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화 열흘 만에 (2)
<뉴그린을 달군 ‘핑계의 굴레’, 책으로 펴낸다>
<작가 열흘, 출간 계기로 얼굴 드러내나?>
<작가 열흘과 계약한 행운의 출판사는?>
<대박은 확정, 핑계의 굴레 출간일은?>
부사장 장단석은 이 뉴스를 보고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이게 다 뭡니까? 대체 누가 출간 사실을 흘렸어요?”
“죄송합니다.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는데도…….”
“누군지는 몰라도, ‘어차피 곧 출간할 거니까 말해도 상관없겠지’ 이렇게 생각한 거 아닙니까?”
“…….”
장단석은 아쉽다는 한숨을 내뱉었다.
“깜짝 출간하려 했더니, 그러긴 힘들어졌네요. 그나마 대표님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안 밝혀져서 다행이긴 한데, 잠깐! 이거 혹시 인쇄소에서 퍼져 나간 거 아니에요?”
“거긴 절대 아닐 겁니다. 만약에 소문내면 다음 거래 재고할 거라고 했거든요.”
“그래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네요. 이번 일을 계기로 보안을 강화해야겠어요. 나중에 이보다 중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누가 또 누설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네, 부사장님. 대책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하산해 전담 팀장이 빠져나가자, 장단석은 최대한 빨리 책을 인쇄해서 배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작가 열흘이 하산해라는 게 밝혀져서 산통 다 깨질 것 같았다.
대체 누구야?
아, 그래. 이렇게 된 거 사실을 섞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어.
대표님이 허락하실는지 모르겠지만.
* * *
하산해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뉴스 하나가 떴다.
<작가 면벽, 신작 출간 기념 사인회 연다>
- 오, 우리 하산해 님 바쁜 중에도 작품 내시네.
- 그러게요. 체력도 좋으시지.
- 그런데 타이밍이 별로네요. 열흘 작가님도 조만간 출간한다는데.
- 뭐, 열흘 작가님은 구체적으로 뭐가 나온 게 없으니까요. 언제 나올지는 모르죠.
- 그런데 하산해 님이 지금 시기에 내는 거 봐선, 경쟁의식에 불붙은 거 같지 않아요?
- 그러네요. 천재도 천재를 만나니 불타오르나 봐요.
- 에이 아니죠. 면벽이 어디까지나 사람 중에 천재적인 필력이라면, 열흘은 신이 내린 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존의 면벽 작가 작품 애독자들도 열흘 쪽에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라네요.
- 왠지 흥미진진합니다. 그래도 하산해 신작이니까 뭐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누가 이길 것인가.
- 당연히 열흘 작가죠. 이젠 비교가 안 된다니까요.
- 두 분 다 우리나라 사람인데, 그냥 같이 응원해요.
- 맞아요. 왜 비교하고 그래요?
- 하산해도 지는 분야가 있네. 이러니까 왠지 사람 냄새나지 않아요?
- 그러네요. 킁킁, 하산해 사람 냄새나.
이즈음, BJ들은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영상을 제작했다. ‘하산해’라는 주제만 들어갔다 하면 조회 수가 대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산해, 문학 천재성은 열흘보다 한 수 아래?>
<하산해도 사람이다, 경쟁의식 불타올라 신작 출간>
<뉴그린을 불태운 작가 열흘, 하산해가 이길 수 있을까?>
<작가 면벽 vs 작가 열흘>
풍류 부사장 장단석은 네티즌의 반응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모두에게서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부사장님, 뭐가 그렇게 좋으십니까?”
“당연히 좋죠. 우리 대표님이 면벽이고, 면벽이 열흘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깜짝쇼도 좋지만, 적당히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전 이번에 그냥 발표하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장단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절대 안 됩니다. 그냥 출간해도 크게 흥행할 작품이긴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아주 그냥, 이참에 불을 질러 버려야죠.”
그가 흐흐흐 웃고 있자, 산하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찰칵-
“대표님, 절 왜 찍으십니까……?”
“부사장님 표정이 상당히 재미있어서요. 눈이 번득거리는 게, 꼭 남의 집 장독대 깨러 가는 악동 같았습니다.”
장단석이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제가 그랬나요?”
“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전 그냥 사업적인 관점에서…….”
“조심은요.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부사장님 새로운 면모를 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단석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도 될까요?”
“네,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말씀하신 대로 사업적인 관점에서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런 여러 이야기가 합쳐지면 화젯거리도 늘어나겠죠.”
장단석이 두 손을 짝하고 마주쳤다.
“대표님, 바로 그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주중으로 서점에 배포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급하게요? 아, 저번에 누가 정보 흘린 것 때문에요?”
“네, 누가 방해하기 전에 후다닥 해치우려고요.”
“그래요? 그럼 작은 아이디어 하나 내도 될까요? 사인회 시기도 기존 필명에 맞게, 출간 발표 후 열흘째 되는 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장단석이 감탄사를 흘렸다.
“오! 그건 또 생각 못 했네요.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별말씀을요.”
“이렇게 된 이상, 대표님 사인회 하는 날 서점에서 대기해야겠네요.”
“일은 안 하시고요?”
“일은 조금 천천히 해도 되지만, 이런 구경은 돈 주고도 못 볼 거 아닙니까?”
“부사장님 내면에 그런 모습이 숨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그의 말에 장단석은 그저 웃기만 했고, 같이 웃던 산하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참, 그리고 준비해 주실 게 있습니다.”
“준비요? 말씀하십시오.”
“예전에 말씀드렸던 미국 콘서트요.”
“아, 그 예술 종합 콘서트요? 안 그래도 그거 어떻게 하시려나 언제 한번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날짜는 정하셨고요?”
“날짜는 미정이고요. 일단 큰 틀은 잡았어요.”
“큰 틀이요?”
“네, 우선 확정적인 것만 말씀드리자면, 온라인으로 할 거라는 겁니다.”
“네!?”
* * *
<핑계의 굴레> 출간일을 이틀 정도 남겨둔 어느 날이었다. 산하는 본가에 들렀다.
윤정이 한 손을 번쩍 들어 인사했다.
“박산하, 하이!”
“아버지랑 어머니는?”
“요 앞으로 산책가셨어.”
“그래? 그런데 넌 2층 달라더니, 왜 매일 여기 있냐?”
“엄마, 아빠 쓸쓸하실 수도 있잖아. 밤에는 올라가.”
“오, 박윤땡 그런 배려도 할 줄 알아?”
“뭐래, 내가 소문난 효녀야. 아! 맞다. 내가 노래 하나 만들었는데, 한번 들어 볼래?”
산하는 뜬금없는 여동생의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래? 네가 작곡을 했다고? 진짜?”
“그래, 일단 들어 봐. 빌보드 차트에 오를 만한 명곡일 수도 있어.”
“그래, 뭐 일단 해 봐. 들어는 줄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윤정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멜로디와 가사는 단조롭지만 흥 돋우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백 원, 삼백 원, 사백 원! 오백 원, 육백 원, 칠백 원! 팔백 원 구백 원 모두 안 돼요.”
그는 여동생의 노래를 듣자마자 어이없어했다.
“그게 무슨 노래야? 뭐? 팔백 원? 구백 원?”
“딱 들으면 몰라?”
“이런 돌아이.”
“우쒸, 나처럼 이쁜 돌아이 봤어?”
“닥쳐! 그래서 그게 무슨 노래야?”
“하산해라면 주제가.”
“뭐?”
“하산해라면 주제가라고, 하산해라면은 천 원이라는 뜻이지. 어때? CF에 한번 써 보지 않을래?”
“……너 오늘 약 안 먹었냐?”
“흥이다. 싫으면 마라. 열흘 작가한테 왕창 깨져 버려라. 신작도 안 보여 주고.”
윤정은 콧방귀를 뀌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산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가 날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단 말이야.
외로워서 그러나?
소개팅이라도 해 줄까?
한편, 윤수열은 본가에 들러 아버지와 대화 중이었다.
“안에서 새고 밖에서 새도 오냐오냐해 줬더니, 뭐? 우리 사장님?”
“제가 아르바이트생이니까 우리 사장님 맞는데요?”
옐로우 마트 대표는 아들의 발언에 뒷목을 잡았다가, 심호흡으로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윤수열, 네가 먹고 싸고 자란 곳이 어디야?”
“이 집이요.”
“이 집은 무슨 돈으로 유지했을까?”
“할아버지가 재산을 왕창 물…….”
“윤수열!”
“알았어요. 옐로우 마트요.”
“그래, 옐로우 마트지. 옐로우 마트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거야. 그런 우리 사업체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데, 잘릴까 봐 말을 못 하겠어요? 요리가 너무 맛있어? 그게 말이야? 이 다급한 아버지 모습은 눈에도 안 보여?”
“에이, 아버지도 참. 누가 들으면 옐로우 마트가 구멍가게인 줄 알겠어요. 대기업 계열사라서 시장도 지배하고, 먹여 살렸다기보다는, 돈이 넘쳐서 남아돌았죠. 게다가 하산해라면 없다고 옐로우 마트가 망할 리는 없잖아요. 손해나 조금 보겠지.”
“뭐라고? 이놈이 진짜!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
“유치하게 편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도 우리 사장님 요리 한번 드셔 보시면 저랑 비슷한 생각 드실 거예요.”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겨우 인내하며 말했다.
“됐다! 그런 헛소리 그만하고, 보름, 아니지 열흘 안에 거래나 성사시켜.”
“그렇게는 못 합니다.”
“뭐!?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렇게는 못 한다고요.”
옐로우 마트 대표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원래도 어딘가 이상한 아들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 애초에 거기 간 목적이 뭐야? 자꾸 이렇게 나올 거야? 이러면 한 푼도 안 물려주는 수가 있어?”
“괜찮아요. 열심히 하면 사장님이 정직원으로 채용해 준다고 하셨거든요.”
아들의 대답에, 옐로우 마트 대표는 크게 화를 냈다.
“뭐, 인마!? 이놈의 자식이!”
“아, 맞다. 아버지. 저 오늘 빨리 가 봐야 해요. 오후에 만두 형님이랑 일 도와드리기로 했거든요.”
그는 일을 도와준 후 나올 간식 생각에 헤벌쭉 웃었다.
“아버지, 나중에 뵙겠습니다. 혹시나 기회 되면 슬쩍 얘기는 해 볼게요.”
아들이 구십 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사라지자, 그는 허망한 표정으로 현관 쪽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들이 했던 말 중에서 의문을 느꼈다.
만두 형님?
그건 또 누구야?
* * *
작가 면벽의 신작 출간일이 되었다. 팬들은 책 때문이 아니라 하산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인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대형 서점 바깥쪽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여러분, 밀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사인회 당첨되신 분은 여기 앞쪽으로 오세요. 저한테 문자 보여 주시면 됩니다.”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사인회는 언제 시작해요?”
어휴 진짜, 문자로 안내했는데도 또 물어보네.
그는 내심과는 달리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정각에 시작할 겁니다.”
한참 후.
이번 사인회를 취재하기 위해 출동한 기자가 투덜거렸다.
보나 마나 작가 열흘이 최고지. 무슨 놈의 비교 기사를 올리래?
이미 뉴그린에서는 작가 열흘 하면 알아주는구만.
차라리 하산해 특집 기사로 가는 게 낫지.
그 바쁜 와중에도 신작을 써냈다. 훌륭하더라. 뭐, 이런 내용으로 가면 팬도 좋고 하산해도 좋고 우리도 좋고, 얼마나 좋아?
괜히 열흘 작가랑 하산해 비교하다가 팬들한테 욕먹을 일 있나?
하여간에 편집장 뭘 몰라요.
그때였다. 서점 관계자가 외쳤다.
“자, 사인회 시작합니다. 사인받으시고 바로 결제하시면 됩니다.”
이번 사인회는 산하가 책에 사인해서 팬에게 건네고, 그걸 바로 옆 테이블에서 결제하는 시스템이었다.
1등으로 서 있던 하산해의 팬이 산하와 마주 앉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산하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1등이시네요?”
“네, 밤새도록 기다렸어요.”
“아니, 사인회 당첨되셨는데, 왜 줄 서셨어요?”
“하산해 님 1등으로 보려고요.”
“그래요? 와, 정말 감사합니다. 사인 멋지게 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산하는 곁에 쌓여 있는 책 하나를 들어서 첫 장을 열더니 사인을 했다. 하산해의 팬은 그 책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산하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자, 다 됐습니다. 여기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책을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서 서점 직원이 말했다.
“결제 도와드릴게요.”
“네, 여기요.”
책을 내밀던 그녀는 그제야 책 제목을 보게 되었다.
<핑계의 굴레>
<저자 - 면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