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96화 (396/445)

396화 하산해라면 (2)

산하는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지만, 그냥 물어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죠?”

“당신 팬들이 공항을 장악했어요. 세상에, 이런 난리는 처음이에요.”

“이런, 팬을 대신해서 사죄할게요.”

그의 발언에, 그녀가 활짝 웃었다.

“아니요. 당신이 죄송하실 건 없어요. 사실은 나도 당신의 팬이거든요.”

“…….”

“아무튼, 지금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는데, 다른 통로로 입국 절차 밟고 빠져나가시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고민했다.

일부러 팬들이 찾아왔는데, 그냥 몰래 빠져나가기도 뭐 하고.

안 그러기에는 혹시 사고 나면 큰일인데.

어쩌면 좋을까?

그래.

다른 장소에서 팬미팅이라도 짤막하게 한번 해야겠다.

“일단 당신 말대로 할게요. 그런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뭐든 말씀하세요.”

“팬들에게 전해 주세요. 조만간 짧게라도 팬미팅 시간을 가질 테니, 진정하고 돌아가 달라고요. 사고 나면 큰일이잖아요.”

공항 관계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연예인들은 귀찮아하거나, 그저 알겠다고만 하기 일쑤였다.

한데 이 사람은 팬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 팬미팅이요?”

“네.”

그녀는 감탄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해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알겠어요. 그 말은 확실하게 전해 드릴게요. 자, 저를 따라오세요.”

비슷한 시각, 프랑스 언론에서는 하산해에 관한 뉴스를 빠르게 보도했다.

<하산해, 프랑스 입국, 신드롬이 무엇인지 보여 줬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하산해 팬 끊임 없이 몰려들어>

<하산해, ‘팬 다칠까 우려스럽다’ 마르스 광장에서 팬 미팅 예고>

이틀 후.

산하는 파리시의 허가를 받아 마르스 광장에서 팬미팅을 하게 되었다. 공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팬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덩달아 그 소음도 어마어마했다.

산하는 간이 무대 뒤편에서 팬미팅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상익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형,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에펠탑 앞에서 연주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땐 별로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젠 정말 장난 아닌 것 같아요. 뉴스 기사로만 신드롬이라고 듣다가 직접 체험하니까 입이 떡 벌어지네요.”

“파리 들어간다. 입 다물어.”

상익이 그의 농담에 피식 웃었다.

“아, 자존심 상해.”

“왜?”

“나도 모르게 웃었잖아요.”

“웃기잖아.”

“형, 그건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웃기구만.”

“진짜 아닌데. 그건 그렇고 형은 왜 긴장을 하나도 안 해요? 이번 팬미팅은 계획한 것도 아닌데. 신기하다.”

“그러게, 그냥 신나는데? 익숙해져서 그런가?”

“역시 슈퍼스타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 봐요.”

그때, 풍류 전담팀 직원 한 명이 산하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이제 나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산하가 무대 위로 올라서자 소음이 확 줄어들었다. 하나, 그건 일시적이었다.

이내 피부에 소름이 돋을 만큼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팬 일부는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하산해, 결혼하지 마요>

<나랑 결혼해 주세요>

<결혼하면 미워할 거야>

<결혼 축하해요>

<파리 입성 축하드려요>

<오래 머물다가 가 주세요>

산하는 감격했다.

국내 언론에서 매번 신드롬이라고 떠들었지만, 피부로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말을 간단하게라도 배워 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인사했다.

“여러분, 하산해입니다. 반갑습니다.”

팬들도 화답했다. 고막이 멍멍해질 듯한 인사말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들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산하가 다시금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했다. 이번에는 영어였고, 풍류의 하산해 전담팀 직원이 프랑스어로 통역했다.

“정말 많은 분이 오셨네요. 이렇게 된 이상 공연 한번 안 하고 갈 수는 없겠죠?”

“하산해 최고다!”

“좋았어!”

“바로 그거예요!”

“피리 불어 주세요!”

산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별명을 듣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몇 년 전 에펠탑 앞에서 연주한 건 해금이었는데, 사람을 끌어모았다는 이유로 피리 부는 사나이가 돼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인 일부는 산하가 진짜 피리를 분 것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좋습니다. 다들 피리를 불어 달라고 하시네요? 그럼 그냥 넘어갈 수 없죠.”

그는 곧 풍류 직원으로부터 대금을 넘겨받았다.

현재 임광수의 대금 솜씨는 수치상으로 100%였다.

하지만 지난 콘서트 당시 자연의 흐름을 연주에 담았고, 그 후 실질적인 연주 실력은 전성기 임광수의 솜씨를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는 그 당시의 감각을 떠올리며 대금을 파지했고, 이내 따스한 숨결을 취구로 불어넣었다.

후웅-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슬픈 음색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광장의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그의 대표곡 <목멱산에서 널 기다렸어>가 대금 연주로 화했다.

네가 그립고, 만나고 싶고, 숨결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으나,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음률에 절절히 묻어났다.

그 순간, 팬들은 그 슬픈 음색에 빠져들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산하의 대금 연주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봄이건만,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는 듯한 쓸쓸함이 연주에 고스란히 담겨 울려 퍼졌다.

그걸 마지막으로 산하는 대금 연주를 끝냈다.

하나, 광장에 자리한 모두는 숨죽인 채 조용하기만 했다.

과거보다 더욱 발전한 그의 연주 실력은, 문화의 힘이 뜨지도 않았건만 이미 인세의 것이 아니었다.

해서, 모두들 감동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들 중 반 정도는 하산해의 디지털 음원을 듣고 그를 좋아했는데, 현장에서 연주를 듣고 속된 말로 뿅 가 버렸다.

그들이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려 준 산하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소원대로 피리를 불어 드렸습니다. 괜찮았나요?”

곧장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네!”

“최고였어요.”

“사랑해요!”

“하산해!”

“우와, 진짜 죽인다.”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대답 소리가 들렸다. 하나, 워낙 많은 사람이 말하다 보니 자세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웅성거림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산하는 그들의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시금 연주해 달라는 그들의 애원에 산하는 대금을 들어 올렸다.

“그럼 계속 이어 가기 전에, 한 가지 알려 드릴 게 있어요. 사실 이 악기의 정식 명칭은 대금이라고 해요. 이 악기는…….”

산하는 전통 악기의 이름과 유례를 알려 준 후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 갔다. 물론 대금뿐만이 아니라 해금으로도 연주했으며, 노래도 했다.

그냥 공연이나 마찬가지였던 팬미팅은 수 시간 동안 이어졌다.

* * *

<피리 부는 사나이, 또다시 에펠탑 앞으로>

<파리 마르스 광장, 감동으로 물들었다>

<이것이 라이브다. 하산해의 전통 악기 연주, 모두가 숨죽여>

<마음을 움직이는 멜로디, 하산해 신드롬의 이유 밝혀졌다>

<한국 인터넷 쇼핑몰, 전통 악기 구입 문의 폭주>

<하산해 효과, 프랑스에서 폭발>

<임시 팬 미팅, 정식 공연 방불케 했다>

<더욱 확산하는 하산해 신드롬, 프랑스 언론 대거 보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진정한 월드스타 하산해>

<국내 음원 플랫폼 순위, 하산해가 휩쓸었다>

- 내가 저기 있었어야 하는데.

- 나도요.

- 으으, 영상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네요.

- 저는 프랑스 교민이라서 갔었어요. 부럽죠?

- 닥치세요. 부러워 죽겠으니까.

- 아니 무슨 하산해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팬으로 다 끌어들이냐.

- 그야 당연하죠. 슈퍼스타니까.

- 그건 결론이잖아요. 원인이 뭘까요?

- 저도 살다 살다 이 정도 팬덤은 처음 봐요.

- 이것이 바로 하산해의 위엄. 그런데 대체 누가 이 남자 마음을 사로잡은 거야?

- 어떤 여자분인지는 몰라도 부럽다.

하산해의 프랑스 팬미팅은 국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은 전통 악기 제작사와 인터넷 쇼핑몰, 은성식품, 풍류였다.

하산해가 입었던 옷.

하산해가 연주한 악기.

하산해가 대표로 있는 은성식품.

하산해가 만든 콘텐츠.

그와 관련된 것은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이 현상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문체부의 문화정책예술 실장이었다.

그는 하산해가 대단한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졌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현재 일부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한국 전통 악기 배우기 붐이 일고 있다고 했다.

전통 악기 연주를 가르쳐 주는 국내 영상 채널 조회 수가 폭등했고, 쇼핑몰의 전통 악기 품절 사태가 그것이 사실임을 말해 주었다.

실장은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직원도 놀라워하긴 마찬가지였다.

“실장님,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요. 하산해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신드롬이라길래 너무 과장되게 떠드는 줄 알았더니, 진짜였네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실장이 눈을 빛냈다.

“이번 전통국제음악제, 하산해를 어떻게든 참여시켜야 해요. 이젠 우리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잖아요. 이런 사람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문화정책예술 실장의 하산해에 관한 인식은 완벽하게 바뀌었고, 부하 직원도 그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수락하지 않아서요. 사실 수락할 여유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음……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해 봅시다.”

한편, 은성식품은 난리가 났다.

이전에도 유럽 쪽에서의 주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감당 못 할 수준이었다.

동식은 기쁨과 곤란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생각했다.

아, 이 자식 또 프랑스 가서 사고 쳤네.

안 되겠다. 급한 대로 근처 빈 공장이라도 임대해야겠어.

* * *

일명 별들의 잔치라고 불리는 미슐랭 요리 대회.

별 하나부터 세 개까지.

각국의 유명 요리사가 참가하는 이 대회의 관람 티켓이 동나 버렸다.

물론 미슐랭의 이름값도 있지만,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하산해가 참가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하산해의 팬들은 남아 있는 미슐랭 요리대회 티켓을 쓸어가다시피 했다.

“이거 원,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대회 위원장의 말에, 미슐랭 본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은 잘된 일이죠. 생각보다 흥행이 저조했는데, 그 걱정은 덜었잖아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하산해 성적이 얼마나 나올까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문제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하산해 메인 요리가 된장찌개라고 하는 전통 요리라고 하더군요. 냄새가 심각하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싫어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아요.”

“그거 문제군요.”

“네, 까다로운 참가자나 관람객이 항의라도 하면 골치 아프니까요.”

“그건 감수하는 수밖에 없죠. 평가나 잘 받기를 기도합시다. 별도 차감되고, 순위도 너무 낮게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지금 유럽 전역에서 그 사람 팬들이 모여든 거 아시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 참가자들이 하산해에게 일부러 점수 후하게 주는 거 아니냐고 불안해하는 눈치던데, 이럴 때일수록 더 공정하게 해야죠.”

“맞습니다. 이탈리아 대회처럼 되면 곤란하죠. 그래서 외부 심사위원도 대거 초청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 깐깐하기로 유명한데, 아마 하산해도 한국에서처럼 전통 요리로 인기 끌진 못할 겁니다. 워낙 쟁쟁한 요리사가 다 모여 있으니까요.”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물론 하산해를 추천한 평가관 의견은 다른 것 같았지만요. 뭐가 어쨌건 순수 실력으로만 승부하게 해야죠. 이제 며칠 안 남았군요. 잘해 봅시다.”

두 사람은 대회 운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 * *

프랑스의 한 호텔.

산하는 팬미팅을 빙자한 공연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는 계획에 없던 공연을 해서 힘들었지만, 기분은 굉장히 좋았다.

“형, 진짜 멋있었어요.”

“너도 내 팬이냐?”

“당연하죠. 그러니까 매니저 하죠.”

“뻥 치고 있네. 그런데 지금 몇 시야? 슬슬 오실 때 됐지?”

“네, 제가 로비에서 대기하다가 모셔올게요.”

그의 말에, 산하는 호텔 앞 상황을 떠올렸다. 지금 호텔 앞은 그의 팬 일부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하산해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온 거였다.

“그게 좋겠다. 아무래도 당황스러우실 거야.”

“네, 다녀올게요.”

잠시 후.

미슐랭 가이드 평가관 마농 르쉐르가 호텔 객실 내부로 들어섰다. 그녀는 들어서자마자 감탄사부터 내뱉었다.

“산하 씨, 오자마자 사고 치셨던데요?”

“팬미팅이요?”

“그냥 팬미팅이 아니던데요? 지금 호텔 앞에도 그렇고 인터넷도 난리예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자자, 앉으세요.”

이내 산하와 마농 르쉐르는 담소를 주고받다가 본론으로 넘어갔다.

“산하 씨 인기 때문에, 지금 대회 본부에서도 잔뜩 긴장하는 눈치예요.”

“왜요?”

“혹시 산하 씨 순위가 생각보다 낮게 나오면 팬들한테 욕먹을까 봐요.”

“설마요.”

“지금 설마요 하실 때가 아니에요. 팬 중에는 과격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고요.”

“그럼 대회 참가는 안 하는 거로 할까요?”

마농 르쉐르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두 손을 내저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그건 그냥 염려하는 부분이고, 대체적으로 대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아무래도 초창기 대회이다 보니까 흥행을 우려했는데, 산하 씨 참가로 그 걱정도 없어졌거든요.”

그녀의 발언에, 산하가 무언가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마농 르쉐르가 질문을 던졌다.

“아 참, 된장찌개 냄새 때문에 첫 반응이 별로일 텐데, 너무 마음 상하지 마세요. 아마 맛만 보면 뒤집어질 거예요. 물론 많이 겪어 보신 일이겠지만요.”

“참가할 요리는 된장찌개가 아닌데요?”

마농 르쉐르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네?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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