전화할게.”

“그럼 식사는요?”

“대충 해 먹거나 배달해야지.”

“에이, 슈퍼스타 집에 아무나 드나들게 할 수는 없죠. 그리고 영감이 와서 집중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 먹어요. 제가 누굽니까? 매니저 아니겠습니까? 식사는 항시 현관 앞에 대령해 놓겠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죠?”

상익은 반드시 그러겠노라는 의지를 표정으로 내보였다.

“그렇게 해 줄래? 역시 강상익 센스.”

쑥스럽게 웃던 상익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떤 분야 영감이에요? 미술? 작곡?”

“글쎄다. 그냥 뭔가 또렷하지 않은 영감?”

“그래요? 형은 재능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요. 그럼 저 얼른 가 볼게요. 영감 방해 안 되게요.”

“그래, 열흘 지나고 보자.”

“네, 형. 파이팅입니다!”

“땡큐!”

상익이 방을 빠져나간 후, 산하는 전화를 걸었다.

“응, 봄아.”

“왜요? 또 나 보고 싶었어요?”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 미리 말해 둘 게 있어서.”

“뭔데요? 살짝 말해 봐요.”

“나, 한 열흘 정도 전화 연락 못 할 것 같아.”

“어머, 왜요? 무슨 일인데요?”

그녀의 깜짝 놀란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산하는 곧바로 답했다.

“갑자기 무언가 영감이 찾아오더라고. 열흘 정도 집에서 머물러야 할 것 같아.”

그의 핑계에, 새봄이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영감. 이해했어요. 뭔가 엄청난 거 만들어 오는 거예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냥 이번 영감은 안개가 낀 것 같아서.”

“그래요? 그렇게 들으니까 뭔가 더 기대감이 드는데요? 알았어요. 이 윤새봄은 열심히 기다릴게요.”

산하가 피식 웃는다.

“열심히?”

“네! 열심히.”

“네, 우리 여친님 배려 감사합니다.”

“에헴,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럼 우리 열흘간 목소리 못 듣겠네요?”

“아마도? 미안해.”

“미안하긴요. 아무쪼록 훌륭한 거 만들어서 나오세요. 우리 남친님 항상 응원해요.”

“고마워. 그런데 전화는 곤란해도 톡은 잠깐씩 해도 돼.”

“아니에요. 간만에 영감님도 오셨는데, 방해해선 안 되죠. 저 신경 쓰지 말고 영감에 집중하세요. 알았죠?”

아니, 봄아 그런 거 아니야. 해도 되는데…….

그녀의 뼈에 사무치는 배려에, 산하는 뭐라고 더 말할 수 없었다.

* * *

<하산해, 중대한 예술적 영감 얻었다>

<자택 칩거 들어간 하산해, 열흘간 활동 중단>

<하산해 팬, 기대 만발, 다 함께 응원 게시글 이벤트 열어>

<천재 예술가 하산해, 대중에게 어떤 감동을 선사할까?>

<하산해 예술적 영감 중대기로, 모두와 연락 중단 후 칩거>

- 오오, 우리 하산해 님 뭐 만들어 나오실까요?

- 아무래도 그림?

- 새로운 레시피일지도 몰라요. 끝내주는 요리?

- 노노 신곡일걸요?

- 이 사람들이 봉막걸리 무시하시나. 봉막걸리급 술에 한 표.

- 에이, 술은 좀 오버다. 예술적 영감이라잖아요.

- 술도 예술이거든요? 천상주 안 마셔 봤죠?

- 기대된다. 하산해 님, 빨리 보여 주세요.

- 열흘아 지나가라!

- 그런데 왜 꼭 열흘일까요?

- 글쎄요. 대충 잡으신 거겠죠.

묵언 수행 1일 차.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던 산하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핑계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싶었다.

다들 너무 심한 기대를 하고 있었고, 부담스러움이 온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실제로는 예술적 영감이 아니라, 페널티 해결을 위한 핑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뭐라도 만들어서 나가야 할 분위기인데?

인터뷰에서 분명히 별거 없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는데.

기사를 왜 이렇게 써 놓은 거야?

꼭 큰일 낼 것처럼 써 놨잖아.

산하는 정오를 가리키는 벽시계를 보았다.

와, 거기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연락이 없네?

예전이었으면 휴대폰에 불이 났겠지만, 뉴스까지 터지고 나자 아무도 연락을 안 했다.

심지어 여자친구 새봄도, 가족도, 친구조차도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다.

짧은 안부 인사마저도 없었다.

방해될까 봐 다들 조심에 조심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오는 거라고는 스팸 전화와 스팸 문자, 공과금 관련 문자 등이 전부였다.

띠링-

[형, 도시락 현관이요.]

그래, 우리 매니저가 있었지.

[땡큐다. 스케줄 취소했다고 문제 생긴 건 없어?]

[형, 제가 문제없게 잘 챙길게요. 형은 영감에 집중! 그럼 전 이만!]

산하는 상익의 단호한 대화 종료에, 뭐라고 더 말을 걸 수 없었다. 더 말을 걸면 차단이라도 할 기세였다.

갑자기 왜 외롭고 쓸쓸하지.

야, 봉씨, 뭐라고 대꾸 좀 해 봐.

[……]

그래, 말을 건 내가 잘못이다.

그래도 우리 봄이는 괜찮지 않을까?

흐흐 웃던 산하가 톡을 보냈다.

[봄아! 뭐 해?]

[산하 씨, 아무리 내 생각나도 영감에 집중해요. 꼭이에요! 이제 당분간 답장 안 해요.]

[뭐라고!?]

그녀는 실제로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았다. 영감에 집중해야 하지만, 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톡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저러는 것일 테고.

와, 이건 답도 없다.

무서운 묵언 수행인데?

다들 왜 이러냐?

왜 이렇게 진지해?

나 이러다 아무 성과 없이 그냥 나가면 죄인 되는 거 아니야?

아우, 갑자기 골치가…….

그냥 푹 쉬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뭐라도 성과를 내야겠어.

* * *

묵언 수행 2일 차, 오후 3시.

산하는 창 너머로 기괴한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들 몇 명이 자취방 건물 주변에 서 있었는데,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건물로 다가오면 붙잡아서 대화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 기자들도 고분고분 물러났다.

뭐지?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당황한 산하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뉴스를 살펴보았다.

<법인 풍류, 하산해 예술 작업 가드 나섰다>

산하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 부담스러워.

장단석 부사장님까지 왜 이래요?

정말 안 되겠다. 뭔가 성과를 이뤄야 해.

뭐가 좋을까?

작곡? 미술? 웹툰?

궁리하던 산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묵언 수행 3일 차, 오전 6시.

산하는 퀭한 눈으로 어느새 날이 밝아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밤새 예술적인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아니, 사실 그냥 봐서는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하나, 대중들이 기대하는 예술적 영감이 담긴 엄청난 작품은 없었다.

정작 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어서였다. 게다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말을 못 하는 것이다 보니, 너무 답답했다.

아, 입은 근질근질하고.

사람도 그립고.

성과는 안 나오고.

부담은 백 배고.

여긴 감옥인가?

허탈하게 웃던 산하는, 침대 위에 털썩 쓰러져 천장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면, 핑계랍시고 생각해 낸 예술적 영감 이야기를 주워 담고 싶었다.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다른 핑계를 찾아봐야 했는데.

심지어 상익은 요즘 연락도 없이, 문만 살짝 노크하고 사라졌다. 문을 열어 보면 고급 도시락이 담긴 봉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곤 했다.

그래도 페널티가 심각하게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

이 과한 기대감, 너무 부담스러워.

영감, 영감! 대체 왜 그런 변명을…….

머리칼을 쥐어뜯던 산하는 베개를 파묻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휴, 큰일 날 뻔.

* * *

묵언 수행 4일 차.

산하는 이제 그만 영감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기로 했다.

아, 몰라.

성과가 없다는데 어쩔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냥 아무거나 해야겠다. 오랜만에 뒹굴면서 웹서핑이나 할까?

그는 컴퓨터를 켜서 여러 곳의 커뮤니티 게시글을 살펴보았다.

- 하산해 뭐 들고 나올까요?

- 그러니까요. 오늘이 4일 차니까, 반 정도 완성?

- 뭔지도 모르면서 뭘 완성해요?

- 기대 만땅임.

- 내일이라도 쓩 하고 튀어나와서, 너 이거 본 적 있어? 죽이지? 하실지도 모름.

- 팬들 난리 나겠네. 아, 물론 저도 팬.

여기도 저기도 하산해에 관한 이야기를 안 나누는 곳이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가 방대하면서도 대단했다는 걸 알려 주는 반응이었다.

그럴수록 산하는 더 부담스러워졌고, 인터넷 창마저도 꺼 버렸다.

와, 나 이러다 폐인 되겠네.

야! 봉씨, 나와! 싸우자!

하나, 메시지는 아무것도 안 떠올랐고, 산하는 눈앞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돌연 피식 웃었다.

거참, 되게 부담스럽네.

다들 기대가 너무 과하다고요.

다시는 영감이 떠올랐네, 뭐 했네, 이런 핑계 안 대야지. 절대. 네버!

이거 완전 스스로 핑계의 굴레에 갇힌 기분이야.

그건 그렇고, 진짜 뭐라도 하자.

뭐 하면 좋을까?

아, 그래. 오랜만에 소설이나 한번 써 보자.

우리 한규생 선생님을 너무 잊고 있었어.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션 - 6일 안에, 미국 세계문학 플랫폼에 소설을 연재하자.]

[보상 - 한규생의 소설 집필 솜씨 92%로 상향.]

오호라, 연재만 하면 된다 이거지?

분량도 상관없고?

이게 웬 횡재냐?

엄청 쉽네.

봉씨, 페널티 준 거 미안해서 선심 쓰는 거야?

그래, 이럴 때도 있어야지.

그럼 분량 조금만 올려서 보상받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천천히 써야겠다.

* * *

미국, 켄터키주의 한 시골 마을.

미국인들이 그야말로 깡촌 중의 깡촌이라고 여기는 이곳에서, 농부 생활 2년 차로 접어든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몬 달튼.

과거 도시에서 살며 유명한 소설평론가로 활약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귀농한 사내였다.

그는 한가롭다 못해 썰렁한 시골 분위기를 좋아했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문화생활이었다.

해서 그가 선택한 것은 당연하게도 인터넷으로 책 읽기였다.

평론은 중단한 지 오래였지만, 책 읽기는 여전히 즐겼다.

그런 그가 애용하는 플랫폼이 있었다. 이곳은 전 세계 소설 애호가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특히 소설가들은 희망과 꿈을 안고 모여들곤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글 올리던 사람 중에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자가 다수 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샤워까지 끝낸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디 보자.

볼 만한 게 있나.

이리저리 뒤적이던 그의 눈에 띈 소설 제목이 있었으니.

<핑계의 굴레>

<작가 - 열흘>

작가가 한국인이야?

어디 보자.

몇 편 없는데, 댓글이 많네?

- 이거 연재 안 해요?

- 아니 여기서 잠시 중단하는 게 말이 됩니까?

- 돌아오라 열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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