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민원 (1)
그녀는 다급히 눈을 비볐다.
핑계의 굴레?
이건 올해 내내 뉴스에서 하산해 님 작품이랑 비교하고 떠들어대던 소설 제목이잖아?
이 기분 나쁜 작가 소설 제목이 왜 여기에?
그녀는 천재 작가 열흘의 작품 제목이 왜 여기에 박혀 있는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결제가 끝나자마자 책을 들어 올려 눈을 가까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책 제목은 똑같았다.
저자는 면벽인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심지어 띠지에는, ‘뉴그린을 강타한 핑계의 굴레’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가 당황하여 책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무렵이었다. 두 번째로 사인을 받던 팬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 나왔다.
“이, 이거 인쇄 잘못된 거 아닌가요?”
기자들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다 말고 멈칫했다. 그들은 멀리서 사인회장의 전체적인 풍경을 담고 있던 중이었다.
산하의 작품 취재는 뒷전이었다.
“아까보다 소란스러운데? 광팬이라도 납셨나?”
동료 기자의 질문에 기자 한 명이 답했다.
“뭐 하산해 정도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나저나 왜 다들 나 따라 해? 사인회장에 왔으면 작품 취재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따라 하기는 무슨. 유 기자가 따라 한 거 아니야?”
“에이, 쌍둥이 같은 기사만 나오겠네. 난 저리로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자 한 명이 재빨리 산하에게 다가갔다. 주변은 조금 전과 달리 더 소란스러웠다.
“우와, 들었어? 하산해 님이 열흘 작가래.”
“역시 우리 하산해 님이야.”
“우리 하산해 님 까던 놈들 다 나와!”
팬의 대화를 엿듣던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산하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가 앉은 의자 옆으로는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핑계의 굴레?
이, 이게 뭐야?
입을 헤 벌리던 기자가 다급히 외쳤다.
“세한일보 김상철입니다. 사인회 도중에 죄송하지만,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산하가 고개를 돌리자, 김상철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질문부터 내뱉었다.
“신작 제목이 왜 작가 열흘의 작품 제목과 같은 거죠?”
“그거 방금 말했는데요. 못 들으셨구나.”
“네?”
“열흘도 제 필명입니다.”
“뭐라고요!?”
김상철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야?”
“김 기자, 뭔데 뭔데?”
“무슨 일이야?”
그는 동료 기자들의 질문세례에도 멍하니 중얼거리기만 했다.
작가 열흘이 하산해라고?
진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이날 오후.
각종 언론매체를 비롯해 인터넷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작가 열흘, 뚜껑 열어 보니 하산해>
<뉴그린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작가 열흘, 하산해였다>
<면벽과 열흘은 동일인물>
<문학계 원로, 도무지 믿을 수 없다>
<하산해, ‘핑계의 굴레는 실험작,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하다’>
뉴스 기사가 뜨자 네티즌들의 첫 댓글 반응은 비슷했다.
- 미친……
- 와……
- 이게 무슨……
- 헐……
- 세상에……
- 컹……
놀란 그들은 한참 후에나 감정을 장문으로 표출했다.
- 그러니까 열흘이 면벽이고, 면벽이 열흘이고, 열흘이 하산해라는 거죠?
- 사람 냄새 난다고 떠들던 사람 어디 갔어요? 사람 아닌데?
- 열흘 안에 하산해 있다?
-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었네?
-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고 계셨네?
- 두 작가 비교하던 뉴스 기자들은 다 어디 갔죠? 말 좀 해 봐요.
- 아니, 문체도 그렇고, 하산해님은 카멜레온이야? 알고 봐도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거 같은데?
-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 실험작이라니, 아니 무슨 실험작 수준이 이래?
- 그러니까요.
- 따흐흑, 신이시여. 왜 제게는 식충이 재능만 주신 겁니까? 저게 진정 사람입니까?
- 그럼 이거 어떻게 되는 건가요? 뉴그린에서는 하산해보다 작가 열흘이 신급인데.
- 그럼 하산해가 신이 되겠죠.
- 진짜 돌았네.
이 정보를 접한 BJ들은 당황했고, 업로드했던 영상을 내리는 이도 있었다.
하나, 일부 BJ는 이것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연장선이라며 그대로 놔두었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몰려와 댓글을 달았다.
- 이거 그만 지워야 하지 않아요?
- 문학 분야만큼은 하산해가 열흘한테 못 비빈다면서요?
- 같은 사람 가지고 아주 그냥 뜯고 씹고 난리 부르스였네.
- 에라이! 내리라고.
- 내가 우리 하산해 님 건들지 말라고 했죠? 우리 하산해 님이 이런 분입니다.
그 시각, 플랫폼 뉴그린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뉴그린에서는 작가 열흘을 모르면 신입이거나 바보 둘 중 하나라는 농담도 있었다.
그 정도로 유명하다 보니, 이번 소식은 뉴그린 운영자와 이용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면벽보다는 열흘이 몇 배로 대단하다며 추켜세우던 이들은 모조리 입을 닫았고, 일부는 하산해의 두 가지 필명으로 나온 작품을 다시 비교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놀란 이는 핑계의 굴레를 극찬했던 시몬 달튼이었다.
이게 정말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었나?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글에 습관이나 기존의 흔적이 계속 묻어나기 마련인데.
초반 이후부터는 감쪽같이 바뀌었어.
단지 초반 부분만 작가 면벽에게 약간의 영향을 받은 정도로 보이잖아.
자세히 보더라도, 전혀 다른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야.
이게 어딜 봐서 같은 작가야?
게다가 이 놀라운 발전 속도라니…….
놀라워하던 그는 SNS에 자신의 심중을 짤막하게 전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천재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감탄마저도 나오지 않는다.>
* * *
공중파 방송에서는 저녁 뉴스, 아홉 시 뉴스, 자정 뉴스를 가리지 않고 하산해에 관해 쉴 새 없이 보도했다.
그 상황은 다음날도 이어졌다.
아홉 시 뉴스 시간,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어제 일이죠? 하산해 씨가 신작 발표를 한다고 해서 많은 팬들이 몰려갔는데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면서요?”
“맞습니다. 문학 분야에서 불세출의 인재로 거론되었고, 여러 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던 작가 열흘. 그 작가가 다름 아닌 하산해로 밝혀졌습니다.”
“문학계는 지금 큰 충격에 빠졌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 바쁜 활동 와중에 전혀 다른 문체와 느낌으로, 이런 수준의 작품을 써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작가 열흘이 최초로 작품을 선보였던 뉴그린, 이곳 사람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당혹감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작가 열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산해와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항의하고, 작가 면벽을 깎아내리기도 한 게 바로 그곳이거든요.”
“제가 같은 입장이라고 해도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자, 현지에서 더 상세한 정보 들어 보겠습니다. 정영주 특파원?”
곧 화면이 전환되며 한 여성이 화면에 나타났다.
“네, 저는 지금 로스앤젤레스에 나와 있습니다.”
“뉴그린에서 작가 열흘의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세계적인 문학 플랫폼 뉴그린에서 하산해는 몰라도 작가 열흘은 다 안다고 할 정도로, 작가 열흘에 대한 사랑이 뜨거웠습니다. 그만큼 작가 열흘의 뉴그린에서의 입지가 대단했는데요, 하산해가 열흘 작가는 본인이라고 밝히면서 이곳은 침묵에 빠져들었습니다.”
“더 상세하게 알려 주실 분을 모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뉴그린의 소모임 10, 다시 말해 작가 열흘을 사랑하는 소모임 운영진 한 분을 어렵사리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모임 10의 운영진 윌리엄입니다.”
“윌리엄 씨, 뉴그린에서 작가 열흘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는 인간의 가치와 삶의 방정식을 일깨워 준 천재 그 이상의 작가입니다. 뉴그린의 모든 문학인은 그를 사랑했고, 그의 작품이 나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한데, 그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재 작가가 하산해로 밝혀졌지 않습니까? 지금 뉴그린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다들 충격에 빠졌습니다. 기존에 면벽 작가와 열흘 작가의 문학성 우위 투표를 해서, 압도적으로 열흘 작가에게 표가 몰린 적도 있고, 그만큼 열흘 작가를 사랑했는데요. 알고 보니 모두가 한 사람이었던 거죠. 저도 지금 이게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네, 작가 열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겠네요. 그것 말고 또 다른 일도 있었다면서요?”
“네. 오늘 오전 하산해의 메인 팬카페에서 우리 소모임에 연합 합류 제안을 해 왔습니다. 우리 소모임 운영진과 회원은 이를 투표에 부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하산해 팬카페는 수많은 연합을 결성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또 하나의 모임이 합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파원은 윌리엄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눴고, 정보 전달을 마무리하자 화면이 전환되었다.
“네, 하산해 씨가 또 한 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국내와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의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의 아들이 자랑스러운 밤입니다. QBS 아홉 시 뉴스 마치겠습니다.”
뉴스를 멍하니 바라보던 윤정은 문득 얼마 전 오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열흘 작가한테 왕창 깨져 버려라”
그녀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한껏 달아올랐다.
“죽었어, 박산하. 전화 받아. 받으라고!”
하지만 산하의 전화기는 어제부터 꺼져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보던 윤정이 돌연 푸하하 웃었다.
친구들 일부는 자신의 오빠를 깔 게 없자, 다른 방식으로 깎아내렸기 때문이었다.
“너네 오빠 문학 쪽은 조금 약한 것 같더라? 열흘이랑 비교되던데?”
이것들, 다 죽었어!
한편, 산하는 혀를 내둘렀다. 어제부터 휴대폰이 뜨거워질 정도로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화를 받다가 못 견뎌서 전화를 꺼 놓은 참이었다.
심지어 기자들은 어제부터 풍류 건물 앞에서 대거 진을 치고 있었다. 며칠이 흘러도 떠나지 않을 기세였다.
“휴, 예상한 것보다 더 난리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제 마음에 쏙 드는 성과는 있었습니다.”
“성과요?”
“네, 대표님이랑 작품 비교질하던 사람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부사장 장단석이 하하 웃자, 산하가 피식 웃었다.
“부사장님도 참. 열흘이 저인 거 미리 아셨으면서.”
“아는 거 하고, 대표님 욕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북미에서도 대표님 예명을 모르는 사람이 잘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 온라인 콘서트 열기는 딱 좋겠네요.”
장단석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온라인이면 국내에서 해도 되는데, 왜 굳이 미국으로 가십니까? 저한테만 살짝 알려 주시죠?”
산하는 속으로 말했다.
미션 때문에요.
“글쎄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작가 열흘의 정체가 밝혀지며, 온 세상이 떠들썩하던 무렵이었다.
부동산 투자회사 대표는, 이제 막 사무실로 들어서는 직원을 바라보았다.
“알아봤어? 어때?”
“하산해가 줄 서기 대책을 준비한다고 한 뒤로 매물이 몇 개 나오긴 했는데,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젠장. 이 정도로 민원 넣고 했으면 가격도 내려가고, 매물도 어느 정도는 나와야 할 거 아니야? 아무래도 닥쳐야 눈물을 흘리고 내놓을 모양이지?”
“그런가 봅니다.”
“너는 인마,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말고, 시위나 준비해. 끝나면 나 혼자 다 먹어?”
“시위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괜히 벌집 쑤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민들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하여간에 이 자식은, 너 구청 하나에서 담당하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어, 글쎄요? 구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달라도 보통 수십만이야. 수십만. 이게 동네로 나누더라도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건지 알아? 요새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판에, 지들이 우리가 같은 동네 주민인지 뭔지 알 게 뭐야? 그리고 너는 이번에 주소 옮겨서 동네 주민 맞잖아?”
“그런가요?”
“그런가요 하지 말고, 실제로 시끄럽기도 하니까 문제없어. 이게 실제로 부동산 매입하려고 그러는 건지 어떤지 까발려지는 건 어렵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민원이나 더 넣어. 시위 준비하고.”
“네, 사장님. 그런데 요즘 하산해 소설 때문에 식당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며칠 이따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네 말이 맞다. 이럴 때 나서면 시위 집중도도 떨어지고, 괜히 눈총이나 받겠지. 천재 문학인에게 민폐 끼친다고?”
낄낄 웃던 부동산 투자회사 대표가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줄 서기 중단한다고 했다가 원상 복귀하면 우린 돈방석에 앉는 거야. 컨트롤만 잘하자고.”
“네, 사장님.”
며칠 후.
산하네 요리 전문점 앞에서 1인 시위가 시작되었다. 마치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그들은, 산하네 요리 전문점 근처에 흩어져 시위 중이었다.
그들은 손에 팻말을 든 채 붉은색 머리띠까지 두르고 있었다.
<하산해는, 줄 서기 대책을 강구하라>
<시끄러워 못 살겠다>
<내 집에서 마음 편히 쉬고 싶다>
<24시간 시끄러운 게 웬 말이냐?>
오픈을 준비하던 산하는 그 광경을 보았고, 식당 직원들도 보게 되었다.
“형님, 어떡하죠?”
“어떡하긴, 얼른 줄 서기 없애야지. 그나저나 시위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요. 여기 주민들은 다 우리 식당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서로 어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니, 왜 이제 와서 그럴까요?”
“사람이 다 같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아무튼 민폐는 맞으니까 대책을 강구해야겠다.”
“형님, 제가 나가서 설득해 볼까요? 뉴스에서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이라고 떠드는데, 여긴 이러니까 조금 그런데요?”
“아니야. 잠깐 있어 봐.”
염려하던 산하는 시위하는 사람의 과거를 슬쩍 엿보았다.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5분 전, 한용식은 식당 앞에 사람이 엄청 많다고 생각했다.]
[17분 전, 김태만은 사장의 신신당부를 떠올렸다.]
[9분 전, 오충민은 시위 복장을 점검했다.]