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거에서 재능이 쏟아져-397화 (397/445)

397화 하산해라면 (3)

“네.”

“그걸 안 하시면 어떤 걸 하시려고요?”

“라면이요.”

“네에!?”

“왜 그렇게 놀라세요?”

“진심이세요?”

“그럼요. 진심이죠. 혹시 규정에 어긋나나요?”

“아니요. 어긋나지는 않죠. 전날까지도 바꿀 수 있긴 한데…….”

말을 흐리던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갑자기 왜 라면이신가요? 저는 식당 메인 요리인 된장찌개로 가실 줄 알았는데요?”

“이미 된장찌개는 많은 분들에게 입증이 됐어요. 딱히 평가받을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그보다는 이번에 개발한 라면을 선보이고 싶더라고요.”

산하 씨는 1위 욕심이 없나?

평가받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아니, 그래도 이건 평가라기보다 미슐랭 요리 대회인데…….

당황과 호기심이 뒤섞인 그녀가 산하에게 질문했다.

“라면을 새로 개발하셨어요? 시중에 선보이신 적이 있나요? 반응은 어땠어요?”

“최근에 개발한 거라 시중에 선보인 적은 없고요. 몇 명만 맛봤는데, 다들 괜찮다고 하더군요. 곧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예정입니다.”

“네? 공장이요?”

“걱정 마세요. 제가 만드는 라면 맛은 대량 생산과는 많이 다를 테니까요.”

그의 표정엔 고집이 서려 있었고, 그녀는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왜 우승은 거저먹을 수 있는 요리를 놔두고 다른 걸…….

안 되겠어.

혹시 모르니까, 다른 방향으로 설득해 보자.

뭐가 좋을까?

아, 그래.

그때 산하 씨가 만든 빵이 대단했지? 차라리 빵을 추가하면 될 것 같아.

찰나의 고민을 끝낸 마농 르쉐르가 말했다.

“그럼, 거기에 빵도 하나 더 추가하시는 건 어때요? 어차피 최대 두 가지 요리까지 참가 가능하고,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것도 괜찮네요.”

그의 흔쾌한 대답에 마농 르쉐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선방은 하겠어.

그나저나 준비는 잘해 오셨나 물어봐야겠다.

“개인적인 재료는 가져오셨죠?”

“물론이죠.”

“저야 산하 씨를 믿긴 하지만, 형식적인 질문 하나만 할게요. 혹시 마약이라거나 이런 건 없겠죠?”

“마약이요?”

“네, 언젠가 다른 나라 맛집에서 마약이 검출된 적이 있거든요. 대회 본부에서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협조를 받아서 마약 탐지견까지 대동할 예정이에요.”

“와,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 황당하죠?”

“네, 어이없네요. 저는 그런 건 전혀 안 쓰니까 걱정 마세요.”

“네, 그럼 다른 궁금한 건 없으시고요?”

“네, 없어요.”

“알겠어요. 대회 당일까지 몸조심하시고요. 그날 뵐게요.”

그녀가 돌아간 후, 상익이 산하에게 말을 걸었다.

“형, 아까 그분 눈빛 봤어요?”

“눈빛?”

“막막 형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요?”

“비행기에서도 그러더니, 또 시작이네. 너 어쩌다 이렇게 됐냐?”

“아니, 형. 진짠데.”

“요리를 좋아하는 거겠지. 헛소리 그만하고 푹 쉬어 둬. 이번처럼 한가한 날은 별로 없을 테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상익이 말했다.

“알았어요. 아 참, 어디 혼자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안 나갈 테니까, 푹 쉬세요. 강상익 씨.”

한편,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탄 마농 르쉐르는 생각에 빠졌다.

라면?

대체 어떤 라면을 개발했길래?

그보다 이번 대회에 라면 장인이 대거 참석했단 말이야. 이건 제대로 못 하면 비교 많이 될 텐데.

그나마 빵도 굽기로 해서 다행이야.

라면이 조금 그렇더라도 그 빵 한번 맛보면 못 헤어나오지.

그래, 조금 아쉽지만, 이번 요리 메인은 빵이야.

이번 대회 참가한 제빵사들 긴장 좀 타셔야 할걸?

기분 좋게 웃던 그녀는 차를 출발시켰다.

* * *

<프로에게 배운다>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방송국 측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게 아니라 계속 유지했다.

언제라도 하산해가 돌아오면 어떻게든 촬영해서 방영하기 위해서였다.

이즈음, 이 프로그램을 맛본 시청자들은 다른 예능을 보고 나면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거기에 더해 하산해라면? 이라는 유행어가 번지기 시작했다.

- 아, 하산해라면 이거 어떻게 했을까요?

- 그냥 파파팍, 다 해치워 버렸겠죠.

- 아니, 얼른 하면 좋겠는데, 하산해는 외국 가 버렸고, 프로에게 배운다 어떻게 되는 거임?

- 방송국도 아쉬워서 폐지도 못 하고 어정쩡하게 있으니까, 어떻게 될지는 하늘만이 아실걸요?

- 프로에게 배운다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계속 결방하니까 그게 엄청 재미있었다는 걸 알아 버렸어요.

- 맞아요. 요새 다른 예능 시시해요.

심장원은 시청자들의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하산해를 놓지 못했다.

게다가 방송국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며 도와주고 있었다.

하나,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하산해가 귀국했을 때도 촬영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곤란했다.

그만큼 시간이 없는 사람이니까.

어디 참가할 프로 없나?

제발.

그는 프로그램 결방 이후로 프로를 많이 찾아갔다.

분야도 다양했다.

농구, 체스, 당구, 축구, 바리스타, 수영 등등등.

현재 국내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유명세가 제법 있는 프로들이었다.

하지만 설득 결과는 모조리 거절이었다.

시간이 없다거나, 카메라 울렁증이라거나, 그런 데 관심 없다거나, 변명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때,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응, 왜?”

“피디님, 방송국으로 연락이 왔는데요. 참가하겠다는 프로가 있습니다.”

심 피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진짜야? 거짓말 아니지? 누군데? 뭐 하시는 분이야?”

“외국인인데요?”

“뭐? 외국인?”

“네.”

“어……. 외국인이라도 프로면 되지. 어떤 분인데?”

“유도 선수요.”

“어느 나라?”

“일본인이요. 올림픽 2관왕 하신 분인데요. 조금 전에…….”

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심 피디가 턱을 쓰다듬었다.

“유도라……. 혹시나 산하 씨 다치면 곤란한데. 아쉽긴 해도, 그건 잠시 보류하고, 다른 프로는?”

“전혀 없는데요?”

“음……. 알았어.”

실망한 심 피디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어디 괜찮은 프로 없나?

안 되면, 유도라도…….

그때, 그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발신자를 살펴보니 지난번에 찾아갔던 프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오, 네. 안녕하세요?”

“저기,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요?”

심장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에 따라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럼요. 당연히 유효하죠.”

* * *

은성식품은 산하가 연구·개발한 라면 생산 절차에 돌입했고, 홍보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성식품, 하산해라면 출시 예고>

- 은성식품 웃긴다. 하산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말 유행 타니까, 라면 이름도 하산해라면이네.

- 뭐, 저 회사 대표가 하산해니까 상관없죠.

- 그런데 또 드럽게 맛없는 거 아닙니까?

- 저도 은성라면 기대하고 먹었다가 완전 실망함.

- 다시는 안 사 먹겠다고 결심했는데, 다시 한번 도전?

- 우리 하산해 님 봐서라도 한 봉지 사 줘야겠다.

그 시각, 산하는 미슐랭 요리 대회장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와, 또 봐도 놀랍다.”

상익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진짜 어마어마해요.”

그들의 놀람처럼, 미슐랭 요리 대회는 그 시설부터 남달랐다.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조리장은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 시설을 방불케 했다.

개개인이 자신의 요리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제빵이나 피자 분야의 참가자도 많았기에, 화덕도 언제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가스 화덕부터 장작 화덕까지.

그에 따라 수용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고, 미슐랭 요리 대회는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데, 오늘이 산하의 참가일이었다.

“형, 요리 대회가 다 이런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대회에 돈 무지막지하게 썼네.”

“왠지 모르게 제가 다 기죽네요. 아무튼 형 꼭 1위 하세요.”

“그래, 고맙다.”

산하는 그 말을 끝내자마자 자신의 조리장을 찾기 시작했다.

23번이 어디지?

그때, 마농 르쉐르가 그를 발견하고 얼른 다가오더니 말했다.

“산하 씨, 저 따라오세요. 이쪽이에요.”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대회 위원장이 대회 참가 규정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미슐랭 요리 대회는 특이하게도 보조를 둘 수가 없고, 대회 참가자 1인이 홀로 음식을 조리해야 했다.

단지 시간이 굉장히 많이 주어졌다.

각국의 미슐랭 요리사가 만드는 요리의 특성과 조리 시간이 다른 것을 배려한 것이었다.

게다가 조리장의 시설은 비슷했지만, 동선이나 규모는 조금씩 달랐다. 대회 참가자의 사전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던 산하에게 마농 르쉐르가 말했다.

“말 안 해도 잘하시겠지만, 시간 넉넉하니까 조바심 두지 말고 하세요. 사실 제한 시간은 크게 의미도 없는 거 아시죠?”

산하는 시간이 넉넉하지만 늘 하던 대로 빠르게 해치우고 숙소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티는 내지 않고 말했다.

“알죠. 맛있는 요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미슐랭 일반 평가와는 조금 다르다는 거 꼭 명심하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하의 시야에 메시지가 떴다.

[미션 - 2시간 안에 모든 요리를 완성하고 버튼을 누르자.]

[보상 - 모든 재능 중에서, 한 가지 무작위로 상향.]

봉씨, 또 너냐?

빠르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말걸.

어쩐지 요새 잠잠하더라.

또 땀나게 움직여야겠네.

반죽하고, 숙성하고, 굽고, 육수 끓이고…….

다 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빵 반죽에도 유산균을 넣어 봐야 하나?

라면 만들 때 보니까 유산균 넣으면 반죽 숙성이 빠르던데.

하지만, 빵은 맛이 어떨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산하 씨?”

“네?”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뭐부터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정리 좀 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슬슬 시작하겠네요. 저는 관람석에서 응원할게요.”

산하는 그녀가 떠나가고 몇 분 후 요리에 돌입했다. 우선 밀가루를 반죽하고 유산균을 섞어서 숙성부터 시켜야 했다.

일단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까, 맛을 보장하려면 포인트라도 사용해야겠다.

[1포인트를 사용하여 문화의 힘을 발동시켰습니다.]

[박산하의 요리 솜씨가, 현재 가진 솜씨 대비, 일시적으로 27% 상향됩니다.]

[제한 시간 20분.]

바쁘다 바빠.

얼른 만들자.

빵과 라면 반죽을 재빨리 끝낸 산하는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육수가 완성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기에, 산하는 내부에 달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곳은 사방이 가로막힌 야외였는데, 화덕이 준비되어 있었다.

집 마당에 있는 것보다 규모가 큰 화덕이었는데, 대회 관계자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준비해 드릴까요?”

“네.”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장작.

산하는 곧장 조리장으로 돌아가 빵 반죽을 살펴보았다. 편세환의 제빵 솜씨가 100%를 달성한 후로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잘돼야 할 텐데.

한참 후.

대회장의 모든 요리사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한창 만들고 있을 때였다.

[3분 17초 남았습니다.]

산하는 칸막이벽에 붙은 버튼을 눌렀다.

요리를 완성했으니, 평가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2시간 안에 모든 요리를 완성하고 버튼을 누르자, 완료되었습니다.]

[홍칠성의 전통주 빚는 솜씨가 100%로 상향되었습니다.]

[재능 포인트 1점이 적립되었습니다.]

와, 1점밖에 안 주냐?

3점이나 사용했는데.

짜다 짜.

하긴, 잘 주지도 않던데, 이게 어디냐?

그나저나 라면이나 빵이나 완전 미쳤는데?

* * *

심사위원 수십 명은 대회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기다리기 지루하군요. 우승자는 누가 될 것 같습니까?”

“글쎄요. 맛있게 만드는 사람이요?”

“명답이네요.”

“그건 그렇고, 이번에…….”

그가 무언가 말을 더 이어 가려던 무렵이었다. 벽에 붙어 있는 알림판에 불이 들어오며 버저 음이 울렸다.

모든 심사위원이 당황했다.

대회가 치러진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슐랭 요리 대회는 시간제한이 의미 없을 만큼 굉장히 많이 주어지고, 요리사들은 만들어서 맛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만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요리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을 굉장히 길게 사용한다는 뜻이었다.

이 대회는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 즉 자존심 싸움이기 때문이었다. 요리의 작은 것 하나에도 점수가 달라질 수 있었다.

게다가 순위가 너무 낮게 나오면 기존의 별 숫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한데, 고작 두 시간 정도 만에 완성했다는 알림이라니.

“잘못 누른 거겠죠?”

“당연하죠. 설마 진심으로 눌렀겠어요?”

“난 또 놀랐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보죠.”

“보나 마나죠. 설마 이 시간에 완성일까요?”

잠시 후.

그들의 당황이 가라앉은 무렵이었다. 대회 관계자가 실내로 들어섰다.

“23번 참가자께서 심사를 요청한 게 맞다고 하십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놀라서 되물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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